《살아있다는 것은 다 행복하라》

2021. 10. 15. 20:06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2006 .9 .21.   품절  

 

 

책소개

 

많은 이들이 삶의 방향을 수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법정 스님. 출가 50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기획된 이 잠언집에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그의 글 130여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무소유, 자유, 단순과 간소, 홀로 있음, 침묵, 진리에 이르는 길과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등 법정스님의 대표적인 가르침들이 행간마다에서 읽는 이를 일깨운다. 아울러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명상적인 사진들이 더해져 영혼을 맑히는 글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책의 내용은 평소 법정스님과 가까이 지내는 시인 류시화 씨가 엮었다.
서양에서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이후에 불교의 새로운 스승으로 법정 스님을 주목하고 있는 흐름에 맞추어 이 책은 중국, 일본, 대만, 미국에서도 2006년 상반기 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법정 스님의 가르침은 이제 나라와 언어를 초월해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삶에 지침이 되고 있다.

 

저자
법정 스님 1932년 출생.  1956년 송광사에서 효봉 스님의 문하에 출가했다.  70년대 봉은사 다래헌에 거주하며 한글 대장경 역경에 헌신하고, 함석헌 등과 함께 발행에 참여했으며, 불교신문사 주필을 지냈다. 70년대 말 모든 직함을 버리고 송광사 뒷산에 스스로 불일암을 지어 칩거한 후 30년 동안 한 달에 한 편 쓰는 글로써 세상과 소통해 왔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청빈의 도를 실천하며 ‘무소유’의 참된 가치를 널리 알렸다. 2004년에는 그동안 맡아 왔던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길상사’ 회주직에서 사퇴했다. 2006년 현재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다 떠난 작은 오두막에서 여전히 홀로 살며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류시화 1959년 충북 옥천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시절인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초기에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문학 활동을 중단하고 인도, 네팔, 티베트 등을 여행하며 구도의 길을 걸었다. 이때 등 명상과 인간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50여 권을 번역했다.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내며 시집, 여행기, 산문집을 냈다. 2006년 현재 한국, 인도,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시집으로 잠언 시집 치유의 시집 과 산문집 인도 여행기 가 있다.

 

 

 

 

 

 목차 

 

 

행복의 비결
자기 자신답게 살라
말이 적은 사람
죽으면서 태어나라
날마다 새롭게

 

 

모든 것은 지나간다
기도
하나의 씨앗이
인간이라는 고독한 존재
하늘 같은 사람

 


유서를 쓰듯이
가난한 탁발승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
지금 이 순간
무소유의 삶

 


외로움
존재의 집
영원한 것은 없다
내 자신이 부끄러울 때
마음은 하나

 


참된 앎
친구
녹은 그 쇠를 먹는다
연잎의 지혜
꽃에게서 배우라

 


먹의 세계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창을 바르며
스스로 행복한 사람
인연과 만남

 


마음의 주인이 되라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
물처럼 흐르라
삶의 종점에서
수행자

 


말과 침묵
소욕지족
묶이지 않은 들짐승처럼
수류화개
날마다 출가하라

 


자신의 등뼈 외에는
현재의 당신
회심
사는 것의 어려움
그리운 사람

 


빈 마음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나무 꺾이는 소리
누구와 함께
다 행복하라

 


소유한다는 것은
바람은 왜 부는가
인간의 봄
마음의 바탕
흙 가까이

 


긍정으로 향하는 부정

다시 길 떠나며
존재 지향적인 삶
가을은 이상한 계절

 


나무처럼
산에 사는 산사람
큰 거울
무학
명상에 이르는 길

 


있을 자리
살 때와 죽을 때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그는 누구인가

 


용서
원한의 칼
개체와 전체
오해

 


빈 들녘처럼
최초의 한 생각
깨달음의 길
참고 견딜 만한 세상
얼마나 사랑했는가

 


자기를 배우는 일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눈을 가진 사람
눈꽃
만남

 


중심에서 사는 사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텅 빈 고요
귓속의 귀에 대고

 


글자 없는 책
나의 꿈
뒷모습
살아 있는 선
산에 오르면

 


함께 있다는 것
속뜰에서 피는 꽃
생의 밀도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이 자리에 살아 있음

 


도반
가장 큰 악덕
깨어 있는 사람
가뭄으로 잦아드는 논물 같은
인연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
직선과 곡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
빈 그릇에서 배운다
꽃과의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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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의 비결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다 풍요로워진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 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아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물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일단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2.   자기 자신답게 살라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When someone has become lost in sadness and anxiety,

that person is still clinging to a time in the past that has already gone.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And those who cannot sleep, terrified of the future unknown,

are using up an advance payment for time that has not yet arrived.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With one eye always turned towards the past or future,

we extinguish our life in the present, casting it away.

And, if I put it more frankly,

there is neither past, nor future.

There is only always now.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If you give your all, right here, right now, living to the utmost,

in this life, even the fear of life and death will have no place to reside.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Each one of us must live as our own selves,

right here where we stand.

 

 

 

 

 

3.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쏟아내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침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신뢰가 간다.

 

 

 

 

 

4.  죽으면서 태어나라

 

우리가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삶 또한 무의미해 질 것이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처럼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 

 

영원한 낮이 없듯이 영원한 밤도 없다.
낮이 기울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새날이 가까워진다.

이와같이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 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새로운 움이 돋는다.

순간 순간 새로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룰 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지

매 순간 살펴보아야 한다.

 

 

 

 

5

 

행복(幸福)은 많고 큰 데서 오는 것도 아니고

지극히 사소하고 아주 작은 데서 찾아온다.

조그마한 것에서 잔잔한 기쁨이나 고마움 같은 것을 누릴 때

그것이 행복이다.

 

 

 

 

6.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것일지라도 입 벌려 쏟아버리고 나면 빈 들녘처럼 허해질 뿐이다.

 

 

 

 

 

 

7.   하늘 같은 사람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적이 있는가.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인간관계에서 권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늘 함께 있으면서 부딪친다고 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그저 날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습관적인 일상의 반복에서 삶에 녹이 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가꾸고 다듬는 일도 무시할 수 없지만

자신의 삶에 녹이 슬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면서 안으로 헤아리고 높이는 일에

근본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속에 떨어진다.

행복은 절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지나친 것은 행복을 침식한다.​

사람끼리 만나는 일에도 이런 절제가 있어야 한다.

 

행복이란 말 자체가 사랑이란 표현처럼

범속한 것으로 전락하는 세상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행복이란

가슴속에 사랑을 채움으로써 오고,

신뢰와 희망으로부터 오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데서 움이 튼다.

그러므로 따뜻한 마음이 고였을 때,

그리움이 가득 엄치려고 할 때,

영혼의 향기가 배어 있을 때 친구도 만나야 한다.​

습관적으로 만나면 우정도 행복도 쌓이지 않는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또는,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8.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법구경)

이와 같이 마음이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

온전한 인간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게 아니고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되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피면 된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9.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과 불행은 밖에서 부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10.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수도자는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고립은 공동체와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랄 것이 없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매 순간 형성되어 간다.

 

절대고독이란,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워서 흔들리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당당한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수행자가 가는 길은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

오묘한 도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자기에게 그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자기를 바로 알되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하는 것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뱔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11.  그리운 사람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거나

일상적인 스치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울림이 없다.

영혼의 울림이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12.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에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13.

 

다시 길을 떠나며

 

 

이 봄에 나는 또 길을 찾아 나서야겠다.

이곳에 옮겨와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새로운 자리로 옮겨 볼 생각이다.

수행자가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안일과 타성의 늪에 갇혀 시들게 된다.

 

다시 또 서툴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영원한 아마추어로서 새 길을 가고 싶다.

묵은 것을 버리지 않고는 새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미 알려진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내 자신만이 내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그 누구도 내 삶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나는 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없는 듯이 살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나는 내 삶을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 누구도 닮지 않으면서 내 식대로 살고자 한다.

자기 식대로 살려면 투철한 개인의 질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 질서에는 게으르지 않음과 검소한 단순함과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도 포함된다.

그리고 때로는 높이높이 솟아오르고 때로는 깊이깊이 잠기는 그 같은 삶의 리듬도 뒤따라야 한다.  

 

 

 

 

14.

 

존재 지향적인 삶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이세상에 어디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놀라운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오늘을 마음것 살고 있다면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생에 집착하고 삶을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생에대한 집착과 소유에 관념에서 놓여날 수 있다면
엄연한 우주질서에 조금도 두려워 할것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이므로.

물소리에 귀를 모으라.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다.
우리가 살만큼 살다가
갈곳이 어디인가를 깨우쳐 주는
소리없는 소리이다.

 

 

 

 

15.

 

'無學'이란 말이 있다.

전혀 배움이 없거나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음을 가리킴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말고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생기 넘치는 삶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 될 때

그 지식인은 가짜요, 위선자다.

 

 

 

16

 

살 때와 죽을 때

 

 

살 때는 그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그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는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때도 이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떨어져 내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질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때 만큼 아름답지 않다.

 

생과 사를 물을 것 없이

그때그때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불교의 생사관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순간순간 죽어간다는 소식이다.

 

현자는 삶에 대하여 생각하지

죽음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17.

 

차(茶)의 세계에 '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개인의 생애로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때를 갖는 이것이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순간을 뜻 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8.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오직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지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의 길이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삶을 매 순간 개선하고 심화시켜 가는 명상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우리가 마음의 수양을 하고 개인의 수양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19.

 

자기 삶의 질서를 지니고 사는 자주적인 인간은

남의 말에 팔리지 않는다.

누가 귀에 거슬리는 비난을 하든 달콤한 칭찬을 하든

그것은 그와는 상관이 없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지나가는 한때의 바람이다.

바람을 향해서 화내고 즐거워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허수아비나 인형이기 때문이다.

 

 

 

20.

 

누구나 자기 집에 도자기 한두 점 놓아두고 싶고

좋은 그림 걸어두고 싶어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거기 그림이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