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8. 08:15ㆍ詩.
그리운 악마
이수익
숨겨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혼자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챌 비밀 사랑
둘 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둔 정부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같은 여자
<현대문학>1994.7월호에서
St. James Infirmary - Blues Underground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이수익 <그리운 악마>)
이 시에 나오는 ‘정부’는 단순히 숨겨둔 여인네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신선한 삶의 에너지를 향한 인간의 갈망을 시인은 불륜의 사랑에 빗대 노래한 듯하다.
‘그리운 악마’는 단순한 팜파탈(악녀, 요부)이 아니다.
마음 설레게 하고 심장의 피를 뛰게 만드는 이 세상의 온갖 매혹적인 존재들이 바로 그리운 악마다.
하지만 이런 도덕적인 해석은 사실 재미없다.
그래서 한 여성시인은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나는 정부(政府)보다 정부(情夫)를 갖고 싶다.
악마가 있고 죄가 있는…. 위험하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다.”
낭만적 일탈을 꿈꾸는 욕망은 따분한 일상을 맛깔나게 하는 향신료와 같다.
그러나 낭만이 현실로 오면 비루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하지 않은 정부’는 어떤가.
‘세상에다 신발을 벗어놓고 꿈속에 숨겨둔 정부(情婦)를 만나러 간다/
… 밤이면 밤마다 찾아가 둘만의 심장을 대펴 줄 이야기를 쏙닥거리다가/
몰래몰래 독주처럼 마시는 뜨거운 사랑/
… 우리 사이 비밀스런 사랑 암호(暗號)는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다디단 완전범죄/
들킬 걱정 없어서 슬퍼지는 꿈속의 정부 하나’
(이해수 <꿈속에 숨겨둔 정부 하나>)‘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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