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31. 19:41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그림은 마음에 남아
- 매일 그림 같은 순간이 옵니다
2018. 4. 18
책소개
당신,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삶이 울렁일 때 마음을 일렁이는 내 곁의 그림들
항상 거짓말을 합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이죠. 삶은 늘 녹록지 않습니다. 매일 시간과 일에 쫓기고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진심을 드러내도 괜찮은 ‘내 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때 그림을 마중물삼아 내 자신을 들여다봅니다._[시작하며]에서
작은 행복과 여유를 누리는 것이 삶의 중요한 가치로 회자될 만큼 우리 사회는 각박하고 피로하다. 비단 정치ㆍ사회면의 시끄러운 뉴스 때문만은 아니다. 일상 곳곳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하물며 서로 위로와 위안을 주고받는 일이 때때로 조심스러워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곁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이 있다. 오래도록 감동을 안겨주는 문학작품, 경건한 마음을 품게 하는 건축물, 맑은 선율로 평온함을 선사하는 음악 그리고 캔버스에 담긴 부드러운 선과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색, 따뜻한 그 빛은 회색빛 일상에 활기를 덧입힌다. 그렇게 마음에 오래 남은 예술작품은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그림은 마음에 남아』는 빠듯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 매일 그림에서 얻는 위로의 순간들을 담아낸 그림에세이다. 날마다 ‘그림 같은 순간’을 마주한다는 지은이에게 그 시간들은 결코 아름다움과 행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출근길의 혼잡한 지하철,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듯한 직장생활, 소파에서 뒹굴며 마냥 쉬고 싶은 어느 날의 저녁, 고독한 마음을 데워주는 한 잔의 술 등 반복적이거나 스치듯 지나가는 일상의 파편들이 지은이에게는 모두 ‘그림 같은 순간’이다. 지은이는 화가들의 그림을 마주하며 일과 생활, 인간관계, 자신에 대한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지은이의 ‘그림 읽기’는 그림을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독자 스스로 그림 속 풍경과 인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다.
저자 : 김수정
저자 김수정은 흔하디 흔한 ‘아름다움’과의 만남에 번번이 압도되곤 한다. 아름다움은 내게 에너지를 북돋는 최선의 통로다. 우연처럼 그림을 만나 숙명처럼 미술인이 되었다. 배워서 가르치는 일에 푹 빠져 내내 공부하고 일 해왔다. 매일 그림 곁에서 존재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는다. 더뎌도 한결같다. 이미지 읽기와 글 바라보기를 좋아해 그림과 책 주변을 맴돌며 이것저것 주워듣고 가르친다.
선화예고 서양화과와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고양예고 시각미술과에 오래 출강했다. 현재 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기초 튼튼ㆍ르네상스 인간형 미술교육에 힘쓰고 있다. 페르메이르의 우아함과 시다네르의 색채, 콜비츠의 강인함과 조희룡의 성심을 흠모하며, 예민하고 쓸쓸한 뭉크를 가슴으로 존경한다. 언젠가는 성북동에 둥지를 틀고 길상사와 간송미술관 곁을 노닐며 살고 싶다.
목차
시작하며 ㆍ 당신 곁의 위로
1부. 매일, 그림
월요일의 전사는 달린다
누가 내 화장 좀 지워줄래요
충전 중입니다
인생은 포인트를 쌓아가는 것
버티는 삶에 관하여
당신은 쉬어야 한다
그 노래, 벚꽃 엔딩
인생의 멋진 일은 대부분 후반부에 일어난다
진실한 것은 오직 고통뿐
삶을 머금은 손
2부. 나를 높이는 그림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품위는 균형에서 나온다
선택된 이들의 슬픔
주저앉은 자리에 빛이 쏟아지다
이토록 지독한 고독
걷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온기의 효능
나의 든든한 날개
지나치게 가벼운 ‘힘내세요!’
3부. 결국은 사랑
온 세상이 집중하는 풍경
붓의 방향, 사랑의 시선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불확실성의 시대, 확실한 단 한 가지
내게 강 같은 사랑
마음의 균형을 잃게 만드는 사람
모든 것은 눈빛 때문이다
너덜너덜, 피 흘리는 마음
사랑 후에 남은 것들
4부. 그림처럼 우리
어느 날 분홍이 내게 왔다
주홍빛 향기가 머물다
모네의 안경을 빌리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겨울의 해변가에서
꽃길만 걷게 해줄게요
디어 라이프
투명해서 아름다운
찬바람 불어오면, 눈 아가씨
그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마치며 ㆍ ‘자기만의 방’을 가꾸는 일
책 속으로
수많은 실패를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흐름과 같아 이를 인연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인연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오가듯 물 흐르듯 그저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결이 같아 행동과 생각의 흐름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덧 얽혀 같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_ [충전 중입니다]에서
인생의 맷집을 키우는 일은 지난하다. 사는 일 별 것 있나, 잘하는 일 못하는 일 모두 버텨야 하는 일투성인 것을. 위대한 알베르트 에델펠트조차도 기약 없는 긴긴 시간을 버티기만 하지 않았던가. 버티는 건 미래에 대한 예의고, 인내는 나중에 만날 비밀의 몸값이다. 그러니 한 번쯤은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생은 항상 제멋대로라 대개 서운함을 안겨주지만 가끔 충격 넘치는 반전도 선사하므로.
_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흔들림의 하루하루를 통과하며 내가 알게 된 것은 ‘인생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매일은 ‘균형의 연습’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작고 큰 선물을 받는다. 이제 나는 인간이 그저 한 인간 이상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은 물질적이거나 생물학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시간과 의미를 겹겹이 올리는 존재다. 목숨의 길이만큼 격을 쌓는 특별한 존재다.
_ [품위는 균형에서 나온다]에서
인간의 생활과 경험을 그린 소박한 그림이 있다. 높은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보통의 일상을 그려냈기에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그림들이 그렇다. 사사로운 그림은 겉보기에 자칫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이나 오히려 이 검소함이 ‘순간 멈춤’의 감동을 준다. 그러한 풍속화의 거장 중에 카를 슈피츠베크가 유독 빛난다._[우리 근대를 밝혀준 그림들]에서
이 그림이 사랑받는 것은 양초 한 자루의 고마움 때문만이 아니다. 바람을 가리는 단정한 손길과 양초를 받쳐든 섬세한 손끝이 정성스럽기 그지없기에 마음을 울린다. 촛불을 든 예수의 손은 곁을 채우고 곁을 지키는 손이다.
_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에서
사랑의 시선은 능력이다. 사랑의 눈길만 있으면 긴장이 넘친 순간도 긴장이 풀린 순간도 사랑스럽게 포착할 수 있다. 아니, 모든 순간이 사랑 가득한 작품이다. [나의 첫 설교]와 [나의 두번째 설교]에 수많은 이가 열광한 이유는 사랑의 눈길이 만든 걸작이기 때문 아닐까._ [붓의 방향, 사랑의 시선]에서
한때 내가 시에 빠져든 이유는 시야말로 그림과 가장 가까운 문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은 이미지에는 상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상상력이 작동하는 이미지를 그리려면 추상 언어인 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는 철학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유를 넓히고, 사유는 시의 이야기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창조한다.
_ [마음의 균형을 잃게 만드는 사람]에서
출판사서평
그림이 지나가면 위로가 남는다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은이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 중학교 미술선생님으로 교직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 혹은 지금도 삶은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주유소와 대형마트 등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사회초년생 때는 앞으로 유망하다는 일을 시작했다가 곧 실망하고 다른 일을 배우러 다니기를 반복하며 방황의 날들을 보냈다.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화가들은 의미 있는 순간, 그들의 마음을 그림으로 남겨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을 위해 준비된 그림이 있습니다. 마크 로스코를 만나면 무릎을 꿇게 되고, 프리다 칼로를 만나면 눈물을 쏟습니다. 케테 콜비츠를 만나면 한번 더 인내할 수 있고,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만나면 이 생(生)을 더 진중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그림을 만나면 가슴이 움직입니다. 저 그림과 마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그림이 내 인생에 힘이 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_ [시작하며]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은이는 자신의 일상에 예술작품을 덧씌운다. 삶을 빛내기 위한 포장보다는 고된 일상을 제대로 또 온전히 지키고 싶은 선택이었다. 지은이의 삶과 포개지는 화가들의 그림과 작품 이면의 이야기는 그림을 보다 풍성하게 읽게 한다. 가령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두고 지은이는 쇠라가 남긴 한 점 한 점에서 ‘인생은 포인트를 쌓아가는 것’이라는 가치를 발견하고, 볼륨을 과감히 생략해버린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을 통해서 걷는 행위는 곧 사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견고하게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지은이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순간의 면면들을 놓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만난 그림을 ‘자기만의 방’에 놓는다.
가만히 바라보는 내 곁의 그림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매일, 그림]에서는 반복되는 일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가령, 대니얼 셀렌타노와 릴리 푸레디의 1930년대 지하철 그림에서 오늘 아침 출근길의 ‘지옥철’을 만나고,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그림 속 여인을 보면서는 지은이 역시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을 기운조차 없는 어느 날의 기억을 투영한다. 2부 [나를 높이는 그림]에서는 자존감이 떨어진 외로운 이들이 홀로 고요히 쉴 수 있도록 카를 슈피츠베크의 ‘비밀의 장소’로 안내하고, 루이장모의 그림을 통해 삶의 고비를 함께 이겨내자며 응원한다. 3부 [결국은 사랑]에서는 연애도 결혼도 사치품목이 되어버린 ‘불확실성의 시대’를 향한 위로와 안타까움을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 4부 [그림처럼 우리]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일상에서 지은이를 단단하게 일으켜세운 작품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그림은 마음에 남아』에는 총 62점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62점의 작품은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는 상황을 담은 62컷의 순간들로 쉽게 치환된다. 이 순간들은 거장의 친숙한 작품일 수도, 매일 만나는 익숙한 풍경일수도, 어디선가 한번쯤 만났을 법한 인물들이 담겨 있는 삶의 면면과 다름없다. 그러기에 지은이의 그림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어떤 사람의 생각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은이와 함께 그림 자체에 들어가서 풍경이 되고 인물이 되어 그림을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에 남는 그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때때로 당신이 멈칫하게 되는 순간,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닿는 그림은 분명 거기 있을 것이다.
부디 당신의 방에 꼭 어울리는 그림을 찾으세요.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그림에도 인연이 있습니다. 분명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은 마음에 남아, 당신 마음을 가장 당신답게 가꾸어줄 것입니다. 부디 이 책이 당신 마음의 방에 살포시 놓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_ [마치며]에서
대니얼 셀렌타노(美), <지하철> (1935) / 릴리 푸레디(美), <지하철>
존 화이트 알렉산더 <휴식> . 종이에 파스텔. 1895
↑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이런 풍의 작품으로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것이 납득이 안된다. 그것도 미국의 무명화가에게. 지금으로 말하자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았단 얘긴데.......????
오바마가 이런 말도 했었나?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케테 콜비츠, <애도, 1938-1939>
백석과 케테 콜비츠 파트, 잘 썼습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사르트르와 교유했다. 자코메티의 직관력과 표현력은 4살 연하의 사르트르에게 영감을 주었고, 사르트르는 자신이 품었던 실존의 고민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데 감격하였다. 그들은 예술과 철학이라는 도구로 인간의 실존을 추구하는 데 있어 닮은 꼴이었다.
삶의 덧없음을 절감하는 가코메티의 작품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 휙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인체,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뼈대, 무언가에 긴장한 듯 경직된 모습, 뼈대에 간신히 붙은 상처처럼 거친 흙 자국 표면.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인간 겉껍질 아래에는 모두 다 같은 모습의 부실함이 있다는 것을. 이러한 자코메티의 인체는 멘털이 한껏 쪼그라든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잘 표현한다.
<걷는 사람>은 제목과 달리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걷는 순간을 포착했지만 움직임이 전혀 없고, 오히려 정지된 순간 같다. 거대한 추를 단 듯 발목은 땅에 붙어 있다. 이러한 動勢 없음은 오히려 기묘한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현실이 아닌 낯선 감각을 불러 일으킨다. 혹시 내면의 절박한 고독을 확인한다면 그는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고.......
↑ 해석을 잘했군.
누가 다듬이돌을 주어서 그 위에 인형을 놓았다든가?
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but Some Heart Did Break (원제: "저녁이 가면 아침이 오지만 가슴이 무너지는구나")
<슬픔은 끝이 없고> 1984 / 152 × 122 버밍엄미술관
영국의 외광파 화가 월터 랭글리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으나 대학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아 디자인 공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석판화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스무살 무렵이었으며, 1880년 뉴린 지역 어촌에 자리 잡고 가난한 어부들과 빈곤한 노동자를 주로 그렸다. "내 그림은 가난으로 직면하는 끝없는 고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는 1851년 잉글랜드의 한 강가에 이젤을 놓고 하루 11시간씩 주 6일 꼬박 5달 동안 ‘오필리아’를 그렸다. 자연의 풍경을 아주 정밀하게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14~15세기의 이탈리아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존 에버렛 밀레이는 진실하고 꾸밈없는 자연의 묘사를 찬양했다. 라파엘로 이전의 회화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라파엘전파'를 결성했다.
그는 친구의 아내였던 에피 그레이와 결혼하게 되는데(이와 관련해 엄청나게 긴 스토리가 있는데 각설하고) 그 사이에서 엄마를 쏙 빼닮은 딸을 갖게 된다. 게다가 엄마의 이름까지도 그대로 받은 딸 ‘에피 그레이’는 존 에버렛 밀레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그림에도 잘 나타나있다.
‘에피 그레이’(일부), 토마스 리치몬드, 1851, 런던 국립초상미술관(왼쪽). ‘나의 첫 설교’, 존 에버렛 밀레이, 1863, 길드홀 아트 갤러리(오른쪽). |
존 에버렛 밀레이는 딸 에피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교회에 가 설교를 듣는 모습을 그렸다. 진지하고 영민한 모습의 에피를 바라보는 아빠의 따뜻한 시선이 잘 표현된 그림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연작을 1년 후에 다시 그렸는데, 제목은 ‘나의 두 번째 설교’다.
‘나의 두 번째 설교’, 존 에버렛 밀레이, 1864, 캔버스에 유채, 91.4x71.1cm, 길드홀 아트 갤러리. |
"여기 작은 숙녀 한 분이 계십니다. 이 숙녀의 우아하게 주무시는 모습은 나에게 아주 유익한 교훈을 하나 주었는데, 긴 설교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그리고 사람을 졸게 만드는 강연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를 반성하게 만들고 보는 우리도 아빠미소 짓게 하는 그림. ‘나의 두 번째 설교’.
가끔 화가의 생애를 들여다보다가 이토록 우아한 유머를 발견하는 기쁨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림 속 사랑의 에너지가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확신을 들게 하여 더 깊이 그림의 마력에 빠지게 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방면명령> 1852 103× 74
(원제목 : 몸값)
19세기 영국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대표적 작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는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주제를 가지고 많은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밀레이는 어릴 적부터 항상 격한 찬사를 받아왔던 신동이었다. 왕립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했으며 재학 당시 모든 상을 독차지했다. 누구보다 출중한 실력과 감수성을 겸비했던 그는 당시 미술계에 만연해 있는 상투적인 형식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청년이 된 밀레이는 뜻을 같이하는 아카테미 졸업생들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 이전처럼 순수하고 심오한 미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라파엘 전파’를 결성했다.
1848년 그를 중심으로 윌리엄 홀만 헌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 영국의 젊은 작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로얄 아카데미의 화풍에 반발하여 르네상스의 대표화가 라파엘 이전의 미술경향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만든 라파엘전파를 결성했고 그들은 문학적 스토리에 기조를 두고 낭만적 서정과 중세적 신비로움이 풍겨나는 그림들을 주로 선보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햄릿' 같은 셰익스피어 비극은 최고의 주제였으며 특히 비극적인 로맨스를 그린 햄릿은 무한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밀레이는 밝은 색감에 치밀한 묘사를 기조로 한 청교도적 화풍을 즐겼는데, 이는 순수하고 도덕적인 미술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이후 영국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테크닉 부족은 도덕성의 부족이라며 정밀한 실사를 고집했다. 라파엘전파의 젊은 화가들이 화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세간의 비판과 기성 화가들과 평단의 거부감을 일으켰다. 그때 그들의 의도를 지지하고 나선 인물이 빅토리아시대의 비평가이자 석학인 러스킨이었다. 러스킨은 라파엘전파의 사상과 그림을 적극 지지했고 이를 계기로 밀레이와 러스킨 부부는 서로 왕래하며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이들의 사이는 러스킨 부부의 여행에 밀레이를 초대할 정도로 돈독했는데 이 여행이 밀레이와 러스킨, 그리고 러스킨의 아내 에피 세 사람의 운명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러스킨의 부인 에피는 세익스피어의 소설 주인공 '오필리아'처럼 극도의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었다. 러스킨의 문제로 결혼 6년간 사무치는 외로움에 혼자 내버려져 있었던 결과였다. 아기도, 부부관계도 없이 고독에 떨고 있던 에피가 밀레이의 모델 청원을 구원의 빛처럼 여겼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하고 남는다. 평소 에피를 남몰래 사랑하던 밀레이는 그림을 그리며 에피의 고독한 삶에 대해 듣게 되고 에피 역시 다정다감하고 도덕적이며 완벽한 이 예술가에 마음을 주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거대한 풍파를 헤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에피는 결혼 6주년 되는 해에 교회 법정에 결혼 무효 소송을 냈고, 그녀의 기구한 사연을 들은 교회는 러스킨 부부의 이혼을 명령했다. 다음해 밀레이와 결혼한 에피는 이후 40년간 슬하에 4남4녀를 두고 백년해로하며 살게 되었다.
밀레이가 처음 에피를 두고 그린 작품은 바로 1853년작 '1746년의 방면 명령'이다. 18세기 중반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좌에 앉히려는 반란에 가담한 스코틀랜드 병사가 방면 받고 옥에서 풀려나는 장면을 그린 역사화이다. 남편을 구하기 위해 권력자에게 몸을 바치게 된 그림 속 여인은 남편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리 표정이 밝아 보일 수 만은 없다. 감격에 겨워 아내의 어깨에 머리를 묻은 병사와 주인을 만나 기뻐 날 뛰는 개, 아버지의 등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잠든 철부지 아이의 표현은 무척 사실적이다. 여자는 남편의 자유와 가족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결정으로 그들의 미래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이 그림 속 그녀의 맨발은 고귀한 순결을, 성모마리아 베일 마냥 두른 파란 색 천은 거룩함을 의미한다. 밀레이에게 있어 에피 또한 순결하고 고귀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밀레이는 나중에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도 되고 국립미술원 원장도 되었으며, 화가 중에 최초로 준남작의 작위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여왕은 밀레이의 아내 에피에게 만큼은 매우 냉혹하게 대했다. 밀레이는 영국 사교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많은 행사에 초대받곤 했는데, 여왕이 참석하는 모든 행사에 에피는 참석 할 수 없었다. 밀레이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빅토리아 여왕은 그에게 시종을 보내 도울 일이 없는지 묻자 그는 여왕이 그의 아내를 만나 주기를 간청하였고, 에피는 드디어 여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사랑하라, 사랑을 위해선 무엇이든 해라.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다. 150년전의 순수한 변혁을 꿈꾸었던 화가가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펌)
[바실리 칸딘스키, <말을 탄 연인> 1906-7]
칸딘스키는 1896년 독일로 유학한다. 1901년 칸딘스키가 설립한 팔랑스 미술학교에 입학한 가브리엘 뭔터를 만난다. 25세의 뮌터와 36세의 칸딘스키는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이미 열 살 많은 사촌누이와 결혼한 칸딘스키와 뮌터의 사랑은 순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뮌터의 존재만으로도 칸딘스키의 창작열은 넘쳤다. 그는 '내적 필연성'을 풀어낸 추상 이론서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를 1910년에 완성했다.그리고 두 사람의 관심사인 음악은 당시의 혁명적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만나 음악과 미술을 결합하고자 하는 열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
1911년 칸딘스키와 마르크를 중심으로 청기사파가 결성된다. 전자에게 파랑은 현대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원시의 색채였고, 후자에게 말은 순수한 영혼성을 의미했다.
※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러시아인 칸딘스키는 독일에 머물 수가 없었다. 뮌터는 칸딘스키를 만나기 위해 스톡홀름에서 내내 그를 기다렸으나, 칸딘스키는 1917년 러시아에서 다른 여자와 재혼하고 만다. "나는 오직 당신을 통해서만 진정한 위대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라고까지 말한 남자의 배신이었다.
※
나치는 칸딘스키를 퇴폐미술가로 낙인 찍고 그의 작품들을 찾아내 파괴했지만 뭔터는 지하실 벽 안쪽에 이중 공간을 만들어 칸딘스키의 그림을 나치에서 지켜냈다. 훗날 칸딘스키는 변호사를 시켜 그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뮌터는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法廷은 뮌터의 손을 들어주었다. 1957년 뮌터는 렌바흐하우스에 칸딘스키의 작품 1천여 점을 기증한다. 그러나 뮌터는 1962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칸딘스키를 잊지 못했다.
CMF : 제품 디자인에서 Color(색), Material(소재), Finishing(마감)이 중요함을 의미.
나는 지금 예순일곱 살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돌베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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