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8. 20:21ㆍ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트레킹 열 아홉째 날
길었던 하루가 끝나고, 주문한 저녁이 나오길 기다리며 식당에 앉아 있는 지금.
막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마지막 장을 덮었어.
가슴 저미는 슬픔과 분노로 머릿속이 먹먹해.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지니는 이런 폭력적인 편견과 잔혹한 시선이 과연 과거의 일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은 것 같아.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편견과 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장애인에 대해, 여성에 대해, 제 3세계 노동자들에 대해, 성적 기호가 다른 이들에 대해,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에 대해, 좁게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여전히 단호하고 완고한 시선을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돼.
그걸 생각해보면 인류의 진보와 평등이라는 건 아직도 먼 꿈 같기만 하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역시 이럴 땐 어리석은 집착 같이 여겨지기도 해.
우울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오늘은 산에서의 마지막 밤이야.
내일 오후면 난 카트만두로 돌아가게 될 거니까. 그래서였나, 오늘은 정말 긴 하루였어.
새벽 5시 반에 깨어났을 때 내 방 창문으로는 새벽 여명이 비쳐들고 있었어.
침대에 누워 일출을 보는 기분, 너희들이 알까?
침낭 속에 누운 채로 하늘빛이 조금씩 변해가며 아침이 오는 모습을 지켜봤어.
마침내는 밖으로 나가 잠든 산을 깨우며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행복한 아침이었어.
▲ 다시 만나는 랄리구라스 터널. 쿠툼상(2470M) 가는 길.
ⓒ2004 김남희
아침 먹고, 다니엘과 작별 인사하고, 언제나 같은 무게인 배낭을 메고, 7시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정말 걸어도 걸어도 절대로 끝나지 않는 길이었어.
치플링(Chipling 2470m)에서 점심 먹기 전까지 네 시간 걷고,
점심 먹은 후에 다시 세 시간 가까이 걸었으니 꽤 오래 걸은 셈이지?
마침내 목적지인 치소파니(Chisopani 2215m)에 도착했을 땐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어.
스타일은 없지만 그래도 소파와 탁자까지 갖추고 있는 방에 짐을 풀고,
씻고, 빨래하고, 뜨거운 우유 한 잔 마시고 나니 그제야 숨을 돌리겠더라.
이제 내일이면 난 ‘문명세계’로 ‘귀환’해.
우선은 ‘짱’에서 김치찌개로 밥을 먹고, 피시방 가서 3주만에 편지 확인하고,
침낭이 아닌 이불 속에서 팔 다리 쭉 뻗고 푹 자야지!
산에서 내려가는 게 아쉽긴 하지만, 오랜만에 즐길 문명의 혜택을 생각하니 그것도 또 즐겁게 기다려져.
내일은 문명세계에서 편지를 쓸 테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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