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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8. 20:00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트레킹 일곱째 날


날씨 : 화창
걸은 구간 : 페리체(Pheriche 4280m) - 투글라(Tuglha 4600m) - 로부체(Lobuche 4930m)
소요 시간 : 3시간 45분
복장 및 위생 상태 : 비교적 양호


  
7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다.

기얀드라 친구가 공짜로 준 따뜻한 물에 세수하고), 부엌에서 아침을 기다리는 중이다.

식당에는 아직 난로가 지펴지지 않아 염치 불구하고, 부엌으로 들어와 화덕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오늘도 날씨가 맑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고생길이 시작된다.

오늘은 부체에서 머물고, 내일 아침이면 에베레스트를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5545m)에 오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카레라이스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9시 35분에 출발했다.

눈 덮인 산길을 따라 길을 오른다.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 촐라체와 따우체의 자락에 자리잡은 페리체. 눈 덮인 돌담과 돌집이 보인다.  

ⓒ2004 김남희



▲ 투글라에서 로부체로 향하는 고개에서 만난 초르텐(돌탑)과 탈쵸(경전을 인쇄한 깃발).  

ⓒ2004 김남희



2시간 남짓 오르니 투글라(Tuglha)가 보인다.

투글라는 집이 딱 세 채인 작은 마을이다.

작은 찻집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영국에서 온 롭과 안토니와에게 인사를 한다.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South or North?(남 또는 북)"이라며 묻는다.

‘아니, 세계 정세에 아무리 둔감해도 그렇지, 어쩌면 아직도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Korea is one!(우리는 하나)"이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다 옛말이다.

이제는 부연 설명할 일이 지겨워서라도 그렇게는 대답하지 않는다.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질문을 듣는지 몰라. 북한 사람들은 외교관과 정부 관리를 제외하고는 해외여행을 못 해.

네가 만약 여행 중인 한국 사람을 만나면 99%는 남한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12시. 다시 출발이다.

30분쯤 오르니 길은 수월해지고, 푸모리(Pumo Ri 7165m)가 정면에 보인다.

커다란 플라스틱 물병 하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는 푸모리를 바라보며 걷는 길에 걸리적거린다.

모른 척 지나치기엔 너무도 가까운 발치에 놓여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주워들고 걷고 있자니, 기얀드라가 들고 가겠다며 받는다.
감동은 순간, 잠시 후 바위 틈 사이로 “휙”하니 물병을 던져버리는 기얀드라. 한숨밖에 안 나온다.

1시 45분. 로부체(Lobuche)다.

투글라에서 만났던 영국인 롭과 안토니가 먼저 와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고산병 예방에 좋다는 마늘 스프와 오믈렛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올라오는 길에 머리가 약간 아프더니 그 사이 괜찮다.

이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은 16살 된 쥬니와 스무 살 먹은 그녀의 남편이다.

16살에 어떻게 결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네팔에서는 ‘필이 꽂히면’ 바로 결혼한단다.

남편이 가이드, 포터들과 카드 게임을 하는 동안 쥬니는 남편이 지는지, 이기는지 쳐다보며 참견하느라 산만하다.

나는 난롯가에서 간디를 읽으며 건빵을 먹는다.

언니가 카트만두에 도착한 날, 거대한 건빵 봉지 두 개를 본 나는 “웬 건빵? 뭐 그런 걸 다 사왔어?”하며 비웃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건빵 두 봉지를 나 혼자 다 먹었다.

이번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의 뜻하지 않은 수확 하나가 건빵 맛의 재발견이다.

건빵 봉지에는 “배고프던 그 시절. 어머님이 건네주시던 그 손맛 그대로. 추억의 건빵. 별사탕도 들어있어요”라고 적혀있다.

나는 그걸 바꿔 읽는다. “배고프던 그 산행. 언니가 건네주던 그 손맛 그대로.”

딩보체에서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호주인 던킨이 우리를 보고 개울을 건너 찾아왔다.

그는 칼라파타르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이란다.

“칼라파타르 어땠어?”
“Tough! Very Tough!

거긴 무지무지 추워서 가져온 옷 다 꺼내 입고, 이 두꺼운 장갑까지 꼈는데도 추워서 죽을 뻔했어.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말도 못해. 사만타는 끝까지 못 올랐어.”

사만타는 꽤 건강하게 보이는 일본인이다. 그런 사만타까지 못 올랐다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저녁 전에 던킨, 롭, 안토니, 언니와 카드 게임을 했다.

우리가 며칠 전 기얀드라와 던킨에게 가르친 ‘원 카드’를 하고, 그 다음엔 롭이 가르쳐준 'Ass hole' 이라는 얄궂은 이름의 게임을 했다.

음주가무, 잡기에 서투른 나답게 여기서도 꼴찌는 내 차지다.

롭과 안토니는 아직도 베이스캠프에 갈지, 칼라파타르에 오를지 결정을 못 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칼라파타르에서 보는 전망이 낫다고 하는데도 안토니는 제 주장을 꺾지 않는다.

“칼라파타르는 안돼. 사람들한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갔다 왔다고 해야 말이 되지,

칼라파타르라고 하면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라고.

카트만두의 한국인 숙소 “짱”의 선미 언니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꼭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혹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등 남들이 알아주는 코스를 선호한단다.

난롯불이 꺼져 가는 시간이다. 8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몇 번의 꿈 빼고는 아주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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