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8. 20:01ㆍ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 칼라파타르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와 로체, 눕체.
왼쪽 눈덮인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숄더, 검은 바위봉우리가 에베레스트, 그 오른쪽으로 겨우 드러난 검은 바위봉우리는 로체, 그 옆은 눕체.
ⓒ2004 김남희
트레킹 여덟째 날
날씨 :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걸은 구간 : 로부체(Lobuche 4930m)-고락쉡(Gorak Shep.5150m)-칼라파타르(Kalapatthar. 5545m)-고락쉡-로부체
소요 시간 : 7시간
복장 및 위생 상태 : 불량
눈을 뜨니 6시다. 날은 화창하게 개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우선 복장부터 새롭게 무장한다.
그동안은 내의 위에 플리스 천을 안으로 덧댄 겨울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오늘은 고소내의 한 벌을 더 입는다.
양말은 세 켤레를 껴 신고, 위에는 플리스 티셔츠 두 개, 그 위에 보온 점퍼, 다시 윈드스토퍼를 입고 마지막으로 점퍼를 걸친다.
보온 모자와 장갑을 끼고, 어젯밤 던킨에게 빌린 바라클라바와 방풍 장갑을 가방에 넣는다.
오늘은 짐을 작은 가방 하나로 줄여 마실 물과 비상 식량, 여벌의 옷
만을 넣고 그 가방을 기얀드라에게 준다. 우리는 각자 카메라 하나씩만 메고 스틱을 들었다.
뜨거운 코코아를 한 잔 마시고 7시 10분에 출발.
계속 굽이도는 바위 언덕 길이다.
페리체를 떠난 지 두 시간 만에 고락셉(Gorak Shep)에 도착한다.
집 두 채가 전부인데 그 중 하나는 문을 닫았다.
스노우랜드 인(Snowland Inn)에서 토스트와 코코아로 아침을 먹고 10시에 다시 출발.
푸모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급한 경사의 언덕길을 오른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흙길.
북소리처럼 울려오는 내 심장 소리.
그 다음은 너덜바위들이 널린 길이다. 30분 쯤 오르니 고갯마루가 나온다.
여기가 정상인가 둘러보는데 기얀드라가 말한다.
“여기가 칼라파타르야. 저 위랑 전망은 똑같아.”
음, 저 위가 정상이군. 이 놈이 이제 잔머리까지 쓰네. 그것도 금방 들통나는 잔머리.
“더 올라가자."
▲ 푸모리를 등지고 칼라파타르를 내려오는 트레커들.
ⓒ2004 김남희
올라오는 속도가 좀 느리던 언니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된다.
기얀드라를 내려 보냈는데 가방을 메고 왔다갔다 하게 만들기가 영 미안하다.
“가방은 날 주고 갔다와”라며 호기롭게 건네 받았는데, 그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가방 메고 너덜지대를 이십여 분 간 오르는 동안 도무지 숨이 차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가방의 무게가 이토록 처절하게 내 어깨를 눌러오기는 처음이다.
두어 걸음 떼고 지팡이에 기대어 쉬고, 다시 두어 걸음 떼고 또 기대어 쉬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쿵쾅거리며 뛰고¨.
정말 이 가방이 내 가방만 아니었으면 사정없이 던져버렸을 거다.
마침내 12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이 끝나고 칼라파타르 정상.
에베레스트(8850m)가 바로 눈앞에,
그 옆으로 살짝 드러난 로체(Lhotse 8501m)와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눕체(Nuptse 7864m)가 우뚝 솟아있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푸모리(Pumo Ri 7165m).
전후좌우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눈 덮인 산 뿐이다.
나 혼자서 저 눈부신 봉우리들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조지 맬러리.
왜 산에 가느냐는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Because it is there*(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죠)"라는 고전이 되어버린 답을 남긴 등반가.
그는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지 76년 만인 1996년에야 한 등반가에 의해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의 목에는 사진기가 걸려있었지만 세월과 기후로 인해 현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그가 정상을 올랐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어버린 셈이다.
1953년 영국 원정대에 속한 뉴질랜드 출신의 모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진 셀파에 의해 초등된 후에도
수많은 등반가들의 목숨을 앗아간 산. 그게 에베레스트다.
▲ 칼라파타르 오르는 길.
ⓒ2004 김남희
수만 년의 침묵을 이고 에베레스트는 따가운 햇살 아래 서 있다.
지칠 줄 모르고 이어져온 모든 도전과 성공, 그리고 참혹했으나 아름다운 실패를 지켜봤을 저 산은 오늘도 말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산을 오르기 위해 누군가 짐을 꾸리고 있으리라.
나는 그들이 흘렸을 땀의 양을 모른다. 그들이 꾸었을 꿈의 깊이도 모른다.
그들이 견뎌야 했을 고독과 좌절의 높이도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인간을 전진케 하는 것은 ‘격렬한 희망’이라는 것.
격렬한 희망과 그 희망에 대한 치열한 믿음 하나만으로 세상을 버티는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들의 삶은 빛이 되어 꿈 없는 이들의 가난하고 어두운 삶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오늘 나의 경배는 이 산에서 내려온 이들이 아닌, 다시 내려오지 못한 이들에게 바쳐진다.
이곳에 넘치는 건 오직 죽음에의 공포와 막막한 고독. 그리고 희박한 공기.
저 거대한 산에 청춘을 묻고 꿈을 묻고 몸을 묻은 이들의 꿈 한 자락을 잠시 들여다보는 지금,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조금씩 치밀어 오른다.
숙연한 마음으로 서 있는 동안 기얀드라와 언니가 올라온다.
침묵은 깨진다. 사진을 찍고,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잠시 머물다가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 누군가의 혼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 칼라파타르에서 내려와 고락쉐로 오는 길에 지나는 바윗길.
ⓒ2004 김남희
하산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인 1시 15분 고락쉡 도착.
스노우랜드 인으로 다시 돌아와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며 쉰다.
갈증이 난 언니는 콜라를 마시는데 이곳에선 콜라 한 캔이 250루피(4000원)다.
기얀드라가 머리가 아프다며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있다.
언니가 두통약을 꺼내 건네준다. 어떻게 된 게 우리는 멀쩡하고, 포터가 고소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이 식당의 천장과 벽은 온통 트레커들이 남겨 놓은 티셔츠와 팬티, 모자, 손수건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 천에 자신들의 이름과 날짜, 감상을 적어 놓았다.
우리도 손수건에 “까탈이와 수영, 인내와 겸손을 배우고 갑니다.
2004년 2월 4일 From South Korea‘라고 적어 주인 아저씨께 건네준다.
아저씨는 남체 시장에서 핀을 사와 걸어놓겠다는데 다음에 오면 걸려 있을지 궁금하다.
2시 10분. 페리체로 하산을 시작한다.
한 시간 남짓 바위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나니 평지가 이어진다.
3시 50분. 페리체 도착.
더운 물에 얼굴을 씻고 저녁은 야채커리와 언니가 싸온 김으로 먹는다. 다 부서진 김이 얼마나 맛있는지!
난롯가에서 랜턴 켜고 책 읽다가 방으로 돌아와 엄마께 엽서를 쓴다.
엄마에게 그랬다. 오늘로써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겠다는 꿈 하나는 확실히 버렸다고.
다른 것 다 떠나서 추위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그러니 엄마도 걱정 하나는 내려놓으셔도 된다고.
▲ 로부체 숙소 마당에서 바라본 로체샤. 마침 달은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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