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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8. 20:02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트레킹 아홉째 날


날씨 : 펄펄 눈이 옵니다.
걸은 구간 : 로부체(Lobuche 4930m)-페리체(Periche 4280m)-팡보체(Pangboche 4252m)
소요 시간 : 4시간
복장 및 위생 상태 : 점차 불량해지고 있음



8시 기상. 푹 잤다.

계란을 넣은 토스트와 코코아로 아침을 먹고 9시 35분에 출발.

한 시간 만에 투글라에 들어선다. 올라올 때 차를 마셨던 집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덧붙인다.
“아버님은 결국 고산병 때문에 페리체에서 하산하셨어요!”라고.

아버지가 누굴 말하는지 잠시 헷갈렸는데 알고 보니 정 선배님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선배님이 우리를 딸과 조카딸이라고 소개하고 다니셨는데, 그새 온 트레일에 소문이 다 났나보다.

나는 언니에게 속삭인다.

“언니, 우리 이러다가 아버지를 버린 매정한 딸들로 소문나는 거 아니야?”

바위산 하나를 넘고 나니 평지가 나온다.

투글라에서 페리체로 가는 길 왼쪽 앞으로는 멀리 아마 다블람이 보이고, 오른쪽 옆으로는 따우체와 촐라체가 따라 온다.

어제 칼라파타르에 오를 때 고소로 인한 두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기얀드라가 오늘도 몸이 좋지 않은 지 자주 쉰다.

사탕을 몇 알 건네니 초콜릿을 달라고 해 초콜릿을 꺼내 나눠 먹었다.





▲ 촐라체와 따우체. 투글라에서 페리체 가는 길. 바위에 기대어 쉬고 있는 트레커들이 보인다.  

ⓒ2004 김남희



멀리 페리체 마을이 보인다. 풀을 뜯거나 햇볕을 쬐고 있는 야크들도 간간이 보인다.

12시. 페리체 도착.

지난 번에 머물렀던 쿰부 로지(Khumbu Lodge)에서 점심. 야채 커리와 코코아를 주문한다.

그 사이 주방장은 카트만두로 휴가를 떠나고 주방 보조가 혼자 요리를 한다.

그래서인지 주문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 음식 나올 기미가 없다.

햇볕 따스한 창가에서 언니는 졸고 있고, 개 한 마리 역시 내 발 밑에서 자고 있다.

한 시간 반 만에 나온 음식을 10분 만에 끝내고 다시 출발.

시간은 두 시가 다 되어 간다. 2시 35분. 오르쇼(Orsho) 경유.

눈발이 날린다. 2시 50분. 소마레(Shomare)를 지난다.

개천을 왼쪽으로 끼고 계속되는 절벽길. 저 멀리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물소리와 야크 방울 소리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다.

그사이 눈발은 제법 굵어져 사위를 하얗게 덮는다.

희뿌연 구름과 눈발 사이로 가끔 그림처럼 산봉우리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내가 지금 인간 세상을 걷고 있는 건지,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지 모르겠다.



▲ 눈 덮인 산길을 걷고 있는 야크떼.  

ⓒ2004 김남희


팡보체(Pangboche)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사원’ 표시가 난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이십여 분 이상 오르니 절과 마을이 보인다.

타쉬 로지(Tashe Lodge)에 짐을 풀다.

건축설계가 직업인 수영 언니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집 굉장히 재미있는 집이야. 경사를 그대로 이용해 집을 지었어.

여기 계단 보여? 그리고 저 나무 좀 봐. 집 한 가운데를 뚫고 나가잖아.”

정말 식당에서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거대한 나무 둥치가 보인다.

자연적인 환경을 그대로 이용해 지어진 집답게 내부 구조가 좀 복잡하다.

우리는 우선 뜨거운 우유를 주문한다.

그리고 카트만두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덥썩 받아온 미숫가루를 꺼낸다.

정말이지 이 미숫가루를 우리에게 주고 간 ‘미숫가루 소년’에게 축복이 있기를.

뜨거운 우유에 미숫가루를 타서 약간의 설탕과 함께 마시는 이 기분.
이 집 안주인 타쉬가 맛을 보겠다기에 따라줬더니 “아니, 짬파랑 똑같네” 한다.

그렇지. 짬파가 보릿가루 볶은 거니까 비슷하겠지.

미숫가루를 마시고 있는데 기얀드라가 또 “Shop"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No!"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못 가게 감시하는 중.






▲ 팡보체 타쉬델레 롯지의 여주인 타쉬.  

ⓒ2004 김남희


이곳 주인인 타쉬는 스물 여섯 살의 이혼녀다.

이혼 후 친정집으로 돌아와 4살 난 아들 장부를 혼자 키우고 있다.

중매로 결혼 한 그녀는 처음부터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임신을 하면 대부분이 집에서 아이를 낳는데, 그녀는 갑자기 하혈을 시작해 헬기로 병원이 있는 쿰중으로 가야만 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남편은 여전히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병원에 혼자 누워 있는 동안 이 남자를 남편으로 믿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퇴원하는 길로 이혼부터 했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이혼녀가 드물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주 드물다고 한다.

네팔도 인도처럼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고, 20여 개의 부족이 있는데 카스트가 낮은 부족과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아직 대부분의 결혼이 중매로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부모가 맺어주면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많이 민주화(?)되어 직접 만나 보고 “Yes"냐 "No"냐를 결정할 말미를 하루 정도는 준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 동네의 존경받는 라마스님인 타쉬는 이곳의 돈 있는 집의 자녀들이 그렇듯 카트만두에서 유학을 했다.

이곳 산간마을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를 카트만두로 유학 보내고,

겨울이면 엄마가 자식들을 보러 카트만두로 간다.

팡보체 마을에서는 5명이 카트만두에서 공부를 했는데 다들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카트만두에서는 직장 구하기도 힘들고, 구한다 해도 월급이 적어 이곳으로 돌아와 부모의 게스트 하우스를 물려받거나

가이드나 포터, 고산 셀파 등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타쉬의 소원은 미국 같은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 아들을 공부시키는 거라고 한다.

그녀에게 그 꿈이 가장 절실한 것이라면 부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 돌레 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풍경.  

ⓒ2004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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