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사건:사건 編)

2019. 11. 23. 17:51책 · 펌글 · 자료/역사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사건 vs 사건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사건 vs 사건
- 이원복과 신병주의 시시콜콜 역사 토크
  2016.5.30.




책소개

KBS1 라디오의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은 ‘우리 역사를 세계사의 흐름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재해석하는 신개념 역사 토크 프로그램’을 모토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KBS 이정민 아나운서의 균형 잡힌 진행 아래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신병주 건국대 교수와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이 각각 한국사와 세계사를 맡아 입담 대결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사건 vs 사건』은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토크라는 자유분방한 형식과 시시콜콜 재미있는 이야기가 결합되어 누구나 쉽게 한국사와 세계사를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신병주와 이원복,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그동안 따로따로 놀았던 한국사와 세계사를 하나의 시야로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저자 : 이원복
저자 이원복은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덕성여자대학교 총장.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수료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디플롬 디자이너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와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세계사 산책》,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신의 나라 인간 나라》,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가로세로 세계사》, 《만화로 교양하라》(공저) 등이 있다.

역사, 문화, 경제, 철학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문화 통역자로서 세계 시민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 : 신병주
저자 신병주는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 최고의 명저들》, 《조선평전》, 《조선과 만나는 법》, 《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공저), 《왕과 아들,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공저) 등이 있다.

〈역사스페셜〉 등 여러 매체의 역사 관련 프로그램 감수를 맡았고, 현재 KBS TV 〈역사저널 그날〉과 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에 출연하며 역사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저자 : 이정민
저자 이정민은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KBS 아나운서.

동국대학교에서 광고홍보학/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KBS 뉴스광장〉, 〈VJ특공대〉, 〈위기탈출 넘버원〉,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 〈생로병사의 비밀〉 등의 진행을 맡았고, 현재는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여유만만〉 등의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보도, 교양, 예능,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송의 모든 장르를 섭렵한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진심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방송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다.

저자 : 박대식
저자 박대식은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KBS 프로듀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세월호 1주기 특집다큐멘터리 〈어떤 약속〉으로 한국기독교언론대상 사회정의 최우수상과 제28회 한국PD대상 라디오 특집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현재는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비롯해 KBS1라디오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저자 : 김정희
저자 김정희는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방송작가.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집 짓는 일보다 TV 보는 게 좋아 방송판에 뛰어들었다.

〈MBC 임성훈과 함께〉, 〈KBS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SBS 김미화의 U〉 등의 TV 토크쇼와 〈MBC FM 정오의 희망곡〉, 〈TBS 안문숙의 네시를 잡아라〉 등의 집필을 맡았고, 현재는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삽질로 쓰는 역사

_ 무령왕릉 발굴 vs 트로이 발굴


삽질로 찾아낸 비밀 | 한국 고고학의 대사건 | 트로이의 인디아나 존스 | 무덤 속의 보물 |

백제 중흥의 서막을 연 훈남 왕 | 신과 영웅들의 전쟁 | 타임캡슐이 새로 쓰는 역사



믿음의 영광을 짓다

_ 불국사 vs 성 소피아 성당


언제 만들어졌나 | 전성기의 국책 사업 | 웅장함을 세우다 | 불국의 위엄을 구현하다 |

불국사와 성 소피아 성당을 만든 사람들 | 보물이 한가득



왕좌의 게임

_ 후삼국의 분열 vs 프랑크 왕국의 분열


왕국의 탄생 | 종교라는 새로운 운영체제 | 행복은 신분순! | 통일왕국의 전성시대 |

내가 왕이로소이다! 왕좌의 게임 | 통일한다는 것은



칼의 시대

_ 고려 무신정권 vs 일본 무사정권


한국과 일본의 무인시대 | 칼을 벼리는 무인들 | 결전의 순간, 쿠데타의 그날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 쿠데타는 계속된다 |

기업가들의 롤모델 오다 노부나가 | 최씨 무신정권의 서막 |

몽골의 침입과 세키가하라 전투 | 칼의 시대가 막을 내리다



인문학의 탄생

_ 성균관 vs 중세 대학


옛날 옛적 대학은 | 학생이 갑질하는 대학 | 똑똑하거나 혹은 돈이 많거나 |

성균관의 시간표는 북소리로 돌아간다 | 시험에 울고 웃고 | 성균관의 빡센 커리큘럼 | 왜 공부하는가



시시비비의 기준을 세우다

_ 경국대전 vs 나폴레옹 법전


법치란 무엇인가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율령체제로 국가의 안정을 이루다 | 고려장은 없다 |

혁명의 정신을 법제화하다 | 《경국대전》, 조선왕조 체제의 규범을 확립하다



역사를 바꾼 그날

_ 계유정난 vs 콘스탄티노플 함락


1453년으로 가는 타임머신 | 수양대군의 입장 | 왕국의 아킬레스건, 왕권 |

장자계승의 원칙은 지켜졌을까 | 성공한 군사 쿠데타 |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
그날이 바꾼 세상, 르네상스와 사림파



개혁의 힘

_ 기묘사화 vs 종교개혁


천국행 티켓을 팝니다 | 사림파의 등장 | 두 남자의 성장 | 왕의 남자 | 조광조의 개혁정치 |

양날의 칼, 개혁의 한계 | 종교개혁의 양대산맥 | 개혁, 변화의 전조가 되다



기나 긴 전쟁

_ 임진왜란 vs 백년전쟁


전쟁의 서막 | 준비된 침공 | 일본과 잉글랜드의 일방적인 우세 |

전세 역전의 계기: 의병과 잔 다르크의 활약 | 영웅의 시련 |

승전보의 기억 | 전쟁과 평화 | 국제정세를 뒤흔들다



두 전쟁의 전초전

_ 정묘호란 vs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오랑캐가 쳐들어오다 | 신흥 강국의 등장 | 전쟁의 전조 | 속수무책으로 패하다 | 전쟁은 계속된다 ...



가장 치욕스런 전쟁

_ 병자호란 vs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한 번 당하고 두 번 당하는 조선| 비스마르크의 계략 | 50일 만의 항복 | 삼전도와 베르사유의 굴욕 |

패전에는 이유가 있다 | 독일과 청나라의 전성시대 | 전쟁은 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



왕의 망명 아닌 망명

_ 아관파천 vs 동북아 국제 정세 


제국주의의 시대 | 청나라의 몰락 | 왕비가 살해당하다 | 고종, 러시아공사관에 신변을 의탁하다 |

러시아의 사정 | 황제의 나라를 선포하다



1919년, 독립운동의 해

_ 3·1운동 vs 인도 독립운동
대한독립만세! | 조선과 인도, 식민지로 전락하다 | 폭발하는 독립운동 |

독립운동의 대명사, 유관순과 락슈미바이 | 1919년의 운동이 남긴 것



광복의 의미

_ 대한민국 임시정부 vs 프랑스 임시정부 


나라를 잃고 망명정부를 만들다 | 대한민국, 공화국의 이름으로 |

프랑스 임시정부, 전후 재건을 준비하다 | “조국의 문지기가 되고 싶소.” | 프랑스의 국부 | 광복의 의미



호국의 기억

_ 현충일 vs 앤잭데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 전쟁 영웅을 기리는 방법 |

공정하지 못한 논공행상 | 개선문의 영광 | 호국의 영령들이여!



‘쩐’의 문화사

_ 한국사의 돈 vs 세계사의 돈


돈의 발견 | 물물교환에서 화폐로 | 한국 사람들은 언제부터 화폐를 썼을까 |

서양 화폐의 변천사 | 화폐 그림은 국가의 얼굴 | 돈 놓고 숨은 그림 찾기

 






책 속으로

* 신라의 불교 vs 프랑크 왕국의 기독교


이정민 : 다시 신라로 돌아가서, 신라는 불교가 지배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처음에 어떻게 해서 불교를 받아들였나요?
신병주 : 나라가 만들어질 때는 국가체제를 정비하기 위해서 이념을 세우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프랑크 왕국도 게르만족 중 가장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잖아요. 마찬가지로 삼국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불교의 수용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민간신앙을 믿었는데 불교라는 고등 종교가 들어오게 되면서 왕권을 강화해주는 요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서 불교 수용이 2세기 정도 늦었어요. 고구려와 백제는 4세기경에 불교를 수용했는데, 신라는 6세기가 되어서야 수용했어요. 귀족 세력이 심하게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_ 본문 49~50쪽

* 두 나라 무인정권의 성격 차이
이원복 : 고려 후기 무신정권의 집권은 국가 말기현상인 것 같아요. 군사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가 혼란하다는 의미니까요.
그런데 일본의 무사정권은 계급의 교체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성격이 전혀 달라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화라고 볼 수 있죠.
이정민 : 고려는 무인정권이 100년 정도에서 끝나지만 일본은 700년 가까이 이어졌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_ 본문 74쪽

* 고대법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
신병주 : 함무라비 법전에 “의사가 수술하던 중 환자가 죽으면 의사의 손을 자른다”는 조항이 있는데, 무서워서 의사 못할 것 같아요. “건축가가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이 무너져서 주인이 죽으면 건축가를 사형에 처한다” 같은 조항은 우리 시대에 주는 메시지가 있어요.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죠. 1995년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처벌 규정이 거의 없어서 제대로 처벌을 하지 못했어요. 고대법이 무척 잔인하다고 볼 수 있지만, 건축이나 의술 등 자기 분야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봅니다.
_ 본문 110~111쪽

* 농민의 성격이 달랐던 조선과 일본
이원복일본군이 임진왜란 당시 가장 놀란 게 의병이었다고 해요.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에 100년이 넘게 영주들끼리 서로 땅따먹기 전쟁을 벌이면서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영주들이 땅을 놓고 싸우지만 그 안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은 안 건드렸어요. 왜냐하면 땅을 빼앗으면 농민들도 자연스럽게 모두 자기 재산이 되니까요. 영주들이 직업군인들을 데리고 전쟁을 하고 있으면, 농민들은 옆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고 해요. 농사짓고 있어야 할 농민들이 의병으로 나서니까 일본군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거죠.
_ 본문 175쪽

* 아관파천은 공짜가 아니었다
이정민 : 어쨌든 베베르 ...공사의 배려라고도 할 수 있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러시아가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에 들였단 말이에요. 어떤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을까요?
이원복 : 베베르 공사는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조선 국왕이 자기 집에 머무르고 있으니, 품 안에 있는 왕한테 뭘 안 달라고 했겠어요? 채광권, 굴착권 등 별별 이권을 다 따갔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겁니다.
신병주 : 러시아도 결국은 또 다른 제국주의 나라였죠.
_ 본문 239~240쪽

* 조선과 인도의 잔 다르크 : 유관순 vs 락슈미바이
이정민 :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유관순 누나인데요, 어려서부터 ‘유관순 누나’라고 배워서 영원한 언니고 누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만세를 외치며 뛰어나가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당시 유관순이 몇 살이었죠?
이원복 : 지금 살아계시면 100세가 넘으셨겠지만 지금도 누나죠. 유관순 열사가 열아홉 살에 돌아가셨죠? 인도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어요. ‘락슈미바이’라고 하는 여인이 있는데, 왕족이에요. 이 여인이 어느 시골 왕에게 시집을 갔는데, 세포이 항쟁으로 스물한 살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항쟁의 지도자로 나서서 무장투쟁을 합니다. 인도의 잔 다르크라고 할 수 있는데, 스물세 살에 총을 맞고 죽습니다.
_ 본문 254~255쪽

 
* 독립운동가이자 동시에 식민 지배자였던 드골
이원복 : 네. 그런데 드골이 김구처럼 독립운동가이고 나치에 저항하는 저항운동가였지만, 김구와 다른 점이 있어요. 사실 프랑스는 일본보다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고, 식민지에서 범죄도 많이 저질렀어...요. 알제리 전쟁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몰라요. 그런데도 드골 대통령은 식민지에 대해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네덜란드 등 식민지배를 했던 다른 나라들은 다 사과를 했어요. 드골은 프랑스 독립을 위해서 일한 독립운동가지만 다른 나라를 지배한 지배자이기도 합니다.
_ 본문 273~274쪽
 









1

터키라는 나라가 독특해요.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 비잔틴 문명, 오스만 문명,

거기다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페르시아 문명 등

지중해권, 동방권의 모든 문화가 응축되어 있는데,

특히 터키의 서해안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터키가 이스탄불을 살리기 위해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수백 개의 섬을 모두 그리스에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도 많지만 터키 사람도 많고,

그래서 문명 자체가 터키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섞여 있어요.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00년 경인데,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는 기원전 800~750년 경입니다.

우리가 지금 '트로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는 '일리아스'라고 합니다.




2

무령왕릉의 목관 - 일본산 金松, 유물 중에 중국산 도자기와 오수전, 동남아시아산 구슬도.



3

* 신라 국호는 503년 지증왕 때 <- 德業日新 網羅四方

* 김춘추(태종 무열왕) - 문무왕 - 신문왕 - 경덕왕

* 萬波息笛




신분의 벽, 신라 골품제

신라는 골품제라는 매우 엄격한 신분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성골(聖骨) ·진골(眞骨)의 2개 골(骨) 신분과 6두품(頭品)에서 1두품까지의 6개 두품 신분이 있었다.

『화랑세기』 ‘13세 용춘공’ 조에는 왕위(王位)와 신위(臣位)를 구별하는 것이 골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법흥왕은 520년 율령을 반포, 신분에 따라 백관 공복(公服)의 옷 색깔을 달리 정했다(『삼국사기』 권4). 또 6부인(六部人·왕경 6부의 사람들로 왕을 포함한 왕경인) 복색(服色)의 존비(尊卑)제도를 만들었다(『삼국사기』 권33 ‘색복’ 조). 여기서 말하는 존비 제도는 골품 신분을 구별한 것을 뜻한다.

성골· 진골과 6개 두품 외에 지방인의 신분으로 진촌주(眞村主)와 차촌주(次村主)가 있었다. 그 밑에 평인(平人·백성) 신분을 편제했다(이종욱, 『신라골품제연구』, 1999). 이 같은 골품 신분은 출생에 의하여 결정되고 신분 상승은 불가능했다.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할 때 논했던 골품의 기준은 족(族)이었다. 족에는 종성(宗姓, 박 ·석 ·김씨)과 육부성(六部姓, 이 ·정 ·손 ·최 ·배 ·설씨)을 떠올릴 수 있다. 각 성(姓)은 하나의 씨족(clan)을 뜻한다. 각 씨족에는 서라벌 소국 형성 전후에 활동한 시조들이 있다.

그런데 법흥왕이 골품 신분을 정했을 때는 각 씨족이 만들어진 지 수백 년도 더 지났기에 씨족 성원 수가 크게 늘어났다. 그동안 씨족이 종족(宗族·lineage)들로 나누어졌다. 종족 중 중심 종족은 신분적 지위를 유지했고 방계로 된 종족들은 신분이 떨어지는 족강(族降)을 당했다. 신라 중고시대(법흥왕~진덕여왕)에 새로운 왕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골 종족이 만들어졌던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성골 ·진골은 종성을 가진 족을 대상으로 한 신분이었다. 그 이전 왕을 배출하던 종족은 진골이라 하였다. 그중 석씨족은 제16대 흘해왕 이후로는 정치적으로 도태되었다. 따라서 520년 당시의 진골은 성골이 되지 못한 김씨족과 박씨족의 종족 중 두품 신분으로 족강이 되지 않은 종족들이 차지한 신분이었다.



 

두품 신분은 육부성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성했다. 6두품은 왕경을 구성한 6부의 각 부의 지배세력을 배출하던 종족들의 몫이었다. 5두품은 부를 나눈 구역인 리(里)의 지배세력을 배출하던 종족들이 차지했다. 4두품은 리를 나눈 마을의 세력들이 되었다.
6두품 · 5두품 · 4두품은 각기 독자적인 영역을 직할했다. 그러한 직할지 중 6두품이 살던 부의 중심 구역의 일반 백성은 3두품,  5두품이 살던 리의 중심 구역의 일반 백성은 2두품,  4두품이 살던 마을의 일반 백성은 1두품이었다고 짐작해본다(이종욱, 『신라골품제연구』, 1999).
두품 신분은 육부성을 대상으로 편성된 신분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왕을 배출했던 종성에 속한 세력들은 왕국 전체의 지배세력으로 6촌이나 6부의 세력이 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방 신분인 진촌주는 행정촌(직경 10㎞ 정도 공간, 왕경의 부 정도의 규모)의 지배세력이고, 차촌주는 자연촌(직경 3~4㎞ 정도, 왕경의 리 정도의 규모)의 지배세력들이었다.

이렇게 보면 신라의 골품 신분은 지역적인 편제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성골은 월성의 대궁, 금성의 사량궁, 만월성의 양궁으로 이루어진 3궁에 거주했다. 진골은 3궁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도시인 왕도(王都)에 살았다. 6두품은 부(部)의 중심 마을에, 5두품은 리(里)의 중심 마을에, 4두품은 리를 나눈 마을에 살았다. 그리고 지방의 진촌주는 행정촌의 중심 마을에, 차촌주는 자연촌의 중심 마을에 살았다.

골품 신분층 자체에 역사적 변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진덕여왕을 마지막으로 성골이 소멸된 것이 그 하나이고, 삼한 통합을 전후하여 왕경인의 3두품 ·2두품 ·1두품이 통합되어 평인 신분으로 된 것이 다른 하나다.

 

신라에는 골품 신분에 따른 관직(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주어지는 직)과 관등(왕정에 참여한 대가로 보수를 주는 기준)의 상한선이 있었다. 법흥왕 7년(520) 율령이 반포된 이후 령(令·장관에 해당) - 경(卿·차관에 해당) - 대사(大舍) - 사(史)의 4단계 관직이 설치됐다.

신문왕 5년(685)에는 사지(舍知)라는 관직이 추가돼 령-경-대사-사지-사의 5단계 관직체계를 갖추었다. 령은 진골만이 오를 수 있던 관직이다. 경은 진골은 물론 6두품도 오를 수 있었다.

관등은 왕경인에게는 17등급의 경위(京位)가(『삼국사기』 38권), 지방인에게는 11등급의 외위가 각각 설치·운용됐다(『삼국사기』 40권). 왕경인 중 진골은 1등급인 이벌찬(각간)까지 오를 수 있었다. 6두품은 6등급인 아찬(阿?), 5두품은 10등급인 대나마, 4두품은 12등급인 대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지방인 중 진촌주는 외위 술간(경위로 8등급인 사찬), 차촌주는 외위 5등급인 선간(選干·경위로 11등급인 나마)까지 오를 수 있었다. 신라에서는 왕경인과 지방인을 엄격하게 차별대우했다. 무관(武官)의 경우 장군(將軍)-대감(大監)-대두(隊頭)-항(項)-졸(卒)의 5단계 직이 설치·운용되었다. 장군은 진골만이 차지할 수 있던 무관직이었고, 6두품인 설계두가 오를 수 있던 무관직은 대감까지였다.

신라는 정치·사회·경제·종교·문화 등 모든 부문을 포함한 사회체제가 서로 얽히고설켜 연결되어 작동하던 골품체제 사회였다. 골품 신분에 따른 특권과 의무의 굴레는 신라가 멸망하며 사라졌다.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졸, 문학박사, 서강대 사학과 부교수·교수·서강대 총장 역임, 현재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석좌교수. 『신라국가형성사연구』 등 22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음.





4

우리가 세계사를 잘못 배웠어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서 세계사를 배웠기 때문이죠. 일본이 세계사를 도입할 때는 독일, 프랑스, 영국이 패권을 쥐고 있던 19세기였기 때문에 서유럽 중심의 역사를 바다들였어요. 그래서 우리 역시 1700년대까지만해도 유럽의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 터키, 페르시아 등의 역사는 전혀 모르고 있어요.




5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문화권 사람들이 이슬람권에 가서 앞선 학문과 문화를 보고 크게 자극받은 터에,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학자, 지식인, 예술인들이 이탈리아로 가서 르네상스의 꽃을 활짝 피웁니다.




6

그런데 조선은 완전히 제외되고 명나라와 일본이 협상을 하는 그런 방식이었어요.

일본에서는 "1) 명나라의 皇女를 일본의 后妃로 삼을 것. 2) 한반도의 남부4道를 내어줄 것. 3) 조선 왕자와 대신들을 인질로 보낼 것. 4) 무역조건을 좋게 할 것." 등을 내세웠어요.

명나라는 "일본에게 명나라 황제에게 제대로 인사할 것과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으나 결렬됩니다.



7

백년전쟁은 세계사를 뒤바꾸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백년전쟁이 끝나고 나서 프랑스 왕은 상비군을 운영하게 됩니다. 군대는 외적도 방비하지만 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절대왕권이 성립되는 계기가 바로 백년전쟁입니다.

잉글랜드는 116년간의 백년전쟁 패배 후, 참전했던 귀족끼리 둘로 갈라져 싸움니다. 랭카스터가와 요크 가의 장미전쟁을 벌여 랭카스터 가가 이겨서 튜더왕조가 들어서며 역시 절대왕권의 시대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