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에서 보낸 하루』

2019. 2. 12. 22:08책 · 펌글 · 자료/역사





경성에서 보낸 하루(라임 틴틴 스쿨 11) 2018. 8. 15




도쿄와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어 주는 국제적 관문, 경성역,
광화문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떡하니 들어선 조선 총독부,
안경마저 교사에게 허락받고 착용해야 하는 중학교,
독립운동가의 비명소리가 날마다 터져 나오는 서대문형무소,
모던 보이와 숍 걸, 기생과 시골 영감이 함께 복작이는 화신백화점,
친일파가 총독부 관리를 구워삶아 잇속을 챙기는 종로의 요릿집까지.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가 연기를 내뿜는 이른 새벽에서
순사들이 풍기 단속에 나서는 늦은 밤까지,
일제 강점기 경성 사람들의
생활·문화·의식주를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체험한다!




저자 김향금
서울대학교에서 지리학과 국문학을 공부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했다. 주로 그림책과 역사·지리 분야의 교양서를 기획하거나 쓰는 일을 해 왔으며, 세계 문화를 주제별로, 미시사적으로 접근한 책을 쓰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조선에서 보낸 하루》를 쓴 이후, 과거의 한양과 현재의 서울을 잇는 다리인 ‘일제 강점기, 경성’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번화한 거리를 돌아다녔을지 궁금한 마음에 다시 시간 여행에 뛰어들게 되었다. 책을 쓰면서 서울에서 신의주를 거쳐 중국 동북부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만든 책으로 《한국생활사박물관》《한국사탐험대》시리즈가 있고, 직접 쓴 책으로 《열려라, 한양》《조선 시대 춘향을 어떻게 살았을까?》《세계를 바꾼 향신료의 왕 후추》《달빛 도시






출판사서평


가벼운 여행을 하듯 만나는 일제 강점기, 경성
해외여행과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신기하게 여겨지는 장면을 만날 때가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국경이 그저 횡단보도처럼 간단하게 구분되어 있어‘걸어서’넘어갈 수 있거나,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톨게이트 지나가듯 국경을 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간단히 국경을 넘어갈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아마도 남쪽으로는 바다에 막히고, 북쪽으로는 휴전선에 막힌 우리네 입장에서는 육로를 통해 해외로 향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어림잡아 백 년 전만 해도, 육로를 통한 해외여행이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서울역을 예로 들어 보자. 백여 년 전 서울역, 그러니까 당시 경성역은‘국제’기차역이었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 심지어는 유럽 대륙으로 향하는 시작점이었고, 그만큼 많은 외국인들이 경성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지금의 인천국제공항이 하는 역할을 경성역이 도맡았다고나 할까.
《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백 년 전, 조금 더 정확하게는 팔십 여 년 전 국제 기차역이었던‘경성역’에서 출발하는 역사 교양서이다. 일제의 식민지라는, 어찌 보면 무거운 시대를 만 하루 동안 가볍게 산책하는 당일치기 여행서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의 경성을 여행한다고 해서, 독립운동의 현장만 방문하지는 않는다. 일제의 탄압에 맞선 흔적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일제가 들여온 신문물과 전통적인 관습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당시 경성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따라가다 보면,‘식민 지배와 저항’,‘친일과 독립’,‘전통과 근대’라는 여러 가지 얼굴이 섞여 있는 일제 강점기의 정치·경제·사회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어렵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학교와 빨래터, 백화점과 카페, 요릿집과 전차역 등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들러 우리의 근·현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텔레비전의 여행 프로그램을 보듯 생생하게 경험할 테니까.
정치사 위주로 복잡한 사건들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자못 딱딱한 교과 과정과 달리, 단 하루 동안 경성에서 보내는 역사 여행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우울하게 느껴지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머릿속에 새롭게 그려 볼 수 있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경성 사람들의 생활에서 발견하는 일제 강점기 정치·경제·문화
이 책은 새벽에 경성역을 출발해서 조선 총독부가 떡하니 가로막은 경복궁, 개량 한옥 단지가 들어선 북촌, 전차가 다니는 종로와 구보가 산책하는 청계천변, 우울한 서대문형무소와 화려한 본정 거리를 거쳐 다시 경성역 앞에 이른다.
여행의 첫 행선지는 북촌에 자리 잡은 한 친일파의 대저택이다. 유명 은행의 두취(은행장)와 안방마님, 도쿄에 유학중인 장남과 며느리, 고보생(고등학생)인 둘째와 고녀생(여자고등학생)인 막내딸, 행랑채에서 사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일제 강점기 ...사람들의 생활과 경성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살펴본다.
‘퓨전’스타일을 한 경성 사람들의 패션, 좌측통행을 하는 전차와 자동차, 위압적인 르네상스풍의 건축물들이 늘어선 선은전 광장, 백화점과 상점들이 즐비한 번화한 본정 거리,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복작이는 카페 등 화려한 볼거리들을 경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고 경성의 당일치기 여행이 그냥 화려한 구경거리만 따라가는 건 아니다. 그 뒤에 숨은 모습도 전부 까발린다! 군대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규율이 지배하는 식민지의 학교생활, 일반인들을 옥죄는 일제 순사들의 감시와 단속, 부유함이 넘치는 친일파와 처절하게 생활하는 독립운동가의 가족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분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장면을 살피다 보면, 일제의 치밀한 식민지 지배 방식도 알아챌 수 있다. 광화문이 보이지 않는 경복궁에서 조직적인 식민지 지배 방식을, 일본과 중국, 나아가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과 연결된 국제역인 경성역에서 대륙 진출 야욕을, 일본어를 배우는 국어 수업과 강제로 천왕의 칙어를 외우게 하는 수신 수업에서 동화 정책을 발견하는 식이다.
나아가 각 장의 끝 부분에는‘근·현대 돋보기’를 마련해, 대한 제국과 고종, 일제의 무단 통치와 문화 통치,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독립운동, 신여성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사회 진출 등 일제 강점기의 정치사와 문화사까지 샅샅이 훑어볼 수 있도록 정리해 준다.
‘근·현대 돋보기’는 본문에 등장하는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복잡하게 느껴지는 일제 강점기를 한눈에 꿸 수 있도록 교과서 순서에 맞게 배치해, 청소년 독자들이 대한 제국 성립에서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까지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주변 이야기를 듣고, 손으로 만져 본‘경성’의 생생한 모습을 하나로 종합하면, 정치과 경제, 문화와 예술을 망라한‘근·현대’역사 지도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게 된다!

저항과 친일, 전통과 근대가 뒤섞인 시대의 민낯을 보다!
아슬아슬한 발판이 걸려 있는 청계천의 간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창경원에 핀 벚꽃을 구경하러 온 꽃놀이 안파에 치여 일행을 놓치고, 좌측통행을 하는 자동차를 보면서 흠칫 놀라는 등 우리가 정말 1934년 경성에 떨어진 것마냥 당시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만난다.
이렇듯《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일제 강점기의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 주면서,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부족함 없이 풍요로움을 누리던 친일파는 조선이 식민지가 된 사실이 전혀 아쉽지 않다. 그저 지금의 호황이 계속되길 바라며, 자신이 일본인인 양 여긴다. 반면에 독립운동을 하다 형무소에 갇힌 독립운동가의 가족은 버겁기만 하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옥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굳은 신념으로 현실과 맞선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어린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학생들은 일제의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학생들은 동맹 휴학을 통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선다. 또 어떤 사람은 서양인처럼 백색 피부와 금발을 갖기를 꿈꾸고, 다른 누군가는 신여성이 되어 남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이처럼 저항과 친일, 전통과 근대, 문명과 야만이 뒤섞인 각양각색의 모습을 통해‘나’라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정치사만 알려 주는 책이었다면 던지지 못했을 질문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독자들은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알아 가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과거를 통해 현재의‘나’를 생각해 보는‘다른 시각’까지 갖추게 될 것이다!

안갯속을 걸으며 경성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몇몇을 떠올린다, 계동 저택의 친일파 두취처럼 적극적으로 친일에 가담했던 사람들, 고보생이나 고녀생처럼 식민지 현실에 무관심했던 사람들, 본정 거리의 모던 걸이나 모던 보이처럼 부나방같이 근대의 유흥에 빠졌던 사람들.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단단히 기억해 둔다. (중략)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난 김동삼 선생과 형사에게 고문받던 젊은 독립운동가,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던 여인이 또렷이 떠오른다. 사회 운동가인 함석헌 선생은 “해방이 도둑처럼 뜻밖에 왔다”고 말했다. 그만큼 누구도 일제가 패망할지 예측할 수 없던, 해방을 꿈조차 꿀 수 없던 시대였으리라.
- 226쪽, [무르익은 봄밤, 정동 야행]에서

100년 전 사진과 그림으로 살펴보는 경성의 이모저모
《경성에서 보낸 하루》에서는 1920~30년대 사진과 그림 자료들을 먼저 모아 나열하고, 그 순서에 맞춰 여행의 일정을 짜고 내용을 구성했다. 따라서 정말 여행하며 지나치듯 경치를 보고 사진을 찍은 것처럼 글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또한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여행사의 관광 지도를 재구성하여 각 장 앞에 우리가 갈 곳을 미리 표시해 두었을 뿐 아니라, 복잡한 정치사 속에 한두 컷 흑백 사진을 보여 주던 틀을 깨고 당시 지도와 포스터 등을 큰 판형에 시원하게 사용하는 등 여행하는 재미와 현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사진과 그림 속 건물과 장소들은 현대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사진 자료와 지금 모습을 실제 답사를 통해 보고 비교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광화문도, 산책로로만 알았던 청계천도,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던 북촌 한옥 마을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라보면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목차


01 식민지 경성에 가다


경성, 안개주의보! |

제국의 관문, 경성역 |

보던 보이, 경성역에 내리다 |

부산 가는 기차가 ‘상행’이라고?
이대로 상하이에 갔으면! |

다양한 패션의 경성 사람들 |

앗, 광화문이 사라졌다!


[근·현대 돋보기] 조선의 마지막 몸부림 : 대한 제국과 고종



02 북촌 한옥 단지의 대저택


다닥다닥 붙은 판박이 한옥 단지 |

친일파 두취의 사랑채
구리무와 백색 피부 미인 |

순화원 갈 놈, 뭐니 뭐니 해도 위생이 첫째!


[근·현대 돋보기]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 20세기 전반의 세계정세



03 계동 저택의 아침 풍경


한 지붕 아래 도쿄 유학생, 고보생, 고녀생 |

문명의 맛, 아지노모도
뎐긔 소제긔가 윙윙, 집안일이 척척 |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도시로


[근·현대 돋보기] 더 철저하게, 더 가혹하게 : 일제의 무단 통치



04 식민지 시대의 살벌한 학교생활


학교 종이 땡땡땡 |

오늘은 월사금 내는 날 |

1교시, 살 떨리는 수신 시간
하늘의 별 따기, 경성제국대학을 향하여! |

쭉쭉 뻗어! 여학교의 체조 시간


[근·현대 돋보기] 얼굴에는 미소를, 손에는 칼을 : 일제의 문화 통치



05 하늘에서 본 경성의 봄


경성의 하늘에 두둥실 떠올라 |

서로 다른 평경, 북촌과 남촌 |

경성의 신시가지, 용산과 영등포


[근·현대 돋보기] 부풀린 ‘문명’과 계획된 ‘야만’ : 일제의 식민지 미화 정책

06 구보와 함께 경성을 거닐다
전차 정거장에서 만난 구보 | 벚꽃이 활짝 핀 창경원 | 단성사의 무성 영화 | 전신주가 늘어선 종로 풍경
종로양복점과 화신백화점 | 천변풍경 | 경성의 코제트, 노마 | 제비다방의 이상한 이상
[근·현대 돋보기] 저항과 친일의 갈림길에서 : 일제 강점기의 문학과 예술



07 서대문형무소의 독립 운동가들


뚝 그쳐, 순사가 잡아간다! |

1934년, 경성판 쇼생크 탈출
서대문형무소의 고문실 |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근·현대 돋보기] 태극의 깃발 높이 드날리며 :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독립운동



08 선은전 광장의 눈부신 번화가


선은전 광장 가는 길 |

이곳이 진짜 경성이지! |

백화점 전성 시대 |

경성유람버스를 타고 남산으로


[근·현대 돋보기]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 항일 시위에 나선 학생들



09 경성의 핫플레이스, 본정에 가다


“혼부라 안 하려우?” |

못된 보이, 못된 걸을 만나다
비행기 타고도 쫓아가기 힘든 유행 |

카페 신풍속도


[근·현대 돋보기] 경성의 단꿈, 욕망의 ‘리틀 도쿄’ : 근대 소비문화의 발달과 학산



10 한밤중 계동 저택에서


명월관 요릿집에서 속닥속...닥 |

사치를 마시오, 그리하여야 조선은 문명합니다 |

여학생 일기의 비밀
최승희에 빠진 고보생 |

나도 나혜석처럼 살고 싶어! |

한밤중에 들이닥친 일본 경찰


[근·현대 돋보기] 신여성, 자유를 부르짖다 : 일제 강점기, 여성의 사회 진출




11 무르익은 봄밤, 정동 야행


벼락부자를 꿈꾸는 황금광 시대 |

봄밤의 정동 야행 |

안개 자욱한 경성역


[근·현대 돋보기] 해방, 비로소 꿈이 이루어지다 : 병참 기지화 정책과 8·15 광복




(뒷이야기) 북촌의 하늘은 어둡고 남촌의 하늘은 밝다

 
한 도시, 세 개의 이름 : 한성과 경성, 그리고 게이죠 |

차별 없는 차별이 시작되는 곳 : 내지와 외지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만드는 이름 : 정과 동 |

소비 도시에서 상공업 도시로 : 병참 기지화 정책
불빛으로 구별되는 경성의 두 얼굴 : 남과 북




경성, 그리고 서울





 







 


경성역 청사진

                        



1

1)

경성역은 1925년 9월 30일에 일제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건설되었다. 대지 7만여 평에 건축면적 2청여 평, 지하1층 지상2층의 건물이다. 경성역이 완공되었을 때 그 웅장한 르네상스풍의 외관만으로도 근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되어 경성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일층에는 고급스런 분위기의 부인 대합실과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귀빈 대합실이 따로 있다. 이층에는 이발소와 양식당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으로 크리스마스 특별메뉴로 러시아 요리사가 칠면조 구이를 내놓았다니 우울한 식민지 조선과는 딴판인 별천지다. 이런 만찬을 즐긴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2)

경성역에는 행선지별로 정리한 기차 시간표가 벽면 다닥다닥, 하도 빼곡히 적혀 있어서 언제 어디로 가는 기차 노선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경부선은 물론이고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까지 기차의 출발시각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경성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上行이라니?" - 조선과 만주에서도 도쿄를 중심으로 상행과 하행이다.



2

조선총독부건물 : 최고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에 참여했으며, 완공하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 일본인과 중국인 석공 3백 명과 조선인 노동자 2백만 명이 동원된 대공사였다. 동양 최대의 근대식 건물이었다고 한다.

일제는 남산 기슭에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의 확장이전을 계획하면서 1915년에 경복궁을 조선물산공진회 장소로 사용하면서 내부에 있던 건물을 모조리 헐어버렸다.



3

원래 조선에서는 다섯 집마다 하나씩 우물을 파서 식수를 해결했다. 하지만 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경성의 식수는 오염이 심각해졌다. 1930년대에 하수도로 쓰던 청계천의 오염이 너무 심해서 '탁계천/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경성에 사는 일본인은 수돗물을 마셨지만 조선사람들은 우물물을 마시거나 공동 수도에서 물을 사서 마셨다. 수도를 설치할 여유가 있는 조선사람은 30%에 불과했다.

경성에서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났다. 1914년에 조선인 79명, 일본인 110명이 사망했는데, 1932년에는 조선인 382명, 일본인 624명으로 그 수가 대폭 늘어났다.




4

도쿄 제국대학 이케다 교수는 다시마를 끓이고 또 끓였다. 성분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끝없는 실험 끝에 인공 조미료 제조에 성공한 그는 스즈키 제약소와 손잡고 1909년 5월 20일 '아지노모토(味の素)'라는 신제품을 내놓았다.

이듬해인 1910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1920~30년대에 아지노모도의 판매가 급증한다. 전기냉장고는 1920년대초 미국 가정의 인기제품이었는데, 일본을 통해 조선의 상류층으로 흘러 들어갔다. 처음에는 사용법을 몰라 식중독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그밖에 선풍긔, 대리미, 뎐긔소제긔, 뎐기부채……




5

1912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적으로 토지조사를 실시한 뒤,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은 토지를 몰수해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에게 헐값으로 넘겨주었다. 소식에 어둡거나 신고방법을 모르는 많은 농민들이 땅을 잃고 일본인 지주 밑에서 일하는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또 신고한 토지의 주인에게는 토지조사 전보다 두 배 이상의 세금을 매겨서 거두어들였다.



6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 日本語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지를 기준으로 ─ 朝鮮語 사용자는 普通學校(4년제에서 6년제로)에서 高等普通學校(4년제에서 5년제로)로,  日本語 사용자는 小學校(6년제)에서 中學校(5학년)로 나누어 다니게 되었다. 실제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별하고 분리하려는 교육제도이다. 高普에서는 修身, 國語, 歷史, 地理를 핵심과목으로 여겼다.

1934년 조선인 남학생의 고보 진학률은 1.2%, 일본인 남학생의 중학교 진학률은 28.1%,, 조선인 여학생의 고녀 진학률은 0.6%, 일본인 여학생의 고등여학교 진학률은 47.7%이다. <- 통계가 잘못 된듯함.



7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졸업생은 고등문관시험에 단연코 두각을 나타내 합격하면 행정관 외교관 판사 검사로 임명되는 자격이 주어졌고, 떨어지더라도 추천을 받아 군수 같은 고급관리가 될 수 있었다.

1926년에 세워진 경성제국대학은 예비과정인 1~2년의 예과와 3~4년의 본과로 나뉜다. 예과 합격자 중 일본인이 조선인의 두 배가 넘는다.( 조선인 33%, 조선 거주 일본인 42%, 일본 본토 출신 일본인 24%)



8

장충단은 1900년 고종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살해된 이경식과 홍계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이듬해부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위패도 모셨다. 1919년 일제는 장춘단을 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국립현충원을 관광객들이 놀러다니는 공원으로 만든 셈이다.


조선호텔은 철도 이용객과 외국인 손님을 위해 서양식으로 지은 호텔이다. 1897년 고종 황제가 天神에게 제사를 올리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원구단 자리에 호텔을 지은 것이다. 경복궁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창경원에 동물원을 세운 것처럼.


일제는 전차를 복선화하겠다며 돈의문(서대문)을 경매에 부쳤다. 쌀 열일곱 가마 값에 팔린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9

조선왕조에서 동궐(東闕)인 창경국과 창덕궁, 그리고 종묘는 하나의 공간이었다. 종묘는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을 때 궁궐보다도 먼저 지은 건물이다. 순종은 힘이 없는 처지임에도 일제가 종묘를 건드리려 할 때는 강력히 반발했다고 한다.

일제는 순종이 죽자마자 종묘 관통 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조선 왕실의 祠堂인 종묘를 공원화하려는 속셈을 대놓고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광화문에서 안국동을 거쳐 돈화문을 지나 종묘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함으로써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를 간제로 분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