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 도마행전의 비밀

2019. 3. 10. 10:55책 · 펌글 · 자료/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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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행전의 비밀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역사문서 중에는 각 나라, 각 지방의 역사와 지리는 물론, 왕들에 대한 전설, 성자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도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역사문서에 등장한다. 코란에서는 그리스도를 이싸르(Issar)라고 표현하였고 터키의 아나톨리아 동부에 사는 쿠르드족의 역사문서에는 그리스도가 부활 이후에 터키 동부에 머물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이야기들은 자칫 기독교의 전통 신앙에 혼선을 줄수 있기 때문에 상당수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런 주장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의 행적에 대한 새로운 주장들을 계속 내놓아서 흥미를 주고 있다.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예수님이 십자가 이후 중동에 가서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그전에는 이집트에 잠시 가서 불교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밝혔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후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상당기간 동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에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집트(애급)로 다시 가서 잠시 지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 웬 불교냐고 말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일부 학자들이 기독교 시기 이전에 이미 알렉산드리아에 불교도를 교육하기 위한 학교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음을 보면 그다지 놀랄 사항도 아닌듯하다. 석가모니 부처에 의한 불교는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약 6백년에 완성되었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불교적인 사상이 포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는 예수께서 이미 불교가 보급된 애급에서 불교에 대한 지식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카라바치오의 '의심 많은 도마'. 도마가 예수님의 허리에 있는 창으로 찔린 자국을 확인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행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른바 몇 몇 경외서(Apocrypha)에 적혀 있다고 한다. 경외서는 사도들이 썼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 경외서들을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경외서들의 내용중 상당부분이 기독교의 교리와 신학에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수 기독교 종파들은 경외서들을 이단시 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도마가 썼다는 도마행전(Acts of Thomas)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이후 몇 번씩이나 도마를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신약성경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단 한번만 도마를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도마행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도마를 인도에 보내어 전도토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같은 내용은 인도 북부 타지 마할(Taj Mahal) 인근의 화테푸르 시키리(Fatehpur Sikiri)에서 발견된 돌비석에도 적혀 있다고 한다. 한국의 어떤 역사학자는 도마가 인도를 거쳐 가야 시대에 한국에 와서 김해를 중심으로 전도를 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는 김수로왕의 묘석에 오병이어에 대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예만 보더라도 교회가 수용을 거부한 경외서에 예수님의 참 생활을 알수 있는 귀중한 내용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본적으로 동양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karma: 업)와 윤회(re-incarnation)에 대한 내용은 당시에 일반적인 지식이었는데 예수님은 이들 지식을 하늘 나라의 복음으로 설명하는데 인용하였다는 것이다. 유럽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자기들이 만든 교리에 얽매어 놓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볼수 있다. 서구 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자기들만의 전유물이었고 다른 문화의 유입은 한사코 금지했음은 오늘날 누구나 공감하는 사항이다. 서구의 기독교(주로 로마 가톨릭)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도를 방문했었다는 등의 내용이 거론되면 이를 무조건 이단으로 간주하여 핍박을 가했다. 유럽의 교회는 눈먼 신앙으로 지냈고 우물안과 같은 가르침 안에서 지냈다. 이들에게는 다른 종교와의 연계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원죄를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야 헌금을 많이 걷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부활후 행적에 대하여는 경외서인 도마행전과 도마복음(Gospel of Thomas)에 상당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들 경전은 시리아에서 나온 것으로 4세기경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들 경전은 신비주의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기독교 신학의 주류에서 제외되어 있다. 어떤 경외서에 따르면 도마는 예수님이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지방의 안드라폴리스(Andrapolis)에 안드라파(Andrappa)왕의 귀빈으로 방문하셨다고 적었다고 한다. 파플라고니아는 지금의 아나톨리아 북단에 있었던 소왕국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얼마후 따로 이곳에 도착한 도마를 만났다고 한다. 안드라폴리스에서 도마를 만난 예수님은 도마에게 인도에 가서 가르침(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고 한다. 그후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터키의 서해안 쪽으로 가셨다고 한다. 고대 실크 로드가 통과했던 이 지방의 어떤 마을에 ‘마리아의 집’이 있음은 예수님이 마리아와 함께 이곳을 지나가셨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곳으로부터 지중해를 지나 프랑스로 가실수 있었고 프랑스를 통하여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가실수 있었다는 추측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영국에도 가셨다는 주장이 있다. 영국의 어떤 지방에 있는 아주 오래된 참나무는 ‘거룩한 나무’(Hallowed Tree)라고 부르는데 그 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이 심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국에도 가셨다는 전제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아리마대의 요셉이 와서 심었다는 나무도 있었으나 몇년전 고사하여 지금은 볼수 없고 사진만 남아 있다.


 






성모가 영면에 들어갈 당시에 도마는 인도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기적적으로 예루살렘에 옮겨져서 성모의 무덤을 방문하였으며 성모의 승천을 목격한 유일한 제자로 알려졌다. 성모는 도마에게 허리띠(거들)을 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림은 성모의 무덤에서 성모의 승천을 목격하고 거들을 받는 도마. 


예수님은 페르시아를 통해 인도까지 가셨다고 설명한바 있다. 예수님을 페르시아를 거쳐 가실 때에 유즈 아사프(Yuz Asaf)라고 불리셨다는 설명도 했다. 유즈 아사프라는 말은 ‘병을 고치는 지도자’라고 말한바 있다. 카쉬미르의 역사문서에 이사(Isa)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이 실제로 유즈 아사프였다고 한다. 이사(Isa)라는 이름은 코란에서 그리스도를 뜻하는 단어이다. 카쉬미르의 자미-우프-타마리크(Jami-uf-Tamarik)라는 문서에는 유즈 아사프가 마쓸리게(Masslige) 마을을 방문하여 노아의 아들인 셈(Shem)의 묘소를 찾아가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도 예수님(유즈 아사프)이 페르시아의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는 기록이 몇 개 더 있다. 예를 들면 아가 무스타파(Agha Mustafa)가 쓴 Ahwali Shahali-i-paras에도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유즈 아사프(예수님)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도 방문하시어 축복하시고 가르치셨다는 기록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가즈니(Gazni)라는 곳에 있는 평야의 이름이 유즈 아사프인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도마행전에는 도마가 예수님과 함께 주후 47년경 탁실라(Taxila)의 군다포르(Gundafor)왕의 궁전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탁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 서쪽의 고대도시로서 간다라 미술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탁실라의 왕과 왕제(王弟)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이사(Issa) 또는 유즈 아사프(Yuz Asaf)로 알려진 예수님이 카쉬미르에서 가르치시고 사셨다는 내용을 적은 고대 역사문서가 20개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Bhavishyat Mahapurana 제9권에도 이사-마시(Issa-Masih: 메시아 예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서에는 예수님이 인도의 카쉬미르에 오시어 쿠샨(Kushan)조의 샬리바하나(Shalivahana)왕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님은 샬라바하나 왕의 환대로 이곳에서 상당기간을 지내셨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인도에 와서 지내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현재의 기독교의 근간에 큰 도전이 되는 것이 아닐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대 기독교 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바울 신학은 한낱 광신적인 껍질에 불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물라 나디니(Mullah Nadini)는 고파다타(Gopadatta)왕의 시대에 유즈 아사프가 활동했다고 기록하고 유즈 아사프는 일명 이사, 즉 예수라고 불린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인도 북부의 여러 마을에는 성모 마리아가 지내셨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리(Mari)라고 하는 국경지대의 작은 마을에는 Mai Mari da Asthan(마이 마리 다 아스탄)이라는 오래된 무덤이 있다. ‘마리아의 마지막 안식처’라는 뜻이다. 현지의 무슬림들은 이 무덤이 이사(Issa)의 어머니의 무덤이라고 믿고 경배하고 있다. 이사는 그리스도를 별도로 부르는 명칭이다. 이 무덤은 무슬림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유태인의 전통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이 일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 무덤은 힌두교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의 힌두교도들은 화장을 하고 재를 뿌렸기 때문에 무덤이 없다.


카쉬미르의 스리나가르 지역 남쪽 40km쯤 되는 곳에 유즈-마르그(Yuz-Marg)라는 초원이 있다. 유즈-마르그라는 말은 유스 아사프의 초원, 즉 예수님의 초원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아이슈 무캄(Aish Muqam)이라는 건물이 있다. 지역 사람들은 이 건물을 무척 신성시하고 있다. 아이슈(Aish)는 이사(Issa)에서 비롯된 말이며 무캄(Muqam)은 안식처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아이슈 무캄이라는 건물 안에는 여러 가지 성스러운 유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모세의 지팡이’ 또는 ‘예수님의 지팡이’라는 것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지팡이는 모세가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으며 나중에 예수님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모세와 같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스리나가르 마을 북쪽에는 ‘솔로몬의 보좌’(The Throne of Solomon)라는 사원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사원이 주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인도에 오셨을 당시 이지역의 왕인 고파다타(Gopadatta)가 이 사원을 크게 보수했다고 한다. 보수공사는 페르시아 건축가가 담당했는데 그는 사원의 벽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내용인즉 유즈 아사프는 예언자 예수로서 이스라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인도를 방문했다는 역사학자 케르스텐의 주장이 신빙성을 더하는 기록이다.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인도에 오신 예수님이 인도의 남쪽으로도 여행하셨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남쪽이라는 것은 스리랑카를 말한다. 인도대륙과 스리랑카 사이의 좁은 해협의 이름은 ‘아담의 다리’(Adam's Bridge)이다. 오랜 옛날부터의 전설에 의하면 에덴동산을 떠난 아담이 동쪽으로 발길을 향하다가 스리랑카까지 왔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중앙에 있는 캔디 부근의 산정의 명칭도 '아담의 정상'(Adam's Peak)이다. 산정에는 커다란 바위에 아담의 발자국이란 것도 남아 있다. 그건 그렇고 인도의 남쪽을 여행하셨던 예수님은 다시 카쉬미르로 돌아와 향년 약8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갈보리 언덕에서 숨을 거두셨다가 부활하신 후 거의 50년을 더 살으셔서 사역을 했다는 얘기다. 앞에서도 잠시 설명한대로 카쉬미르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은 스리나가르의 옛 마을에 있으며 현지인들은 그 무덤을 로자발(Rozabal)이라고 부른다. 로자발은 라우자 발(Rauza Bal)을 줄인 말로서 ‘예언자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로자발의 입구에는 ‘유즈 아사프가 다른 무슬림 성자와 함께 이곳에 묻혀있다’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다. 무덤 안에 있는 돌판(시체를 얹어 놓았던 돌판 또는 비석)은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다. 무슬림 전통이다. 그러나 이 방의 뒤편에 또 다른 작은 방이 있다. 유즈 아사프의 석관이 있었다는 방이다. 이 방의 돌판은 유태인의 전통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인도의 로자발. 예수의 무덤이 있다는 집이다.

 


로자발을 연구한 하쓰나인(Hassnain)교수는 무덤 안의 돌판(또는 비석)에 유즈 아사프의 두 발의 모습이 새겨져 있음을 눈여겨보았다. 두 발에 모두 상처의 모습이 있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입은 상흔이라는 것이다. 이 상흔들은 토리노의 수의에 나타난 상흔과 일치한다. 오른쪽 발 위에 왼쪽 발을 얹고 못을 박은 모습이다. 십자가 처형은 아시아에서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로자발에 있는 족적의 상흔은 중동지역에서부터 유입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상흔을 지니신채 인도에 오셔서 지내시다가 승천하셨다는 얘기다. 로자발은 Hazrat Issa Sahib라고도 불린다. 번역하면 ‘주 예수의 무덤’이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이 무덤은 주후 112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마리아와 함께 인도로?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예수께서 인도에 사셨다’(Jesus Lived in India)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시기 이전에, 그리고 그 이후에 이스라엘 이외의 지역에서, 예를 들면 인도에서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완벽하고 조직적이며 권위 있는 설명을 한 책자이다. 특히 이 책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신 후 어느 곳으로 여행을 다니셨는지에 대하여 완벽하게 연구하고 조사한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인도로 와서 살다가 카쉬미르에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요한에게 어머니를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궁금증이 남기는 남는다. 사흘 후면 다시 살아나시어 어머니 마리아를 직접 보살펴 드릴수도 있을 터인데 그런 말씀이 없으셨다는 것이 이상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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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케르스텐에 의하면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의 말씀은 다른 지역,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이며 이로 미루어보아 예수님이 다른 지역과 다른 문화권에도 가시어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도에 가시지 않았다고 반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로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신약성경과 기타 일부 교회신학자들의 연구가 모두이다. 그러나 이들 기록들이 객관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많다. 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된 이외의 생활에 대하여는 거부해온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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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인도에 갔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편 사람은 러시아의 학자인 니콜라이 노토비치(Nikolai Notovitch)이다. 그는 1887년 동방을 여행하는 도중 카쉬미르에 들린 일이 있다. 그는 카쉬미르의 초지-(Zoji-la)협곡을 지나는 중 어떤 불교 수도원에 유숙한 일이 있다. 그때 어떤 노승이 보살중의 한 사람이 이사(Issa)라고 하는 어떤 성보살(聖菩薩)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노보비치는 이사라고 하는 보살의 가르침, 그리고 순교가 예수님의 생활, 가르침, 십자가상의 고난과 너무나 흡사한데 대하여 놀람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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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이후 거의 16년 동안  터키, 페르시아, 아마도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을 여행하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종착지로서 카쉬미르에 도착하였으며 마리아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몇 년 동안 더 카쉬미르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예언자이며 개혁자, 그리고 성자로서 존경하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카쉬미르에서 세상을 떠나시어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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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이후 동쪽으로 가면서 첫 번째 기착지는 니시비스(Nisibis)왕국이었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역사학자인 모하메드(Mohammend)의 저서인 Jami-ut-tuwarik에 그렇게 적혀 있다. 니시비스 왕국은 현재의 터키 누사이빈(Nusaybin)을 말한다. 페르시아의 이맘(랍비와 같은 지위)아부 자파르 무하메드(Abu Jafar Muhammed)의 저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강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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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역사학자인 케르스텐(Kersten)은 터키와 페르시아에서 성자 유즈 아사프(Yuz Asaf)라는 사람에 대한 오랜 전설이 있음을 알아냈다. 유즈 아사프라는 말은 고치는 자의 리더라는 뜻이다. 이 사람의 행동과 이룩한 기적과 가르침은 놀랍게도 예수님의 것과 아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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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예수님의 무덤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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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루살렘의 동산무덤은 임시일 뿐이며 진짜 무덤은 인도 북부 카쉬미르(Kashmir)지방의 칸 야르(Kan Yar)에 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후 인도의 카쉬미르로 오셨다고 한다. 예수님은 유스 아사프(Yus Asaph)라는 이름으로 인도에 계셨다고 하며 인도에 오시어 거의 40년을 더 사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한다.


질문 2: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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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실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혼절하셨던 것뿐이고 그런 예수님을 무덤에 잠시 놓아두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흘만에 깨어 일어나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십자가라고 하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다음으로는 죽음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십자가 형벌을 받고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저명한 유태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esephus)1세기경 팔레스타인에서 있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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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티투스 케사르(Titus Caesar)의 명령을 받고 케랄리우스(Ceralius)와 함께 테코아(Thecoa)라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병영을 설치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약 1천명의 기병들과 함께 갔었다. 그곳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러 명의 죄수들이 십자가 처형을 받은 것을 보았다. 그 중에서 세 명은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모습을 본 나는 비통한 심정을 참기가 어려워 티투스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티투스는 즉시 그들을 십자가에서 내려 잘 치료해 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현장에 가서 보니 이미 두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만이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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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미루어 보아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내려서 잘만 치료해 주면 살아 날수 있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더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고행을 하는 등 어려움에 단련되어 있으므로 아무리 모진 십자가 형벌이었지만 살아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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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예수님은 정말 인도에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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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수님이 인도에 가신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마태복음 1524). 그런데 인도, 페르시아(이란), 파르티아(Parthia)지역의 일부 사람들이 DNA 테스트 결과 유태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사명을 다하시기 위해 인도에 가셨던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불교에서의 예언을 완성하기 위해 인도에 가셨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석가의 가르침에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최근 수잔느 올쓴(Susanne Olsson)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인 모세, 아브라함 등의 무덤도 인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인도에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에서 살아나셨으며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숨겨 인도로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 예수님의 목에는 로마가 내걸은 현상금이 붙어 있었으므로 되도록 속히 이스라엘을 빠져나와 인도로 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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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예수님은 언제 인도에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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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학자들 사이에서는 세가지 의견이 있다.

첫째, 젊은 시절에 갔었다는 것이다. 이는 엘리자베트 클레어(Elizabeth Claire)와 같은 학자들이 특히 주장하는 것으로 근거는 헴미스(Hemmis)의 수도원에서 니콜라스 노토비치(Nikolas Notovitch)가 발견한 두루마리이다. 오늘날 개신교가 사용하고 있는 신약성경에는 12세 때부터 30세까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어떠한 기록도 없다. 잃어버린 18이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때에 인도에 갔다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이다.

둘째, 십자가 이후에 인도에 가셨다는 주장이다. 예수님은 젊은 시절 이미 불교에 대하여 배우고 자랐다는 것이며 인도에 가신 것은 십자가에서 생존하신 후였다는 것이다.

셋째, 예수님은 젊은 시절 인도에 갔다가 왔으며 십자가 사건 이후 다시 인도에 가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여러 학자들은 세 번째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생존하신 후 인도에 가시어 나머지 생애를 보내셨으며 그곳에서 최후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휘다 후쓰나인(Fida Hussnain)박사,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 안드레아스 화버-카이저(Andreas Faber-Kaiser)같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카쉬미르의 슈리나가르(Shrinagar)에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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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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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여러 문서에 예수님이 동쪽으로 여행하셨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카쉬미르에서 지내셨다는 장소도 근거로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슈리나가르의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유태인 혈통의 사람들의 고향을 추적하였더니 카쉬미르였다는 것도 예수님과 인도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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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예수님은 어떤 길로 인도에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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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다메섹(다마스커스) 동쪽을 통하여 나아가셨으며 이어 동부 터키를 거쳐 인도에 가셨다고 한다. 그 후 이란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마을인 헤랏(Herat)을 통과하였으며 이어 오늘날 파키스탄의 탁실라(Taxila)를 지나 최종적으로 인도 카쉬미르의 슈리나가르에 도착하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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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7: 교통수단도 없던 때에 그 먼 길을 어떻게 가실 수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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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수님의 제자중의 한 사람인 도마(Thomas)1세기에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인도에 갔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도에 가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영국 BBC방송의 예수는 죽었는가?’(Did Jesus Die)라는 프로그램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 동부에서 해상으로, 또한 실크 로드와 향신료 로드를 통해 동방으로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방송은 도마가 예루살렘에서 가자(Gaza)로 내려간 후 향신료 대상들과 함께 예멘으로 가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갔다고 추정했다. 이런 루트는 당시 일반적인 것으로 여러 사람들이 택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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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8: 그런 루트를 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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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이 인도에 갔었다는 주장을 점차 지지하고 있다. 심지어 현대의 학자들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얀 마르텔(Yan Martel)의 베스트 셀러 The Life of Pi(파이의 인생)에도 언급되어 있으며 영국에서 발간되는 The Fortean Times라는 잡지에도 게재된바 있다. 2003BBC가 방송한 ‘Did Jesus Die?’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인도로 가는 길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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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9: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주장은 어떤 종교에서 믿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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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주장은 아마디야(Ahmadiyya) 무슬림사회가 특히 주장하는 스토리이다. 그러나 힌두교의 The Bhavishya Mahapurana라는 문서에도 예수님의 인도 방문에 대한 자료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헴미스(Hemmis)의 수도원에서 니콜라스 노토비치(Nikolas Notovitch)가 발견한 두루마리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인도 방문 스토리는 서방세계의 학자들도 주장하고 있는 사항이다. 케르스텐, 화버-카이저, 진 매트록(Gene Matlock)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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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0: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얘기는 성경이나 코란에는 왜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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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성경이나 코란에는 예수님이 인도에 갔었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관련되는 부분은 있다. 코란에는 예수님을 이사르(Issar)라고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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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1: 예수님의 인도 방문과 토리노의 수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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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셨다는 이론과 예수님의 시체를 쌌었다는 세마포에 예수님의 형상이 찍혀 있었다는 이론은 대단히 흥미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쌌었다는 수의가 이른바 토리노의 수의(Shroud of Turin)이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토리노의 수의에 남아 있는 혈흔과 수의에 찍힌 사람 형상의 구조를 보면 수의로 쌌던 사람은 아직 살아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토리노의 수의가 정말 예수님 당시의 것이었는지, 또는 후대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바티칸이 주도한 과학적 조사에 따르면 토리노의 수의가 중세 때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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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2: 예수님이 불교도였다는 얘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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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수님의 불교도였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으나 예수님과 불교가 여러 가지고 관계가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불교의 가르침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결론이다. 예수님이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가르침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어떤 학자는 불교의 원천이 이스라엘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태교와 불교와의 유사점들을 열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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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웹사이트의 문서와 정보는 믿을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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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고문서들은 아직 방사선 연대측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정황이나 자료들을 볼 때 신빙성이 있고 출처가 분명하다. 그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주장을 꾸며내어 이득을 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정교회와 기독교는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이론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는 힌두교는 지지하고 있다. 실제로 힌두교 문서인 바비슈야 마하푸라나(Bhavishya Mahaurana)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은 힌두교도들에게 별로 관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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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4: 카쉬미르 스리나가르의 무덤에 묻혔다는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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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스리나가르에 있는 로자 볼(Roza Bol) 무덤에는 분명히 누군가가 묻혀 있다. 지방 기록과 무덤에 있는 표지판을 보면 그의 이름은 유스 아사프(Yus Asaph)라고 한다. 힌두교 문서인 Bhavishya Mahapurana에는 당시 카쉬미르에 자신이 이사-마시(Isa-masih)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간혹 하나님의 아들로 불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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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쉬미르 지방에서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무덤의 주인공은 예언자로서 먼 타국에서 카쉬미르로 왔다고 한다. 그는 무덤의 방향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오리진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무덤 바로 옆에는 그의 족적(足跡)이 각인되어 있다. 그것을 자세히 보면 발에 상처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가 한때 십자가형을 당했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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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마행전의 비밀|작성자 byunsdd


http://kwangmin.blogspot.com/2011/08/blog-post_5980.html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_1.html


 퍼온곳 : 잃어버린 참신을 찾아서잃어버린 참신을 찾아서 http://cafe.daum.net/one-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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