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0. 04:06ㆍ음악/음악 이야기
존 콜리어, ,<레이디 고다이버> 1897년
고디바’란 단어를 초콜릿의 달콤함으로만 기억한다면 독일 메탈 밴드 헤븐섈번의 ‘Godiva’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면도날 폭우처럼 고막 위로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드럼, 전기기타의 질주. 그 위로 성난 보컬은 “고다이버(Godiva)! … 레이디 고다이버!” 하고 연방 절규한다. 마치 전장의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라(Go Dive!)는 거대한 진군 독려 뿔나팔 소리 같다.
초콜릿과 메탈 노래 모두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에 실재했던 고다이버 백작부인 전설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남편인 영주가 백성에게 혹독한 세금을 부과하자 이를 긍휼히 여긴 고다이버 부인은 남편에게 재차, 삼차 감세를 탄원한다. 듣다 지친 영주는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을 한다. “당신이 나체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청을 들어주겠소.”
고다이버는 이튿날 아침 삼단 같은 머리로 나체를 가린 채 말에 올라 영지를 돈다. 주민들은 집집마다 커튼을 치고 그 광경을 바라보지 않는 것으로 예를 표했다. 여기서 부인을 훔쳐봤다고 알려진 이가 톰, 즉 ‘피핑 톰’이다.
헤븐섈번은 과격한 음악과 다르게 ‘하드코어’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밴드로 유명하다. 채식주의를 고집하며, 부의 불균등 분배나 현대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줄기차게 노래에 담아 고발한다. ‘Godiva’가 실린 2013년 작 ‘Veto’ 앨범에는 ‘Hunters Will Be Hunted’(QR코드)란 노래도 있다. 음반 표지에는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1897년 작 ‘레이디 고다이버’를 썼다. 밴드는 밀렵꾼들을 비판하며 ‘사냥꾼이 사냥당하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섬뜩한 메시지를 강력한 사운드에 담아냈다.
마침 얼마 전, 지인이 새해맞이 선물로 작은 초콜릿 한 상자를 건넸다. 한 알 꺼내 입에 털어 넣어봤다. 초콜릿 특유의 알싸한 단맛 뒤로 씁쓸한 뒷맛이 느껴졌다. 빈자를 위해 숭고한 의식을 행한 고다이버 백작 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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