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따라가는 반 고흐의 삶과 여행』

2017. 9. 11. 19:54미술/미술 이야기 (책)

 

 

 

 

지도를 따라가는 반 고흐의 삶과 여행  2016.07.15

 


역자 유동익은 1961년 출생. 예술사학자이며 2009년부터 반 고흐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고흐가 살고 작업한 지역에 관한 전문가로 크뢸러뮐러 미술관에서 고흐의 작품과 스케치를 연구했다. 그 성과물로 2003년과 2007년 2개의 박물관 도록을 출간했다.

 

 

 

 

반 고흐의 유럽 여행


준데르트 1853-1869 | 제벤베르헨 1864-1866 | 틸뷔르흐 1866-1868 | 헤이그 1869-1873 |
런던 1873-1875 | 파리 1875-1876 | 램스게이트와 아일워스 1876 | 도르드레흐트 1877 |
암스테르담 1877-1878 | 라컨/브뤼셀 1878 | 보리나주 1878-1880 | 브뤼셀 1880-1881 |
에턴 1881 | 헤이그 1881-1883 | 드렌터 1883 | 뉘넌 1883-1885 | 안트베르펜 1885-1886 |
파리 1886-1888 | 아를 1888-1889 | 생레미드프로방스 1889-1890 |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
반 고흐의 죽음 이후
기타 정보

 

 

 

네덜란드 준데르트에서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떠돈
반 고흐의 고단한 삶의 여정과 특별한 여행 이야기

반 고흐는 고단한 삶의 터전을 찾아 유럽의 여러 곳에 머물렀다. 그러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도시와 마을을 떠돌아다니길 즐겼고, 시골에 가면 자연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곧 다시 다른 마을로,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반 고흐는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했다.
이 책은 그러한 여행자로서 반 고흐의 유럽 여행기를 담고 있다.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준데르트에서 프랑스 북부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그 중간에 헤이그, 세계적인 도시 런던, 벨기에 탄광 지역, 국제적인 예술 도시 파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카페와 병원도 돌아봤다. 반 고흐의 삶을 찾아가는 여행은 파리에서 가까운 마을의 작은 여관에서 끝이 난다.
반 고흐가 그린 수많은 작품에는 그가 옮겨 다닌 여러 곳의 모습이 다양하게 수놓아졌다. 이 책에는 반 고흐 미술관이 제공한 작품 사진을 포함해 미술 작품 157컷과 당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 180컷, 반 고흐가 머문 여러 지역의 지도 24컷을 함께 실어 반 고흐의 삶의 여정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


이 책은 반 고흐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반 고흐의 삶을 연대별로 따라가다 보면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멋진 유럽 여행기를 만나게 된다. 헤이그에서 일을 하고 런던과 파리로 전근을 가고,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목사가 되는 공부를 시작하고, 브뤼셀로 가서 그림 공부에 전념하고 안트베르펜으로 가서 미술아카데미에 등록하고 파리에 가서 코르몽의 화실을 다니고, 남부 프랑스로 가서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을 하는 등 반 고흐는 삶의 터전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했는데, 모든 흔적들은 그의 작품과 편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작품과 사진, 편지, 지도를 통해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돌아보았다.


 

 

 

 

 


준데르트 1853-1869  

빈센트는 브라반트 지방 준데르트 마을에서 1853년 3월 30일에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와 우아한 어머니, 그리고 다섯 남매가 함께 살았다. 열한 살부터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부모님께 교육을 받았으며 넓은 들판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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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만 요절했지, 딸들은 꽤 오래 살았었구만.

어머니는 아주 장수를 하셨네 그랴."

 

 


틸뷔르흐 1866-1868

 빈센트는 틸뷔르흐의 중등학교에 입학해서 매주 34시간 수업을 받았는데 미술 수업 5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은 성적으로 2학년에 올라갔지만 어쩐 일인지 학업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헤이그 1869-1873

열여섯 살이 되어 빈센트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삼촌이 공동 운영하는 구필 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4년간 머문 후 런던 지점으로 발령 받았다.

 

 

 

 

 

 

 


런던 1873-1875

여기저기서 새로 건물들이 지어지고 그 사이로 손수레와 마차, 승합자동차, 보행자가 어지럽게 뒤엉킨 런던은 매우 인상적이다. 빈센트는 그곳에서 세 번 이사를 했으며 종종 거리에 나가 그림을 그리곤 했다.


파리 1875-1876

예술가들과 유흥가가 많은 몽마르트르에 방을 얻었지만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방 한구석에서 잡초가 무성한 뒤뜰을 바라보며 성경만 읽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허락 없이 부모님이 있는 브라반트에 다녀오는 바람에 빈센트는 결국 구필 화랑 프랑스점에서 해고당했다.


암스테르담 1877-1878

스물네 살이 된 빈센트는 목사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아버지의 형인 얀 삼촌과 서점과 화랑을 하는 코르 삼촌, 목사인 스트릭커 이모부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빈센트는 공부하는 것보다 시내를 배회하는 것을 좋아했고 국립 박물관이 새로 지어지기까지 이전해 있던 트리펀하위스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러 렘브란트의 그림을 감상했다. 1년 만에 공부를 그만두고 부모님이 있는 에턴으로 돌아갔다.


브뤼셀 1880-1881

 보리나주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굳힌 빈센트는, 브뤼셀로 가서 왕립미술아카데미에 등록하지만 곧바로 그만두고 살아 있는 모델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테오를 통해 네덜란드 화가인 안톤 반 라파르트를 만나게 되고 그의 화실에서 [짐꾼들]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부모님과 지내기 위해 에턴으로 돌아갔다.


뉘넌 1883-1885

아버지가 목사로 있는 뉘넌으로 돌아간 빈센트는 마을 다른 곳에 작업실을 빌렸다. 직공, 교회탑을 그리기도 하고 대형 인물화인 [감자 먹는 사람들]을 완성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빈센트는 브라반트를 떠났다.


파리 1886-1888

안트베르펜을 거쳐 동생 테오가 사는 파리의 아파트로 갔다. 코르몽의 화실에서 화가들을 만나고 인상주의를 배웠으며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여러 화가들과 함께 그림을 전시했다.


아를 1888-1889

남부 프랑스로 간 빈센트는 매일 주변과 들판을 산책하면서 보이는 것들을 모두 화폭에 담았다. 아를 주변은 빈센트가 찾고 있던 바로 그 색들을 담고 있었다. 다른 예술가들도 그곳에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고갱이 왔지만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돌고 고흐는 한쪽 귀를 베어냈다.


생레미드프로방스 1889-1890

요양원에 들어간 빈센트는 여러 차례 신경 발작을 겪으면서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보이는 알피유 산맥과 요양원 정원을 끊임없이 화폭에 담아냈다.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

 요양원을 떠나 파리 북쪽 시골마을인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빈센트는 충분한 휴식과 영감을 얻었다. 그러던 중 오베르 주변 밀밭에서 가슴에총을 쏜다.

 

 

 

 

 

 

 

1

다혈질의 형과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테오가 현과 함께 (파리 몽마르트) 산 지 1년 뒤에 동생 빌레미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빈센트는 보는 사람마다 말다툼을 벌였고 집안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는 두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테오가 사랑하는 재능 많은 형이었고, 또 어떤 때는 이기적이고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테오에겐 너무도 낯선 사내였다.

(p116)

 

테오는 빈센트에 대해 "항상 주변에 형에게 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적도 많았다. 형은 조금 무심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법을 몰랐다. 반드시 모 아니면 도라는 자세로 사람을 대했다.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 형과 어울리기를 어려워했다. 늘 그 누구도 어떤 것도 상관 없다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p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