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맛』

2017. 9. 26. 09:00미술/미술 이야기 (책)

 

 

 

 

그림의 맛 2016.12.26

 

 

 

 

셰프가 편애한 현대미술 크리에이티브

“갤러리와 주방이 이토록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미처 몰랐을까?”


크리에이티브하고 난해한 현대미술이 ‘좀 먹어본’ 사람들을 위해 접시 위에 놓였다. 메뉴판에서 음식을 골라 먹듯이 현대미술의 이해라는 난관을 간단히 뛰어넘어 보자. 그림에도 맛이 있다. 먹어본 만큼 보이는 현대미술 이야기. 현대미술은 음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많은 작가들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어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이 책은 둘 간의 관계성을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헤쳐 본다.

요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맑고 투명한 콘소메를 만드는 방법이나 규격에 따른 채소 썰기의 이름들, 또는 파인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구성하는 방식처럼 고어메이에 관한 팁을 재미나게 읽을 것이다. 프랑스 와인에 관심이 있다면 5대 샤토 중 ‘샤토 무통 로칠드’를 다룬 꼭지가 흥미롭게 읽힐 테다. 로칠드 가문은 지금은 보편화되어 있는 아티스트 라벨을 가장 먼저 시도한 곳이다.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저 유명한 라벨들에 얽힌 얘기들도 들을 수 있다. 치즈의 세계가 궁금하지만 그 강렬한 향과 맛 때문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치즈 입문자들이라면 숙성기간을 기준으로 맞춤한 추천을 받을 수도 있겠다. 대다수의 사람은 먹을 줄 안다. 요리는 기술을 요할지언정, 먹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입에 맞는 것을 먹으면 즐겁다.

현대미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최지영  

로레알, 필립모리스 등 다수의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하다 훌쩍 요리 유학을 떠났다.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뉴욕 CIA에서 공부하고 현지 식당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 오너 셰프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건강한 식재료로 정성껏 요리한 컨템포러리 퀴진(Contemporary cuisine)을 선보였다. 푸드 스타일링을 병행하고 여러 매체에 요리와 미술을 주제로 칼럼을 쓰다 보니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갈수록 열렬해졌다. 미술서를 탐독하고 갤러리를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며 그 애정을 더욱 키워나갔다. 레스토랑을 정리한 후로는 그런 경험들을 모아 이 책을 썼고,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아트다이너(ARTDINER) 대표로 일하고 있다.

 

 

 

 

 

 

책을 내며



1부
마블링에서 잇 아트로―레이디 가가와 다니엘 스포에리가 선보인 고기들
셰프의 오마주―잭슨 폴록의 해물 요리와 하루키의 샐러드
헬스키친의 질서―프랜시스 베이컨의 카오스를 닮은 공간
도마 위의 극사실주의―론 뮤엑의 하이퍼리얼리즘과 요리사의 마세도인

 

 

 

사람의 피부를 그대로 재현한 '조각상(론 뮤엑)'

호주태생 1958년생 극도로 사실적 인물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어린 시절,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면서 시작된 그의 창작활동은, 80년대까지 어린이 대상 TV와 영화의 특수효과 제작만을 해왔지요. 1990년대 중반에 조각가로 변신한 론 뮤엑은 Saatchi Collection의 유명한 "센세이션(Sensation)"전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의 작업은 점토로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출발하는데. 주형을 뜨고 실리콘을 입힌 후 섬유코팅(Fibre-Glass)으로 최종 마무리를 하지요. 근육과 조직, 피부와 정맥, 머리털과 인체 비례는 거의 완벽합니다.
Ron Mueck의 극사실적인 표현이 주는 충격은 많은 사람들에게 스땅달 신드롬을 일으키기까지 하지요.


 

 


 

 







 


집밥이 예술이야―수보드 굽타의 커리와 유튜브로 배운 커리

 

 

 

 

 


수보드 굽타



현대 미술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을까? 아직까지 우리들은 서구에서 인정받아야만 대단해지는 걸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수보드 굽타의 작품 앞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었다. 니콜라 부리오의 지적처럼, 그의 작품들은 '문화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적인 함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개념적인 함정을 깨닫기 전에 우리는 현대적인 낯설음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굽타의 작품들은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그 대화는 동아시아적이지도, 서구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서구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라며 도리어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다.

  

 

 

이 철제 오브제는 당신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소재이자 하나의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이 오브제가 갖는 의미는 서구 세계에서 본 관점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죠. 인도에서 이 오브제는 일상 생활의 일부로서 대중 문화를 상징합니다. 반면 ‘서구’라는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서는 그 번쩍거림이 사치스러운 세계를 연상하게 합니다(크롬 소재와 번쩍이는 표면을 통해 욕망과 소비의 세계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처럼 말이죠.). 말하자면, 당신의 작품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재 자체가 문화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적인 함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는 물품이 인도에서는 일종의 불안정함에 대한 어휘(Lexicon)가 됩니다. 즉 당신의 작품은 물질의 공급이 넉넉한 지역으로부터 부족한 지역으로의 이동을 매개하는 교역자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니콜라 부리오, '수보드 굽타에게 보내는 편지' 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704/28 

 

 

 


Subodh Gupta, Bullet, 2007, life-sized Royal Enfield Bullet: brass, chrome ~110 x 225 x 75 cm. Collection of the Artist.
http://imcradiodotnet.wordpress.com/2009/08/

 

그의 작품들은 인도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일상적 경험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다듬어 작품을 풀어내는 그의 스타일은 인도라는 세계의 로컬리티를 확연히 드러낸다. 한국의 미술, 예술계 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동남아시아를 향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굽타의 로컬리티는 매우 낯설고 이국적이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편견 속에서 높게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거기(인도적 로컬리티)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적인 무대로 나아간다.

“그는 환원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현대 인도에서 사용되는 상징과 형태들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를 형식주의와 효과적으로 결합한다. 지방에서 도시로의 이주 현상, 급격히 진행되는 세계화,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과의 대면 등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굽타가 조각가로서 활용하는 소재들은 늘 전략적이며, 개념적인 문맥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 아라리오 갤러리의 작가 소개 글 중에서 인용함.



 

UFO, by Subodh Gupta. Saatchi Gallery, London


그의 작품이 인정받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그는 인도적 세계를 넘어서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들과 만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작품을 하고 있다. 그는 인도의 현재가 처한 문제를 인도의 일상적 오브제로 담아낸다. 그러면서 그의 일관된 주제는 흩어지지 않고 현대화 속의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그래서 인도 미술 속에서는 정치적 색채를 띄면서 서구 미술 속에서는 모더니티적 탐구를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Subodh Gupta
Untitled (Pot)
2004, Oil on canvas
168 x 229 cm



출처: http://intempus.tistory.com/1360 [파아란 영혼]

 

 

 

 

 


주방의 부케들―빅토리안 시대의 낭만
길바닥이 어때서―뱅크시의 낙서 예술과 푸드 트럭

 

 

 

 

영국 최고의 낙서화가 ---

뱅크시

 

그는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합법과 위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길거리와 벽에 시대화 현실을 폭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너무도 재밌게 표현해

자신의 머리와 삶속에 들어찬 세상과 그 의미들을 전복하고 파괴하고, 뛰어넘어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한다.

 

 

 

뱅크시, 얼굴 없는 아트 테러리스트 혹은 게릴라 아티스트

과연 그는 누구일까?

그의 이름도 나이도 알려지지않았다.

 

전쟁과 폭력, 미술의 권위와 상품화, 자본주의의 모순, 비인간적인 제도와 불평등한 세계를 화두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거침없는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는 뱅크시,

 

그는 과연 21세기 미술의 새로운 희망인가?

 

뱅크시가 몰래 영국 브리티쉬 미술관에 설치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을 담은 "원시인 마켓에 가다">

작품이 화제가 되면서였다. 미술관은 뱅크시의 웹사이트를 통해 사실을 알게되고 이후 미술관은 이 작품을

영구소장 목록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소풍' 안젤리나 졸리가 구입한 그림

붉은 체크무늬 담요를 깔고 파라솔 아래서 백인가족이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고

그 옆에는 배가 홀쭉한 어린이들을 포함한 굶주린 아프리카인들이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그에 대한 일을 알아보자면....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그의 작품을 21억에 구입했고

최근 그의 작품 10점이 경매를 통해서 10억 원에 팔렸다고 한다.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숨어들어 가

자신의 그림을 전시했으며, 디즈니랜드에 죄수 모양의 풍선 인형을 설치하기도 한 뱅크시

 

 

 

위는 자연사 박물관에 몰래 전시된 작품

 

그는 악동 중의 악동으로 뉴욕 현대 예술 박물관을 포함한

네 곳의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채 몇일 간이나 전시되었다고 한다.

 

과연 최고급 미술관들의 권위, 진자 작품, 걸작의 기준은 무엇일까?

 

 

뉴욕 현대 예술 박물관,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에

걸린 뱅크시의 작품, 자신의 작품을 걸고 있는 뱅크시

 

 

 

 뱅크시가 가장 많이 그리는 것은 쥐와 아이들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의인화의 도구로서 사용하여

인간의 권위에 거세당한 불특정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고 아디들은 세상 폭력과 부당함에 희생되는 것을 연출한다.

이는 기존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그림을 통해 대중에게 보여주며 소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꽃을 투척하는 남자

 

완전 군장을 하고 경계태세 속에 평화 마크를 그리는 군인들

 

                                      Have anice day

 

                    원시인 마켓에 가다

 

                 미키와 삐에로 아저씨는 우리의 친구

 

 

 

 

 

 2005년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살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길이가

700여 km에 달하고 높이가 5~8미터나 되는 장벽을 만들기로 하고 이를 강행 중이었다. 팔레스타인은 이를 두고 고립장벽, 분리장

벽, 인종차별장벽이라 부르며 건설 중단을 요구했지만 결국 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해, 뱅크시는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떠났고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위치한 분리장벽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다.

 단연 뱅크시다운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높은 회색빛 시멘트 장벽을 뻥 뚫어버린 눈부신 파란 하늘과 바다는 특히 인상적이

었다. 왜냐하면 가로막힌 벽에 그가 그린 건 누가 봐도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9년, 안타깝게도 부조리한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뱅크시의 작품과 그의 활동은 여전히 유효하다.

2009년, 뱅크시의 작품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_ 21세기형 아티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를 그리는 행위를 일컬어 거리의 예술가들은 ‘버밍(Bombing)’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때로 허용되지 않은 벽, 혹은 모두

의 시선을 공유하는 벽 - 그래피티 초창기에는 벽보다도 지하철(기차)이 주요 목표물이었다고 한다. - 에 자신의 화려한 족적(?)

을 남기고 사라짐으로써 관심을 끌었다. 뱅크시 역시 이러한 버밍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건 상관없이 ...

최근의 뱅크시는 차츰 거리를 벗어나 설치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되

고 지금의 이름값을 하게 된 건 역시 거리의 벽을 화폭삼아 그린 ‘그래피티’를 통해서였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런던의 경찰이나 근엄한 왕실 근위병은 몰래 노상방뇨나 하고 동성애를 나누고, 혹은 바람을 피우고 도

망치다 창가에 매달린 존재로 추락한다. 또한 단골로 등장하는 생쥐들은 그 와중에도 호시탐탐 국가전복(?)을 획책하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처럼 지극히 유머러스하지만 그 웃음 저 편에는 그저 편한 마음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 아무튼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이 어느 날 홀연히 런던 거리의 벽을 채운 채

 수많은 불특정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뱅크시가 유명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런던에는 그의 작품이 그려진 거리를 나타내주는 지도책이

 나왔고, 그의 작품을 찾아가는 투어코스까지 생겼다. 적어도 뱅크시의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관람객들은 이제 엄숙한 미술관이

 아니라 거리로 나가면 됐고, 딱히 관람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잠시 걸음을 멈추면 됐을 뿐이다.

초창기 거리에서 벌였던 뱅크시의 작품 활동은 대부분 불법이었다. (런던이나 뉴욕 등의 대도시들은 특별히 허용된 장소를 제외한

공공장소에서의 낙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거리의 ‘벽’을 선택하게 된 걸까? 그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싶어

서였던 걸까?
문득 든 생각은 이랬다. 어차피 그가 전달하고픈 메시지의 지향점은 결국 불합리한 - 적어도 그가 바라볼 때는 - 제도인 셈이니,

결국 뱅크시는 스스로 불법을 자행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

예를 들어 반전(反戰)을 테마로 한 뱅크시의 일련의 작품들은 지극히 선동적이어서 쉽게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뱅크시에

게 ‘예술’ 혹은 ‘그래피티’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인 동시에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약 그와 같은 어설픈 추측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http://www.banksy.co.uk/  <- 뱅크시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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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탈구축의 레시피―어리둥절한 컴바인 페인팅과 분자요리
생각하는 미식가―예술적인 돼지들과 구르망의 욕망
날로 먹는 즐거움―아르 브뤼와 로푸드
가난해서 아름다운―아르테 포베라 그리고 프리건
실존을 위한 커피―이방인을 위로해줘

 

 

혹시 카페를운영하고 게신 분이라면 일명 '뫼르소의 밀크 커피'를 꼭 런칭해 보길 권한다.

 

홍보문구는 이것이 어떨까.

"카뮈의 이방인이 마셨던 바로 그 커피,

이 잔을 비우는 순간 당신도 실존을 깨닫게 된다."

 

레시피도 간단하다.

1. 진하게 블랙 커피를 내린다.

2.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밥숟가락으로 두어 번 넣는다.

3. 꿀 한 방울을 똑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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