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2. 20:49ㆍ책 · 펌글 · 자료/문학
시론(詩論)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오?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어 시인인것을……
구약(舊約)
보리밭에 보리를 거둬들일 땐
들린 이삭 모조리 다 줏지 말고
어느 만큼은 거기에다 남겨 두어라.
그래야만 산새들이 주워서 먹고
고단한 네 곁에 와 노랠 부르리.
고구마밭 고구마를 캐낼 때에도
쬐그만 건 거기 더러 남겨 두어라.
그래야만 제껏 없는 어린애들이
캐어서 먹으면서 좋아 웃으리.
그래야만 하누님도 좋아 웃으리.
바다에서 캐어내는 비싼 전복도
海女여 깡그리 다 따지는 말고
몇 개쯤은 그대로 남겨 두세요.
그래야만 그대 님이 찾아온 날에
눈깜작새 캐어다가 줄 수 있으리.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풀리는 한강가에서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묻은 섣달에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갈려 했더니
뭐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니플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소서 또 한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사십(四十)
지당(池塘) 앞에 앉을개가 둘이 있어서 네 옆에 가까이 내가 앉아 있긴 했어도 <사랑한다> 그것은 말씀도 아닌 벙어릿 속의 오르막 음개(계)(音階)의 메아리들 같아서 그렇게 밖엔 아무것도 더하지도 못하고 한 음개(音階)씩 차근차근 올라가고만 있었더니. 너 어디까지나 따라왔던 것인가 한식경 뒤엔 벌서 거기 자리해 있진 않았다. 그 뒤부터 나는 산보로(散步路)를 택했다. 처음엔 이 지당(池塘)을 비켜 꼬부라져 간 길로, 그 다음에는 이 길을 비켜 또 꼬부라져 간 길로, 그 다음에는 그 길에서 또 멀리 꼬부라져 간 길로. 그런데 요즘은 아침 산책(散策)을 나가면 아닌게 아니라 지당(池塘) 쪽으로 또 한번 가 볼 생각도 가끔가끔 걸어가다 나기는 한다.
낮잠
妙法蓮華經 속에
내 까마득 그 뜻을 잊어먹은 글자가 하나.
武橋洞 왕대포집으로 가서
팁을 오백원씩이나 주어도
도무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글자가 하나.
나리는 이슬비에
자라는 보리밭에
기왕이면 비 열끗짜리 속의 쟁끼나 한 마리
여기 그냥 그려 두고
낮잠이나 들까나.
이 시는 뜻하는 바가 모호하여 해석이 어렵지만 미당 시 가운데 매력적인 명편이다. 시인은 지금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아무런 암시도 없다. 다만 그 문제는 불경 중에서도 가장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나타나 있다는 묘법연화경 속의 한 글자를 잊어버린 것에 비유된다. 즉 그 문제의 해담을 얻으면 묘법연화경의 경지를 얻은 것처럼 자신의 삶이 환하게 밝아질 수 있을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요 인생의 숙제인셈이다. 또는 인생의 답이 모두 들어있는 묘법연화경에서 잊어버리고 생각이 나지 않는 글자가 있다는 것은 시인의 삶에서 아무래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론이 나지 않는 어려운 인생의 숙제를 묘법연화경 속의 글자로 비유한 것이다. 미당의 솜씨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되는 멋진 표현이다.
그 중요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술도 마셔보고, 팁도 500원이나 주는, 평소에 하지 않는 노력까지 해보나 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근심은 이슬비처럼 내리고 번민은 보리밭처럼 자란다. 답답한 시인은 화투로 점을 쳐보기도 한다. 비 열 끗자리에는 숲 속 같은 곳에 새가 한 마리 그려져 있다. 비 열 끗자리가 나오자 화투놀음도 작파하고 시인은 낮잠이나 들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의문과 마주침다. 왜 시인은 비 열끗자리를 그려두고 낮잠을 자는 것일까? 기왕이면 비광을 그려두고 낮잠을 자면 더 좋을 것 아닌가? 이 의문에 이 시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비광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12월 화투짝의 비광에는 버드나무와 개구리와 냇물과 어떤 우산 쓴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10세기 일본의 유명한 서예가 오노노 미치카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치카제가 비오는 날 밤에 산보를 나왔다가 버드나무 가지 위로 뛰어오르려고 계속 점프하는 개구리를 만난다. 개구리의 그 가망 없는 노력에 놀랍게도 결국은 그 버드나무 가지 위로 오르고 만다. 여기서 미치카제는 깨달음을 얻고 노력하여 큰 공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교훈을 염두에 둔다면, 「낮잠」이란 시는 열심히 노력을 해보다가 끝까지 노력하지는 않고 그 직전에서(비광까지 그리지 못하고 비 열 끗자리까지 그렸으니) 노력을 멈추고 마는 태도를 보여주는 셈이다. 또는 비피나 비띠보다는 낫지만 비광이라는 최선보다는 조금 못한 단계인 비 열 끗자리 정도에 만족하는 태도일 것이다. 시인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에서 스스로 물러나 버리는 태도를 취한다. 즉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어느 정도 노력한 후 그 정도에서 그냥 내버려두는 태도를 보여주는 결말이다. 비록 답을 얻지 못했어도 알 수 없는 일이 가득한 이 인생살이 속에서 어쩌면 더 바람직한 태도일 수도 있음을 이 시는 암시한다.
- 이남호,『남김의 미학』 중에서
저무는 黃昏
새우마냥 허리 오구리고
누엿누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이제는 잠이나 들까
굽이굽이 등 굽은
근심의 언덕넘어
골골이 뻗히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내겐 없으니
소태같이 쓴 가문 날들을
역구 풀 밑 대어 오던
내 사랑의 보 도랑물
인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두고
으스스 깔리는 머언 산 그리매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엣비슥히 비기어 누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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