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

2016. 5. 2. 08:36책 · 펌글 · 자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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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패권주의에 서늘한 펜촉과 열정적 연설로 맞선 시대의 논객어린 시절 체험 담은 소설 '작은 것…'으로 부커상 수상 등 대중성과 평단 호응 끌어내 최근 10년 사이에 미국의 주먹(군사적 신보수주의)과 보자기(경제적 신자유주의)에 맞서 가장 열정적으로 펜을 휘두른 논객은 누구일까? 얼른 떠오르는 사람은 그 전부터 미국 정부의 정책에 비판의 펜촉을 들이댄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나 역사학자 하워드 진 같은 원로들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한두 세대 아랫사람으로서 근년에 이들 못지않게 눈길을 끈 이가 있으니,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48)가 그녀다.

 

 

 

 

 

 

그녀 이름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첫 소설이자 지금까지의 유일한 소설 <작은 것들의 하느님>이 1997년 명망 있는 부커상을 수상한 뒤다. 작가의 어린 시절 체험을 반영한 이 반(半)자전소설은 그 해 뉴욕타임스의 '주목할 만한 책'(Notable Books of the Year)으로 꼽혔고, 그 신문의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 4위에 올랐다.

그해 5월 출간된 이 소설은 6월 말에 이미 18개국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오늘날 한국어를 포함한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평단의 반응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로이는 첫 작품으로 국제적 명성과 부를 얻은 드문 소설가다.

소설쓰기는 그녀의 첫 번째 소명이 아니었다. 뉴델리 도시계획건축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로이는 방송과 영화 쪽에서 이력을 시작했다. 시나리오와 극본에서 단련된 그녀의 손가락이 소설 <작은 것들의 하느님>에서 풀리면서 일을 낸 것이다. 로이는 이 첫 소설로 저명인사가 된 뒤 다시 시나리오와 방송극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것들보다 더 몰두한 것은 정치에세이들 쪽이었다.

로이 자신은 소설가로 불리기를 더 원할지 모르지만, 스무 권이 넘는 그의 책 가운데 소설은 단 한 편이고 나머지가 모두 (강연 원고를 포함한) 에세이이므로, 에세이이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의 시나리오와 방송극과 소설 속에 잠재해 있던 수사(修辭)와 논리의 힘은 그녀의 에세이에서 진면목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수많은 친구와 그만큼의 적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인도의 핵개발과 대규모 댐건설 공사를 비판한 에세이 <생존의 비용>이 2003년 번역된 이래, 그 이듬해에는 정치에세이와 강연문 일부가 <9월이여, 오라>라는 제목으로 편집 번역되었고, 역시 에세이와 강연문 모음 <보통사람을 위한 제국가이드>도 번역됐다. 출간 즉시(1997년) 번역된 <작은 것들의 하느님>이 아니더라도, 로이는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첫 소설말고 로이의 국제적 명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 비판은 2001년 9ㆍ11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본격화했다.

그녀는 영국 신문 가디언에 기고한 '왜 미국은 당장 전쟁을 중지해야 하는가?'에서 "아프가니스탄 공습은 뉴욕과 워싱턴 참사에 대한 정당한 복수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 인민에 대한 테러"라고 썼다.

그녀가 보기엔 세계무역센터 공격이 테러리즘이듯 아프가니스탄 공격도 테러리즘이었다. 특히 그녀는 부시 주니어와 미국의 총애를 받는 '대사(大使)' 토니 블레어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 식의 이중언어(더블싱크)를 사용하고 있다며, 외국에 공습을 가하는 그 순간에도 자기들은 평화국가라고 주장하는 이들 덕분에 '돼지'는 '말(馬)'을, '소녀'는 '소년'을, '전쟁'은 '평화'을 뜻하게 됐다고 비꼬았다.

이 글에서 그녀는 미국이 평화애호국이라는 부시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전쟁을 벌인 나라들을 열거했는데, 좀 길지만 여기 옮겨 놓아보자.

중국(1945~46, 1950~53), 북한(1950~53), 과테말라(1954, 1967~69), 인도네시아(1958), 쿠바(1959~60), 콩고(1964), 페루(1965), 라오스(1964~73), 베트남(1961~73), 캄보디아(1969~70), 그레나다(1983), 리비아(1986), 엘살바도르(1980년대), 니카라과(1980년대), 파나마(1989), 이라크(1991~99), 보스니아(1995), 수단(1998), 유고슬라비아(1999),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이들 나라를 열거한 뒤 로이는 "확실히 미국은 지치지 않는다"고 썼다. 맞다. 미국은 로이의 이 발언이 나온 지 두 달도 채 안 돼서, 9ㆍ11테러와 아무 상관도 없고 대량살상무기도 지니지 않은 이라크를 다시 침공해 지금까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로이가 열거한 전쟁들은 미국 정보기관들이 일상적으로 벌인 파괴, 살상, 쿠데타 조종 같은 비밀공작들을 제외하고 셈한 것이다.

로이의 주장은 늘 상식적이다. 미국 스타일 자본주의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것, 군수산업, 석유산업, 주요 미디어네트워크, 외교정책 따위가 동일한 자본복합체 아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전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따위다. 그러나 이 평범한 상식을 끌어내는 그녀의 문장은 너무나 힘차고 아름다워서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녀의 정치적 목소리는 에세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세계지식인들과의 연대서명운동과 강연을 통해서도 이뤄졌다. 그녀는 자신을 선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연설은 적절한 수사와 공격성이 아름답게 결합된 일급 선동문이다.

라난재단 주최로 200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페에서 행한 유명한 강연 '9월이여, 오라'에서, 로이는 2001년 9월11일을 피노체트가 미국 CIA 지원으로 칠레의 합법 정부(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1973년 9월11일, 영국 정부가 아랍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탁통치를 선언한 1922년 9월11일 등과 포개며, 앵글로-아메리카와 이스라엘이 제3세계에 저지른 범죄들을 추궁했다.

이 아름다운 연설문의 들머리에서 그녀는 소설가 로이와 에세이이스트 로이를 일치시키며 "논픽션과 픽션은 이야기를 전하는 기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픽션은 내게서 춤추듯 흘러나오고, 논픽션은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맞이하는 이 고통스럽고 깨진 세계가 비틀어 짜듯이 내보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그녀는 미국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인스턴트-믹스 제국민주주의'라는 강연을 통해 자신을 '미 제국의 한 신민'이자 '왕을 비난하는 노예'로 비유하며, 미국을 "신으로부터 직접 정당성을 부여받아 아무 때나 그의 속국들을 폭격할 권리를 보유한 지구제국"으로 묘사했다.

2006년 부시가 인도를 방문하자 로이는 그를 '전범'이라 비난했고, 같은 해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자 그는 촘스키, 하워드 진 등과 성명서를 발표해, 그것을 '전쟁범죄'이자 '국가테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로이의 정치활동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군사주의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공공의 더 큰 이익'과 '상상력의 종말' 두 편의 에세이로 이뤄진 <생존의 비용>에서 보여주었듯 그녀는 나르마다 강 댐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인도의 성장우선정책과 핵개발에 반대했고, 더 나아가 카시미르의 독립을 옹호했다.

그녀는 또 어떤 사회운동이 폭력을 수반했을 때, 그것을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의 맥락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반대하는 것은 이른바 세계화 자체다. 그녀 생각에 세계화란 원격조종되고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되는 변종 식민주의이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녀 생각이다.

그러나 그녀의 '현실주의적' 정치 활동은 그녀의 적들로부터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동료들로부터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곤 했다. 특히 나르마다 강 댐 건설이 관개나 식수공급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수천만 주민들에게 고향만 빼앗을 것이라며 반대했을 때는, 생태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그녀에게 용기와 신념은 있지만, 그녀의 언사가 너무 과장됐고 단순하며 세계를 마니교적 2분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로이의 대답은 이랬다. "내 글의 열정적이고 히스테리컬한 톤은 의도적인 것이다. 나는 히스테리컬하다. 나는 유혈이 낭자한 지붕 위에서 소리 지르고 있다. 나는 점잔을 빼며 '쯧쯧쯧' 하고 싶진 않다. 나는 내 이웃들을 깨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목적의 전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기를 바란다."

미국과 이스라엘, 탈레반 등의 근본주의와 목하 진행되는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또 한 사람의 근본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약한 자들을 위한 근본주의고, 때로 지나쳐 보일 때도 있지만 정의감각과 조율되는 근본주의다. 이 명민하고 열정적인 글쟁이에게 나는 질투와 연대감을 동시에 느낀다.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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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아룬다티 로이 지음, 노승영 옮김
시대의창·1만6800원

 

 

 

우리는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둔갑시킨 걸까?

인도 여성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던지는 질문은 아프다. 새로 나온 그의 정치 평론집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는 인도 민주주의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도 ‘남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한마리 육식동물로 합체하여 오로지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그의 진단은 세월호, 4대강, 밀양의 비극과 고통 앞에도 절실하다.

인도는 흔히 서방 언론에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지만, 인도는 10억명이 투표하는 국가라는 식으로 세계에 홍보된다. 민주적 신흥 시장국가, 떠오르는 10억 시장…. 서방 언론은 이런 이미지를 선전하며, 친서구적인 인도가 중국의 대항마가 되길 은근히 바란다.

하지만 로이는 또다른 인도의 얼굴을 보여준다. 1989년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자, 비동맹운동의 맹주였던 인도는 잽싸게 방향을 틀어 새로운 일극체제의 군주인 미국 옆에 바싹 달라붙었고 국제 자본을 향해 경제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연합’(민족주의)과 진보(시장과 개발)의 시대가 왔다. 대규모 건설공사, 댐, 광산, 경제특구로 인한 홍수, 가뭄, 사막화 때문에 수천만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고, 매년 수만명의 농민들이 자살하고 있다. 강을 살리거나 숲을 지키자는 사람에게는 ‘반진보, 반개혁, 반민족’의 낙인을 찍었다. “소수집단이 다수에게서 땅과 강, 물, 자유, 안전, 존엄, 저항권을 비롯한 기본권, 한마디로 모든 것을 빼앗아 막대한 부를 누리는 분리주의가 벌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종교적 파시즘이 몰려왔다. 인도인민당(BJP)은 힌두 민족주의(힌두트바) 운동을 벌여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 1984년 의석수가 단 두석에 불과하던 인도인민당은 ‘위대한 인도’의 광기에 힘입어 1998년 집권했다. 정권을 잡은 지 몇주 만에 핵실험도 강행했다. 인도인민당이 집권한 구자라트주에서 2002년 이슬람교도 2000명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하고 무슬림 여성들은 윤간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졌다. 당시 구자라트 주지사로서 학살 사태를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는 올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신임 총리가 됐다. 이런 파시즘적 상황을 누가 키웠는가? 의회와 언론 등 ‘민주주의’ 기구들이라고 로이는 비판한다. “선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고 민주국가인 것은 아니다. 정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미친 악마다.”

로이는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정치 평론을 쓰고 댐 건설 반대 등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약자들 편에서 투쟁해 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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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여행 가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가끔 받곤 한다. 여러가지 책이 있긴 한데, 오늘은 딱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룬다티 로이'라는 인도 소설가의 책이다. 그의 책은 한국어로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책은 그가 쓴 수필집으로 '9월이여 오라'를 꼽고 싶지만 사실 정치 평론에 가까운 책이라 경우에 따라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여 아룬다티 로이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인도로 여행 떠나기 전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아래의 책 소개는 내가 직접 쓴 게 아니다. 출판사의 홍보 문건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착오없기를 바란다. 

- 2011년 2월 7일, 여의도 618에서 똠방(안테바신) 쓰다

 

 

 

 

 

 

1997년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s>이 출간되었다. 인도 작가로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비디아다르 나이폴(1971)과 샐먼 루시디(1987)에 이어 세 번째 수상자로서, 식민지 언어로 영국을 정복한 또 한 명의 인도작가가 되었다. 로이의 작품은 인도의 편협된 신앙과 위선에 대해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자연에 대한 범신론적인 생생함을 그려내 독창적이고 치열한 언어로 인도 사회의 심층부를 파헤쳤다는 찬사를 받았다. 


<작은 것들의 신>은 이미 출간 당시부터 선인세로 100만 파운드 이상을 받았고, 출간 사흘 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등 세계적인 화제를 뿌려 올해 세계문학계의 최대 사건으로 꼽혔다. 현재 영국의 하퍼콜린스, 미국의 랜덤하우스 등 무려 20개국에서 17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인도ㆍ영국ㆍ독일ㆍ미국 등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작은 것들의 신>은 로이가 성장한 곳이자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던 곳인 케랄라 주의 아예메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은 기독교ㆍ힌두교 등 여러 종교와 공산주의가 공존하면서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소요가 상존하는 곳이다. 시기적으로는 1969년, 공산주의와 낙살라이트(인도의 극좌정당) 당원들의 폭동이 확산되어 전통적 카스트 제도를 뒤흔들며 두려움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어난 두 주일간의 이야기이다. 
<작은 것들의 신>은 편협한 신앙과 위선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가득 차 있다. 이 소설에는 백인들에게 아첨하는 친영파들, 영국적 소아성애의 망령, 무자비한 가부장제의 폭력, 그 잘난 광신적 남성우월주의 등과 같은 전통적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비롯하여 인도사회가 당면한 사회적 이슈들이 제시된다. 이를 통해 편협성과 질시, 사회적 편견 등 인간과 사회의 이면상이 통렬하게 풍자된다. 로이는 불의에 대항하는 고양된 감각, 평생 동안 착취당한 사람들에게서 생겨나는 고집스럽고 무모한 기질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주제의식에도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요인은 무엇보다 독특한 구성방식과 문체에 있다. 로이는 이 소설의 장들을 순차적으로 쓰지 않고, 기억을 역전시키면서 서술에 감도는 불길한 전조를 통해 미래를 예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나리오 작가답게 영화의 기법들-시간 이동, 끝없이 이어지는 급박한 전개와 역전, 발빠른 편집-을 교묘히 이용하여 다가오는 재난을 가속시키는 동시에 늦추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실험적인 산문, 즉 패러디와 반복과 놀라운 비유가 돋보이는 그녀의 산문을 통해 독창적으로 형성되었다. 근면한 경험론자인 그녀는 자연계에 대해, 냄새와 소리에 대해, 색채와 빛에 대해 예민한 감각으로 생소하면서도 친숙한 세계를 관능이 굽이치는 산문으로 손에 잡힐 듯 그려낼 수 있었다. 때때로 이상한 문장을 구사하거나 지나친 기교에 빠지는 흠이 있음에도, 로이는 숨을 삼키게 할 만큼 뛰어난 스타일리스트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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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로이- ('9월이여, 오라'에서 '홍수앞에서')| ⊙좋은책나눔방

늘품 | 조회 27 |추천 0 | 2006.01.06. 16:12

덧:

 

 

 

 

 

 

 

 

 

 

 

《녹색평론》제56호 2001년 1-2월호    

 

 

홍수앞에서

 

아룬다티 로이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인도의 케랄라주의 시골에서 태어나  심각한 빈곤과 계급 및 남녀차별적 환경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도시로 나와 고학으로 건축교육을 받았다.

 

 나중에 건축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영화작가로서 활동하다가 30대 중반에 첫 소설《작은 것들의 신(神)(The God of Small Things)》을 썼다. 인도의 기층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전통의 압력 밑에서 희생되어온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이 소설은 1997년 미국의 랜덤 하우스를 통해 출판되면서 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곧이어 영국의 부커상 수상작이 되기도 하였다.

 

무명의 건축가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저자는 출판사의 주선으로 1년여에 걸친 세계여행 끝에 인도로 귀환한 후 얼마 안되어 인도의 핵무기 개발의 어리석음을 가열하게 비판하는 글 ― 〈상상력의 종언(The End of Imagination)〉― 을 발표한 데 이어 세계적으로 논란거리가 되어온 나르마다 강 대형 댐 건설 문제에 눈을 돌려 다시 근본적인 비판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보다 큰 공공선(The Greater Common Good)〉이라는 긴 에세이가 집필되었고, 이것은 핵문제에 관한 에세이와 함께 엮어져《삶의 비용(The Cost of Living)》(1999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러한 새롭고도 노골적인 반체제적 활동으로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주류사회로부터 지금까지의 찬사와 존경 대신에 비난과 냉대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이른바 '국익'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의 삶과 생명의 서식처를 보호하는 데 겨냥된, 근원적인 의미의 정치적 투쟁이 작가의 임무라고 하는 믿음에 아직 굽힘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 소개하는 글은 이 작가가 1999년 11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초청으로, 같은 대학에서 열린 '네루 기념강연'에서 행한 연설을 발췌, 번역한 것인데, 원문은 인도 잡지 Frontline 2000년 2월호에 전문이 실렸고, 이어서 미국의 환경잡지 The Amicus Journal 2000년 가을호에 발췌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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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홍수 앞에서
작가와 세계화 ―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할 것인가
왜 미국은 당장 전쟁을 중지해야 하는가
9월이여, 오라
노엄 촘스키의 외로움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인스턴트 제국 민주주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

 

 


 

역자후기

 

 

 2003년 3월 20일 새벽 5시 30분. 미국은 바그다드 남동부에 대규모의 미사일 폭격을 감행하였다.

스마트폭탄, 소프트폭탄, 전자기 펄스탄, 토마호크, 지하벙커 파괴폭탄, 열압력폭탄, ‘데이지 커터’로 불리는 파쇄성폭탄,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일명 ‘모든 폭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공중폭발 대형폭탄까지 동원된 대규모 공습이었다.

 

이름하여 ‘이라크 해방작전’.

총 동원병력 30만명에 작전 참가 군인만 12만5천명이었다.

2003년 4월, 미국측 통계에 따르면 2,320명의 이라크군이 전사하였고,

13,800명이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민간인 사상자 수는 전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지난 10년간의 경제제재 조치로 죽어간 어린이와 민간인 사망자 수도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현재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항거하는 이라크인들에 대한 미군의 공격은 갈수록 광포한 것이 되어,

앞으로 얼마나 더 희생자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이 참혹한 전쟁에 분노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로이는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고 이라크를 해방시키려는” 모든 이들에게 ‘신의 가호’를 요청한 조지 부시에게 분노하였고,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 민중들에게도 파쇄성폭탄으로 민주주의를 건설해주겠다는 미국의 오만한 제국주의적 자세에 분노하였다.

 그녀는 자유세계의 창녀로 전락한 ‘민주주의’에 분노하였고,

쇼 비즈니스로 전락하여 전쟁광고에 열을 내는 미국식 ‘자유언론’에 분노하였다.

 

또 그녀는 이 전쟁에 쇠파리처럼 날아든 벡텔, 할리버튼과 같은 다국적기업들에 분노하였고,

마침내 제국의 시녀로 전락한 유엔에 분노하였다.

 

  그 어느 저널리스트의 글보다도 로이의 글은 정확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현재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약자들에게로 향해 있다.

 이 지구상의 온갖 작은 것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 어린이들, 민중들에게로 향해 있다.

 

‘이라크 해방작전’에서 죽어간 수많은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이 로이에게는 낯설지 않다.

그녀에게 이라크는 먼 나라가 아니다.

미국의 침략과 점령으로 죽어간 이라크 민중은 바로 수많은 댐 건설로 삶터를 잃고 헤매는 인도 민중들이었고,

나르마다 개발계획으로 수장(水葬)되는 수많은 작은 곤충들과 숲이었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의 케랄라 주에서 태어나

건축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영화작가로 활동하다가 첫 소설《작은 것들의 신(神)》을 통해 작가가 되었다.

 

인도 기층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전통에 희생되어온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이 작품으로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의 하나인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그녀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출판사의 주선으로 일년 가량 전세계를 여행하고 난 뒤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그녀는

인도의 핵실험을 가열하게 비판한〈상상력의 종말〉과

나르마다 개발계획의 재앙에 대한 글〈더 큰 공공선〉을 발표하였고,

그 결과 인도의 주류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냉대에 직면하였다.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나르마다 댐 건설계획은

세계은행, 서양의 다국적기업,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인도 엘리트들이 만든 국제적 부패의 현장이었고,

반대로 나르마다 강에 의지해 자급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던 수많은 풀뿌리 민중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도시빈민으로 떠돌면서

 “복종하는 법과 아무에게나 말 대답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는 굴종의 현장이었다.

 

 

  처음부터 로이는 작가의 임무란 ‘국익’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의 삶을 옹호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첫 소설《작은 것들의 신》에도 드러나듯이, 그녀는 인도 남부 케랄라 주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일상적으로 친근하게 대면했던 곤충들, 무성한 수목들, 그리고 정겹고 가난한 이웃들을 사랑했다.

 

이 모든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야말로

오늘날 로이가 반세계화 운동의 뚜렷한 기수가 된 근원적인 토대였다.

 

로이는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자유무역’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는 ‘세계화’를 원천적으로 거부한다.

 

그녀는 전쟁과 세계화 경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서 신비와 행복과 우정이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고,

개발과 발전의 이름으로 무수한 생명들이 짓밟히고,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연에 의지해 살아온 대다수 가난한 민중들이

다국적기업과 미디어와 제3세계 권력엘리트와 전문가들에 의해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에 온힘으로 저항해왔다.

 

이렇게 해서, 로이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인기 작가의 길을 버리고,

풀뿌리 민중과 그들의 삶터를 지키려는 반세계화 운동의 가시밭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작가란 어디까지나 진실을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고,

진실을 알고 난 뒤에는 진실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모두 정치적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 나는 부산의 한 변두리 바닷가에서 자랐다.

봄이 오면 학교 뒤 동산에 올라 할미꽃이 핀 낮은 무덤가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고,

한여름 저녁이면 평상에 누워 부채바람 아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지냈다.

계절이 바뀌어 화단가 채송화 씨앗 주머니가 봉긋이 올라오면

 깨알 같은 주머니를 터트리며 놀았고,

민들레가 질 때면 솜털이 보송보송한 홀씨들을 불고 다니며 놀았다.

 

왜 그때라고 생활이 녹록했겠는가.

변두리 인생이라 동네 아저씨들 술 먹고 싸움할 일도,

동네 여자들 방정맞은 밤마실에 소문날 일도 많았다.

어려운 현실은 그 시절에도 드리워져 있었고,

너나할것없이 세상 사는 고통과 가난의 연속이었다.

지나간 시절이라고 다 정겹겠는가.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동안

내게는 이상스럽게도 자꾸 그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 저녁 늦도록 친구들과 불렀던 노랫소리도, 골목길의 웃음소리도 이젠 사라지고 없다.

이제는 봄날 무덤가에 불던 스산한 바람도, 할미꽃도, 딱정벌레도 없다.

으스스한 전설도, 골목길 아이들 숨바꼭질 소리도, 땅강아지도 ‘개발’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다.

 

이제 막 세상에 눈뜨기 시작하던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느꼈던 신비와 두려움, 그리고 정겨움도 사라졌다.

처마 밑에 비긋는 소리도, 여름밤 빛나던 먼 별빛도 사라졌다.

 

작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우리 삶에서 모든 신비롭고, 놀랍고, 정다운 것들도 함께 사라졌다.

 

이렇듯 우리사회에서도 근대화, 개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그리고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 것은 예외 없이 ‘작고 연약한 것들’이었다.

그러한 상황의 연장선에서,

지금 또다시 우리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보았다.

 

  열화우라늄탄이나 파쇄성폭탄의 상대가 작은 곤충들, 앙상한 나무, 메마른 강, 맨발의 어린아이들,

그리고 굶주린, 순박한 이라크인들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제 막 부모 곁을 떠나 ‘국익’을 위해 파병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아룬다티 로이는 뜨거운 마음으로, 놀랄 만큼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제 우리도 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04년 5월  
박혜영

 

 

 

 

 

 

댐을 부수는 사람

마들렌 번팅

 

  아룬다티 로이는 무명의 존재에서 인도 국가의 무대 위로 갑자기 올라섰다.

건축학 공부를 중도 포기한 학생이자 한때 에어로빅 강사였던 로이는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것이《작은 것들의 신(神)》이었다.

이 소설로 그녀는 인도에서 유례없이 가장 많은 사전 인세(印稅)를 받았고,

연이어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책은 6백만부나 팔려나갔다.

한 반항적인 아웃사이더 ― 남부 출신이자 여성이기도 한―가 인도 문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남자들의 콧대를 눌러버렸고,

그 대가는 전세계적인 명성이었다.

세계적인 성공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끝없는 상찬(賞讚)을 받는 국가적인 마스코트가 되었다.

 

  4년이 지난 후, 그동안 소설은 더 발표되지 않고,

지금 서른아홉이 된 로이는 인도의 개발, 발전―핵실험, 대형댐 건설 프로젝트, 그리고 서양의 다국적기업에 대한 굴종―을

통렬하게 공격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평론을 집필함으로써,

한때 인도 중산층이 총애하던 존재에서  이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로이의 비판은 인도의 힘있는 이권세력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급소를 찌르는 것으로, 그녀에게는 많은 적이 생겼다.

로이의 비판과 그 비판이 서양에서 한결같이 큰 관심을 끄는 데 격분하여,

 인도의 기성체제는 이 다루기 거북한 반항아를 깎아내리려 애쓰기 시작했다.

 

이번 주, 로이는 인도 대법원에서 법정모욕죄로 기소되었다.

 그녀가 처음 대법원에 나타난 것은 넉달 전이었다.

로이에게 씌워진 죄목은 이 나라의 가장 큰 논란거리,

댐 건설 프로젝트―인도 중부 나르마다 계곡의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건설―에 대해

작년 가을 인도 대법원이 공사재개 결정을 내린 데 대한 항의시위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로이는 폭력을 선동하고, 한 법원 관리를 공격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소송은 여러 면에서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로이의 자문 변호사들은 그녀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조언했다.

 로이가 거절하자, 아무도 자신의 경력을 위험에 빠트리면서 로이를 변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로이는 자신의 공술서를 직접 작성하여,

법정 출두 첫날 구독률이 높은 주요 잡지에 이를 도전적으로 발표하였다.

 

이것은 법원의 격분을 샀고, 향후 재판 추이에 위협이 되었다.

로이에게 6개월간의 징역형이 선고될 위험이 있다.

 

  어떻게 해서, 치열하게 서정적인 소설을 발표한 작가가

변호사 못지않는 분석적인 산문을 쓰는 헌신적인 활동가가 되었을까?

 

무엇 때문에 로이는 델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만찬 파티의 손님에서

야간행진과 연좌시위, 그리고 심지어 감옥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는 활동가로 변신하게 된 것일까?

 

왜 작은 것들 ― 케랄라의 딱정벌레, 기어다니는 곤충들, 무성한 녹음 등등 ― 에 대한 충실한 기록자가

핵무기, 댐, 인도 국가, 세계화와 같은 거대한 것들과 맞서 싸우게 되었는가?

 

  내가 방문했을 때, 로이는 아파트 동(棟)의 현관문을 열어주려고 4층을 내려왔다.

그녀가 글을 쓰며,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는 그곳에는 뉴델리의 중산층이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정부도 하나 없었다.

로이의 아파트는 그녀 자신의 분석처럼, 인도의 개발이 갖는 모순에 둘러싸여 있다.

뉴델리의 안락한 교외지역이지만, 

소들이 도랑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고,

 나무그늘 아래 작은 노점을 차린 한 남자가 이웃의 빨래를 다려주고 돈을 버는데, 그가 하루종일 번 돈은

새로 생긴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있는 커피숍의 커피 한잔값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해질녘의 어둑어둑한 방에 앉아 있었다.

델리의 찌는 듯한 여름더위 때문에,

강렬한 원색과 책, 그리고 큰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있는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는 블라인드가 모두 내려지고,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로이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격렬하고 재치가 번득이는 그녀의 글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내 분노가 주위 사람들의 작고 하찮은 일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문제로 향해 있다는 게 나로서는 좋아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고, 내가 바라는 건 온화함입니다.” 

친구들이 왔다갔다하고, 전화벨이 자주 울렸다.

  인터뷰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왜냐하면 로이가 자신에게 씌워진 ‘작가 겸 활동가’라는 딱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녀에게는 ‘침대 겸용 소파’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쓸 뿐이고,

자기로서는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 큰 차이를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할 일이란 그저 자기의 “아픈 눈을 뜨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로이는 올해 초 미국에서 발표했던 글쓰기에 관한 연설문을 인용하였다.

 

“나의 경우처럼, 평화롭다고 추정되는 상황 가운데에서 한 작가가 불행하게도

조용한 전쟁에 마주치게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단 그것을 보고 나면, 그걸 안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본 다음에는

입다물고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발설하는 것만큼이나 정치적인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1998년에 조용한 전쟁에 마주쳤다.

그 전까지 그녀 자신이 시인하듯이, 세계적인 명사로서 눈부신 한해를 보내면서 그것을 굉장히 즐겼지만

(어느 에세이에서 그녀는 “저 모든 호텔 타월” 등에 관해 말한 적이 있다),

 

결국 그녀는 이 모든 ‘좋은 매너와 위생’이 자신을 망가뜨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온 세계를 돌아다닌 뒤 닻을 내린 곳은 고국이었고,

그리고 그녀는 이민의 유혹도 물리쳤다.

 

“나는 돈으로 인생을 살 수 있는 그런 인간은 못되는 것 같아요.” 

“명성이란, 어디를 가든 자신의 뒤에 매달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깡통과 같은 것”이라고 로이는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언젠가는 그 깡통은 떨어져나갈 것이고,

 

그녀는 ‘최고로 안 팔리는 작품(worstseller)’ 몇편을 쓰면서

“달빛 아래에서 망고를 먹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한가로움을 즐길 전망은,

그녀가 새로운 눈을 가지고 자기 나라에 돌아왔을 때 사라져버렸다.

 

인도는 첫 핵실험으로 들떠 있었다.

로이는 이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에 대해서 격렬한 공격을 퍼붓는 에세이〈상상력의 종말〉을 썼다.

 

그러나,

이 제목은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그리고 그 이후 계속해서 그녀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은,

 

인도 독립 이후 가장 대규모 비폭력 운동―나르마다 댐 건설 반대운동―이

그 무렵 바야흐로 승리를 거둘 단계에 와있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읽으려고 계획했던 소설책들을 집어던지고,

관개니 배수니 하는 기술적인 주제들의 세부에 몰두하였다.

그 이후, 그녀의 왕성한 호기심은 수출 신용보증에서부터 전기 배전율,

그리고 댐 건설로 쫓겨난 사람들을 위한 재정착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넓혀나갔다.

 

  로이는 자신이 택한 삶의 방향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녀는, 톨스토이와 비슷한 낭만주의에 입각하여,

나르마다 유역의 시위에의 참가 경험이

 어떻게 자신에게 인도의 민중과 땅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다주고,

또 철학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설명하였다.

 

세계적인 명사로서 들떠 지낸 다음에,

그 투쟁을 통해서 그녀는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녀는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데 대한 죄의식도 덜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치 내가 이 세상의 돈이 돌아가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에 구멍을 뚫었고,

그래서 돈이 마구 쏟아져 나오면서,

그 엄청난 속도와 힘에 부딪쳐 내 온 몸이 멍드는 것 같았다.

나는《작은 것들의 신》에 묘사된 모든 감정,

모든 느낌의 가닥들 하나하나가 은화(銀貨)로 바뀌어버린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댐에 대한 관심은 사사로운 게 아니라고 로이는 말하였다.

다른 어떠한 작가나 마찬가지로, 그녀는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고,

그리고 댐은 유례없이 현대 인도를 잘 드러내는 이야기―

인도의 탐욕, 벌거벗은 폭력, 권력의 집중화―를 뛰어나게 요약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 모든 회상 속에서,

로이는 그녀가 어린 시절 케랄라의 강들에 대해 그토록 깊이 느꼈던 애착―

그녀의 소설에 분명하게 묘사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로이는 염수(鹽水) 둑이 세워진 다음에 강이 겪는 고충에 대해

어느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한 적이 있다.

 

“혼탁한 얇은 물띠가 진흙 강둑 한쪽을 늘어지게 덮고 있으며,

이따금씩 죽은 물고기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은빛등이 번쩍거렸다.

물고기는 수면 밑에서 무성한 갈색 뿌리를 마치 가느다란 촉수처럼

흔드는 끈적끈적한 해초들 때문에 숨이 막힌 것이다.

한때 그곳에는 두려움을 자아낼 힘이 있었다.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그러나 지금은 강이 이빨은 빠지고 기운은 소진되었다.

그것은 단지 악취나는 쓰레기를 바다로 실어나르는

천천히 부유하는 녹색의 리본조각이 되었을 뿐이다.”

 

《작은 것들의 신》의 거의 모든 페이지는 작은 것들의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에 대한 감수성으로 물들여져 있다.

 

어린이들로 시작해서, 수백만에 이르는 작은 생명체들에 대한 강렬한 인식,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의 존귀함에 대한 의식이 충만해 있다.

이는 문학적 명성을 얻기 이전부터 그녀가 갖고 있던, 작고 힘없는 것들에 대한 강렬한 보호본능을 반영한다.

그녀의 대학생 때의 논문도 주변부로 밀려난 도시빈민의 주거 문제였다고, 로이는 말하였다.

 

핵폭탄과 댐은 결국 인도의 슬럼과 짝을 이루고 있다.

폭탄은 세금을 전용한 결과이고,

댐은 수백만명의 인구에게서 땅과 강을 빼앗아갔다.

 

 

  법정 문제에도 불구하고,

또 한때의 동지에게서조차  미디어를 통해서 은밀한 협박과 야만적인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이는 꿋꿋하다.

 

그녀의 정치평론은 열정적인 논쟁으로부터 좀더 위험한 것,

즉 ‘세계화’와 그것이 인도에 끼친 충격에 대한 사려깊고 재치있는 분석으로 진화해왔다.

그녀는 특히 ‘세계화’ 덕분에 번영을 누리고 있는 인도의 중산층에게 듣기 거북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화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야만적인 약탈의 과정이 아닌가?

그것은 원거리에서 조종되고,

디지털로 작동되는 식민주의의 변종이 아닌가? 

 

로이는 놀랄 만한 속도 감각을 갖고 있다.

그녀는 서두르지도, 서두름에 쫓기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저항의 정치’라고 부르는 것을 천천히 실행해가고 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반세계화 운동 지식인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녀는 노엄 촘스키, 존 버저를 읽고, 제3세계의 역사에 관한 두툼한 서적들을 읽어왔다.

그녀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의 영웅 마르코스 부사령관을 몹시 만나보고 싶어하고,

다음번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참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이 단지 올바른 지적 무장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의 정치적 투쟁은 공적인 삶에서 사적인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권력에 대한 그녀의 분석은 인도의 민주주의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적용되고,

또 자신의 명성과 부에 대하여 그녀 자신이 반응하는 방식에까지도 적용된다.

 

  로이의 정치평론은, 강력한 것이기는 하나, 아직 그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1998년의〈상상력의 종말〉은 그녀에게 많은 서양인 찬미자가 생기게 했지만,

인도에서는 핵무기의 배후에 있는 비상한 국민적 합의에 균열을 내는 데는 실패했다.

 

독립 이래 50년간 계속되어온 인도의 댐 건설에 대한 집념을 비판한 1999년의〈더 큰 공공선〉은

댐이 실제로 전력생산이나 관개 어느쪽 목적도 이루지 못하면서,

적어도 3,300만명의 사람들을 내쫓는 결과만을 가져왔음을 지적하였다.

그 내쫓긴 사람들 대부분이 불가촉민이나 부족민들이며,

이것은 사실상 종족학살이라고 로이는 주장하였다.

 

이 에세이로 인해 로이는 서양에서 더 많은 지지자를 갖게 되었고,

댐 반대 캠페인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댐 건설 반대 캠페인으로 로이가 끌어낸 세계적인 관심 때문에

거대한 나르마다 프로젝트―30개의 대형댐을 포함한 3,200개 댐 건설의 현장―에 관여한 몇몇 서양 계약자들이 겁을 먹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의 이 모든 웅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대규모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인도 대법원은 지난 10월 거대한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공사의 재개를 결정하였다.

이것은 세계은행의 프로젝트 철회를 포함하여, 일련의 놀라운 성공 끝에 이제 막 승리 직전에 있다고 믿고 있었던 운동에

쓰라린 퇴보를 안겨주었다.

 

이 패배는 이제, 델리에서 로이가 법정 심문을 받고 있는 동안에,

수백마일 떨어진 나르마다에서는 몬순 우기(雨期)의 시작과 함께 댐의 배후에

다시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몇 주 동안 경찰은 물에 빠져 죽으려는 자살 시위자들을 집에서 끌어내야만 할 것이다. 

 

“판사들이 우리의 법정모독 혐의를 논의하는 동안 사람들은 며칠이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속에 서있을 겁니다.

수몰된 토지에 대한 수십만건의 보상소송이 법정에 계류중인 나르마다 문제는 잊어버리고,

세명의 판사들로 된 재판부는 내 문제를 논의하느라 여러 날을 보낼 겁니다.

체면이 판사들에게는 훨씬더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하나만으로도 40만명이 내쫓길 것이다.

관련 지방 가운데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마디야 프라데쉬 주는 인도 최대의 강 가운데 하나인 나르마다 유역에서

수천년 동안 자신들의 삶 전체를 의탁해 살아왔던 사람들이 재정착할 수 있는 땅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더 기막힌 것은, 지난 10년간 내쫓겼던 수천명의 가난한 농부와 어부들이 대부분 아직도 재정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땅이나 생계를 잃어버리는 사람들 대다수는 미미하기 짝이 없는 재정적 보상 이외에 아무것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결국 싸구려 농업노동자 신세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도시의 판자촌으로 굴러들어가고 만다.

둘 모두 참담한 극빈의 상황에 가깝다.

 

다른 한편으로, 댐이 구자라트의 건조지역을 관개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약속은 공허한 울림이 되었는데,

그 주요한 이유는 관개에 필요한 운하 그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은, 댐은 구자라트 주의 번창하는 도시 산업부문의 기득권층을 위한 전기와 물을 공급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원의 결정을 구자라트 주의 도시들이 그토록 환호하며 반겼던 까닭이다.

 

  댐은 도시와 농촌, 산업경제와 자급경제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에 관한 로이 자신의 질문을 결정화(結晶化)한다.

 

즉,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개발의 추구 과정에서 짓밟힌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50년대에는 댐이 환상적인 기술공학의 위업처럼 보였다는 것이 짐작이 가요.

하지만, 자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제,

어떻게 지금도 그게 환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자연의 복잡한 과정에 이렇게 대규모로 간섭하는 것은 거미줄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물을 내려보면서

거기에 시멘트를 쏟아붓는 장면을 상상하라고 가르치니

도대체 이게 무슨 문명인가요?”라고 그녀는 묻는다.

 

  나르마다의 다음번 건설 예정 대형댐 마헤쉬와르를 저지할 한가지 희망은,

인도 내에서 재정조달이 어려울 것이며,

그리고 이제 댐 건설은 서양의 계약자가 수주하기에는 너무도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성공에 힘입어, 최근 두편의 에세이에서

로이는 인도의 국영 전기회사의 민영화에 관계된, 특히 미국 회사 엔론을 비롯한 서양의 다국적기업들에까지 공격범위를 넓혔다.

엔론은 봄베이 근처 2천만달러짜리 거대한 발전소 건설 계약을 위해 정치인과 관료들을 ‘교육하기’ 위해 기름칠을 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았다.

이제 엔론이 생산하는 전기는 다른 경쟁사들보다 더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라쉬트라 주는 연간 2억2천만달러에 달하는 계약금 지불에 갇혀 있다.

 

  이런 서구의 거대 다국적기업과 제3세계 엘리트들 간의 사업협정은

그들의 세계화 모델―자유화와 민영화―이 진보를 나타낸다는 합의를 증진시킨다고 로이는 말한다.

 

“전기가 얼마나 소비되고, 쌀이 얼마나 더 생산되는지―사람들이 먹든지, 창고에서 썩어버리든지 상관없이―하는 게

진보의 유일한 척도라고 믿는 것은  일종의 근본주의입니다.

경제학자들이 진보의 척도로 개발한 도구 자체가 결함이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덧붙였다.

 

 

“세계화란

소수의 사람들은 점점더 밝게 비추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잠겨버리게 하는 빛 같은 것이지요.

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서양사람들에 의한 전두엽 절제술로 인해서

우리는 더이상 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런 다음에,

천천히 보는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니까,

대안의 가능성도 없는 거지요.” 

 

  그러나,

 아직 대안이 인도에 존재한다고 그녀는 믿는다.

인도는 너무도 노회(老獪)한 나라여서,

“인생은 돈벌이”라는 단 한가지 아이디어를 믿도록―

전두엽 절제술을 한다 하더라도―세뇌시킬 수가 없다.  

 

  이 아이디어의 횡포에 대한 저항이

로이의 정치활동과 사생활을 관통하여 흐르는 한결같은 끈이다.

다국적기업을 감시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기업 감시기구를 하나 인도에 세워보려는

그녀의 계획의 이면에 이러한 저항적 태도가 있다.

 

이것은 어떤 정권이든 그 정권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정치를 어떻게 그녀가 구상하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꽉 죄는 속박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에 저항하는 겁니다.

그것을 차지하거나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 저항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로이는 

“이러한 큰 정치적 아이디어에도 개인적인 함의가 들어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와 우리가 매일매일 하는 일도 세계화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권력에 대한 저항은 우리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힘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자세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저항하는 만큼 살아가는 방식으로도 저항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스럽고, 또 기쁘기도 하지요.”     

 

  기쁨은 로이의 ‘저항의 정치’에서 두드러진 특색이다.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써 우리의 적들을 능가할 수 있다.

 그래서 바로 이런 이유로, 그들은 로이와 그녀의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다.

 

로이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와 함께 그녀가 케랄라에서 자랄 때

두사람은 홀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마르고, 까맣고, 영리한” 딸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만큼 불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페미니즘적 투쟁의 핵심은 터널의 끝에 가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매맞고, 억압당하고, 신음하는 여성의 이미지로는 안됩니다.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에 참여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끔찍한 고통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하는 일의 과정을 즐기고,

가장 슬픔이 깊은 곳에서라도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햄버거를 먹고, 다이아몬드를 사고, 롤스로이스를 타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최대한 행복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덧붙였다.

 

“이것은 생존 게임입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불행해지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모든 걸 잃게 됩니다.

나는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자신의 행복을 그토록 치열하게 지키려고 한 사람들을 달리 본 적이 없다.’

자신의 행복의 국경선을 잘 순찰하고,

기쁨의 원천을 이해하고,

그것을 보호하며,

그리고 이 세상에는 행복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사태가

너무나도 자주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요리를 하거나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지금 있는 대로가 아닌 다른 어떤 일도,

다른 어떤 사람도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행복이란,

법정 공술서 작성 때문에 몇주 동안이나 밤늦게까지 지낸 후에

시장에 나가서 유리구슬을 고르거나,

 또는 델리의 여름날 천장에 선풍기가 달린 마룻바닥에

친구들과 함께 종일토록 누워있는 것이라고 로이는 말했다.

 

심지어 댐 건설 현장에서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쳐들어오는 동안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행복이라고 했다.

 

이런 것들이 그녀의 인생의 작은 기쁨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녀로 하여금 유성처럼 세계적인 명성까지 올랐다가

이제 법정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격동의 과정을 뚫고 가게 한 힘의 원천이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을 탁월한 사람들이라고 묘사하였다.

 

친구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명성과 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우정의 민주적 성격”을 잘 유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아무도 이전에는 돈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

이제 로이는 자기의 돈을 나눠준다.

 

“나는 돈을 주는 것 못지않게 받는 것도 매우 세련되고,

복잡한 기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아마도 그녀는 소설책 하나로 자신의 나머지 일생 동안 지낼 만큼 충분한 돈을 벌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원치 않고,

그래서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자는 제의도 거절했다.

이미 6백만 독자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영화 판본을 자기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데,

단 한사람의 영화제작자의 판본이

그 많은 판본을 대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극히 민주적인 논리로 그녀는 거절하였다. 

 

  다소 믿기지 않는 주장이지만,

 긴 머리를 숭상하는 문화에서 흔치 않은 반항의 상징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뒤부터

그녀는 인도에서 자신이 익명의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혹시 아룬다티 로이가 아니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그녀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보통 대답한다고 한다),

 명성은 짐스러운 것이었다.

 

그녀의 명성을 필요로 하는 명분은 끝이 없고,

그녀는 세계 전역으로부터 오는 대부분의 요청을 거절한다.

케랄라의 폐 전문병원 개원식에 참석해주지 않겠는가?

헤이그에서 열릴 물에 관한 회의에 참석해주지 않겠는가?

 앰허스트에서 작가의 존재에 대해 연설을 해주지 않겠는가?

까르티에사의 모델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BBC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어보지 않겠는가?

 로이는 장난스럽게 웃는다.

 

“어느날 어떤 여자가 내게 전화를 해서 ‘오, 나르마다에 관한 글은 정말 근사하더군요.

혹시 아동학대에 관해서도 뭘 좀 써줄 수 있나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찬성하는 글이요,

 아니면 반대하는 글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였다.

즉, 자신은 모든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발언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때때로 힘이 들어요.

왜냐하면 운명의 음모로 내 목소리가 세상에 퍼졌는데,

그 결과 나도 모르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나도 갖고,

다른 사람들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이는 운명의 변덕스러움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그것을 온 집에 불어닥쳐 모든 덧문을 흔드는 바람에 비유한다.

 

“내가 너무 불행해서,

그 책을 쓰지 않고, 부커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어요. 

 

저 큰 공적인 이야기의 반대편에

 또하나 그만큼 중요한 내 삶의 사적인 이야기가 있어요.

 아주 끔찍하게 어두운 이야기죠.” 

 

그러나, 그녀는 좀더 자세하게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 대신 남녀관계의 성질에 대한 일반적인 성찰로써 질문에 대해 대답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의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델리에서

 떠도는 풍문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그녀의 인생에서 격동은 이제 가라앉았다.

 

그녀는 대다수 사람들이 결혼하면서 서약하는 진부한 약속에 대해 공격하고,

 왜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갖는지 솔직히 어리둥절하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열살 연상인 영화제작자와의 결혼생활에서 아이가 없었고,

앞으로도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했다. 

 

“최근까지 나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경제적으로 안정되지도 못했고,

 또 내 인생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가 생각하면 두려워요.

내면적으로 깊이, 나는 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응할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 같아요.

나는 아이의 마술적인 마음을 어떻게 지켜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인생을 되돌아가서 살아보고 싶어요.

 마음도 자유롭게 바꾸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싶어요.

누군가를 본받거나, 사람들에게 올바른 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책임감 따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되돌아가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로이가 이제 십대를 다 살고, 점차로 나이들면서 ‘알맞은, 늙은 마녀’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일종의 해방은 무책임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이것은 운이 아니라 힘겨운 노력의 문제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무엇을 위해서도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존성이란 일종의 이기주의라고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로이는 정치적 참여―시위나 소송 준비 등―와 글쓰기에 몰입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  큰 갈등이 있음을 인정했다.

글쓰기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글쓰기란 항상 언제나 즐길 만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 인생을 가장 공적인 방식으로, 또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사는 데 글쓰기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나는 소설이건, 공술서건, 편지건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다 좋아해요.

글쓰기는 제 인생을 이끌어가고,

나는 나에 관한 그 어느 것보다도 글쓰기를 믿어요.”

 

부커상 수상 직후 그녀는 자기가 또다시 소설을 쓰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소설 공장’처럼 취급하는 게 싫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쓸 때가 언제인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될 것이며,

그때는 가차없이 거기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다.

 

  변호사의 조언에 따르지 않고,

또 대법원에 사과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심을 굳힌 것도

로이의 이런 글쓰기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난번 심문 전에 매우 계시적인 꿈을 꾸었다.

 

 “나는 징역을 선고받았어요.

그러나 그게 두려운 게 아니었어요.

내가 징역을 살고 풀려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에 대해서든지

내 의견을 갖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운동장에서 현란한 무용공연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갖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머지 나는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감옥에 가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래서 그것은 될 수 있으면 겪고 싶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 위에 판사의 망치가 어른거리는 것을 느낀다.

 

“겉으로 보이는 게 진상이 아니에요.

한편에서는 한 작가를, 다른 한편에서는 변호사나 활동가를 지금 천천히 짓이겨 갈아버리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게 문제예요.

그러다가, 결국은 피로뿐이지요. 종국에는 완전히 지쳐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오랜 비폭력 전통의 현대판이라고,

그녀는 시니컬한 체념의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체제가 사악하고 폭력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얘기를 끝냈을 때 이미 밖은 어두웠고, 아파트 일대는 조용했다.

그녀는 나를 숙소까지 태워주겠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떠날 때, 뒷골목은 썰렁했다.

 

내게 로이는 갑자기 큰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뉴델리의 한 교외지역에서 가망없이 길을 잃어 원을 그리며 돌고 돌았다.

 그동안 로이는 작년 칸느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겪은 일화들을 내게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나는 그녀가 스스로를 반세계화 운동의 기수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내가 뭔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그리고 뭔가 마술적인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역주―로이는 인도 중부지방에 위치한 나르마다 댐 건설 공사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대법원이 2000년 10월 댐 건설 공사 재개를 판결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법정에 기소되었다.

로이는 3개월의 징역형을 언도받았으나 티하르(Tihar) 감옥에서 하루만 살고

2,000루피(약 40달러)의 벌금을 내고 다음날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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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앞에서
작가와 세계ㅘ'전문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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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을 부수는 사람|마들렌 번팅
역자 후기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옮긴이의 말: 연합과 진보가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든다
인도 지도
책 속의 인도 역사

서론: 민주주의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다
1. 인도 민주주의의 실체
2. 신자유주의 시대의 파시즘
3. 그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의회 공격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
4. 특종: 우겨라, 그러면 진실이 되리라
5. 고문과 자백의 상관관계
6. 베이비 부시, 꺼져
7. 동물농장Ⅱ: 조지 부시의 속내
8. 왕궁의 스캔들
9. 메뚜기 소리를 듣다: 인종 학살의 시대
10. 아자디
11. 11월은 9월이 아니다
12.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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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을 위한) 제국 가이드 

 

 

전쟁이 평화라는 아이러니
제국의 진실
인스턴트 제국 민주주의
역사의 위인들이 행진에 나설 때
샹카르 구하 니요기를 추모하며
인종주의의 새로운 우화
시민 불복종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록] 함께 우리의 미래를 건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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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1. 파라다이스 피클&보존식품
2. 파파치의 나방
3. 큰 사람 랄타인, 작은 사람 몸바티
4. 아브힐라시 탈키스
5. 신의 나라
6. 코친 공항의 캥거루
7. 지혜 연습장
8. 환영, 우리의 소피 몰
9. 필라이 부인, 에아펜 부인, 라자고팔란 부인
10. 배 안의 강
11. 작은 것들의 신
12. 코추 톰반
13.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14. 노동은 투쟁이다
15. 강을 건너다
16. 몇 시간 후
17. 코친 항구 터미널
18. 역사의 집
19. 암무 구하기
20. 마드라스 우편열차
21. 삶의 대가

해설_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작은 것들과 큰 것들의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