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0. 11:02ㆍ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그리고 검색하다가 만 그림들이 몇 개 있었는데 다시 올릴 것 같지가 않다.
에드워드 호퍼와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그림들과 김성룡의 <목단꽃> <소년>,
테오도르 제리코 <절단된 두상> <절단된 사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일몰> <달을 응시하는 두 남녀>.....
또 소설책 두 권도 빌려다 놓은 게 있었는데 역시 읽어보게 될 것 같지가 않다.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천개의 찬란한 태양> <연을 쫒는 아이>.....
2012.04.27 21:07
김성룡의 <목단꽃>과 <소년>은 검색을 해봤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검색을 해보겠습니다만 아마 자료가 없을 겁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습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습니다.
김성룡_6월-목단꽃_종이에 혼합재료_168×123.5cm_2002
김성룡_새벽_혼합재료_170×120cm_2009
김성룡_소년_종이에 유성펜_110×90cm_2003
김성룡_소녀_종이에 혼합재료_110×90cm_2009
김성룡_숲의 사람_종이에 혼합재료_180×100cm_2008
김성룡_저녁연주_종이에 혼합재료_90×110cm_2008
김성룡_소녀_종이에 혼합재료_110×90cm_2008
그림 자체도 만화 같지만 내용도 만화적인 스토리를 품고 있는 듯합니다.
영화라고 해도 비슷한 말이겠구요.
혹시 김성룡이라는 분은 만화가가 아닌가요?
오해 마십시요. 만화, 만화가라고 해서 비하하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만화 참 좋아합니다.
그래선지 마치 그림에 지문이 달려있을 것만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화가의 설명을 들어봐야 이해가 되겠단 거죠.
그림보다도 스토리 말입니다.
저는 희한하게도 이 그림에서 장샤오강과 증팡지를 믹서한 듯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테오도르 제리코 <절단된 두상>
테오도르 제리코는 절단된 두상들을 이불위에 늘어놓고 " 절단된 신체가 낭만주의적 공포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 근대성이라는 유동적인 개념) 주제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절대적인 비극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보여준다. 이 점은 인체를 수평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상당히 독특하고 아주 독창적인 형식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남녀의 두상이 서로 병치된 ( 보통 시체 영안실의 남녀라기 보다는 성애적인 모습으로 해석되며..여자를 감싸듯 둘러싼 예쁜 숄때문에 시체실의 남녀라고 하기에는 더욱 아이러니한).... 로잘린드 쿠라우스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용어를 빌어 "수직적 차원은 형태의 축이 되면서 또한 미의 축을 이룬다." 고 하였다. 이에 반해 수평의 평면은 승화되지 않은 것으로서 '저급 물질주의(공포와 구토를 동시에 느끼는 대상에게 매력을 발견하는 바타이유의 개념)'와 연관된다." 린다노클린 《절단된 신체와 모더니티》PP 21-32
왜 일케 어렵게 썼대요?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성애적인 모습으로 보았다는 점은 기발하군요.
테오도르 제리코 <절단된 사지>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던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이 그림에서 인간성에 대한 우울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그림은 잘려진 인간의 사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사지는 생명과 죽음 어느 쪽도 찬양하지 않는 방식으로 묘사되었다. 몸의 일부분들이 연민의 감정이 배제된 살덩어리로 재현되었다. 잔인하고 노골적으로 절단된 인간의 사지는 카니발리즘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리코는 이러한 끔찍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람자를 위해 어떤 배려도 하지 않았다. 회화적인 공간이 거의 없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잘려진 사지는 보는 이들에게 이 불편한 광경을 인식하게끔 한다. 빛의 효과를 강조하기에 좋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 드라마틱한 빛이 인간의 사지를 비추고 있다. 제리코는 살점이 적나라하게 보이도록 관람자를 향해 던져놓은 팔 하나를 단축법으로 그림으로써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였다. 이 그림은 인간의 사지를 묘사한 수많은 제리코의 그림 중 하나이며, 종종 그의 문제작 <메두사의 뗏목>과 비교된다. 그러나 다른 그림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제리코는 주제의 충격적인 효과를 완화시키기 위해 사지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조각의 이상화된 형태인 살이 있고 근육질인 육체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화가는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재미를 주는 요소들을 배제하여 민중들의 희망이 사라졌던 프랑스 혁명 이후의 비관주의를 반영하는 더욱 극단적인 그림을 만들어냈다.
해설이 잘 되었네요.
그런데 제리코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인간성 상실에 대한 고발 아닐까요?
유명한 <메두사의 뗏목>이란 작품 내용이 인육(人肉)을 먹는 거잖아요.
같은 연장선상에서 보면 되겠습니다.
“야, 이 시키들아! 느덜이 인육을 먹어? 느네가 인간이냐!
좋다, 그렇다면 내가 아주 먹기 좋게 잘라주지.
자, 처먹어봐라 이 말종시키들아!”
'미술 > 내 맘대로 그림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드워드 호퍼 <아침 해> 外 (0) | 2012.11.27 |
---|---|
가을비 좍좍 내리는 소리가 참 구슬프기도 하다. (고흐의 고독감에 대해서) (0) | 2012.09.04 |
고야, 기억에 남는 그림 두 점. (0) | 2012.07.22 |
성모, 아기예수 그리고 성 안나 / 레오나르도 다 빈치 (0) | 2012.07.11 |
뭉크, 절규(Der Schrei) (0) | 2012.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