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콘화(icon畵)'라는 걸 모스크바 크렘린 가서 처음 보았습니다.
크렘린 궁에 들어가면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해서 몇개 공공 건물이 있고,
뒷켠에 성당이 다섯갠가 여섯갠가가 동그랗게 몰려있습니다.
다 둘러보고 나오다보면 내가 들어갔다 나온 교회들의 이름이 뭐였는지도 헷깔립니다.
가이드가 교회마다 안에 들어가서 설명을 물론 해주긴하는데,
어두컴컴한데다가 좁은 공간에 관광객이 잔뜩 몰려 있어서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러시아 정교에서는 이콘화가 유명하고 중요하고....."
저는 통 못 알아듣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겁니다.
이거 분위기상 틀림없이 천주교 계통에서 써먹는 그림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천주교인? 그럴리는 없고.
아무튼 간에 저만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일단은 대충 이런걸 '이콘화'라고 하는구나 정도로만 알고 가자,며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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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진숙의 《러시아 미술사》 <러시아 이콘화>에 대한 설명글입니다.
이콘은 영어로 아이콘(icon)을 말한다.
중세 미술에서 아이콘은 예수와 성모,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을 뜻한다.
컴퓨터 상의 아이콘덕분에 컴맹이라도 컴퓨터를 수월하게 사용하게 되었듯이,
이콘화 덕분에 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중세 민중들도 교리와 가르침을 이해하고
신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즉 아이콘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육화된 감성적 상징'이었다.
이콘화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 수 없다.
강력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과 늦은 근대화로 러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이콘화의 전통이 유지되었다.
1917년 혁명 이전에는 시골 농부의 오두막이나 차르의 궁전이나 반드시 이콘화가 있었다.
블라드미르의 성모.12C초, 목판에 템페라 104*69 트레치코프 미술관
이 이콘화는 12세기경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에서 키에프로 전해졌다.
러시아인이 그린 것은 아니지만 중세 러시아인의 삶과 문화 예술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통일 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던 당시 러시아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타타르 몽골의 침입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중세 러시아인은 「블라드미르의 성모」가 전 러시아를 수호하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 이콘화는 늘 승리자의 전리품이 되어 노브고로트를 거쳐 블라드미르로 전해졌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안착한 곳이 모스크바다.
이 그림은 15세기까지 네 번의 덧칠 및 보수작업을 했으나 원작의 이미지를 훼손한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 보수작업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무판은 금박이 벗겨져 밑 색이 드러나 있다.
이콘화에서 바탕을 먼저 그리는 것은 신의 천지창조의 순서에 따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세인들이 이콘화 제작을 신의 세계를 옮기는 일이라고 여겼어도
그것은 결국 인간의 손으로 하는 일이라 인간의 감정이 실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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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콘화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하기로 합니다.
이콘화란 '종교 ·문화 등 공동체의 상징적 이미지를 정형화시킨 그림'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따라서 굳이 기독교에만 한정할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그림에만 있는 것도 아니겠구요.
이콘'像'도 있을 수 있겠고, 이콘'物'도 있을 수 있겠고,
영성체할 때 혓바닥에 얹혀주는 밀떡 같은 거랑 포도주는 이콘'食', 이콘'酎'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다만 지금은 미술의 영역에서 말하는 것이니까,
美的,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아야겠는데,
제가 보기에 이콘화는 그 점에서는 별루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불교쪽이 훨씬 우수한 작품이 많지요.
고려시대의 천수관음상을 동시대적으로 서양 이콘화와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느껴질 겁니다.
다만 이콘화도 기법상의 특이한 장점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콘화를 한 벽면에 액자처럼 종합해 놓은 '이코노스타스'라든가,
스테인드그라스 형식 같은 경우는 우수한 작품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이삭 성당>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것은 유화나 프레스코화 같은 그림이 아니라 모자이크로 만든 겁니다.
그것도 그냥 염색한 모자이크가 아니라, 색상에 적합한 보석과 광물을 구해다가 만든 겁니다.
이러한 '이코노스타스' 체계의 정립은 위대한 두 화승(畵僧) 페오판 그렉과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협업 속에 이루어졌다.
이 두 사람이 작업한 것은 두 거장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함께 작업하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이제 결론 짓자면,
'이콘화는 대략 어떠한 것이다' 라는 것만 알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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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믈린3-블라고벤센스키 사원
사진가: 송재원 * http://www.SoaDr.co.kr
등록일: 2004-10-27 23:10
우스펜스키 사원(성모승천 사원)
우스펜스키 사원(성모승천 사원) - 1479년에 건축된 크렘린 안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이다. 혁명 전에는
국가의 전통적인 양식, 황제의 결혼식 등이 행해졌던 곳이다. 사원내에는 15∼17c의 벽화, 11∼17c의
이콘, 19세기의 은칠한 부조가 있는 성단과 예배당의 벽 등이 있다. 특히 12세기의 성 게오르기상이나
14세기의 성삼위일체 이콘화, 이반 황제의 옥좌, 주교석조의 목조옥좌, 은 샹들리에 등이 있다.
이콘화
종교 ·신화 및 그 밖의 관념체계상 어떤 특정한 의의를 지니고 제작된 미술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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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미술과 관계하여 회화 ·조각 ·공예품 등에 나타난 형상으로 특정한 뜻을 지니고 있으며
그 구도가 일정한 양식에 의해 유형화 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불교에도 각각 특유한 유형의 도상이 있는데
특히 8세기경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하는 라틴계 지방의 동로마 교회미술의 강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콘화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미술이 아니라 오래된 전통으로 신성시되어 받아들여 졌고
이집트 미술처럼 이콘화의 전통은 엄격하게 지켜졌다.
하지만 이들 이콘화의 표현기법은 사실적인 묘사와 그리스 미술과 표현력이 뛰어난 헬레니즘미술의 전통이 스며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산신도나 무신도의 산신 ·무신 등에도 특유한 도상이 있다.
그리스도교 이콘화
그리스도교 사회에서의 도상표현은 긍정되어 온 것은 아니다.
예배의 대상을 도상으로 표현하고, 이것을 숭배한다는 것은 구약시대 이래 우상숭배라 해서 금해 왔는데,
이러한 전통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로부터 때로는 표면화된 형태로서 존속되어 왔다.
비잔틴 사회에서 있었던 8∼9세기의 성상파괴운동은 이러한 전통의 과격한 표현이며,
그 후 동방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도 환조의 종교상은 그 3차원적 실체성 때문에 부정되어 왔다.
유럽에서는 聖 베르나르두스(1091∼1153) 및 그 교리를 계승한 시토 수도회에서는 도상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였고,
근대에도 16세기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각파가 도상미술에 대해 부정적 또는 소극적이었으며,
현대의 추상파 종교미술 작가들도 이러한 경향을 계승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이래 도상미술은 끊임없이 발전하여 왔다.
각 시대에 따라 도상표현의 목적도 달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죽은 영혼의 구원을 祈求하는 것을 도상에 의탁하였다 할 수 있고,
4세기의 ‘교회의 승리’ 이후에는 神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스러운 우주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나타냄과 동시에
도상으로써 민중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또한 5세기 전반에 성모가 ‘신의 어머니’로서 공식으로 인정된 이래, 성모 관계의 도상도 발전하여 갔다.
6∼7세기경까지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성모의 영광을 찬미하는 도상은 많았으나, 수난에 관한 것은 거의 없었다.
10세기에 이르러서야 동·서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수난에 관한 도상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성모의 탄식(피에타)’ 등의 도상화가 점차 늘어나고,
이러한 현상은 고딕 말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여 다시 바로크 미술로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그리스도교의 도상이 정점에 이른 것은 로마네스크 및 고딕 시대(특히 12∼13세기)로,
신이 지배하는 초자연 및 자연의 모든 질서가 도상화되었다.
그것은 신의 보좌인 天界로부터 인간 및 동물이 사는 地界에 이르는 공간의 질서뿐만 아니라
천지창조가 비롯되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
이에 이어지는 성인시대, 나아가 미래의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장대한 역사의 질서가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들 도상표현은 구약성서·신약성서 및 이를 보족하는 外典 및 聖人傳을 전거(典據)로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리스·로마·고대 오리엔트 종교, 더 거슬러올라가 자연숭배와 연관을 가지는 것도 적지 않았다.
무속 이콘화
한국 무속화에 나타난 神들의 도상은 모두가 사람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육신을 가진 생존자들이다.
그것은 한국 巫敎의 중심이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의 인간의 행복과 장수에 대한 기원과 믿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높은 자리인 하느님의 그림에서부터 일월천신도·옥황상제·용신, 마을의 수호신인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
방위의 신인 五方神將, 부부 사이를 맺어주는 상사위, 집집마다 천연두를 옮기는 호구아씨 등이
모두 사람의 모습으로 도상화되어 있다.
이들 도상은 푸른색·붉은색·검정색·흰색·노랑색의 다섯 색이 조화와 변화를 이루어 배합되었는데,
이것은 회화적인 의도 이외에도 철학적인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밖에 해·구름·물·바위·사슴·거북·두루미·소나무·대나무·불로초 등 10개를 특별히 골라서 그려
오래 살기를 바랐던 十長生圖도 관련 체계상 유형화된 도상이라 할 수 있다.
또 액을 막고 복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새·호랑이·용·사자,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로 된 글씨들을 그려서
집집마다 붙였던 부적, 절간에서 만들어낸 부적도 무교·도교·불교에서 다 같이 사용한 유형화된 도상이다.
( 출처. 조각공원.kr/read.cgi?board=sculpture-bbs&y_number=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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