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 (펌)

2011. 3. 15. 14:42미술/한국화 옛그림

 

 

 퍼온 글 1. (출처 cafe.daum.net/sumer5)

 

 

 

6[1].JPG

from www.club.sohu.com

 

 

 

지금 세계적으로 그 예술적인 가치로 인하여 정평(定評)이 나있는 고려불화가 160여점 정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 고려불화중에서 백미(白眉)로 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입니다. 수월관음도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들 입니다

 

보통 수월관음도에는 그림 왼쪽에는 동해 용왕 일행을 그렸고, 오른쪽에는 불법(佛法)을 구하는 선재

동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그립니다. 관음보살 옆에는 수정같이 날카로운 산에 청죽(靑竹)을

두 개 그리게되고 관음보살의 머리와 몸에는 후광이 둘러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청죽 반대쪽 바위에는

술병같은 병이 있고, 이 병에는 버드나무가 꽂혀 있는 것이 패턴화 되어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회화적 특징이 정형화(定形化)되어 매너리즘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을 낳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고정된 형식을 답습하는 경향에서 그만큼 불화(佛畵)의 전통적 의궤(儀軌)가 엄격했으며
고려시대의 귀족불교가 매우 보수적이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고려 수월관음도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39점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정우택, 고려시대의 회화 참고)
한국에는
3점의 수월관음도를 포함해서 모두 10점의 고려불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외에 나머지 고려 불화들은 
일본에 모두 있다고 하는군요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160여종의 고려불화중에서 일본은 130여점으로 가지고 있고,  한국 10여점,

미국 유럽 20여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3점의 수월관음도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3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보물 제926호 


호암 미술관(현 리움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수월관음도입니다
가로 53㎝, 세로 86㎝ (문화재청 자료,
리움미술관측 자료에서는 세로가 1미터가 넘는다.)

 

 

 

926호.jpg 

from 문화재정보센터

 

 

다음은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재정보센터에 나와 있는 이 수월관음도에 대한 설명입니.


관음보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 앞에 나타나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살이다.

크기의 이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화려한 정토(淨土)의 모습잘 나타나 있다.
중앙에 표현한 관음보살은 바위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걸터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은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가는 눈과 작은 입 등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몸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팔찌·목걸이 등을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다.

관음의 발 아래에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2,보물 제1286호


우학문화재단이 1994년 소더비 경매를 통해 사서 국내로 가지고 온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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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문화재정보센터

 

 

역시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재정보센터에 나와 있는 이 수월관음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베일의 바탕과 주름선은

백색으로 그린 다음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로 겹쳐 그렸고 안쪽에는 고려문양의 특징인 연꽃덩쿨무늬를

원안에 넣었다.

입고 있는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이 그림은 1994년에서 1996년까지 보수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상태로 색채가 매우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었고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 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3,보물 제1426호 


태평양 박물관이 일본에서 사서 한국으로 가지고 온 다음에
2005년에 보물 지정을 받은 그림입니다.

 

 

 

수월관음도2.jpg

 from www.club.sohu.com


 

이어서 문화재청 설명을 들어보죠.

 

수월관음도는 비록 조성연대와 작가가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변·퇴색과 수리 및 덧그린 흔적이 엿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소재의 1323년 작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화사한 색채와 세련되고 우아한 선을 구사한 인물

묘사 등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엿보여 예술성 높은 동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면 구성이 충실하며 표현기법 역시 고려불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2∼3점에 불과하다는 자료의 희소성, 나아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수월관음도와

비교하여도 질적인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 일본 대덕사의 수월관음도

 

일본 교토에는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다도(茶道)선생님 스님이 주석했던 대덕사(大德寺)라는 유명한

절이 있는데, 이 대덕사에 범상치않은 수월관음도가 있습니다. (크기;227.9×125.8㎝, 비단채색)

 

 

 

대덕사_수월관음도.jpg

from www.club.sohu.com

 


이 수월관음도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림에서 의상대사의 낙산사 전설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음보살앞에 포진해있는 공양(供養) 인물군상에 대해
'삼국유사'의 낙산 성굴설화에 의거해
용왕과 그 권속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일본 경신사의 초대형 수월관음도


일본 규슈에 있는 경신사(鏡神社)의 초대형 수월관음도입니다.
(크기;419.5 x 254.2cm, 비단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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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www.club.sohu.com

 

 

정면이 아닌 약간 왼편을 향하여 우아하게 앉은 자태와 연꽃 위에 올린 오른발이 독특합니다.
선재 동자의 모습도 이쁘고 귀엽습니다.
이 그림에 있었던 화기(畵記)에는 1310년 김우문이라는

사람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써있었다고 합니다.

 

 

 

 

포맷변환_1[2].jpg 부분확대도

 

 

 

포맷변환_b[1].jpg 부분확대도

 from www.club.sohu.com

 

 

 

 


 

* 일본 개인 소장자의 수월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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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www.club.sohu.com

 

 

 

 

 

 

 

 

 

퍼온글 2 (출처http://blog.daum.net/insam60/15960799 )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수월관음도 / 고려(1310년), 비단에 채색.  화폭 430×254cm, 전체 530×300cm

                          소장처 : 사가현(佐賀縣) 가가미진자(鏡神社)   현재) 사가현(佐賀縣) 현립박물관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는 현존하는 고려불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명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현재 세로 4미터 30센티, 가로 2미터 54센티의 거폭이지만 원형은 좀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놀라운 사실은 비단 바탕 한 장에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비단 한 장에 그려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만,

이와 같은 거폭의 비단이 존재하는 것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및 일본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사례이다.

 

기록에 의하면 충선왕의 왕비였던 숙비(淑妃)가 8명의 궁정화가를 동원하여 1310년 5월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작품은 당시 왕실 최고 권력자의 발원으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화인들에 의해 공동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월관음은 고려불화에서 유행한 주제도로 40점에 달하는 작례가 현존하고 있다.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실려있는 설화에 근거하여, 진실한 구도의 뜻을 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28번째 보타락가산 방문시 관음보살과 대면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배경의 죽림과 암굴, 청정한 계곡, 산호가 피어오르는 물가 등은 모두 성스러운 장소인 보타락가산을 나타낸다.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앉아있는 관음보살은 다른 수월관음도와는 반대로 화면의 왼쪽에 배치된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화면은 손상이 많지만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의 선재동자상에 이르는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반가하여 앉아 있는 관음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관음은 머리 부분에 보관을 쓰고, 그 중앙에 아미타여래 화불을 모셨는데, 이 특징은 관음보살의 징표이다.

상반신은 금색의 피부를 노출하고 있고 빨강과 초록, 파랑 색색의 구슬 및 금으로 된 장식을 가슴과 팔에 부착하고 있다.

옷을 보자면, 다양한 문양을 시문한 치마를 두르고, 이것을 복대와 끈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투명하게 보이는 얇은 베일을 머리에서부터 쓰고 있는데, 이것이 부드럽게 전신을 덮고 있다.

기암의 한쪽 끝에는 한 줄기 버드나무가지가 꽂혀 있는 정병이 놓여 있다.

선재동자는 실재 아동의 크기에 맞게 구성되었으며 관음을 바라보는 강건한 눈은 인상적이다.

 

 

 

 

 

 

 

 

‘수월관음도’는 단 한 폭의 대형 비단이 화폭이다.

바위 위에 반가좌로 앉은 수월관음의 설법 자태를 화려한 색채 기법으로 그렸다.

가까이에서 보면 우선 현실과 전혀 다른 종교화 특유의 순수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만나게 된다.

금색 살갗에 귀갑문, 연꽃무늬 입힌 붉은 치마와 ‘시스루 패션’ 같은 투명 베일을 걸친 보살의 옷차림과

단아하면서도 영적인 자세가 눈을 쓸고 간다.

화면 오른쪽 하단의 작은 선재동자와 달리 거대 보살이 화면 상단과 하단을 압도적인 흐름으로 지배하는

시선의 구도가 숭고한 환영을 낳는다.

 

옛적 고려 화공들은 여백과 혼색을 싫어했다.

빨강, 흰색 등의 단순한 원색을 바탕색으로 칠하되 금물로 매혹적인 선묘를 부려 꽉 찬 화면을 만들었다.

날갯짓처럼 곡선 그리는 흰빛 실선으로 관음이 두른 베일이 투명하게 너울거린다는 느낌을,

입술을 금물로 덮었지만 위아래 입술이 맞붙는 곳과 언저리를 빨간색 톤으로 마무리 지어 색의 강약을 주었다.

투명한 베일에 흰 빛깔을 미묘하게 농도 조절하면서 구름과 봉황 무늬를 넣어 베일의 우아한 실존감을 드러낸 표현은

환상미의 극치다.

화면 왼쪽 하단의 대나무 바위 묘사는 수묵화의 먹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표면에 미세한 초록색을 덧입혀

먹색이 강해 보이지 않도록 조절했다.

 

이 그림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지난 8일 통도사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시로노 세지 국립도쿄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은

“정밀 분석 결과 보살 이마 위 백호는 1㎜도 안 되는 세밀한 나선 모양의 선을 계속 되풀이해 그린 것이며,

아래 바위도 초록색 안료를 입혀 그늘을 드리운 효과를 연출했다”고 밝혔다.

 

명문을 보면, 이 불화는 1310년 충렬왕과 아들 충선왕을 대대로 모신 후궁이자 그들의 사후 고려 권력자가 된

숙비의 발원으로 태어났다.

이 그림이 당시 왜구의 주요 본거지였던 규슈 서해안의 가가미 신사에 1391년 봉안됐다는 다른 후대 기록 또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려 서해안에도 수시로 출몰했던 왜구들이 가져갔을 공산이 크다는 게 통설이지만,

명확한 진상은 수월관음만이 아실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가 인도 남쪽 바닷가에 연한 보타락가산에서 법을 설하는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 관음을 수월관음이라 부른다.

수월관음(水月觀音)이라 한 이유는 달이 높이 떠올라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이 물가의 벼랑위에 앉아서

선재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이다. 마치 해변에 위치한 보타락가산의 물위에 달처럼 아름다운 관음이 현신하듯 말이다.

 

 

 

 

 

 

 

 

수월관음도의 진실 / 노형석기자

 

1392년 무인 이성계는 공양왕을 쫒아내고 조선왕조의 태조로 등극한다.

그 여덟달 전인 1391년 11월, 고려를 괴롭히던 왜구의 유력한 본거지였던 일본 규슈섬 서해안 사가현의 가가미

신사에 고려 불화가 한 점 들어왔다.

 

료켄이란 승려가 바친 불화는 고려 왕실이 정성껏 발원한 <수월관음도>였다.

보관 쓰고 온몸에 베일 두른 관음보살이 달빛 아래 암벽에서 진리를 묻는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정경, 아름다운 불화였다.

 

그림 명문에는 1310년 고려 26대 충선왕(재위 1308~13)의 후궁이던 숙비 김씨가 화원 8명을 시켜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사>를 보면 숙비는 원래 충선왕의 아버지인 25대 충렬왕의 후궁이었다.

원나라 출신 왕비를 잃은 부왕을 위해 충선왕이 과부였던 숙비를 애첩으로 들여준 것이다.

1308년 8월 충렬왕이 죽자 숙비는 왕위를 이은 연하의 충선왕과 동침하며 다시 후궁이 되어 권세를 부린다.

게다가 충선왕은 등극 석달 만에 원나라로 떠나 다시는 고려 땅을 밟지 않고 편지로 정사를 보았다.

불화는 그 뒤 1310년 5월 그려졌다. 일본 기록에 불화가 나타난 건 다시 그로부터 81년 뒤다.

왜 불화를 발원했을까. 어떤 곡절로 일본으로 갔을까.

 

학계에서는 발원 배경으로 충선왕의 아들 낳기 기원설, 다른 후궁 순비와의 권력투쟁설, 충렬왕의 원 왕비 추모설

등이 엇갈린다.

<고려사>를 보면, 1310~1391년은 왜구들이 교동도에 진을 치고 개경 부근까지 노략질을 일삼아

천도까지 논의하던 시기였다. 흥천사의 충선왕 영정이 탈취당하고, 태조 왕건의 아버지 초상까지 털어갔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그래서 이 기간 왜구가 개경 부근 사찰에서 <수월관음도>를 가져갔다는 추정이 통설이다.

 

지난달 30일부터 경남 양산의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중인 가가미 신사 소장 <수월관음도>는 바로 이

복잡다단한 역사적 곡절이 깃든 그림이다.

금물로 채색된 이 숭고한 걸작 앞에서 많은 이들이 옛 그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시 준비 과정을 지켜본 일부 미술사학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1년간 공들인 전시가 막판에 한 국내 방송사의 취재 탓에 좌초될 뻔한 위기를 겪었다는 후문이다.

불화를 위탁 보관하면서 한국 전시 대여를 준비해온 일본 사가현립박물관에 지난달 국내 취재진이 찾아와서는

대뜸 불화를 가져간 왜구의 후손을 취재하려 하니 알선해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대경실색한 박물관 쪽은 곧장 통도사에 강한 불쾌감을 전했고, 절 쪽은 전시가 무산될까 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신용철 학예실장은 “1년에 38일만 공개해온 불화를 선의로 빌려준 일본 쪽 인사들 앞에서 정말 난처했다”며

“추정 외엔 약탈 물증이 없는데도, 지레 약탈품으로 단정하는 듯한 태도는 역효과를 빚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빼앗긴 문화재는 돌려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 곳곳에 숨은 불화, 회화, 사경, 종 같은 근대기 이전 유출 문화재들은 성격이 다르다.

약탈 물증이 명확하지 않고, 유출 경위조차 모르는 경우가 숱한데, 피해의식만 내세운다면

유물들은 더욱 깊숙이 숨어버릴 것이다.

현지에 숨은 우리 유물들을 발굴·조사하는 양국 전문가들을 나라에서 제대로 지원하고 키우는 배려가 먼저다.

우리가 유출 문화재에 애정이 있음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실마리가 될 것이다.

 

오는 9월 국립중앙박물관의 100주년 특별전에 일본에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온다는 뉴스가 인터넷에 떴다.

당장 나붙은 ‘약탈’, ‘송환 불가’ 등의 댓글들에 한숨이 나온다.

 

(한겨레신문 2009년 5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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