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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김홍도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 김홍도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오주석씨는 1994년 4월 호암미술관에서 단원 김홍도 특별전 준비를 위촉받았다.

그는 단원에 관한 기초자료를 정리하면서 이 화가가 지은 시조 두편을 발견하고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홍도의 시라? 그런 게 있었던가?

먼데 닭 울었느냐 품에 든 임 가려하네
이제 보내고도 반밤이나 남았으니
차라리 보내지 말고 남은 정을 펴리라.

봄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두편 중에 위엣 것은 좀 야한 느낌이 든다.
어떤 정황에서 지어진 시인지 모르나, 기구한 이별과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간략한 시어 속에 애틋하게 숨어있다. 후자는 문학적인 매력이 만만찮아 눈에 확 띤다.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게 무슨 뜻인가?



그 열쇠는 마지막 행의 안개라는 말에 담겨 있다.

    안개가 하늘과 물의 경계를 갈라 마치 위 아래가 뒤바뀐 듯한 기이한 풍경을 펼쳐보이는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에는 그의 시조를 떠올리는 귀절이 화제로 씌어 있다.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

           늙은 시절의 꽃은 안개속에서 보는 것 같네.

                     

           이 아름다운 귀절은 두보의 소한식주중작(小寒食舟中作:한식 전날 배위에서 짓다)의 일부이다.


           우리말로 첫 연만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좋은 날 억지로 먹고마셨더니 오히려 춥네
           상에서 비켜나와 쓸쓸히 삿갓을 쓰네
           봄강의 배는 하늘 위에 앉은 듯 하고
           늙은 시절의 꽃은 안개속 같네

           두보가 59세로 죽던 해(770년)에 쓴 작품이라 한다. 쓸쓸한 기색이 감돈다.

    김홍도는 이 시에 애착을 가졌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가 늙었을 무렵이리라.
    꽃을 바라봐도 즐겁기 보다는 왠지 깊고 묘연한 슬픔을 느끼던 때였으리라.

    살아갈 수록 깊은 안개 속같은 삶의 정체에 대해 무상해하고 있을 무렵이었으리라.
    우리는 두보에게 감사해야 한다.

    두보가 던져준 이 소슬한 시상은 단원의 붓끝에 담대한 화의(畵意)로 피어올라

    우리에게 주상관매도라는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지 않았던가.


     http://cafe.daum.net/lyyhi/NJdY/203小巖 李永熙








    조선화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음악가는 檀園 金弘道(1745~1806?)였다.

    이것은 다른 화가에 비하여 음악을 소재로 단원의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을 뿐만아니라,

    단원의 퉁소, 생황, 거문고 악기연주 솜씨가 탁월하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소재로 단원 그림에는 우리가 너무나 알고 있는 삼현육각 비롯하여

    자신의 집에서 가졌던 조촐한 모임에서 거문고 타는 단원 자신의 모습을 그린 <단원도>,

    당비파를 뜯는 모습이 그려진 <포의풍류도>, 생황부는모습이 그려진 <월하취생도>, 

    퉁소부는 소년을 그린 <선동취적도> 등이 대표적이다.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악기를 소재로 그림이 아니면서도 음악과 문학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명작이라고

    오주석 선생은 평가하였다.

    그림을 처음 보면 사람이면 누구나 느긋하고 한가로운 기운을 느낄 것이다.

    마치 여유롭고 유장한 시조가락이 허공 중에 여운을 날리며 떠도는 듯하다. 그것은 넓디넓은 여백 때문이리라.

    화폭은 어른의 키만큼이나 커다란데 거기에 그려진 경물은 화면의 1/5 되지 않는다.

    뿌옇게 떠오르는 끝없는 공간, 한중간에 가파른 절벽 위로 그루 꽃나무가 안개속에 얼비치고 있다.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는 이편 산자락의 끄트머리가 꼬리를 드리웠는데

    뒤로 잠시 멈춘 조각배 안에는 조촐한 주안상을 앞에 하고 비스듬히 몸을 젖혀 꽃을 느긋이 치켜다보는 노인과

    다소곳이 옹송그린 뱃사공이 보인다.

    여백이 하도 넓다보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가늠을 없다.


    그림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단원 자신이 지은 평시조 수를 들어보자.

    평시조는 직접 소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잎새같은 조각배는 둥실둥실 흔들리며 기운없는 노인에게 가벼운 어지럼증을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늙은 눈에 보이는 꽃나무는 어슬프레하니 안개 속에 잠겨 있는 둣하다."

    그림은 바로 시조 그대로이고, 시조는 그림을 빼닮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읊조리는 단원은 화폭 중간 오른쪽에 화제畵題를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看"

    "늙은 나이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을 보는 듯하네"라고 썼다.

    이렇게 <주상관매도>에서는 시조가 절묘하게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주상관매도>에서는 그려진 경물보다 에워싼 여백이 전면에 부각된다.

    보일 듯한 느낌은 마치 지금은 들리지 않는 노년의 단원 김홍도,

    그분이 소리하는 가녀린 시조창인 느껴진다.

    허공 중에 아스라히 떠오른 언덕, 그것은 신기루와도 같다.

    그림 한복판의 언덕은 짙은 먹선으로 초점이 잡혀 있지만

    오른쪽과 왼쪽으로 뻗어나가는 필선은 점점 붓질이 약해지고 말라가면서 뿌연 여백 속으로 사라진다 

    꽃나무도 마찬가지다.

    가운데 가지 하나가 쨍하고 짙게 보이지만 좌우로 가면서 점점 흐릿해져 마침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나무 아래 언덕의 주름도 꽃나무와 같은 붓질이다.

    경물과 여백이 서로에게 안기고 스며드는 작품의 시적인 공간 감각은 김홍도 노년기 산수화에 엿보이는 특징이.

    그런데 우리가 보는 언덕의 모습은 실제 풍경일까?

    아니다. 언덕과 꽃나무는 우리가 바라본 것도, 맞은편에 앉은 뱃사공이 바라본 것도 아니다 

    바로 그림 속의 주인공인 주황빛 도포를 걸친 노인의 늙은 눈에 얼비친 풍경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그림 속의 노인이 바라보는 풍경이 그대로 화폭 위로 떠오른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우리 옛그림의 맛이 아닐 없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언덕 위를 쳐다보고 있다그러니 아래쪽은 저절로 뿌예질 수밖에 없다.

    작가 김홍도는 완전히 노인과 한마음이다.

    오주석 선생은 단원의 <주상관매도> 위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위대한 작품은 훌륭한 박물관에서 감상하기에 적합한 것이라면,

    사랑스러운 작품은 나만의 서재에 걸어두고 가까이하며 바라보고 싶은 그림이라는 것이다.

    만약 하늘이 꿈속에서나마 소원하는 옛그림 점을 가질 있는 복을 준다고 하면

    그는 주저없이 <주상관매도> 고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그림에서 단원 김홍도의 , 그림, 글씨, 그리고 음악가락까지도 느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출처] 주상관매도|작성자 말대가리



      

 

                                                       

                                                         김홍도. 주상관매도. 지본담채, 164 x 76cm, 개인 소장.

 

 

 

저는 의견이 많이 다릅니다.

이 그림은 '음화(淫畵)'입니다. 벌거벗고 누운 여자의 음부를 그린 것입니다.

늙은이가 그걸 상상하면서 감상하는 중입니다.

 

'老年花似霧中看(노년화사무중간 : 늙은 나이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네)'

저는 이 역시도 다르게 해석합니다.

'예쁜 여자를 봐도 늙은이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네',

바로 늙은이 김홍도의 심정입니다.


자세히 보면 '老年花似霧' 와 '中看'을 따로 썼습니다.

'霧中看(무중간)'으로 떼어 쓴 것이 아니고,

'中看(중간)'만을 떼어놓았단 말입니다?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문맥상으로도 그렇고, 길지도 않은 글귀인데 말입니다.

왜 이어서 쓰지를 않고 굳이 행간을 바꿔서 썼을까요? 

또 '中看'이란 글씨는 터럭처럼 가늘게 썼습니다. 

도대체 왤까요?


"中"은 말 그대로 가운데 중(中)자입니다.

신체의 중심, 즉, 여자의 몸 한가운데 음부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간(看)'은 '볼 간'이지만 '사이 간(間)'과도 음이 같지요.

장담하건대, 이 그림은 春畵로 그린 것이며 여성 음부를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보십시다.

화제(畵題)로 쓴 글씨의 위치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런 식의 작품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보기에 이것은 문신(紋身)입니다.

김홍도는 저런 문신을 새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예요.

물론 다른 글귀로 새겼겠죠. “단원이 처음으로 다녀가노라!”


여러분, 주상관매도의 감상포인트는

'음모(淫毛)' 와 '문신(紋身)'입니다.




*

*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보되 보이는 것이 없고, 듣되 들리는 것이 없다.’

보고 들을 때는 옛사람의 눈과 귀를 빌리고, 느낄 때는 옛사람의 머리와 마음을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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