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7. 18:01ㆍ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이상한 놈' 마부치를 위한 변명
"젊었을 때 사회주의자 아닌 놈이 이상하듯,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그것도 이상한 놈이다.
나오키 마부치가 즐겨 써온 말이다.
1965년 대학신문 학생기자로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취재하겠다고 서울에 와서는
막걸리와 건국대학 여학생에 빠져 헤맸던 젊은이,
그 뒤 전쟁기자의 꿈을 안고 무작정 인도차이나로 떠났던 히피 마부치는
올해 예순네 살이지만 아직도 크메르루즈 혁명을 가슴에 고이 간직한 '이상한 놈'이다.
그이의 지독한 반 베트남공산당 정서는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형제국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었던
1978년 베트남의 對 캄보디아 공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이의 애끓는 캄보디아 사랑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또 일본 언론에서도 외신에서도 이단아로 찍혀 푸대접 받는 빌미가 되었다.
미국에 맞서 '반제 민족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트남 공산당에 딴죽을 건다는 건,
적어도 진보진영 내에서는 괴로운 인생을 각오할 만한 일인데,
마부치가 겁도 없이 대들었으니..!
억울한 마부치? 그렇다 그이는 억울한 구석이 많다.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은 이념 논쟁 한번 벌여보지 못한채, 세계사에서 실종되고 말았으니...
나오키 마부치
일본 도쿄태생. 1972년 베트남 전쟁 라오스 전장에서 사진기자로 출발.
1975년 캄보디아로 옮겨 베트남-크메르루즈 전쟁 동행취재.
폴 포트 최초 최후 순간 현장 취재.
스탈린주의에 기울었던 베트남공산당과 마오를 �았던 크메르루즈는
각각 1974년과 1975년 사회주의혁명에 성공한 뒤부터 국경문제로 충돌하기 시작했고,
결국 1978년 12월 25일 베트남 공산당은 크메루루즈의 월경 도발을 빌미 삼아 對캄보디아 전면전을 감행했다.
베트남 공산당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베트남 중심의 연방제 통일국가 건설을 위한
베트남 공산당 아래 캄보디아 공산당과 라오스 공산당을 둔다'고 명시한 코민테른 강령과
19세기 이전부터 꿈꾸어왔던 인도차이나 반도를 아우르는 '대베트남'건설이라는 역사적 욕망을 채우며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사는 말문을 닫았지만,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은 자신들이 '악마'로 규정했던 크메르루즈를 지원해
또 다른 '악마'인 베트남을 견제함으로써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대결구도를 끝장냈다.
하여, 실질적인 냉전의 종말은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앞서 이미 인도차이나반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정문태.
폴 포트와 킬링필드
크메르루즈가 집권했던 민주캄푸치아 정부 총리로 1975년부터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집권기간 동안 농촌소개와 숙청 등으로 70~80만명이 죽었다.
1969~1973년 베트남 전쟁 중이던 미군이 '베트콩 박멸'을 위해
전쟁선포 없이 4년동안 중립국 캄보디아에 각종 폭탄 약 54톤을 융단폭격한 불법 공습으로
30~80만명을 학살 (필란드 정부의 조사보고서는 이 시기를 '1차 킬링필드'라 했다)했고
1975~1979년 크메르루즈 캄보디아 집권기에 숙청, 처형, 중노동, 기아, 인종 종교탄압,
질병 등으로 100만명이 사망했다.
이렇게 1969~1979년 동안 최대 180만명이 사망한 사건을 '킬링필드'라고 부른다.
비난의 촛점이 민주캄푸치아 시절에 집중된 원인은
1970년대 후반 서구 우파 지식인들의 반공주의와,
캄보디아 침략의 정당성이 필요했던 베트남의 대대적인 선전이었다.
진 라코처가 쓴 《이어 제로 Year Zero》와 영화 《킬링필드》는
서방 우파에게 공산주의의 야만성을 웅변하는 증거였고,
베트남에는 캄보디아 침략의 면죄부였다.
-《더 뉴스》에서 옮김. (p 150~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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