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국가는 폭력이다.' 중에서

2008. 9. 10. 17:38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구나 애국심의 유해성과 불합리성을 모든 사람들이 명백하게 깨닫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교양과 학식을 갖춘 사람들조차 애국심의 해악과 어리석음을 깨닫기는커녕

(어떤 이성적 근거도 없이) 애국심의 부정적 측면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애쓰고,

여전히 애국심을 유익하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감정으로 상찬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놀랄 만한 사실에 대해서는 오로지 한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곳적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역사는 개인과 동질 집단의 의식이 진화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의식이 낮은 차원의 사고에서 높은 차원의 사로고 움직여가는 것이다.

어떤 단계에 도달하든 그들 모두는 필연적으로 낮은 차원의 사고에서 높은 차원의 사고로 움직여간다. 

 

개인이나 개별적인 동질 집단에게는 언제나 과거의 사고가 존재한다.

과거의 사고는 시대에 뒤떨어져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고, 의식을 그쪽으로 되돌릴 수도 없다.

예컨대 우리의 기독교 세계에서 식인이나 보편적인 약탈 행위, 부인 강간 같은 관행들이

이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본보기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주입된 현재의 사고가 있다.

우리는 현재 사고의 영향력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예컨대 소유의 개념, 국가 조직, 무역, 가축의 활용 등이 그것이다. 

 

이어 미래의 사고가 있다.

사람들에게 생활 방식을 바꾸고 이전의 생활 방식을 물리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 세계에 있어 미래의 사고는 노동자들의 해방, 여성 평등권, 채식주의 등이다.

우리 시대에 추구해야 할 미래의 사고(우리가 이상이라고 부르는)로는

폭력의 근절, 공동 재산 제도의 확립, 보편적인 종교, 전 세계적인 동포애 등이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과 모든 동질 집단은 어떤 수준에 도달해 있든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사고를 기억으로 뒤에 남겨두고 눈앞에서 미래의 이상을 바라보고 있기 마련이다.  

 

지만 낡은 사고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보다 높은 차원의 사고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낡은 사고를 지키고 있는 게 유리하다.

그리하여 변화하고 있는 주위 생활 방식 전체에 모순된다고 하더라도

이 낡은 사고가 계속하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일이 일어난다.

 

종교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낡은 사고를 지키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은 성직자들의 유리한 지위가 낡은 종교적 사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직자들은 사람들을 이 과거의 낡은 사고 안에 잡아두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여기서는 모든 독단적인 권력이 그 토대로 삼고 있는 애국심이라는 관념이 끼어든다.

애국심에 호소하여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 애국심이 의미도 효용도 모두 상실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수단으로 이 개념을 고수하려 든다.

이런 사람들은 가장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여 국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애국심이라는 낡은 개념과, 이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 거대한 사고의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기묘한 모순은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