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16. 07:46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2008 . 09 . 13 (토)
아침 7시 양촌 출발
증평 톨게이트 빠져서 국도로 원주 까지,
원주서 중앙고속도로 타고-,,
홍천강 휴게소. 처음 들려보는 곳이다.
원주-홍천 을 지나서 춘천 방향으로 들어서며 바로 있다.
이 길로 춘천 가보긴 처음이다.
많이 우회하는 것인데, 아버지가 원하시니-,,
물 빛깔이 맑다못해 투명하다.
저 멀리가 춘천인데,
외곽으로 빠지는 길이라 춘천은 들어가지도 않는다.
양구 읍내 다 왔다. 양구읍내 시장통에 지금도 막내 이모가 사시는데,
화천에서 큰집 식구들이 벌초를 와서 거기 따라 가셨단다.
전화 통화만 하고 몸이 여전히 성치 않은 이모부만 뵙고 나왔다.
이십여년 전에 들렀던 막국수 집이다. 고명을 닭고기로 얹었었다는 기억이 난다.
내가 막국수 맛을 처음 알게 된 집이다.
당시엔 이모부가 데려가줬었는데, 이젠 보행마져도 션찮아서...가잔 말도 못한다.
옛날 짐작으로 찾아갔는데, 벌써 오래 전에 그만 뒀단다.
양구 下里에 이태 전에 새로 생긴 막국수 집인데, 맛은 별루더라.
막국수 별 거 아닌것 같아도 제대로 맛내는 집을 만나기가 드물다.
양구군 동면 덕곡리. 큰 외가, 작은 외가가 옛날 그 자리에 그대로 사신다.
오자마자 성묘 가는 길이다.
외할아버지 산소 들러서 외할머니 - 외삼촌 산소로 올라간다.
햇볕은 좀 따가운 편이었는데, 가을 색감이 너무도 곱다.
작은외삼춘 얘기가, 50년 넘게 농사를 지면서 이번해 처럼 농사가 잘 돼보기는 처음이란다.
저 녀석이 둘째 '명배'다. 어느덧 저 놈도 마흔 고개 넘겼다.
내 터울의 장남 '만배'는 캐나다 가서 산다.
둬달 전에 왔다 갔는데, 제사는 자기가 모신단다.
그래서 외갓집은 차례지내는 것도 없고 성묘만 하면 끝나는데
내일, 딸 일곱이 다 온단다. 모두 9 형제다.
오랫만에 동생이 따라왔다. 덕분에 덜 심심했다.
잔디도 잘 자라고... 늘 여기 오면 넉넉해서 좋다.
주변에 빙둘러 심은 건 수수, 옥수수가 아니고 율무다.
덕곡리.
가호數가 글쎄? 한 50~70戶 정도? 젊은 사람들이 많단다.
성묘 마치자마자 외갓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아버님 모시고 해안 (펀치볼) 구경 나섰다.
30분 걸리는 거리다. 저 뒤로 보이는 산을 넘어가야 한다.
고개 이름이 뭐였더라? 아니, 고개가 아니고 령(嶺)이다.
대암산을 타넘어가는 큰 고개다.
30분 걸린다는 얘기는 순전히 이 고개를 넘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 함이다.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더라. 겨울이면 꽤 춥겠다.
그리고 눈 치울려면.....
저 위로 가면 그 유명한 대암산 용늪이 나온다는데
내년 추석에 또 가게 되면 가볼 생각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주먹으로 "퍽" 쳐 논 거 같다고 해서 펀치볼이다.
동그랗게 생긴 분지다.
해발이 700~800 ???.
행정상 지명은 해안면인데, 바다 海자가 아니고 돼지 亥자 쓴다.
비라도 많이 오면 폭 잠기게 생겼다.
고냉지 채소를 주로 하는데 기업농도 많단다.
저 물은 북한쪽에서 흘러오는 건데 수원이 금강산이라더라.
양구 동면 중에서 윗쪽은 북한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로 먹는다.
관람 신청을 해야한다. 이름이 '통일관'이던가?
땅굴과 전망대를 2명이 보는데 7,000원 냈다.
접수 마감이 오후 4시인데, 5분 늦었지만 봐주더라.
여기서 군부대에 통보를 해준다.
우리측에서 뚫은 터널로 300미터쯤 가면 북한에서 뚫은 땅굴과 만난다.
땅굴 속엔 양구군청 관광과에서 나온 여직원이 있다.
교대를 한다지만 근무지 치고는.....
철로를 따라 100 미터쯤 들어갔다 나오는 건데
현역군인 쫄병이 운전을 하고 설명해준다.
땅굴 속은 순 화강암 바위다.
북한애들 고생이 많았겠다... .
여기서 다시 위로 가파르게 올라가면 '을지 전망대'다.
길을 잘못 들어서/ 여기를 먼저 왔다가/ 도루 땅굴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는데/
그 새 구름이 껴버려서 아무 것도 못 봤다.
맑은 날 가면 조망이 기막히겠다.
나는 '철책'이란 걸 가까이서 보긴 여기가 처음이다.
아버진 해안에 아시는 분이 있으시단다.
이웃에 살던 분이라는데 10년 전 쯤 보고는 여태 소식을 모르고 지내셨단다.
살았나 죽었나도 몰라서 올라오는 길에 114로 전화를 해봤더니 살아있으시단다.
그래서 아버진 그 집에 머무셨다.
두 살 밑이시라는데 정정하시다.
여기서 양구읍내도 한 시간, 인제 읍내도 한 시간 거리라는데,
겨울에는 눈이 오면 아까 그 대암산 고개를 넘을 수가 없어서 인제로 다 빠진단다.
그래, 바로 이 나무.
이거 슬로바키아 타트라 국립공원에서 봤던 나무다.
이름이 뭔가 모르겠다.
마당 한가운데 심으면 멋지겠다.
저 교회와 관련해서 할 얘기가 참으로 많다.
특히 작은 외갓집에 사연이 많다.
큰외숙모가 해준 초두부를 먹고 큰집으로 내려간다.
큰집
이 원두막은 10 년전에 큰형님이 만들어 논 건데, 오는 사람이 없으니 별로 쓸 일이 없었을 게다.
뒤쪽이 막혀 있어서 낮에는 별로 시원하지가 않다.
닭 살을 발라서 양념을 해두셨더라.
옛날에 큰아버지가 닭을 날 거로 잘 드셨는데, 이젠 형님이 또 그렇게 잡수신단다.
금방 잡으면 고소하대나 어떻대나.
이 술은 '고려주'라고 써있던데,
중국 흑룡강성에서 큰집 막내가 가져온 거다.
얼마전에 중국 처자와 선을 보고 왔다는데, 흡족한 모양이다.
유원지 놀러가서 찍고, 사진관서 예복 입고 찍고, ... , 사진을 여러장 찍었던데 ..
첫날밤은 물론 둘쨋날밤까지 지내고 온 모양이더라.
생전 연애 한번 번번히 못해본 놈이라서.......,
한족인데 22살이란다. 11살 차이가 난다.
내년 1월경에 한국 들어와서 결혼하고, 여기 큰집 뒷채에서 신혼살림을 할 거란다.
그 놈 하는 짓과 형님 말하는 폼새를 보니 앞으로 문제가 좀 있게 생겼다.
2008 . 9 . 14 . (일)
제사와 차례 지내는 방식은 그래도 우리 큰집이 제대루 한다.
웬일로 새를 사다놨다.
손주 보는 재미가 좋으신 모양인데, 애들 떠나면 서운하시겠다.
저 놈이 몇 대째 장손이 되는 거냐? ... 7~8 대 잘 될 것 같은데. 두달 뒤면 곧 돐인데,
생김새가 큰집 핏줄 타고 났더라.
집 가꾸는 거 하나는 우리 큰 형님 따라갈 사람 없다.
미적 감각 탁월하고 일이라면 똑소리 나게 잘 하신다.
그리고, 큰집 식구들이 예술적인 <끼> 하나씩은 다들 타고 났다.
어떨때 보면 신들린 사람 같다.
약수터,, 늘 그대로인데, 지난해부턴, 이 물이 왜 좋은가 하고 써놨던 팻말을 없애버렸다.
뭔가 수질검사에서 뽀롱이 난 모양이다.
난 물 위에 저렇게 유막처럼 뜨는 '번들거림'이 께름하더라.
옛날엔 아주 싸아한 게 진짜 쇳물 맛이 진하게 났는데, 이젠 밋밋해졌다.
저 물로 밥을 하면 파랗다.
이모네 산소다.
이모 돌아가시곤 갈 수가 없어서 돈을 보내주고 벌초를 맡긴다길래
제대로 했는지 확인해봤다. 하긴 했는데 션찮게 했다.
내 증조부 산소다. 아버지에겐 할아버지지.
요 밑에 있던 큰아버지 산소는 지난번 큰어머니 장례때 이장했다.
묘 쓴 이후로 물이 나네 안 나네 하며 꽤 말이 많았는데,
이장할때 보니까 말짱하더라.
아버지도 무겁게 눌러왔을 마음의 큰 짐을 벗으셨을 게다.
저 비석에 쓴 글씨는 아버지가 쓰신 거다. 아버진 스스로가 명필인줄 아신다.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산소다.
이번에 형님이 정리 잘 해놓셨다.
이 시간대에 저 나무 그늘이 어디로 지는지, 그림자를 따라서 동그랗게 발라놨더라. 하여튼-,,
큰집 산소 근심은 이제 다 털었다.
아래로도 터가 넓어서 서너대는 넉넉히 내려 쓸 수 있겠다.
하루 더 묵어봐야 별 거 없겠어서
성묘 마치고 바로 헤어졌는데, 이때가 12시.
잘 오나했더니 충주서 좀 막히고 증평서 좀 막히고 하다보니
대전까지 6시간 가까이 걸렸다. 운전하는데 졸려서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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