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29. 12:33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路祭를 지내고 葬地인 인제군 가아리까지는 광치령을 넘어야하기 때문에
눈이 오는 걸 크게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요즘에는 어느 초상집을 가봐도 상여를 잘 안하는 편인데,
큰어머님이 평소에 늘 상여를 타보고 싶다 하셔서... 멨다.
장의사차가 묘 바로 옆에 까지 들어가는 곳이라... 상여가 뭔 필요가 있을까만.
그 추운 날씨에도 장난질은 여전했는데,
하긴 그런 재미도 없으면 누가 상여를 메겠는가 싶긴하고...
아무튼 그때문에 고생은 배가 됐다.
진짜 춥다. 내, 생전에 그렇게 추운 꼴은 첨 봤다.
아침 일찍 포크레인 따라 나선 아버지가 걱정이 되었는데
해서, 장지에 도착하자마자 바삐 서둘러 올라가보니 추위가 심각할 정도였다.
산 위라 바람마져도 세게 불어서 체감온도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
산불 위험 때문에 불도 놓을 수도 없고, 그 추위를 맨으로 겪어야 했는데
마침 찝차가 한 대 옆에서 있어서 큰 다행이었다.
가스렌지도 얼어붙어서 동태찌개 하나 데우는데도 난리를 쳐야했으니.....
"우리 장모님 성정이 참 유하신 분인데 어떻게 이런 날로 잡으셨을까?"
"매형, 그러게 사람은 마지막 헤질때 봐야 안다니깐요!"
11시에 맞춰 下棺을 하고,
고운 마사토에 백회를 섞어 반쯤 덮은 다음에
그 흙을 다지는 과정이 '회다지'인데,
강원도식이 유별나고 재미(?)가 있다.
상여를 멘 사람들은 내리자마자 진즉에 내려갔고
산역(山役)을 하는 사람들도 일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내려가더라.
이미 저 순간에 오싹하니 한기가 몸 속 깊이 들어오는 걸 느꼈었는데
밤새 뼈마디가 쑤시는데 누가 들을세라 혼자서 끙끙 앓았다.
p.s
호상[好喪]의 사전적 정의는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란다.
여기서 말하는 호상(好喪)이란 죽은 者의 입장에서 말하는 듯한데,
언제부턴가 그 어의(語意)가 산 者의 입장으로 완전 바뀌어서
부모가 오래 살거나 병석에 오래 있어 자식에게 짐이 됐던 부모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통칭해서 호상(好喪)으로 부르더라.
더러는 되먹지 못한 부모도 있으니 그리 불리워 마땅한 경우도 있겠다만,
남들이 어찌 부르던 자식 된 입장에서 호상 운운한다는 건 일단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 생각에 호상(好喪)이란 - 죽은 자의 입장에서 -
온갖 복을 누리다가 죽은 사람의 喪이 아니라,
이 꼴 저 꼴, 험한 꼴만 보며 살아온 사람이 죽어서 속 편한 저 세상으로 갈 때, 그것이 호상이 아닌가 싶다.
온갖 복을 넘치게 누리던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서 죽는다 해도 미련이 남기 마련이니 그런 사람은 애상(哀喪)일 수밖에.
그렇다면 자살하는 사람은 호상이냐? 내 생각은 일단 '그렇다'다.
큰어머님이 어찌 생각하며 평생을 살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생각엔 많이 지체된 호상(好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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