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4. 17:57ㆍ산행기 & 국내여행
외부사람의 글은 싣지 않는다.
이 글만을 예외로 싣는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넘은 전쟁이 막 끝난 시기에 지리산을 찾은 한 산꾼의 산행기다. 고추장 버무린독, 마니라로프 20m, 카메라, 쌍안경, 삽, 톱, 야전도끼, 야전곡괭이, 간식, 부식, 세면구, 보온주, 석유 알콜 한되씩, 알콜깡통, 항고 등등..... 그보다 작은 포켓을 가운데 붙였다. 넣을것이 많아서 위에도 세개의 포켓을 달고나니 아주 근사하다.
열차가 삼랑진을 지날무렵에 오직 나만 믿고 동행한 Y군과 L군의 얼굴을 쳐다보니 과연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지리산을 잘 안다는 이 친구를 보니 천군마마를 얻은 기분이다. 버스가 이미 떠나고 없다. 촌보도 움직일 수 가 없어 어느 과수원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첫밤을 보냈다.
9시경 요행히 먼지 펄펄나는 트럭을 얻어 탓는데 한참을 가니(12키로 정도) 내리라 한다. 긴 여름해가 어둠에 깔릴때까지 걸어온 덕분에 8시경에 덕산장터에 닿아서 강둑에 텐트를 치고 고단한 몸을 뉘였다.
곡점 마껄리도가의 냄새에 이끌려 네명이 두말을 먹고 잠이 들었다.
빗물이 륙색안으로 들어가서 꿀렁거려 더 이상 전진을 못하고 "동당리"마을 재실에 대피해서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없어 이 곳에서 하루밤 잘 수 밖에 없다. 콩을 먹으며 계속 물을 마셔대던 L군 이 저녁에 결국 설사를 만나 고생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칡넝쿨로 얽어만든 통나무다리를 건널때는 눈이 뱅뱅 돌릴지경이다. "중중산리"에 오르니 점심때가 훨씬 지난 두시 10분 이었다. 드디어 지리산 천왕봉 초입인 "상중산리에 도착했다. 땟는지 이틀동안 비에젖은 옷이며 장비가 밤새 바짝 말랐다.
마을에서 논이 있는곳으로 가서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근 두시간을 헤메었는 데도 논 길을 찾을 수 가없다.
지리산을 잘 안다는 진주의 k군에께 의논을 하니 사실은 자기도 지리산이 오늘 처음 이란다. 기가 막힌다. 할 수 없어 홍순표씨집에 다시 가서 그를 데리고 와서 길을 안내받긴 했는데 불어난 물때문에 도저히 계곡을 건널 수가 없다.
빗줄기는 차츰 약해지며 오후가 되니 그치긴해도 계곡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순두류 삼거리지점의 언덕을 깎아 젖어서 납덩이 같은 텐트를 치고 시끄러운 물소리와 함께 또 하룻밤을 중산리에서 보낸다. (지금의 매표소 맞은편 언덕)
도강 준비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다. 마닐라 로프를 활용하기 위해 5미터 전방에 있는 바위까지 나무다리를 만들기로 햇다.
있었다. 무거운 로프를 강 저쪽으로 던져 나무에서 나무로 연결한 뒤 륙색은 먼저 보내고 대원들은 뛰어 건너 겨우 도강에 성공했다. 3시간 20분이 걸리는 대 역사였다.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왼쪽길로 접어드니 민가 두채가 나타난다. 물소리가 얼마나 장황했던지 그토록 고함을 지르고 했는데도 전혀 듣지 못했다 한다. 시계에 물이 들어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첫째 개울 두째 개울을 건너고 우측으로 가라는 신신당부를 받았지만 우측에는 길이 없고 왼쪽에 길이 있어 륙색을 벗어 놓고 정찰에 나섰어나 100미터도 못가서 길이 없어진다. 되돌아와 우측으로 길을 찾았으나 도저히 나갈 길이 없다. 일제 군용도로 잡목을 베면 서 70미터 정도 전진을하니 희미한 나무꾼 길이 나온다.
한다. 했다. 더위를 식히려 차가운 물속에 들기도 하며 한가한 하루를 보내고 내일을 위해 항고밥을 일찍 해먹었다. 쌀자루에 담아두고 잠자리에 든다. 무슨 그런일이 하면서 내 발바닥을 쓰다듬어니 우둘투둘하다. 기역자 전등으로 비춰보니 쥐의 특유한 두 이빨자국이 선명하다. 배를 타고 넘어 달아나는 놈을 워커로 일격을 가해 잡는데 성공한다.
그래도 육중한 륙색을 메엇다. 사람길 인지 짐승길 인지 분간이 어렵지만 간혹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로 길을 확인하곤 한다. 바위를 탈수 없어 빽하여 길을 찾으니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 같은 것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바위가 문창대라고 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문창대를 지나 법계사 까지는 가야한다. 모면한다.(지금의 로타리 산장 부근)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에 법계사가 가까웠음을 느끼고 급하게 법계사로 향했다. 혹시 법계사가 아닌건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큰 돌위에 석탑이 보여서 '옳거니! 절집이 맞다고 확신하고 급경사를 급히 오르니 웬 부인이 반겨 맞는다. 절 위로 보이는 산봉을 바로 오르고 싶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니 4키로라고 하면서, 저 봉우리는 일출이 장관이기 때문에 여기서 자고 내일 새벽에 오르라고 붙잡는다. 텐트를 치고나니 산삼 이라면서 재배한 인삼을 한 뿌리씩 준다. 여덟가지의 약초로 직접 빚은 팔선주라는 술도 반주전자나 주어서 멋모르고 마시고 저녁도 굶은 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일출 보기가 힘드니 어떻게 하든지 일출을 보고 오라고 당부를 하는 손보살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햇다. 접근하기가 점점 너무나 힘이 든다. 바위가 쫙 갈라진 채 입을 벌리고 있는 곳에 닿았다. 이 정도 오르면 개선장군들 이라고 생각하고 이 곳을 "개선문"이라고 명명했다. 겨우 겨우 바위 뒤쪽으로 나 있는 짐승길을 찾아서 오르는데 정말 힘이든다. 산딸기가 수 없이 널부러져 있어도 따 먹을 겨를도 없이 진행한다. 마닐라 로프와 기술을 총동원 햇지만 도저히 오를 수 없어 나무를 베어가면서 왼쪽 능선 으로 붙었다.이제 길이 좀 나타날까 했는데 다시 움푹패인 암장 하나가 길을 막 는다 1시간을 허비 한 다음 하는 수 없이 우측 계곡으로 들어가 흘러 내린 바위를 타고 산봉으로 직등을 시도한다. 법계사 에서 지고온 물독이 무색할 정도로 바위틈으로 물이 흐르는 곳도 있다. 좌로 우로 비껴가면서 낙석지대를 오르니 마음은 산봉에 있고 몸은 한없이 지친다. 마지막으로 목을 추기고 20미터 정도 남은 산봉을 향해 오르는 도중에 "김순용"영감이 산봉밑에 다지다가 둔 캠프장의 언저리에 삽과 곡괭이가 널려져 있다. 륙색을 풀어 던지고 가벼운 몸으로 뛰다시피 산봉에 올랐다. 여기가 천왕봉! 이 감격, 이 환희,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번째의 감격이다. 안개가 심해서 일출을 못 보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 아쉬움 때문에 도무지 하산할 수 가 없어 우리는 천왕봉에 또 캠프를 채렸다.
|
'산행기 &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둥산 (0) | 2008.10.06 |
---|---|
함양, 기백산-금원산 (0) | 2008.09.22 |
지리산 칠선계곡 (0) | 2008.08.04 |
영월 잣봉과 어라연 래프팅 (0) | 2008.07.28 |
지리산 # 3 (0) | 2008.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