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2. 16:39ㆍ음악/영화. 영화음악
모짜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 알마비바 백작부인과 스잔나의 이중창(편지). Che soave zeffiretto/산들바람은 부드럽게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이라는 영화 아시지요? 마지막 장면인 멕시코 지후아타네오 섬에서 바라본 태평양, 그 푸르른 바다 기억나십니까? 희망이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빛으로 한없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다 륵어서 가출옥한 흑인 레드(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가 커다란 떡갈나무 아래서 햇살을 담뿍 받으며 주인공 앤디(팀 보린스Tim Robbins)의 편지를 읽는 대목이 생각나네요. "기억하세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에요. 아마도 가장 좋은 걸 거예요. 그렇게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Remember Red!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이 영화엔 감동적인 장면이 많습니다. 늦은 봄 교도소 근처 공장의 지붕 수리 작업에 동원됐던 죄수들이 앤디 덕에 악랄한 간수장이 제공한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장면. 그 장면에선 정말이지 내 가슴까지 다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정말 잊을 수 없는 건 저 넓은 쇼생크 교도소의 운동장 가득히 꿈결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바로 그 유명한 여성 2중창이 울려 퍼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전 감히 이 장면을 영화 100년사에 빛나는 가장 감격적인 신Scene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Sull'aria Che soave zeffiretto……."
앤디는 6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주 정부에 편지를 띄워 책을 보내달라고 조릅니다. 그 결과 도착한 한 무더기의 헌책장동사니 속에서 낡은 LP 음반 한 상자를 발견하지요. 거기서<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이란 오페라 판을 고릅니다. 앤디는 일순간에 기나긴 세월의 단절을 훌쩍 뛰어넘어, 홀린 듯 자신이 죄수라는 사실도 잊고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습니다. 들립니다. 음이 진동합니다. 모차르트Mozart의 천상의 음성이 우아하기 그지 없는 8분의 6박자 감미로 운 선율을 타고 온 세상을 적셔줄 듯이 흘러 넘칩니다…….
이제 음악이 끊길 것이 두려워진 앤디는 반사적으로 간수가 들어간 화장실 문을 밖에서 잠그고, 내친 김에 사무실 문까지 안에서 걸어 버립니다. 너무 오랜만에 맛본 자유는 앤디를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이끌고 압도하는 예술의 환희는 터무니없는 만용을 부추깁니다. 앤디는 당장 음악을 끄라는, 유리창 밖 교도소장의 날카로운 경고음과 소름끼치는 간수장의 으름장을 간단히 무시합니다. 그리고 옥외 스피커 8개 스위치를 하나하나 올리고 드디어 마이크를 켜고 볼륨을 올려 음악이 교도소 전체로 울려 퍼지게 합니다.
이 사건으로 앤디는 2주일 동안 독방살이를 합니다. 하지만 풀려난 그는 밝은 표정으로 위로하는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2주일 내내 그 음악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제게도 아직까지 그 음악은 들리고 보입니다. 2중창이 교도소에 울려 퍼지자 목공실의 작업꾼, 병실의 환자들, 그리고 운동장을 서성거리던 수백 명 죄수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우뚝 서서, 멍하니 얼빠진 시선으로 전주 위의 스피커를 올려다 봅니다. 마치 하늘이 열리고 천국이 펼쳐지는 장관을 목격한 듯이…….
그때 레드의 회상의 겹쳐집니다.
"난 그 두 이태리 여인이 무슨 내용을 노래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어떤 것들은 그대로 남겨둘 때 가장 잘 간직되는 법이니까. 나는 그 여인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노래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들 가슴 아팠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 목소리는 어느 누가 어떤 위대한 곳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높게 더 멀리까지 솟구쳐 올랐다. 그건 마치 어떤 아름다운 새가 우리를 가둔 새장 속으로 펄럭이며 날아 들어와 벽들을 녹여버리는 것과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유를 느꼈다."
철부지 청년 시절에 감옥으로 들어와서 이제는 하얀 늙은이가 되어버린 레드, 그의 진정 어린 회상은 음악이 무엇인지, 또는 예술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잘 말해줍니다. 레드에게 그것은 내용은 몰라도 그냥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래서 어쩌면 차라리 그 내용을 알고싶지 않은 그 무엇이며, 또 지극히 아름다운 만큼 한편 가슴이 저미도록 슬픈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무한히 높고 무한히 먼 데까지 닿는 것이며 어떤 위대한 꿈보다 더둑 꿈결과 같은 그 무엇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게 만든 자유입니다.
나는 레드의 대사 가운데서도 "어떤 것들은 그대로 남겨둘 때 가장 잘 간직된다 Something is best left and saved"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할리우드의 대본 작가들은 어쩌면 이렇게도 쉬운 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짚어낼 수 있었을까요?
- 오주석 유고집 '그림속에 노닐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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