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이전의 침묵'

2008. 5. 9. 13:31음악/음악 이야기


스페인 카탈루니아 출신의 노장 페레 포르타베야(79)가 연출한

 ‘바흐 이전의 침묵’(원제 The Silence before Bach)

 

 

 

 

 

 

텅빈 공간에서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들려옵니다.

카메라는 음의 근원을 찾아 이동합니다.

바퀴에 모터가 달린 듯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 피아노가 바흐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피아노는 바흐에 맞춰 춤을 추는 듯 합니다.

시각장애인 조율사가 피아노의 미세한 음을 조율하면,

안내견은 착한 눈을 껌벅이며 음악을 듣습니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는 하모니카로 바흐를 연주합니다.

바흐가 직접 등장해 성 토마스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더니,

후대의 음악가 멘델스존은 단골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싸준 종이가

바흐의 ‘마태수난곡’ 악보임을 발견합니다.

바흐와 그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 이미지들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나열됩니다.

감독은 바흐의 삶을 극적으로 풀어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음악가의 삶을 그린 ‘카핑 베토벤’ ‘불멸의 연인’ ‘라비앙 로즈’ 등과는 명확히 다른 노선입니다.

대신 감독은 바흐 음악이 주는 영감을 이미지로 번역해내는 데 주력합니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바흐가 없었다면 신은 권위를 잃었을 것이네. 세계는 무지한 음으로 가득찼을 것이고.”

 

 

 

 

 

 


저는 바흐를 성직자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자가 보이지 않는 신의 말씀을 인간 세계에 들려주듯이,

바흐는 조화로운 음의 질서를 악보 위에 적어놓았습니다.

음표들이 워낙 자체 완결적이라 이 음악은 어딘가에 있었으며,

바흐는 그것을 ‘발견’한 것뿐이라고 제 마음대로 상상한 적도 있습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흐 이전의 침묵’에서 바흐 음악의 질서, 리듬감이 느껴진다면 그건 대단한 번역입니다.

바흐 음악을 이미지로, 그 이미지를 다시 문자로 옮겨놓은 이 글은 어떻게 보십니까.

0.1%만 번역됐다고 하셔도 제겐 크나큰 영광이겠습니다.

이 유럽 영화가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할 가능성은 극히 적어 보입니다.

DVD로 나오지 않는다면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겠죠.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바흐 이전의 침묵’이 보고 싶어진 분이 계시다면,

전 제대로 염장을 지르고 말았네요

그래도 너무 화내지는 마세요.

‘바흐 이전의 침묵’은 보기 어려워도 바흐 음악은 쉽게 들을 수 있으니까요.

정말 그의 음악이 우주의 질서를 간직하고 있던가요.

 

<백승찬기자 >

 

 

 

 

 

 

 

 

 

 

 

 

 

 

 

 

 

'음악 >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0) 2008.10.16
모짤트 / 마술피리  (0) 2008.10.16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0) 2008.05.07
쟈클린의 눈물  (0) 2008.05.04
백건우.. 피아노.. 베토벤  (0) 2008.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