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4. 20:26ㆍ음악/음악 이야기
오늘 산행을 갔다가 나 혼자 하산길을 잘못 들어서 일행들과 떨어지고는 함양으로 돌아 진주로 해서 집에 왔다.
산악회서 뒷풀이로 막걸리와 제육을 준비놨다고 했었는데 나는 결국 냄새도 못 맡고 왔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누군가 두고 내린 신문쪼가리가 있길래 보니 지난 4월 25일자 매일경제다.
착 펼친 지면에 바로 이 '쟈클린 뒤 프레'에 대한 기사가 있더라. 아래가 그 기사 내용이다.
이 속상해죽겠는 '알래스카의 눈물'을 생각하믄서 들어주기를......
4살때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첼로를 선물받고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며 약관의 나이에 이미 거장이 된 쟈클린(재키)은
16세에 영국에서 데뷔를 해 거침없는
그의 성격처럼 활발하고 패기 넘치는 연주로 음악계의 사랑을 받던 소녀였으며
'우아한 영국장미'라는 그의 애칭처럼 영국의 자존심이었다.
예술가들의 열정의 샘이 그렇듯이 쟈클린은 재능있었던
유태계 피아니스트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뜨거운 사랑을 시작합니다.
탁월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지만 바렌보임은
기회주의자 였고 깊지못한 인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우려는 결혼 후 현실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저돌적인 재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재능과 정성을 다해서 바렌보임을 사랑 합니다.
너무 순진했던 소녀...명성과 영광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천진한 성품의 소유자.
바렌보임은 이 천재적인 연주자를 마음대로 무대로 부를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23세에 결혼을 하고난 이후에도 쟈클린의 연주는 가는곳마다 대 성황이었습니다.
어느날 부턴가 재키는 자꾸 박자를 놓치고
연주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쟈클린을 바렌보임은 심하게 다그치고 화를 내곤 했습니다.
컨디션이 안좋거나 일시적인 현상인줄만 았았던
실수들이 아주 희귀한 병에서 비롯됐다는걸 아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절정의 연주자로 치닫던 27세의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이란 판정을 받습니다.
온 몸이 굳어져 가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로인해 사랑하는 첼로와의 이별은 물론,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바렌보임조차 그를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물이 두개로 보여서
책도 읽지 못하고 돌아 눕지도 못하며
나중에는 아예 눈물조차도 흘릴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여인은 '박제가 된 천재' 라는
아픈 별명을 하나 더 갖게 됩니다.
42세가 되던 어느날, 쟈키는 한스러운 삶을 조용히 끝냅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곁을 떠난 댓가를 오랜세월동안 톡톡히 치루었습니다.
세계의 어느 단체에서도 그를 초청하지 않았으며 박대를 했습니다.
지금 이곡은 오펜바흐의 곡을
베르너 토마스라는 첼리스트가 찾아 내어서 제목을
'쟈클린의 눈물'이라 짓고 그에게 헌정했습니다.
곡을 듣고 있노라면 쟈클린의 비극적 생을 예견이라도 한듯
비통함이 눈물을 타고 가슴에 흘러 내립니다.
재키가 꽃같은 22세때 연주한 너무나 사랑스럽고 슬픈 선율입니다.
지금까지도 팬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 맺히게 만드는 순박한 소녀....
너무도 그리운 이름 쟈클린 뒤 프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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