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008. 5. 7. 12:49음악/음악 이야기

 

 

마 전 장안의 화제가 됐던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중첩되는 소유격의 사용으로 엇갈리는 소유의 슬픈 예감을 제목에 드러내고 있었다.

내 남자의 여자가 '바로 나'인 거라면 화제도 안되니 사람들은 직감하는 것이다. 앞의 '나'와  뒤의 '여자'는 동일인물이 아니로구나.'

'내 남자의 여자'라는 제목은, 실은 내 남자의 여자란 나여야 하는데 내가 아닌 다른 여자이니 이 분통 터지고 기막히는 경우를 당하는 날좀 보소,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남자의 여자인 그녀도, 심지어 내 남자마저도, 다들 말로는 못다 할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음을 드라마는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 드라마는 우리의 소유에 당위가 있는 것인지, 과연 누가 누구를 소유할 수 있기는 한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내 남자는 다른 여자를 소유하면 안 되는가, 나아가 나는 어떤 남자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여자는 다른 남자를 소유하면 안 되는가, 나아가 나는 한 여인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것인가.  

이미 지난 세기말, 소유의 시대가 가고 접속의 시대가 온다고 갈파한 이도 있었으나, 아직도 우리의 몸과 정신은 20세기에 물들어 있어서인지

내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이를 갖고 싶다.

그에 기대고 싶으며 그 '내 사람'은 영원히(아니 그보다는 내가 그를 소유하고 싶을 때까지), 온전히 내 것이기를 원한다.

그 열망은 나아가 내가 그를 원하듯 그도 나를 원하기를 원하며, 그래서 소유는 도미노 같은 순환의 고리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자크 위의 후크'처럼

서로에게 걸쳐 있게 되는 것이다. 가끔, 아니 자주, 서로 후벼파면서.

 

 

  

  

 

 

  

그러면 <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20세기 초 어느 날 우연히 헌책방에서 파블로 카잘스가 그 악보를 발견하여 오늘날 우리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6곡의 귀중한 모음곡은 처음엔 작곡자 바흐의 것이었다가, 2백 년 후 찾아낸 카잘스의 것이었다가,

그 누구보다도 그 음악답게 연주한 야노스 슈타커의 것이었다가, 그 소리가 내 가슴을 파고드는 순간 나의 것이 되었다.   

모든 음악은 좋아하는 이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음악은 잠재적으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음악의 소유는 작곡자에서 출판업자, 악보 발견자, 연주자, 또다른 연주자에서 듣는 이에게로 끊임없이 전이된다.

 

내가 여러 음악을, 음악가를 소유할 수 있으며 남들이 다 그들을 좋아해도 전혀 열받지 않는다.

가끔 너무 여럿이 좋아해서 그 음악이 해퍼 보일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는 잠시 그 음악을 멀리하다가 다시 들으면 된다.   

진정한 소유는 진정으로 알고 좋아하는 것일 때 가능하다. 내가 그 남자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그를 소유할 자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격이 된다고 다 그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는 다른 여자의 남자일 수도 있고 그는 나를 절대 자신의 여자로 삼고싶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음악은 나를 '또라이' 만들지 않는다. 소유의 중첩이 무한히 가능하며, 다만 그 음악이 나를 소유하지 않을 뿐이다.

   

1958년 런던에서 태어난 스티븐 이설리스Steven Isserlis는 음악적 깊이에서나 기교적인 면에서나 세계적인 첼리스트이다.

전통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오가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실내악과 독주에 실어 나른다.

 49살의 이설리스가 처음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취입해 내놓았다. 그의 학구적인 성향은 그가 직접 길게 쓴 음반 해설서에서 잘 나타난다.

 

바흐의 첼로를 위한 6개의 모음곡은 알다시피 아직 많은 부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가 이 곡을 언제, 왜, 누구를 위해 썼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그가 전문적인 연주자들을 가지고 있던 유일한 시기인 쾨텐 시대,

 쾨텐의 레오폴트 왕자의 궁정에서 악장을 지냈던 1717년 부터 1723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가 처음 발견된 곳은 1824년 파리로 이미 작곡 이후 한 세기가 흐른 후 였다.

 슈만은 이 곡에 반해 피아노 반주 부분을 작곡했다고 하는데 그 악보 또한 유실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새로운 악보를 발견한 카잘스에 의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음악 대중musical public의 의식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재 이 곡의 악보는 네 가지 버전이 남아 있다. 하나는 바흐의 부인이었던 안나 막달레나의 것,

또 하나는 바흐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합창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요한 페터 켈너의것,

그리고 18세기 후반의 다른 두 카피이다.  

켈너의 것은 바흐가 훗날 개정하기 전 초기 버전인 것으로 보이는데, 더 많은 장식음을 가지고 있으며,

류트나 바이올린을 위한 버전의 바흐 자신의 악보와 비교해 많은 오류가 있는 점은 막달레나의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른 두 카피는 더 감각적인 활놀림이 특징인데 이는 연주자들의 윤색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설리스는 대게 막달레나의 것을 기본으로 연주하였고 켈너의 것을 신중하게 차용했으며 악보 간 심각한 충돌이 있을 때 다른 두 악보를 참고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네 악보 모두 다 달랐던 기막힌 날도 있었다는 이 학구적 연주자의 후일담을 읽으며, 

연주자의 음악 소유의 여정은 감상자의 그것에 비해 훨씬 험난하며 그렇기에 그 소유의 기억은 남다르리라 생각하게 된다. 

이설리스는 좋아하는 선배 첼로 연주자로 다닐 샤프란을 꼽는다.

샤프란의 소박하고 따스하고 깊이 있는 연주를 어떻게 자신의 연주 속에 녹여 자신만의 색깔로 연주했는지 궁금하다.

 

 - 유정아의 『마주침』중에서 (p 90~ )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I. Prelude 
Pablo Casals - Cello


II. Allemande
Pablo Casals - Cello


 III. Courante
Pablo Casals - Cello


IV. Sarabande
Pablo Casals - Cello


 V. Gavotte I & II
Pablo Casals - Cello


VI. Gigue
Pablo Casals - 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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