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4. 07:56ㆍ중국
"동북공정은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자 첫 번째는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는게 있어요.
저도 동북공정 책을 냈지만 그 책의 제목 자체가 중국의 국가전략이라는 개념을 썼어요.
그런데 여지껏 국가전략이라는 차원에서 동북공정을 접근하질 않았어요.
그리고 첫 번째는 우리가 동북공정에 대해서 오해하는 첫 번째는 국가전략이라는 것인데
여러분들 다 기억할거예요.
동북공정이 발표됐을 때 한국에서 막 얘기를 하니까 중국에서 외교부 성명이 항상 그런 식이였어요.
지금도 그렇고. 이거는 지방정부의 일이고 학자들의 일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
그거를 여지껏 반복하고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들 그 자료집에「흑하일보」에 2003년 8월 6일 자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건 공산당 위원회에서 나오는 겁니다.
동북공정은 후진타우 동지가 2000년 사회과학원에 지시, 승인한 영구 항목 가운데 하나다.
여기 써 있어요. 동북공정 홈페이지에도 이렇게 써 있어요. 중앙정부의 비준을 거친 것이다.
이거는 철저하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시와 승인을 통해서 이루어진 거예요.
근데 외교적인 업명에서는 아! 이게 중앙정부의 일이 아니어서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
관여를 못하긴 뭘 못해요.
최근에 9월달에 동북공정은 정식으로 종료가 됐습니다. 그때 왜 종료가 됐냐하면
공산당 지도부의 명령 하나로 끝났어요. 그게 여러분들 내가 해놨지만은 그 자료가 여기 있습니다.
한미간에 미사일 문제라든지 핵문제 가지고 한미간에 거리가 벌어지면서 반미정서가 그래서
중국이 그걸 끌어안고 싶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동북공정을 끝내라 그러고 원래 동북공정은
내년 2월까지입니다. 일정이. 그런데 9월달에 끝냈어요. 그건 보도가 되어 있어요. 그 보도한
신문도 제가 여기다 지금 다 자료로 스크랩 해 놨어요.
그 다음에 여러분도 기억할 겁니다. 10월달인가 아 9월달이죠. 9월달에 그 원자바오 총리하고
노무현이 만났어요. 헬싱키에서. 그래서 우리나라에 동북공정에 대한 반론, 반 중국적인 정서를
전하고 적당한 차원에서 국가가 개입해서 좀 뭐 동북공정에 대한 역사 갈등이 없게 해달라
그랬더니 원자바오가 그렇게 하겠다고 사과 비슷하게 했어요.
근데 그 내용이 우리나라 신문에는 전체 신문에 막 대서특필이 됐어요.
아! 이 원자바오는 최고 지도부 중에 하나니까. 근데 문제는 중국 신문에 하나도 안났어요.
중국 신문에 한마디도 안나왔어요. 원자바오 혼자만 사과한 거예요.
그 다음날 한국 신문에는 그 내용이 하나도 안났다는걸 또 신문에 냈어요.
그건 외교적인 전략이라는 거예요. 외교적으로 그렇게 하면서 할건 다 해놨다 이거죠.
여기서 이걸 철저하게 국가, 그 이거 지금 제가 여기 자료 1로 제시하는게 신문 우리 신문
「경향신문」에 9월 12일날 났던, 2개월을 앞당겨서 아 5개월을 앞당겨서 동북공정을 끝냈다는
신문기사를 그대로 스크랩 해논 겁니다. 외교부에서 발표한 거예요.
"동북공정은‘고구려공정’이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동북공정 그러면 지금도 그래요 사람들이. 고구려는 우리 역사다.
그렇게 하면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해요.
우리 정부에서도 여러분들 다 알다시피 동북공정의 대응 전략을 만들면서 만든게
「고구려연구재단」이였어요. 그건 이미 출발부터 잘못 인지하는 거예요.
동북공정 이콜 고구려공정이라고 지금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고구려 역사왜곡 동북공정 이콜시켜요. 그건 웃기는 얘기예요.
중국에서 동북이라는 관념이, 개념이 사용되는 용례가 달라요.
중국에서 동북 그러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요녕, 길림, 흑룡강, 삼성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동북 그러면은 한?중?일을 포함한 동북아시아라는게 머리에 떠올라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데 중국에서 동북 그러면 동북아시아 그런 개념이 하나도 없어요.
오로지 동북 삼성이예요. 만주일대 전체. 그런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다른 예를 하나 드리면 예들 들어서 민족주의. 우리는 민족주의 그러면 뭔가 통합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하지만은 중국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말은 완전 분열주의예요.
그 민족주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분열주의라는 낙인이 찍혀요.
왜냐하면 56개 민족이 모여있기 때매 민족끼리 단결하라 이건 분열주의예요.
곧. 그래서 우리가 민족주의라는 의도로 사용할 때 걔네들은 애국주의라는 말을 써요.
해서 이성 연구주임,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변강사지 중심의 주임교수입니다.
이 사람이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한국에서 하도 동북공정 얘기를 하니까 뭐라고 얘기했냐면 “한?중간에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고구려 등 고대 왕국의 지위와 중국과의 관계를 비롯해서 한국과 관련된 부분은
동북공정의 10%도 안된다” 그 담당하는 주임교수가 이렇게 얘길해요.
근데 왜 자꾸 한국에서 떠드냐. 그런 얘기죠.
뉘앙스는. 역사관련 고구려 이런거 10%밖에 안된다. 나머지 그럼 90%는 뭐냐 이거죠.
근데 그 나머지 90%가 정말 핵심인데 우린 핵심을 놓치고 있는 몸통이 따로 있습니다.
그게 탐원공정과 요하문명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그 몸통에 내용을 먼저 간략하게 정리를 하면 이런겁니다.
중국 만주일대 전체가 황제족의 신화시절부터 황제족의 영역권 안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황제시대 이후에 만들어지는 모든 역사시대에 존재하는 소수민족과
소수민족이 형성한 역사는 전부 중국사고 중국민족이라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고구려만이 아니라 요하문명론이 완결이 되면 단군도 황제의 후손이 돼요.
그 논리를 지금 다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고구려는 우리꺼다 그러고 싸우고 있다 거예요.
그 자료들을 제가 다 보여드리겠습니다.
"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린 동북공정이 어느날 갑자기 하나가 뚝 떨어진줄 알아요.
동북공정이 어느날 갑자기 절대 떨어진게 아닙니다.
걔네들이 동북공정을 하기 위해서 선행하는 역사 작업들이 많이 있었어요.
근데 그거는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아요.
동북공정을 알지만 탐원공정 그러면 사람들이 대부분 모릅니다.
‘하상주단대공정’ 몰라요. 그런거를 제가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9.5계획으로 ‘하상주단대공정’을 했어요.
9.5계획이라는게 뭐냐면 우리도 왜 박정희 시대에 그걸 했잖아요.
1차 5개년 계획, 2차 5개년 계획 해가지고 5년 단위로 전체 국가전략을 따서 밀고가는
그게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중화인민공화국 건설하고 나서 사회가 좀 안정된 다음부터
시작한게 이 1차 5개년 계획, 2차 5개년 계획 그거예요.
그래서 9.5계획이라는게 우리식으로 하면 9차 5개년 계획이라는 겁니다.
그게 96년부터 2000년까지 있었는데, 이때 ‘하상주단대공정’을 했어요.
이것도 어마어마한 규모였어요.
뭐 천문학, 고고학자 한 200명을 모아서 국가에서 다 국가계획을 해서 ‘하상주’에 대한
존속연대를 확립을 한겁니다.
이 ‘하상주단대공정’이 있기 전까지는 ‘하상주’의 설립연도와 멸망년도에 대해서 한 30가지의
가설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역사 기록이 없으니까.
그래서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문헌기록을 통해서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역사시대의 시점이
기원전 841년이었어요. 그런데 그거를 1229년을 앞당긴 겁니다.
‘하상주단대공정’을 통해서. 그러고 나서 탐원공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고 아래 제가 자료 1로 제시하는 이게 그 중국에서 공산당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하상주’의 단대연표입니다. 하나라는 기원전 2070년까지 올라가요.
이제는 이 연표 이외에는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이건 공식 입장이예요.
만약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으면 뭐 국가에서 뭐 이렇게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생각 안한다 해서
다른걸 쓸 수 있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에서는 국가에서 이걸 공인으로 딱 하면 이거 이외에는
하나도 표기 안돼 이젠.
자 그 다음에 지금 제가 자료 1-3에서 보여드린게 ‘하상주단대공정’을 하면서 그 200억 이상을 들여
가지고 이 수많은 유적지들을 다 재 발굴 했어요. 이게 어디냐 하면 전부 ‘하상주’시대의
도읍지들입니다. 근데 뭔 놈의 도읍지가 이렇게 많은가. 그니까 이거는 중국이라는 땅덩이의
지형적인 특수성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 나중에 이제 지형도도 보여드리겠지만, 그 저 뭐야
중국은 황하가 이렇게 흘러요. 장강이 이렇게 흐르죠. 그런데 이 서북쪽 하고 서쪽하고 북쪽하고
이 남쪽은 전부 고원지대입니다.
그죠? 전부 고원지대니까 이 수많은 동서로 막 몇 천키로 되는 이 지역에서 비가 내리면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하나도 없어요. 북쪽으로 흐르는 강도 하나도 없고 남쪽으로 흐를 수도
없어요. 히말라야 다 막고 있는데. 그니까 오로지 동쪽으로만 흘러요.
그런데 그게 다 합쳐서 이 장강하고 황하하고 두개로 합류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막 비가 막 어마어마하게 온다 허면 여기서는 지금은 인공위성이 있어가지고
야 몇일 뒤면은 거기에 물난리가 나니까 조심해라 이런게 가능하죠.
근데 뭐 춘추시대 전국시대 이건 불가능합니다.
여기서는 그냥 햇빛 쬐고 있다가 도시가 싹 없어져 버려요. 도시가 없어져요 진짜로.
해서 이게 이 황하의 물길이 500년을 단위로 이렇게 일로갔다가 일로갔다가 합니다.
여러분들 중국 역사지도책을 보세요. 500년 단위로 황하의 물길이 바꿔요.
그니까 중국 고대의 사서들을 보면 왕자, 천자가 된 자가 가장 고민을 하는게 치수문제예요 치수.
물을 다스리는게. 우리가 생각하면 웃기지만 여러분들 생각을 해봐요.
이게 무슨 물난리가 나는게 아니라 지금도 그렇잖아요.
이 첨단의 21세기에도 산사태를 막고 이런 상황에서도 올해 여름에도 보세요.
얘네들이 여기 물난리 나면 이재민이 100만 200만 그래요. 지금도. 옛날 같으면 싹 밀고가면 없어져
버려 나라가 없어져 버려요. 도시가 없어지고. 그래서 저렇게 물난리가 나면 도읍을 옮깁니다.
고대사회에서 중국에서 도읍을 옮기는 케이스가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저렇게 물로 확 쓸어서
없어지는 경우. 다음에 두번째는 하나라 이후에는 청동기 시대에 진입을 하기 때문에 수도 주변에
항상 동광산이 있었어요. 동광산을 다 파먹으면 옮겼어요. 그건 전부 그 의례의 기기라든지 이런걸
전부 청동으로 만들기 만들었기 때문에 청동을 보급할 수 있는게 가까이 있지 않으면 권위를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도읍지가 이렇게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걸 다 발굴해가지고 탄소 측정을 다 다시한거예요. 다 다시 해가지고 그 기원을 아까
말씀드린데로 천문학자들 뭐 고 화석학자들 뭐 다 모여가지고 연대를 ‘단대공정’을 한겁니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는 ‘하상주단대공정’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서
‘중화문명탐원공정’을 2003년부터 실시하고 있어요.
이게 ‘10.5’계획에서 기획돼가지고 실제로 작업이 시작된게 ‘중화문명탐원공정’ 2003년부터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 ‘중화문명탐원공정’과 동북공정이 만나면서 최종판이
‘요하문명론’이 나오는 겁니다.
탐원공정은 글자 그대로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공정이에요.
공정이란 말은 영어의 Project입니다. Project. Project를 번역할 때 공정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중화문명에 근원이 어디냐를 탐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러분들 학교다닐때
저도 학교다닐때 그렇게 배웠어요. 세계 4대문명 해가지고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
그 다음에 황하문명 그랬잖아요. 그래서 중화문명의 시작을 황하로 봤었어요. 그게 황하문명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73년에 장강 하류에서 하모도 유적이 개발되면서 발굴되면서 중화문화의 시작을 하모도로
옮겼어요. 왜냐하면 그 연대가 1000년 이상 앞서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가는 거대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니. 그런데 80년대 후반 이후로 지금 여기 여러분들 보이는 그 요하 일대에서 요하
일대에서 그 하모도보다 훨씬 앞서있는 하모도보다도 1500년 이상이 앞섭니다.
제 사진자료 보여드릴께요.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새로운 신석기 문명이 발견되면서 중원문화의
시작을 글로(그리로) 보는 겁니다.
중원문화의 탐원이 근원이 어디냐? 글로 가는겁니다. 그래서 요하문명론이라는게 나오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 지역은 장성 밖에 있는 그 지역은 다 뭐 오랑캐의 땅이었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북적의 땅이었고, 기존의 모든 역사서에서는 거길 전부 예맥이 주도하는 야만인의 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발굴하고 보니까 어마어마한 유적이 나오는 거예요. 제가 자료 보여드리겠다고 했지만.
그러니까 만약에 황하보다도 앞서고 장강보다도 앞서는 요하지역을 한민족과 바로 연결되는
예맥의 문화권으로 인정을 해버리면 중원문화가 떨거진 문화가 되는 거예요. 무슨 소린지 아세요?
그래서 그걸 어거지로 중국으로 중국걸로 만들기 위해서 동이 서용 이런 말들 다 없앤겁니다.
다 그게 중화민족이다 이거야.
그래서 황제의 영역을 옛날에는 그 여러분들 중국사를 보신분들은 알겠지만은 황제가 신화시대
황제가 활동하던 영역을 북경을 중심으로 해서 장성 넘어는 없었어요. 북경을 중심으로 한 장성부근.
그게 황제의 고유 영역이였는데, 이 영역은 그냥 황제의 영역을 동북 만주 전체로 확대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게 정사 기록에 그런 기록이 있겠어요? 지금 어떤 논리를 가지고 그걸 합리화 시키냐면
「산해경」을 끌어들여요.
「산해경」여러분「산해경」어떤 책인지 아십니까?
그거 신화 학자들이나 보는거지 뭐 이런거예요.
예를 들면 어디에서 300키로를 가면 무슨 나라가 있는데 거기는 뿔이 10개 달린 꼬리는 뭐 말이고
뭐 이런게 지배하고 이런 거야. 정사기록도 아닐뿐더러 역사학이라고도 하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그게 신화기록이고. 뭔지도 성격도 모르는 그 책을 인용을 해요. 역사학자들이. 걔네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겠어요. 정사기록에서 그걸 합리화 시키려니까 안되거든.
근데 그걸 예맥쪽으로 그냥 놔둬버리면 중원문화가 완전히 그 문화에 떨거지가 돼요.
왜냐하면 요하에서 남하한 세력들이 만든게 상문명이란 말이예요. 동이의 일파들이 내려오면서.
그거는 지금은 중국학자들이 거의 주류에요.
한 30년 전 만해도 부산현(?)이라던지 몇몇 학자들이 제기한거였지만 그때만 해도 그걸 잘 인정하지
않으려 했어요. 왜냐하면 그 상이 내려왔다는 발해만 요하유역이 아직도 그 때만 해도 저런
어마어마한 문명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야만인들이 내려와서 상을 만들었다? 이게 도대체 해석이
안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왜 주류가 되어있어요. 그니까 거기서 내려온 아이들이 상문명을 만들고 중원문명을
주도했다고 그러면 자기네들이 반계문화가 된단 말이예요. 그래서 요하문명을 새롭게 논리를
만드는 겁니다.
"한반도를 염두해 둔 다양한 역사관련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그 다음에 우리 동북공정 관련해서 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른 역사관련 작업들도 이미 있었다는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고구려 왜곡하기 위해서 동북공정을 딱 터트린게 아니라는 거죠.
첫번째는 귀근원과 중화삼조당이예요.
이거 글자 그대로 귀근원이란 말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정원 그런 뜻이예요. 중화민족의 근본으로
돌아간다 그거예요. 그리고 중화삼조당은 글자 그대로 중국 중화민족의 3명의 조상을 모신
사당이란 뜻이예요.
근데 여러분들도 중국의 고서 같은걸 읽어보면 중국민족들은 중화민족의 시원을 어디로 잡냐하면
대부분 자기네들을 염황지손 이렇게 불러요. 염제와 황제의 후손이다 이런 말이예요.
그리고 그 염제와 황제와 동아시아 최초의 대 전쟁을 벌인 세력이 치우세력인데 그 치우는 관심도
없었어요. 여지껏. 그리고 치우는 역사 기록을 보면 항상 그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와 염제에
대들은 야만족의 수장이란 말이예요. 동이의 수장 그런 얘긴 별로 안나와요. 환단고기에나 나오지.
중국의 역사에는 전부 묘만족의 수장이란 말이예요. 하여간 치우는 관심도 없었어요.
아주 자기네 선조에 대들은 아주 기분 나쁜 야만인들의 수장이었는데, 여러분을 아는 것처럼
80년대 이후에 한반도쪽에서 남북한을 포함해서 재야사서쪽이 나오면서 치우가 막 부각되기
시작해요. 14대 자오지 천왕이었다. 그것부터 시작해서 우리 뭐 그 2002년 월드컵 할 때는
붉은 악마의 상징도 치우라고 그러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게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북한에도 그래요. 93년에 단군릉을 복원하면서 단군릉을
어마어마하게 지어놨잖아요. 피라밋 식으로. 사방에는 비파형 단검을 세워놨습니다.
그리고 앞에 문인석과 무인석에 있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그게 전부 환단고기에 나오는
태자부루부터 시작해 가지고 그 환단고기의 인물들을 여섯명씩 쫙 배열을 해 놓은 거예요.
그쪽에서도 그걸 적극적으로 환영해요. 주체라는 이름으로.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막 치우를
높이니까 가만 놔두면 안되겠거든. 그러니까 여지것 자기네 선조와 전혀 상관없는 버르장머리
없는 야만의 수장을 자기 민족의 시조의 한명을 끌어 앉는 거예요.
그걸 언제 작업을 했냐 하면 92년에 시작을 해요. 92년이 언제냐면 한중 수교를 새롭게
시작하는 거예요. 한중 수교를 딱 하는 그 해부터 중화삼조당을 짓는단 말이예요.
이게 그 기록이 있단 말이예요. 이게 지금 제가 보여드리는 이 사진자료는 옛날 문헌에 나오는
탁록현 그 우리가 탁록대전이라 그러거든요. 황제와 싸운. 탁록현에 유적지들에 지도예요.
가운데 보이는 이 사당이 이게 황제 사당이고 요 밑에 성이 있고 이런게 치우성 치우관련
유적지예요. 지금도 가면 치우송, 치우우물, 치우천이 다 있어요. 여기도 황제송이 남아있고
황제천이 남아있고 다 있어요. 이걸 기본으로 해서 다시 삼조당을 복원을 하는겁니다. 기록이 있고.
탁록현이 어디냐 하면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한 4시간 정도 가요. 서북쪽으로. 거기에 가면
이 귀근원이 정문 사진인데 여러분 보면 어마어마하게 크죠? 여기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지
손잡고 있는데 남자가 남자인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그 크기하고 요 사람들 크기하고 글자
크기하고 비율을 해 보세요. 글자 하나가 3m, 막 4m 이렇게 되는거예요. 그거 담장 높이가 한
10m 이상 되는거죠. 어마어마하게 커놔요 하여간.
그리고 저 안에 건물 하나 보이죠? 요게 중화삼조당인데 거기까지 300m에요. 300m를 걸어가야 돼.
3000m갈려면 뭐 옆에 볼거리를 만들어 놔야지 아무것도 없어. 그냥 길만 쫙 300m를 걸어가야 저길 가.
저길 들어가면 삼조당 안에 모셔져 있어요. 여기 가운데가 황제고 염제고 여기가 치웁니다.
요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즉 치우와 염제가 싸운 판천대전, 그 다음에 치우한테
염제가 지니까 염제가 황제족에 구원을 요청해서 염황세력과 치우가 싸운 탁록대전,
그것을 그림으로 벽화로 그러놨는데 여러분들 치우는 고대 역사서에 치우는 항상 동두철액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즉 동으로 투구를 만들고 절로 가면을 만들어 썼다 뭐 그렇게 다 해석을
하는데 그니까 무슨 얘기냐면 그 황제나 염제족보다 가장 앞서서 청동기 문명을 들고온 세력집단들
이예요. 근데 벽화를 보면 저 뭐야 치우는 돌도끼들고 표범가죽 입고 워워워 거리고 원시인으로 그려
있고 황제족은 완전히 면복까지 다 입고 그렇게 그려 있어요.
그 다음에 웅녀. 여러분들 우리나라 단군신화의 구조를 보면 호랑이족과 웅녀족이 만주의
토착세력입니다. 그죠? 그리고 환웅족이 어디선지 모르지만 와요. 그래서 그 두 세력이 만나서
단군을 낳아요. 그니까 중국에서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는 그니까 지금 현제 중국안에 있는 모든
소수민족과 역사는 중국사라는게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인데, 그 시각에서 보면 호랑이족 웅족은
중국민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웅족의 대표인 웅녀를 동상을 만들어 놨어요. 높이가 18m예요.
여러분들 대한민국에서 단군상을 세워도 목을 자르는 판인데, 웅녀 나는 그림도 본적이 없어요.
웅녀가 그냥 신화에만 있지 웅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형상화 한다는게 힘들잖아요. 그죠?
동상은 더더군다나 본적도 없고. 지금 중국에서 그걸 해 놨어요 이미.
자 여기가 만천성국가살림공원인데 여기가 연변 자치주 안에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여기
잘록한 여기에 댐을 만들면서 인공호수가 만들어 진거예요. 인공호수 한가운데 섬이 있죠?
요 섬을 들어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고 10분, 15분 이렇게 가는데 그 배에서 선녀봉이랑 선녀봉,
섬의 꼭대기 이름이 선녀봉인데, 선녀봉 올라갈라면 이렇게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 위에도
웅녀와 곰과 호랑이가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새발의 피죠. 한 2m뿐이 안돼요. 2m도 사실 큰거지만. 중간에 선녀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러분 자료에도 있죠 이거는. 선녀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요 꼭대기에 인제
웅녀를 세워 놨는데 가는 길에 뭘 해놨냐면 여러분들 웅녀가 되기 전에 뭐였어요? 곰이였잖아요.
그죠? 그래서 곰 조각을 해놨어요. 그리고 요 앞에 마늘입니다. 파랗게 있는게 요게 쑥입니다.
마늘 한 쪽이 높이가 한 50cm돼요. 요렇게 그려 놨어요. 이걸 거쳐서 꼭대기에 가면 웅녀상이
세워져 있어요. 이게 높이가 18m고 무게가 520t입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멀리서
무슨 약사보살인줄 알아요. 그런데 여기 손에 있는게 뭔지 아세요? 마늘입니다 마늘.
손에 들고있는게 마늘이예요. 그리고 요쪽 왼손에 들고 있는건 쑥, 이렇게 그려놨어요.
그리고 이거를 한민족의 시조 웅녀 이렇게 소개하는게 아니라 중화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 백의신녀 이렇게 설명해 놔요. 웅녀 그러면 뭔가 한국 떠오르니까
백의신녀라고 소개해 놨어요.
이거 해놨어요 다. 여기다가 이제 요하문명 완성되면 단군 옆에다가 엄마 아들이니까
단군 딱 세워놓고 단군도 황제의 후손이다 이렇게 갈껍니다 분명히. 지금은 여기다
단군 세워놓고 중화민족의 그 일원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사람들 머리 다 돌죠.
아직은 거기까지 안해놨어. 근데 웅녀상은 다 해놨다 이거예요.
치우도 다 끌어 안았고.
그런 작업을 이미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92년부터 삼조당 짓기 시작하고 이건 2001년에 세운 거예요.
이런 것들을 전체적인 네트웍을 시켜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데 역사학만 하는
사람들 이런게 안보이는 거예요.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자 그래서 동북공정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된다. 우리는 왜 자꾸 동북공정이라는걸 동북지역에
역사 왜곡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다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요하문명론’ 이런게 어떻게 엮이는지가 머리에 안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껏 국가에서 대응책을 만든다고 한게「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드는 걸로
끝난다 이말이예요.
고구려만 연구하면 해석 됩니까 이게? 해결책이 나옵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 고구려 공정은 우리가 아는 서북공정이나 서남공정과 다 링크가 되어 있어요.
중국에 최고 지도부가 항상 콤플랙스가 있어요. 아까 말씀하신데로 물 다스리는 문제하고
또 하나는 분열에 대한 두려움 이예요. 그 분열에 대한 두려움은 역대, 지금 공산화 이후
그 이전에 고대시절부터 중국 최고 통치 통치자들의 최고의 고민거리예요.
근데 지금 중국에서 분열될 수 있는 가능성 지역이 크게 3군데예요. 여러분들 알고 있는 티벳 지역은
이미 독립운동 하다가 망명정부까지 있잖아요. 그죠? 달라이 라마에 망명 정부가 있어요.
그거를 중국역사가 다 끌어안기 위해서 만든게 서남공정이에요. 중국에 서남족이다 이거예요.
이것도 다 시작 했어요.
그리고 또 한군데가 어디냐하면 위구르 지역. 그 서북공정이라고 그래요. 서북쪽은 여러분들
아는 것처럼 거기 여행을 가보면 거기 인종이 다릅니다. 인종이 달라요. 종교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생긴거 눈도 파랗고 생긴게 다 달라요. 그러니까 걔네들은 우리는 보도가 잘 안됩니다.
지하에서 아직도 무장투쟁을 합니다. 그쪽이. 보도가 다 안돼서 그렇지. 거기도 분리독립 무장투쟁을
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 다음에 한 곳이 동북지역이죠. 동북지역 다른 소수민족들은 국가를 건설한데가 별로 없어요.
다 옛날부터 통합이 되가지고. 만주족 얘네들은 중국에 주민등록증 보면 주민등록증 같은 증이
있는데 거기에보면 자기 민족이 다 표기가 되어 있어요. 한족, 만주족 이게 다 써 있어요. 조선족은
조선족 선족 이렇게 써 있어요. 그런데 만주족들은 이미 그 거대한 청나라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말도 다 잊어버렸어요. 거의 다 동화가 되어버렸어요. 다른 소수민족도 대부분 그래요.
근데 동북지역에 주도세력인 조선족들은 옆에 독립국가가 있단 말이예요. 북한 남한을 포함한
독립 국가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들 아는 것처럼 탈북문제가 막 심각하게 되면서 통일
이후를 대비를 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런 문제들을 염두해서 마지막으로 걱정되는 지역이
동북이예요. 그게 동북공정이에요. 고구려 역사 왜곡 그게 문제 그게 몸통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니까 동북공정을 안정화시킬라면 어떻게 해야되냐? 걔네들 서북공정 서남공정할 때 로직이
뭐였냐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기반으로 해서 그 지역에 너네 선조 선조 선조 역사이래로
중화민족이었다는 논리를 만드는 거예요. 서남공정도 그랬고 서북공정도 그랬어요. 동북공정도
마찬가지예요. 고구려가 중국꺼다 그게 아니라 그 지역에 모든 소수민족과 이런 역사들은
아주 옛날부터 다 중화민족이었다 그 얘기를 만들고 싶은거야.
예를 들면 고구려가 여러분들 702년 동안 독립국가를 유지하는데 702년 동안 중원에서는
34개 왕조가 멸망을 합니다. 34개 왕조가. 우리 민족 참 이상한 민족이야. 한번 나라가 만들어
지면 기본이 500년이죠. 신라는 1000년 가까이 갔고. 고구려도 거의 500년 넘죠.
고구려 아 그니까 고려도 조선도 600년이라 그러고.
중국에는요 20년 짜리가 무진장 많아요. 20년짜리가 무진장 많습니다. 그니까 고구려가
하나가 단독국가로 있는 사이 34개가 바꿔요. 중원에서는. 그래도 조공했다 그러잖아요.
그니까 이런 식의 시각으로 보니까 지금 동북공정을 이렇게 보니까 전체적인 틀에서
안보이는거예요. 전체적으로 안보이면 대책도 단말마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어요.
백두산공정 그러니까 또 막 떠들다가 또 잠잠하죠. 이건 계속 나온단 말이예요.
전체적으로 못보게.
그래서 이제 바꾸자 이거예요. 보는 시각들을 이제.
21세기를 향한 중국의 국가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이런 것들이 다 엮여 있단 거예요.
역사 관련 공정들은 ‘탐원공정’과 ‘하상주단대공정’, 그리고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 다 연대되면서
최종판으로 만들어지는게 ‘요하문명론’ 이라는 거예요.
아직은 요하문명론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예요.
정말 몸통은 저는 이거라고 보고 있어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우리의 대응"
중국의 동북공정 이 마무리되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동북공정 으로
중국은 이제 단군조선은 물론, 고구려, 대진국(발해)의 역사까지도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마무리한 셈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대책을 얼마나 세우고 있을까.
지난 2월 21일, 증산도사상연구소에서는 한국 고대사 연구가인 최강식 교수를 초청,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우리의 대응’ 이라는 주제로 콜로키움을 열었다. 이날 강의를 통해
중국의 우리 역사왜곡의 실상과 의도를 파악하면서, 과거사를 넘어 우리의 영토와 미래까지도
걸린 동북공정 의 심각성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중국의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
동북공정 의 세 가지 내용 : 역사, 지리, 현상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얘기한 것은 이미 1980년대부터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개인적인 차원이었죠. 그러다 1990년대 와서는 지방정부차원에서
그런 주장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최근에 동북공정 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금은
중앙정부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이라 해서
고구려 역사는 중국사도 될 수 있고, 한국사도 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지금은 전부 중국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동북공정 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동북공정 이란 중국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의 동북3성에 대한 공정, 즉 프로젝트 입니다.
쉽게 만주프로젝트라고 이해하면 돼요. 동북아공정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역사뿐 아니라
지리, 현상 세 가지가 포함되는데 지금 우리와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입니다.
이 지역에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우리 한민족의 뿌리 역사가 있었죠. 그리고 지리는
결국 국경, 영토문제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현상은 민족문제입니다. 여기에는 민족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문제가 연결됩니다.
중국은 동북공정 에 대해 한국에서 항의가 일자 ‘동북지방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프로젝트인데
왜 한국이 내정간섭을 하느냐.’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동북공정 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 ‘ 동북공정 을 그만해라’고 해선 안 되고,
동북공정 의 ‘역사, 지리, 현상’ 문제 중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동북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문제가 다 걸리기 때문에 동북아 문제와도 관련이
없는 건 아닙니다.
서남공정(티베트 공정)
중국이 이 공정을 하는 의도는 무엇이냐? 이것을 알려면 이미 했던 ‘서남공정’(티베트 공정)을
살펴보면 동북공정 이 노리는 게 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서남공정은 1986년에 시작했어요.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듬해 50년에 티베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합니다. 그리고 1959년에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어요.
그때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했어요. 티베트 라마승들이 반정부 항의를 했죠. 그래서 중국이
티베트를 중국화 해야겠다며 시작한 것이 ‘서남공정’입니다.
중국은 티베트의 역사, 지리, 현상을 연구한 끝에 티베트를 관광지화함으로써 중국화 해야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을 전부 관광사업에 종사하게 하고 중국의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 호텔이나 큰 업소를 만들고 한족을 이주시킵니다. 차츰 티베트인들의 비율을 낮추고
한족의 비율을 높였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에 갈 수 있도록 철도를 개설해요.
그래서 작년 7월 1일에 북경에서 라싸까지 칭짱철도가 개통되었어요.
결국 1986년에 서남공정을 시작해서 2006년에 칭짱철도가 놓여진 것입니다. 이것이
서남공정의 끝이라 할 수 있죠. 쉽게 얘기해서 티베트가 중국화된 것입니다.
이 서남공정에 대해 알아야 동북공정 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어요. 단지 역사문제만이 아니죠.
서남공정이나 동북공정 은 중국 영토 안에 있는 소수민족을 완전 중국화하는 기본적인 전략과
맞물려 있습니다.
중국 “우리는 통일적다민족국가”
비롯됩니다. 중국은 1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국가입니다. 한족, 조선족,
티베트족 등등. 이 족속들을 하나로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여러 민족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이다’ 소위 말하는 상상의 공동체, ‘중화민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화민국’이라는 건 존재할 수 있어도 ‘중화민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혈통과 문화가
다른데 하나의 민족으로 묶을 수는 없는 거죠. 근데 중국은 이런 논리 위에서 한족뿐만
아니라 55개 소수민족의 역사도 다 중국사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일 먼저 문제가 된 것이 몽골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원나라 역사에
대해 배웠어요. 원나라 역사를 중국사라고 배웠죠. 근데 원나라 역사가 중국사가 맞는 거예요?
원나라를 세운 사람이 칭기즈 칸입니다. 칭기즈 칸은 몽골사람이잖아요. 그건 마치 주몽,
광개토태왕이 중국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예요.
원나라를 중국사라고 하는 건 몽골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그래서
중국이 이걸 어떻게 피해 가냐. ‘일사양용론’으로 풀어요. 원나라 역사는 중국사도 될 수
있고 몽골사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몽골이 중국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중국땅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은 영토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데 몽골의
입장에서는 혈통을 가지고 얘기합니다. 몽골족의 역사니까 몽골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고구려사도 얘기합니다. 고구려가 만주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만주가
지금 중국 땅이다. 그러니까 그건 중국의 역사다’ 이렇게 주장하는 거예요.
우리는 고구려는 예맥족이니까 혈통의 입장에서 우리 역사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원나라 역사도 일사양용론으로 고구려 역사도 일사양용론으로
얘기합니다.
고구려 역사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기준으로 그 북쪽, 즉 집안이나 환인에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을 때는 중국사고,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는 한국사다. 이렇게 주장했어요.
하여튼 자기들 딴에는 중국은 영토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그런데 지금 더욱 큰 문제는 중국이 ‘평양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도 전부 중국사다’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정한론을 내세우는 명분이 ‘임나일본부설’을 바탕으로 하듯이,
중국이 평양천도 이후 고구려가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이
바로 우리의 과거 역사 속에 우리 땅 우리의 지방정권이다’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거죠.
따라서 앞으로 북한에 어떤 정치적인 변화가 있다든지 북한체제가 붕괴된다든지 할 때
중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명분, 역사적인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중앙정부가 개입돼서 동북공정 을 하고 있으니 이것은 학술적 차원을 넘어 정치 외교적으로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라 주장하는 근거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첫째, 고구려의 건국자 주몽은 한족이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고구려
건국자가 주몽인데, 주몽이 한족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뭐냐? 주몽의 성이 고씨입니다.
기원전 10세기에 산동지역에 ‘고의족’이라고 있었습니다. 또 기원전 2,500년 전에 전설적인
인물 ‘고양씨’라고 있었어요. 이 고양씨, 고의족을 고주몽과 연결시키는 거죠. 그래서 결국
주몽은 한족이라는 거예요. 근데 주몽이 고씨입니까? 주몽의 성은 원래 해(解)씨죠. 태양,
sun. 해모수, 해부루, 주몽은 성이 해씨예요. 그러니 전혀 안 맞는 얘기예요.
- 둘째,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
책봉을 받았다. 이것은 사료에 나오는 부분이죠. 그러니까 중국이 이걸 가지고 조공을
갖다 바쳤으니 복속국이고, 왕으로 책봉받았으니 제후국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과거에는 조공과 책봉을 그렇게 종주국과 복속국 관계로 해석했었죠. 그런데 근대
역사학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일종의 무역관계로 봅니다. 조공갈 때 조공품을
그냥 갖다 바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사품을 받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같이 이뤄진다는 거죠. 하사품이 조공품보다 훨씬 많아요. 조공갈 때 조공사신만 가는 게
아니라 상인들도 따라가면서 무역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이걸 관무역 공무역이라고
얘기합니다.
조공도 고구려하고만 맺은 것이 아니라 중국과 주변에 있는 나라들은 거의 다 조공과
책봉관계를 맺습니다. 다만 중국이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죠. 그래서 지금은
조공과 책봉을 동아시아의 고전적인 국제질서, 혹은 하나의 외교적인 형식, 동아시아 지
역 네트워킹이라고 봅니다. 만약 조공이 복속국과 종주국과의 관계라면 고구려만이 아니라
주변 나라들이 모두 지방정권이라고 해야 되는데, 중국은 고구려만 그렇다는 거예요.
그리고 고구려가 B.C.37년∼A.D.668년까지 705년 동안 존속했는데 이 사이에 중국은
수십 개의 왕조가 흥망했어요. 또 남북조 시대에는 고구려는 북쪽하고도 조공책봉
관계를 맺고, 남쪽하고도 조공책봉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면 고구려는 북조의
지방정권이면서 남조의 지방정권도 된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성립하기가
어려운 얘기입니다.
또 하나는 고수, 고당전쟁을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내전이라고 주장합니다. 고대에는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국경점이 있죠.
성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랐지 선을 긋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개소문이 이런 성들을
연결시켰습니다. 이게 천리장성이예요. 이건 국경선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를 구분
짓는 국경선이죠. 지방정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셋째, 고구려인들은 한족화 됐다?
다음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인들 대부분이 한족화 됐다고 주장합니다. 고구려는 결국 당나라로
승계됐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화 된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고구려가 멸망하고 지배층이나
사람들이 많이 붙잡혀간 건 사실이에요. 인구의 한 5분의 1은 당나라로 붙잡혀 가고, 5분의 1은
신라나 돌궐로 갔습니다. 그리고 5분의 3은 남아있습니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누구냐?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 남아있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인들이 다 한족화됐다는 것은 성립하기가 어렵습니다.
- 넷째, 고구려와 고려는 계승성이 없다?
또 중국의 억지주장 중 하나가 고구려와 고려는 계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구려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려면 고구려와 고려를 떼어내야 돼요. 떼어내려니까 고구려는
고씨고 고려는 왕씨니 계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을 보세요. 송나라는 한족이죠, 요나라는 거란족이죠. 금은 여진족,
원은 몽골족, 명은 다시 한족이었다가 청나라는 만주족. 중국은 전부 족속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자기네 논리대로 하면 중국은 역사가 하나도 계승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250년이 지난 다음 건국됐기 때문에 계승성이 없다고
그러는데 충주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를 보면, 거기에 ‘고구려’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그 비에는 고구려왕을 ‘고려태왕’ 이라고 써놨어요. ‘고구려태왕’이라고 안 했어요.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고려’라고 했어요.
만약 고구려가 한국사가 아니라면, 그 앞에 고조선도 아닐 거고 고구려를 계승하는
발해도 우리 역사가 아니고. 그럼 우리 역사는 신라와 백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시간적으로는 5천년이 아니라 2천년 밖에 안 돼요. 영역도 만주와 한반도가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대동강이나 한강이남이죠. 그야말로 우리 역사의 근본 체제를 흔들리고
우리의 아이덴터디(identity,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건 엄청난 것입니다.
고구려가 한국사인 이유
그러면 우리는 고구려를 한국 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뭐냐? 많죠.
- 첫째, 중국사에 고구려는 「동이전」에 포함되어 있다
고구려사가 중국 사서에 처음 나타나는 것이 『삼국지 위지동이전』입니다. 중국은
자기들 역사는 ‘서’라든지 ‘본기’라든지 해서 입전합니다. 반면 다른 나라 역사는
열전에다 집어넣어요. 따라서 <동이전>이라는 것은 타자입니다. 그건 우리 역사가 아니다.
외국사라는 거죠.
- 둘째, 고구려·백제·신라를 해동삼국이라고 불렀다
부릅니다. 바다 동쪽의 세 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는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혈연적으로
문화적으로 한 세트다 이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만약 고구려는 중국사고, 백제 신라는
한국사면 해동이국이라든지 해동양국이라든지 이렇게 표현했어야 했습니다. 바다라는
것이 자기 나라와 남의 나라를 구분해주는 경계입니다. 그냥 자연의 바다가 아닙니다.
- 셋째, 천자만이 천제를 지낸다
전부 제천행사예요. 그러면 하늘에 제사는 누가 지내는 거냐. 천자만 지내죠. 제후는
못 지내요.
근데 우리 고구려·백제·신라에는 모두 제천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 온돌이라든지
적석총이 한족문화에는 없습니다. 이건 우리 문화와 계승성이 있는 거죠.
등등 이런 문화적인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 넷째,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
내가 누구의 후손이냐를 알아보려면 개인적으로는 족보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족보는 나라로 치면 역사입니다. 또 설날에 조상님한테 제사 지내려고 고향에 갑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제사 지내느냐, 또는 누가 제사를 지내느냐를 보면
서로의 관계를 알 수 있어요.
고구려가 중국 역사냐, 한국 역사냐를 구분할 수 있는 아주 근본적인 방법이 있어요.
역사는 결국 기억하는 자의 것입니다. 주몽이 내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느 쪽에 있느냐? 즉, 한족이 주몽을 자기 조상이라고 생각하고 제사 지내고 사당을
만들었다면 고주몽은 중국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중국역사기록이나 중국에서 주몽을 위해서 무슨 사당을 만들었다든지 하는
것이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고구려에 주몽사가 있고, 백제에 동명묘가 있고,
고려 때도 주몽사가 있어요. 조선시대에도 있어요. 이게 결정적인 근거예요.
따라서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학술적으로 주장하는 면에선 우리가
사실 별로 크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여태까진 그랬는데 인제 중국은
부랴부랴 주몽사당을 만들고 제사도 지낼 겁니다. 그러면 복잡해지는 거예요.
중국 교과서 왜곡의 심각성
그런데 제일 중요한 문제는 뭐냐? 교과서입니다. 동북공정 이 2002년부터 시작됐는데,
2001년에 중국에서 나온 역사교과서를 보면 고구려가 세계사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국사가 아니라 한국사라는 거죠. 근데 동북공정 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항의를 하니
그 내용을 빼버렸어요. 근데 고구려가 다시 중국사 교과서에 들어가면 문제가 됩니다.
중국사 역사교과서에 고구려가 들어가면 학생들은 ‘고구려는 중국사다’ 이렇게 배웁니다.
그러면 그들의 기억에는 고구려가 중국사가 되는 거죠.
앞으로 중국은 주몽사당도 여러 군데 지을 겁니다. 지어놓고는 이게 우리 꺼다 하겠죠.
여태까지는 주몽과 고구려를 우리가 쭉 기억해오고 남겼는데, 이제부터 중국이 그렇게
한단 말이죠. 그럼 처음에는 웃긴다 하지만 10년 20년이 지나면 그들 역사로 자리잡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응
외국에 올바른 역사를 알리자
동북공정 은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요. 역사왜곡의 문제만이 아니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만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 고구려사를 외국에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어로 된 역사책을 보면 임나일본부가 나오기도 하고, 고구려나 발해는 벌써
중국사로 되어 있어요. 제가 작년에 하버드 엔칭 도서관에 가봤는데, 한국역사책이
따로 있는데도 다른 책에선 고구려는 한국사로 되어 있는데 발해는 중국사로 되어
있어요. 다른 데 가보면 고구려도 이미 중국사로 되어 있는 곳도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연구하고 주장해도 그것이 외국어로 외국사람한테 어떻게 알려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자
그럽니다. “아, 교수님. 지금 우리가 중국 때문에 먹고사는데 중국한테 너무 그러면
안 됩니다. 역사야 옛날이야기고 앞으로 우리가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한데, 그까짓 거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예요.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다 뺏기는 거죠. 그런데 고구려 문제는 과거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북한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온다면, 이건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에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국민들 또는 지도층 인사들이 올바로 알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006년 11월 13일 증산도 사상연구소 콜로키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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