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3. 19:04ㆍ책 · 펌글 · 자료/종교
영원에서 영원으로 불필스님 회고록
저자불필 출판김영사 | 2012.9.21. 페이지수396 | 사이즈 152*216mm판매가서적 12,600원 e북 8,820원
책소개
불필 스님의 회고록『영원에서 영원으로』.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딸이며 제자인 저자가 처음 밝히는 큰스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중한 인연으로 딸로 태어났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했고, 열여덟 살에 안정사 천제굴에서 뵌 순간부터 저자에겐 아버지가 아닌 스승이었던 성철스님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오롯이 전하고 있다.
성철스님의 가족사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선지식들의 수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도의 길뿐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성철스님이 저자에게 일깨워준 지혜를 들려준다. 제자들을 뜨겁게 품은 은사 인홍스님부터 온 대중들을 감화시킨 큰스님들의 법거량까지 담아 한국불교 100년의 역사와 치열하게 수행하는 스님들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불필 승려
1937년 지리산 자락 아름다운 경호강 굽이에 안겨 있는 묵곡리에서 성철스님의 딸로 태어났다. 봄이면 뒷동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꺾고, 여름이면 맑은 개울에서 물장난을 치고, 가을이면 밤나무 숲에 들어가 친구들과 알밤을 줍는 천진무구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갑작스럽게 언니의 죽음을 맞았다. 이후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중 아버지 성철스님으로부터 영원한 행복의 길에 대한 말씀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
1956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성철스님이 직접 쓰신 법문 노트를 받아 수행의 지침서로 삼았다. 1957년 가지산 호랑이라 불리던 인홍스님을 은사로 석남사에서 출가하여,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1961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석남사 심검당에서 100일 동안 눕지 않는 장좌불와를 한 끝에 3년 결사를 회향했다. 출가 이후 자유로운 운수납자(雲水衲子)로 해인사 청량사, 태백산 홍제사,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묘적암, 해인사 국일암, 지리산 도솔암, 대원사, 오대산 지장암 등 제방선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1993년 성철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지금까지 석남사 심검당에서 수행 정진하고 있다.
목차
성철스님 출가시 ─ 나 홀로 만고의 진리를 향해
책을 펴내며 ─ 어디로 가고 있는가
1장 인연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나의 고향 묵곡리
아버지 성철스님을 처음 만나다
생명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 전쟁의 체험
2장 출가 :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 행복
“영원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출가 전야
할머니의 성스러운 모정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꿈
3장 친필 법문 노트 : 자기가 본래 부처이거늘 그것을 모르니
수행자는 가난부터 배워야
큰스님께서 써주신 수행자 교과서
수도팔계, 희생에서 고행까지
4장 행자 시절 : 단발머리 행자들의 초발심
내일은 없다
상기가 나다
“아만이 센 공양주야!”
토굴가와 순치황제 출가시
꿈속에서도 화두가 성성하면
깨달음의 노래
이성을 경계하라
5장 석남사 : 가지산 호랑이를 은사로 모시다
하필과 불필
정진도량으로 찾아가다
온 대중이 놀란 큰스님들의 법거량
100명이 함께하는 발우공양
3천 배 수행으로 친구의 불치병을 치유하다
절구통 수좌가 졸지 않는 비결
삼칠일 기도로 살려낸 은사 스님
어머니, 일휴스님이 되시다
6장 수행 : 영원한 대자유인의 길을 찾아서
10년의 침묵을 깨고 사자후를 토하시다
사력을 다한 심검당 3년 결사
용맹정진, 의자에 기대서도 안 된다
화합을 위한 소임살이
어른 스님들의 천진한 동심
가지산 여름 꽃에 취하다
7장 해인사 : 지혜와 자비의 도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큰스님의 편지
출가 풍경
절하다 죽는 사람은 없다
가족이 함께하는 수행
8장 영원한 시간들
열반의 종소리
나의 원력은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시공을 떠난 곳 겁외사
1997년 음력 3월 꽃피는 봄날
영원에서 영원으로
여기에 큰스님의 시비를 세웁니다
책 속으로
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대자유인의 길을 이끌어주신 성철 큰스님.
나는 지중한 인연으로 큰스님의 딸로 태어났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안정사 천제굴에서 뵌 순간부터 큰스님은 내게 아버지가 아니라 스승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주변 분들은 나를 큰스님의 딸로서만 바라보는 듯하다.
나는 큰스님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큰스님 영결식과 연화대 다비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다비식 날 늦은 오후에야 금강굴 위 다비장에서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절을 올릴 수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해 다시 만나 뵐 것을 약속하는 아홉 번의 절이었다.
-〈책을 펴내며 :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묘관음사 입구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질 무렵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산기슭을 따라 한참 올라갔더니 우둘두둘 무섭게 생긴 스님이 보였다. 상상 속에 그려왔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의 도반인 향곡스님이었다. …… 아버지 큰스님은 아마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어디론가 피해 계셨던 것 같다. 조금 있다가 향곡스님과 함께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친, 눈이 부리부리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마음속으로 ‘저 분인가?’ 하는 순간, 그분이 소리를 크게 질렀다.
“가라, 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삼촌의 손을 꼭 잡고 돌아서버렸다.
“집에 가자, 삼촌!”
-〈아버지 성철스님을 처음 만나다〉 중에서
한번은 큰스님이 계신 범어사 원효암으로 찾아갔더니 동화사 금당선원에 있다가 은혜사, 운부암을 거쳐 금강산으로 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큰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에서 정진했던 해가 1940년이었으니 출가한 지 4년쯤 지났을 때였다. 할머니가 천리 길을 물어물어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 금강산 마하연까지 찾아갔는데 큰스님은 “이렇게 먼 길을 왜 오셨소!” 하고 고함부터 치며 냉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아니, 난 니를 보러 오지 않았다. 하도 금강산이 좋다고 해서 금강산 구경하러 왔제”라고 했다. 이 대답에 큰스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요즘처럼 교통편이 좋은 때도 아닌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시절, 그 먼 길을 찾아온 어머니와 그분을 마주한 아들의 기막힌 심정은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할머니의 성스러운 모정〉 중에서
당시 성전암에는 행자 세 명이 큰스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었던 동업행자(천제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인기척이 나서 밖으로 나가보니 웬 젊은 부인이 스님 뵙기를 청해요. ‘큰스님께선 지금 아무도 안 만나주시니 그냥 돌아가주십시오’라고 했는데도 스님을 만나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요. 해질 무렵이 되자 그분이 어딜 갔는지 사라졌어요. 당연히 돌아갔나 보다 하고 저녁 공양을 마쳤죠. 공양이 끝나고 큰스님이 시자실로 오셔서 막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데, 우당탕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낮에 보았던 그분이 들이닥치는 거예요.”
“스님, 내가 할 말이 있어 왔소!”
…… 어머니가 쫓겨날 것을 뻔히 알면서 큰스님을 찾아간 것은 ‘그렇게 도가 좋으면 혼자 가면 되지 왜 하나밖에 없는 딸까지 데려가느냐? 딸만이라도 돌려주면 이 세상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볼 것이요’ 하고 담판을 짓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말 한 마디 꺼내보지 못하고 쫓겨났고 말았으니, 빈 걸음으로 돌아오던 그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꿈〉 중에서
지금 읽어봐도 큰스님의 법문은 명철하면서도 현대적인 언어로 쓰여 있어 귀에 쏙쏙 들어온다. 1950년대, 그러니까 큰스님의 연세 40대 중반에 작성하신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 내용이 일목요연하고, 문장 또한 군더더기 하나 없이 논리정연한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부처님께서 도를 깨치시고 처음으로 외치시되 “기이하고 기이하다. 모든 중생이 다, 항상 있어 없어지지 않는〔常住不滅〕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구나! 그것을 모르고 헛되이 헤매며 한없이 고생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 허망한 우리 인간에게 영원불멸의 생명체가 있음을 선언한 첫 소식이다. 그리하여 암흑 속에 잠겼던 모든 생명이 영원한 구제의 길을 얻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으랴. 억만 겁이 다하도록 예배드리며 공양 올리고 찬탄하자.
영원히 빛나는 이 생명체도, 도를 닦아 그 광명을 발하기 전에는 항상 어두움에 가리어서 전후가 캄캄하다. 그리하여 몸을 바꾸게 되면 전생(前生)일은 아주 잊어버리고 말아서, 참다운 생명이 연속하여 없어지지 않는 줄을 모른다.
-〈큰스님께서 써주신 수행자 교과서〉 중에서
또한 큰스님은 남을 돕는 일에 대해 이렇게 발원하게 하셨다.
시방세계에 항상 계시옵는 모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비옵나이다. / 아 거룩한 부처님이시여! /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불행의 근본이요 / 참다운 행복은 오직 나를 버리고 남을 돕는 데서 옴을 깨달았사오니 / 항상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오직 남을 위해 일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 영원한 행복을 받는 길로 이끌어주시옵소서. / 모든 중생들을 친함과 원수의 차별이 없이 / 다 부모나 부처님과 같이 정성을 다하여 섬겨 / 중생들에게 이익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힘을 다하여 돕겠나이다. / 아 부처님이시여! / 모든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지은 바 / 많은 죄악은 전부 제가 가지고 참회하겠사오며, / 모든 중생들이 죄악의 결과로써 받는 말할 수 없이 / 지극한 쓰라린 고통을 전부 제가 대신하여 받겠사오니 / 그 불쌍한 중생들이 모든 고통을 벗어나 / 모두들 다 같이 함께 다시는 위없는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여 주옵심을 빌고 빌어 마지 아니 하옵나이다. / 나무 석가모니불
-〈3천 배 수행으로 친구의 불치병을 치유하다〉 중에서(처음 발표되는 성철스님 법문)
출판사서평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 딸이며 제자인 불필스님이 처음 밝히는 큰스님 이야기!
처음으로 밝히는 성철스님의 가족사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선지식들의 수행까지, 제자들을 뜨겁게 품은 은사 인홍스님부터 온 대중들을 감화시킨 큰스님들의 법거량까지, 책갈피마다 한국불교의 역사가 은은하게 묻어나고 스님들의 아름다운 향기가 깊은 무늬로 아로새겨진다. 그동안 불필스님이 개인적으로 소장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성철스님의 법문과 편지, 사진 자료들이 실렸으며, 과거에 가필된 형태로 발표되었던 성철스님의 친필 법문 노트를 원문 그대로 담겼다. 불교 수행자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증도가〉, 〈신심명〉, 〈토굴가〉 등 여러 자료들을 채록해 실어 초심자들이 불교를 공부하는 지침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만고의 진리를 향해 나 홀로 걸어가노라!”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 딸이며 제자인 불필스님이 처음 밝히는 큰스님 이야기!
처음으로 밝히는 성철스님의 가족사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선지식들의 수행까지, 제자들을 뜨겁게 품은 은사 인홍스님부터 온 대중들을 감화시킨 큰스님들의 법거량까지, 책갈피마다 한국불교의 역사가 은은하게 묻어나고 스님들의 아름다운 향기가 깊은 무늬로 아로새겨지는 책이다.
성철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스님은 이 책에서 조부모님과 어머니 등 가슴 절절한 가족사에서 향곡스님, 법전스님, 인홍스님 같은 선승들의 성자 같은 삶, 봉암사 3년 결사에서 현재에 이르는 한국불교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다. 또한 그동안 개인적으로 소장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성철스님의 법문과 편지, 사진 자료들이 실었으며, 과거에 가필된 형태로 발표되었던 성철스님의 친필 법문 노트를 원문 그대로 담았다. 그리고 불교 수행자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증도가〉, 〈신심명〉, 〈토굴가〉 등 여러 자료들을 채록해 실어 초심자들이 불교를 공부하는 지침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불필스님은 지난 동안거 결제 한 철 동안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이 책을 썼다. 처음에는 산속에서 살아온 선승인 자신이 책을 내는 일이 옳은 일인가 싶어 여러 차례 출간 제안을 거절했지만, 아버지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큰스님의 법대로 석남사 대중들과 참되게 수행해온 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달라는 청을 차마 물리치지 못했다. 불필스님은 “이 책으로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한 사람이라도 영원한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감사할 뿐이다”라며 출간의 소회를 밝혔다.
가슴 먹먹해지는 가족 이야기에서 우리 시대 선지식들의 삶까지
이 책에서 성철스님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멀리 있어야 했던 불필스님의 눈을 통해 가장 철저했던 동시에 너무나 자비로웠던 참모습을 드러낸다. 성철스님이 머물던 해인사에 하루는 초로의 보살이 찾아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었다. 성철스님은 일단 보살에게 쌀을 ...가져다 밥을 지어 부처님 전에 올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자 이번에는 한 번에 3천 배 기도를 하고 가라고 명했다. 처음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고, 일이 끝나자 신심을 키울 수 있도록 더 큰 일을 시킨 것이었다. 보살은 3천 배를 다 마친 후 기다시피 하며 나왔지만, 이후에는 스스로 백련암에 찾아와 기도하게 되었다. 보살은 남들이 다 하는 능엄주를 하고 싶은데 한글을 읽을 줄 몰라 고민하다가, 시골집에서 동네 아이들을 불러 사탕을 사주면서 능엄주를 읽게 하고 한 줄 한 줄 외웠다고 한다.
성철스님을 한 번도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한 불필스님의 고백 또한 절절하다. 불필스님은 성철스님이 열반하신 후에도 영결식과 다비식에 나가지 못했다. 신문에서 불필스님의 이름에 담긴 뜻, 즉 ‘필요 없다〔不必〕’는 의미를 석가모니의 아들 라훌라(장애)와 비슷한 뜻으로 해석하여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불필스님은 다비식 날 늦은 오후 금강굴 위 다비장에서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절을 올렸다.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다 합해서 다시 만나 뵐 것을 약속하는 아홉 번의 절이었다. 불필스님은 “생사의 바다에서 마음의 눈을 바로 떠서, 영원한 대자유인으로서 성철스님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 책에는 인홍스님, 법전스님, 향곡스님, 묘엄스님, 법정스님 등 대가들의 성자 같은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 예로 11대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법전스님은 해인사에 있을 때 선방에 앉으면 미동도 하지 않아 ‘절구통 수좌’로 불렸다.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해인사 전통의 용맹정진 때도 유일하게 졸지 않은 사람이 법전스님이었다. 졸지 않는 비결을 묻는 후학들에게 법전스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화두 떨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하면, 졸 수 있는가?” 이처럼 철저한 정신과 수행이 법전스님을 우리 시대의 대승(大僧)으로 만들었다.
마음속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구가하는 듯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깊은 병이 들어 있다. 자신의 마음속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극이다. 불필스님은 책의 말미에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성철스님의 법어를 인용하면서 독자들에게 진정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은 본래 구원되어 있는 존재이며 이미 부처이다. 그러나 우리는 순금 같은 존재인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여 잡철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만약 욕심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자신을 바로 보고 깨달은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우리 곁에 왔던 부처 성철스님이 탄생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딸이며 제자인 불필스님의 떨리는 듯 생생한 육성을 들으며 큰스님의 삶과 유산에 대해 재음미해보자.
1
성철 스님 열반 후 '이영주 書籍記'가 발견되었는데, 스물한 살에 직접 정리한 것이었다.
여기에 보면 <행복론>,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역사철학>, <莊子南華經>,
<<소학>, <대학>, <하이네 시집>, <자본론>, <유물론>, 신구약 성경 등 . . . . .
2
'동정일여(動靜一如)란 오나가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말을 하지 않거나, 움직이거나 조용하거나 상관 없이,
화두라는 의심덩어리가 온마음에 가득한 경지이다.
화두를 가지고 정진할 때 일상생활에서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고요한 물속에 밝은 달이 비치듯 늘 성성하게 화두가 들리는 경지가 동정일여인 것이다.'
'동정일여의 경지가 체득된 뒤 더욱 화두공부를 하여 마침내 꿈 속에서도 세속의 수겁 동안의 업장인 꿈이 없어지고, 그대신 생시나 다름없는 낮과 똑같이 화두가 들리는 경지에 이른다. 이것을 몽중일여(夢中一如)라고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깊이 잠이 들어 무의식에 이르렀을 때에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리는 경지가 나타나는데, 이 경지를 숙면일여 또는 오매일여(寤寐一如)라고 한다.'
이 세 관문을 뚫어야 화두를 깨칠 수 있고 만 근의 짐을 내려놓는 工夫人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공부는 오매일여를 넘어 내외가 명철한 구경묘각(究竟妙覺 - 번뇌의 소멸과 진리의 통찰이 궁극적인 상태)을 얻어야 見性이다. 오매일여가 되었다해도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꼭 본분종사(本分宗師 - 부처의 면목을 회복하여 그러한 안목으로 제자를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이나 지혜를 갖춘 종사)를 찾아가 인가를 받아야 한다.
오매일여가 되었나 되지 않았나를 스스로 점검하고 양심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공부가 아무리 잘 되는 것 같아도 꿈에 되지 않는 공부는 공부라고 말할 수 없다. 꿈에도 공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이 된 때 비로소 조금 공부를 하게 되는 때이다. 아무리 크게 깨쳐도 잠들어 카ㅁ캄하면 죽어 몸을 바꾼 뒤에는 다시 캄캄하여 다 잊어버리고 生死苦를 도로 받게 된다.
아무리 잠이 깊이 들어도 밝음과 어둠을 벗어난 절대적 광명이 항상 밝아 있는 사람이라야 천 번 만 번 몸을 바꾸어도 영원토록 어두워지지 않고서 생사고를 받지 않고 큰 자유와 활동력이 있는 것이다.
이 절대적 광명은 천만 부처님이 설명할래야 할 수 없으며 가르쳐줄래야 가르쳐줄 수 없다. 오직 공부를 해서 실지로 이것을 깨친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고 깊은 진치(眞致)다.
3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최후로 부촉하셨다.
"설사 내가 없더라도 계(戒)를 스승으로 삼아 잘 지키면 내가 살아있는 것과 같으니, 부디 슬퍼하지 말고 오직 계戒로써 스승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하라."
계戒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지면 물을 담을 수 없고, 그릇이 더러우면 물이 깨끗하지 못하다.
만약 '색욕色慾을 끊지 않아도 修道하는 데 관계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자기가 색욕에 끄달리어 남까지 지옥으로 끌고 갈 큰 惡魔인 줄 깊이 알고 그 말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毒蛇에게 물려 죽을지언정 色은 가까이하지 말라. 독사에게 물리면 한 번 죽고 말지마는 色에 끄달리면 世世生生 천만겁토록 애욕의 쇠사슬에 얾매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니 피하고 또 멀리하라.'
4
修道八戒
희생 / 絶俗 / 고독 / 賤待 / 下心 / 전념 / 노력 /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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