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2020. 4. 30. 20:40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내가 사랑한 책들(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법정 스님의)  201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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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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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고 나서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_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재들만 마주하면서, 살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싶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토록 소중한 일이기에 나는 진정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_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이 검약(儉約)이라는 말은 대개 자물쇠가 채워진 음식창고를 지키는 나이 든 아주머니를 연상시키지만, 여기 라다크에서는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풍요의 기본이 된다. 한정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아껴쓰는 일은 인색함과는 관계가 없다.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검약의 본래 의미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들이 지나치세 많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이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

_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_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내가 생일파티 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나서 물었다.
"왜 그렇게 하죠? 축하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건가요? 나이 먹는 대는 아무런 노력도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쟝 저절로 먹는 겁니다."
내가 물었다. 그럼 당신들은 나일 먹는 것 말고 무얼 축하하냐고.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나아지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_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_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행복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_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승려의 삶을 버림으로써 그대는 참된 구도의 길을 찾게 된 것이다.
현실을 저버린 채 구도의 길을 걸어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리고 기억해 두라,
승려의 직분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진 것처럼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마라.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만약 강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다면,
그 물은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모기 따위의 해충이 생겨날 것이다.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_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_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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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_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_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_ 칼린디 <비노바 바베>



우리가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법. 그러나 매일의 삶은 잠으로 끝나게 되며, 매일의 경험은 죽음을 조금씩 맛보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만일 우리가 매일 자기 전에 마지막 장면을 잘 해낸다면, 생애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승리를 손에 넣게 된다.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_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나는 걷고 싶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걷기는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향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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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_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아니 조르바는 신으로부터 인간이 구원받기를 바라지 말고, 인간이 수도원에 갇힌 신을 구해내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 교황청과 그리스정교회의 노여움을 사 <최후의 유혹> <미할리스 대장> 등이 금서 판정을 받고 파문당한다.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_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_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승려와 철학자 2011 출판. .  서적 품절   

프랑스 현대 철학자 장-프랑수아 르벨과 그의 아들인 티베트 불교 승려 마티유 리카르의 『승려와 철학자』. 장-프랑수아 르벨은 최고의 지성이 모이는 프랑스 한림원의 정회원으로서 불가지론을 주장해왔다. 르벨에게는 아들이 있는데 그는 촉망받던 과학자로 살던 중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티베트의 정신적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얻기 위해 홀연히 떠나 승려가 되어버렸다. 이 책은 서로 대조적 가치관으로 인해 영원이 평행성만 그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이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외딴 산장에서 조우하여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나눈 대화록이다. 최근 서양 사회에서 불교가 급속히 확산되는 것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허물없이 교환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삶과 사상, 휴머니티와 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면서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준다.




"너는 과학과 구도(求道)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느냐?
"물론 그 두 가지가 양립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서 구도의 삶은 과학보다 더욱 중요했습니다. 두 개의 의자에 알ㅈ을 수 없고, 양 끝이 뾰족한 바늘로 바느질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는 제게 가장 필요한 것에 제 시간을 모두 바치고 싶었습니다. 저의 진짜 문제는 인간적인 삶의 잠재력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제 삶의 하루하루가 부서져나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불교는 참 안됐다!
종교인들은 불교가 무신론적 철학이자 마음의 과학이라 하고, 철학자들은 불교를 종교라고 하여 철학에 끼워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교는 어디에도 시민권이 없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것이 불교가 종교와 철학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잇점이다.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_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젊은 이레이그루크가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1971년, 미국 정부는 10억 달러의 돈과 18만㎢의 땅을 알래스카 원주민에게 제공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미국 본터 원주민들과 달리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자기네의 정치적, 경제적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과거에도 알래스카와 그곳 원주민들에 관해서 쓴 책들은 여럿 나왔지만 그 책들은 하나같이 외지인들이 썼다. 그러나 어린 소년 이레이그루크가 툰드라에서 생활한 일들을 직접 기록한 내용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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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_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큰의사 노먼 베쑨

_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_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_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_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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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_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_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_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_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_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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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_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_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_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용서는 가장 큰 수행

_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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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제베와 단봉낙타

_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꽃에게서 들으라

_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_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_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_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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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_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선생님은 저에게 조국이 있다고 하십니다만,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저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개돼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 마실 물도, 얻어먹을 수도 없는 이 땅을 어떻게 저의 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나라의 종교가 어떻게 저의 종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눈곱만한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는 불가촉천민이라면 이 땅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 간디와의 대화에서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_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_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_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_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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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_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_ 격월간지 <녹색평론>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_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_ 에크하르트 톨레 <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_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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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글과 법문에서 언급된 책들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글 ‘무엇을 읽을 것인가’ 중에서




1.

강원도 산중 오두막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들라면 읽고 싶은 책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읽고 있을 때, 즉 독서삼매에 몰입할 때라고 법정 스님은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영혼은 투명할 대로 투명해지며” “책의 기상이 나를 받쳐 준다.”고.


그렇다면 법정 스님의 구도와 진리의 길에 함께해 온 책들은 무엇일까? 모두가 잠든 밤 홀로 깨어 산중 오두막을 불 밝혀 온 책은? 스님이 스스로를 거울처럼 비춰 보던 책은 무엇이며, 늘 곁에 두고 스승으로 삼은 구도의 책과 경전에는 무엇이 있을까? 스님이 즐겨 읽은 고전에는 무엇이 있으며, 여행을 떠난 스님의 행장 속에 함께한 책들은 무엇이고, 여행지에서 읽은 책 가운데 스님이 다시 오두막까지 가져온 구절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아가 스님이 권하는, 이 시대 지식인의 서가에 꽂혀 있어야 할 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 독서기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을 위한 추천 도서에 관한 책이다.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의 책’을 선정하기 위해 그동안 2년여에 걸쳐 여러 차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스님을 뵙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충만하게 채우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 주는 책들은 무엇일까?’를 주제로 스님이 읽어 오고 가까이해 온 책들을 기록해 나갔다. 또한 지금까지 스님이 쓴 모든 산문과 법문들을 하나하나 찾아 넘기며 거기 소개되어 있는 책들을 죽 추려 내고, 편지 등에서 언급한 책들도 모두 정리하였다. 그러고 나니 법정 스님이 함께해온 책의 세월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냈다.


스님이 경전이나 그 주석서 못지않게 자주 펼쳐 보았다는 <어린 왕자>와 <꽃씨와 태양> 같은 동화에서부터 소유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는 <톨스토이 민화집>, 읽은 뒤 직접 현장을 찾았던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고 창간호부터 줄곧 구독해 오고 있다는 <녹색평론>과 인도철학의 꽃이라 불리는 <바가바드기타>에 이르기까지, 모두 잠든 깊은 밤 강원도 산중 오두막을 불 밝혔던 법정 스님의 독서 기록이 만들어졌다. 그 목록에 곁들여 스님은 이 시대에 꼭 읽었으면 한...다며 여러 차례 새로운 도서들을 추천하였고 그런 과정들을 반복해 50권의 책을 마련하였다.




2.


세상을 바꾸는 생각들이 담긴 책.

인간 자연 사회를 통찰하는 오두막 讀書記
<월든>에서 <걷기 예찬>까지,

<희망의 이유>에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까지
진정한 지식인의 서가에 꽂혀 있어야 할 책들



어느 자리에서나 사람들을 만날 때, 혹은 일 년에 몇 차례 행하는 법회에서도 법정 스님이 늘 주제로 삼아 온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책’이다. 오랜만에 산을 내려오면 그동안 읽은 책 이야기를 들려주고, <맑고 향기롭게> 회보를 통해서도 매월 그달에 읽을 책을 직접 선정해 주셨다. 심지어 평생 딱 한 번 선 결혼식 주례 자리에서도 독서를 주제로 삼아 책 읽는 부부가 될 것을 당부했다.


출가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스님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세상 모든 길을 다 막아 버리려는 듯 큰 눈이 내리던 20대의 어느 겨울날, 나는 그 무엇에도 막힘없이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 효봉 스님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나는 그 자리에서 출가를 결심하고 며칠 뒤 경남 통영에 있는 작은 절로 내려가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단박에 삭발을 결정하고 얻어 입은 승복까지도 그리 편할 수가 없었건만, 집을 떠나오기 전 나를 붙잡은 것이 책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어렵사리 모은 책들을 버리고 떠나는 게 못내 망설여졌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차마 다 버릴 수가 없어서 서너 권만 챙겨 가리라 마음먹고 이 책 저 책을 뽑았다가 다시 꽂아 놓기를 꼬박 사흘 밤. 책은 내게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


여기 50권의 책을 골라 실었지만, 선정 작업도 오래 걸렸을 뿐 아니라 대상이 된 책들 또한 3백여 권에 달했다. 그만큼 법정 스님의 독서의 폭은 매우 넓었다. 인류의 정신사를 수놓은 다양한 종교 경전들, 고전이 된 동서고금의 문학작품들, 파괴와 착취를 향해 질주해 가는 이 시대의 종말을 경고하는 환경서적들, 이미 절판이 되었으나 다시 출간되어야만 할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 속에서 아쉽지만 지면 한계상 50권을 추려 낼 수밖에 없었다.


어느 글에선가 스님은 이야기하셨다.
“세상에 책은 돌자갈처럼 흔하다. 그 돌자갈 속에서 보석을 찾아야 한다. 그 보석을 만나야 자신을 보다 깊게 만들 수 있다.”
책은 인간과 사회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책이 없었다면 인류는 현재의 세상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스님의 말씀대로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수명이 길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탐구와 독서가 없다면 우리의 정신은 잡초가 우거진 황량한 폐가가 되고 말 것이다.”


법정 스님은 “책에 읽히지 말고 책을 읽으라.” 말한다.
“세상에 나도는 책이 다 양서일 수는 없다. 두 번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이 세상에는 얼마나 쌓여 가고 있는가. 삶을 충만케 하는 길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넘어서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독자적인 사유와 행동을 쌓아 감으로써 사람은 그 사람만이 지니고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존재가 된다.”


이 기획은 단순히 ‘법정 스님이 읽어 온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삶,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며 그 기준과 방향을 정하는 데 어떤 책들이 필요한가로 그 주제가 확장되었다. 여기 선정된 책들에는 널리 알려진 것도 있지만, 현재 절판된 책들도 있고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도 포함되었다.


여기 수록된 책들은 좀 더 본질적인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월든> 14~25쪽, <여기에 사는 즐거움> 134~143쪽, <걷기 예찬> 144~151쪽, <그리스인 조르바> 162~173쪽, <죽음의 수용소에서> 320~329쪽 등)


배타적이고 공격적이 되어 버린 현대 문명의 사고방식을 꾸짖는 책들이고

(<성장을 멈춰라> 54~63쪽,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116~117쪽, <작은 것이 아름답다> 292~299쪽, <침묵의 봄> 310~319쪽, <사막별 여행자> 346~353쪽, <공유지의 비극> 370~377쪽, <육식의 종말> 424~431쪽 등)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헌신하고 실험했던 이들이 전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고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 74~81쪽, <핀드혼 농장 이야기> 118~125쪽,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152~161쪽,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244~253쪽,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274~283쪽 등)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는 책들이며

(<꾸뻬 씨의 행복 여행> 64~73쪽, <행복의 정복> 92~101쪽, <풍요로운 가난> 396~405쪽 등)


영혼에 붙은 먼지를 털어 내고 투명한 눈으로 세상과 대면하는 길을 보여 준다.

(<승려와 철학자> 184~193쪽,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54~263쪽,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362~369쪽 등)


공존과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해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려 노력했던 자유로운 존재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끝없는 여정> 82~91쪽, <비노바 바베> 132~133쪽, <닥터 노먼 베쑨> 214~225쪽, <암베드카르> 386~395쪽 등)


“모든 경전은 읽고 외우면서 그런 정신으로 살라고 말해 놓은 것이고 또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경전을 책장에 꽂아 두거나 모셔 놓기만 한다면 그것은 한낱 소유의 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소유는 잡다한 짐이다. 잡다한 짐은 빛을 발하지 않는다.”


이 책을 펴내면서 법정 스님은 벌이 꽃에서 꿀을 모으듯 많은 이들이 독서를 통해 삶의 지혜를 찾기를 바랐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댈 곳 없어 갈팡질팡 헤맬 때일수록 삶의 지혜가 담긴 책 속에서 삶의 길을 발견하기를 당부하셨다. 밖의 물결이 거세기에 안으로 탐구하는 법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고. 아울러 독서를 통해서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리면 그 자체가 삶의 충만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자신에게 알맞은 삶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가 일단 그의 삶을 찾았을 때 그것은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알맞은 삶이란 당초부터 없었으니까.”
스님이 어느 여행지에서 읽고 오두막까지 가지고 돌아온 <지중해의 영감> 한 대목이다. 법정 스님의 구도와 진리의 길에 함께한 독서기를 묶은 이 책 안에도 독자들이 삶으로 가져오는 의미 있는 울림들이 담겨 있다.



자료 1 _ 법정 스님의 책과 독서에 대한 언급


어느 날 아침 내 둘레를 돌아보고 새삼스레 느낀 일인데, 내 둘레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았다. 차와 책과 음악이 떠올랐다. 마실 차가 있고, 읽을 책이 있고, 듣고 즐기는 음악이 있음에 저절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오두막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구나 싶었다. 차와 책과 음악이 곁에 있어 내 삶에 생기를 북돋아 주고 나를 녹슬지 않게 거들어 주고 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13쪽 / <아름다운 마무리> 중 ‘’책의 날‘에 책을 말한다’ 119쪽)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이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이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쓰인 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쓰였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울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 있다.

(책날개 / <무소유> 중 ‘비독서지절’ 19쪽)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0쪽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중 ‘무엇을 읽을 것인가’ 17쪽)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런 때는 선뜻 책장을 덮고 일어서야 한다. 밖에 나가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책이 나를 떠나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禪家에서 不立文字를 내세우는 것도 아예 책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책을 대하되 그 책에 얽매이지 말고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지혜는 문자가 아니지만 문자로써 지혜를 드러낸다. 이렇게 되어야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여백餘白의 글까지도 읽을 수 있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때 문자文字의 향기와 書卷의 기상이 내 안에서 움트고 자란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 ‘책에 읽히지 말라’ 238~239쪽)

그럼 어떤 책이 좋은 책 良書인가?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때 상업주의의 바람일 수도 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그 수명이 길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12쪽 / <아름다운 마무리> 중 ‘‘책의 날’에 책을 말한다’ 120쪽)



자료 2 _ 직접 책의 현장을 찾아간 책들


“내가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마하트마 간디와 소로우의 간소한 삶일 것이다. 간소하게 사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삶이다.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이다. 단순하고 간소해야 한다. 월든 호숫가의 그 오두막을 찾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월든>을 읽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현장에 다다르니 정든 집 문전에 섰을 때처럼 반가웠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호수는 아주 평화로웠다. 호수의 북쪽에는 150여 년 전 소로우가 살았던 오두막 터가 있었다.”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_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22~23쪽)

해마다 봄이 되면 다산초당을 직접 찾곤 하는 법정 스님은 산문집 <물소리 바람소리>에서 다산을 이렇게 소개한다.
“영산강 하구언을 지나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에 이르는 길은 남도 특유의 아기자기한 정겨운 길이다. 귤동 뒷산에 초당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10년 동안 제자들에게 강론하고 저술에 몰두, 실학을 집대성한다. 그의 나이 40에서 57세에 이른 사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가장 무르익을 기간이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자신의 인생을 꽃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살 줄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여건 아래서라도 죽을 쑤고 마는 것이 인생의 과정. 그는 18년 유배 생활에서 2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재능과 출세를 시기하여 무고한 죄를 씌워 유배를 보낸 그때의 지배 계층은 오늘날 그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귀양살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았던 다산은 오늘까지 숨을 쉬면서 후손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참과 거짓은 이렇듯 세월이 금을 긋는다.”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_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62~263쪽)

“산중에서도 태풍은 매년 한두 차례씩 거쳐야 하는 일이다. 이런 날 다락에 올라간 내 손에 잡힌 책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다. 책장을 펼치자 거기에도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항구에 나가 있을 때, 북아메리카에서도 남유럽 쪽으로 부는 세찬 비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카페 안에 가득히 날리고 있었다. 화자인 나는 그 항구에서 기타 비슷한 악기를 끼고 있는 조르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지나 끼니때가 되었지만, 거센 비바람에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버너를 켜서 차만 한 잔 마신 다음 밥 대신 조르바를 홀린 듯이 먹으면서 배고픈 줄 몰랐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가 살았던 크레타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1995년 여름 볼일로 파리에 갔다가 그리스로 날아갔다. 다시 그리스에서 크레타로 가려면 밤배를 타야 했다. 에게 해의 물 빛은 짙은 감청색, 석양에 비친 바다 빛은 듣던 대로 포도주 빛이었다. 지중해의 물 빛은 투명한데, 에게 해는 신화를 잉태하고 있는 듯 신비롭고 어둡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성루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가 있었다.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172~173쪽)



자료 3 _ 영혼의 본질에 다가서는 책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 산하대지는 자동차의 타이어를 위해서보다는 우리의 두 발을 위해서 예부터 있어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거기에 몸을 맡기면 그 자력이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

(나는 걷고 싶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151쪽)

“빅터 프랭클은 그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온갖 가치를 파괴당한 채 굶주림과 추위와 짐승 같은 학대 속에서 순간마다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상과 그가 믿는 종교, 유머, 그리고 나무들이나 저녁노을과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자신의 비극을 다스려 주는 순간 그는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이라도 견뎌 낼 수 있다.”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328~329쪽)

“내 눈이 열리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도 함께 열리는 법이다.“

인도의 명상가이며 철학자인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저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법을 안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보는 일은 어떤 철학도, 선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당신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당신이 그냥 보면 된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허심탄회 빈 마음으로 보라는 것. 남의 눈을 빌릴 것 없이 자기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대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_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369쪽)



자료 4 _ 아름다운 이들에 관한 책들


“비노바는 인도의 독립과 가난한 사람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으며, 마하트마 간디 이후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설득, 수백만 에이커의 토지를 헌납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운동은 온 세계를 감동시켰다. 비노바 의 생애는 암담한 미래에 희망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_ 칼린디 <비노바 바베> 133쪽)

“이 난롯가에서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서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 헬렌은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55년의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그들 두 사람 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 자취는, 남아 있는 우리에게 빛을 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대목은 스코트가 ‘주위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으로 기록한 그의 유서다. 그의 소원대로 사후를 마무리한 헬렌 또한 지혜롭고 존경스런 여성이다. 스코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어떤 선사의 죽음보다도 깨끗하고 담백하고 산뜻하다. 죽음이 란 종말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감인데, 그런 죽음을 두고 요란스럽게 떠드는 요즘의 세태와는 대조적이다. 스코트는 70대에 노령이 아니었고, 80대는 노쇠하지 않았으며, 90대는 망령이 들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의 말처럼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 그의 삶을 우리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_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283쪽)



자료 5 _ 생명과 문명에 관한 책들


“지난밤에는 늦도록 책을 읽었다. 현대 문명사회의 비판서이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를 담은 일종의 명상서적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혜가 어째서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는가를 우리는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물질문명의 찌꺼기인 온갖 공해와 환경오염이 날로 극심해 가는 오늘날, 원천적으로 자연인인 인디언의 삶의 지혜를 빌려서 극복의 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영혼이 보다 투명해진다.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펼쳐 볼 지혜의 말씀은 바로 이런 책이다. 어떤 것이 진정한 문명인이고 야만인인가를 생각게 하는 감동적인 잠언들이다.”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_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117쪽)



기타 자료 1 _ 법정 스님이 스승으로 삼고 있는 경전


제가 의지하고 늘 受持讀誦(경전이나 책을 항상 잊지 않고 지니며 소리 내어 읽음) 하며 곁에 두고 스승으로 삼는 서적을 몇 권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初發心自警文>입니다. 제가 중이 된 지 반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 <초발심자경문>을 읽습니다. 절에 들어와 처음 은사스님(효봉 스님) 앞에 꿇어앉아 그 전날 배운 것을 외워 가며 익혔던 글입니다. 단지 글만 풀이하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옛 수행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행했는가 하는 것을 그 글을 통해 낱낱이 배울 수 있었기에, 늘 그 가르침이 저한테 남아 있습니다.
백지 상태로 처음 절에 와서 배우는 교훈이 <초발심자경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초발심자경문>을 읽으면 새롭습니다. 지금도 7월 보름 하안거 해제일이 되면 제가 계를 받은 그날로 돌아가 예불 끝에 꼭 <초발심자경문>을 독송합니다.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지니기 위함입니다. 또 제가 거처하는 오두막 불단에도 <초발심자경문>을 늘 모시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서산 스님이 경전과 조사 어록들을 보다가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뽑아 놓은 <선가귀감>입니다. 저는 풋중 시절 해인사에서 <선가귀감>을 처음 보았습니다. 어떤 노장 스님이 그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눈이 번쩍 뜨이고 신심이 나는 책이었습니다.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즉시 아랫동네로 뛰어 내려가 공책 한 권을 사다가, 깊은 밤 잠자는 시간에 지대방(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방. 이부자리, 옷 또는 승려가 행장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지대 따위를 두는 곳)에 들어가 호롱불을 켜고 그 책을 한 줄 한 줄 공책에 베껴 적었습니다. 절반쯤 베꼈을 무렵, 지대방에 불이 켜져 있으니까 그 노장 스님이 문을 열고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선가귀감>을 베끼고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으면 스님이 하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시오’라는 것은 그때 말로 ‘가지시오’라는 표현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5·16 혁명이 나던 해, 제가 그것을 번역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인사 시절 그것을 번역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손을 대다가 얼마 전 <깨달음의 거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그다음이 <숫타니파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경전의 체계를 갖추기 전, 부처님이 초기 교단에서 말씀하신 것을 엮어 놓은 근본 경전입니다. <아함경>이 생기기 이전의 경전이기 때문에 표현이 매우 소박합니다. 어떤 법문을 들으면 마치 부처님의 육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초기 교단의 수행자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또 초기 교단의 수행자들에게 부처님은 어떤 가르침을 폈는가, 그 당시에는 어떻게 수행을 했는가 하는 것을 <숫타니파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전도 좋아해서 제가 번역을 몇 차례 했는데, 최근에 새롭게 장정을 해서 출간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장로게長老偈>입니다. <장로게>는 초기 수행자들의 수행담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장로게>가 있고 <장로니게長老尼偈>가 있습니다. 이 책도 저의 구도의 서書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도겐道元 선사가 사석에서 펼친 가르침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분의 시자(어른스님을 모시고 시중드는 사람)가 고운 에조 스님인데, 도겐 선사보다 나이가 두 살 위입니다. 다른 교단에 있다가 도겐 선사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아 시자가 되었습니다. 이분이 도겐 선사가 그때그때 사석에서 제자들을 위해 법문한 것을 기록해서 <정법안장수문기正法眼藏隨聞記>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도겐 선사 자신이 기록한 법문입니다. 이 <정법안장>에 ‘행지行持’ 편이 있는데, 수행자가 지녀야 할 행위에 대해, 옛 조사들부터 중국 선종사에 나오는 분들이 어떻게 수행했고 어떻게 교화했는가 하는 것이 실려 있습니다. <정법안장> 중에서도 저는 이 행지 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길상사 주지실을 만들 때 무슨 이름을 붙일까 하다가 ‘행지실’이라고 한 것입니다. 주지를 하려면 바른 행을 지니라는 뜻에서입니다.


저는 구도의 서로 이 다섯 권의 책에 늘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일기일회> 중 ‘수행자는 늙지 않는다―운문 도량에서’ 194~197쪽)



기타 자료 2 _ 법정 스님이 가장 즐겨 외우는 성경 구절


내가 즐겨 읽는 ‘요한의 첫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무소유> 중 ‘진리는 하나인데―기독교와 불교’ 142쪽)



기타 자료 3 _ 법정 스님의 서가에 꽂혀 있던 동화


내 가난한 서가에는 몇 권의 동화책이 꽂혀 있다. 경전이나 그 주석서 못지않게 자주 펼쳐 보는 것들이다.
<어린 왕자> <꽃씨와 태양> <구멍가겟집 세 남매> 등. 그중에서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손때가 배도록 자주 펼쳐 본다.
이 <어린 왕자>한테서는 바흐의 화음和音이 난다. 읽고 나면 숙연해진다. 그 어떤 종교서적 못지않게 나를 흔들어 놓는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동무를 찾아 나섰다가 여우 한 마리를 만나 서로 사귀게 된다.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 놓은 가게에서 사면 되니까.

그렇지만 친구를 팔아 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니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어.”
그러면서 친구가 갖고 싶거든 자기를 길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이런 비밀을 일러 준다.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나의 과외 독서는 누워서 부담 없이 읽히는 동화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앞뒤가 툭 트이는 그런 동화책이다.
그것은 내 나날의 생활에서 시들지 않은 싱싱한 초원이다.
넘치는 우물이다.

 (<영혼의 모음> 중 ‘나외 과의 독서’ 136~138쪽)



추천글


인도의 시인 까비르는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을지라도
이 한 단어를 알지 못하면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니다.
그 단어는 ‘사랑’이다.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50권의 책들은 결국 ‘사랑’에 대한 책들이다.
삶에 대한 사랑, 시대에 대한 사랑, 생명 가진 존재들에 대한 사랑.


-류시화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도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