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2020. 1. 29. 18:13미술/미술 이야기 (책)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2019. 9. 30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책소개

그림 한 점을 두고 이토록 상세하고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그림의 배경이 된 사건과 그 사건이 그림이 될 때까지의 과정,

그것을 그린 화가의 마음속,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맨부커상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캔버스의 그림자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낸다.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가장 지적이고도 인간적인 그림 안내서.

다 읽고 나면, 이 그림들을 직접 보러 당장 미술관에 가고 싶어질 것이다.


“이런 미술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반스뿐이다.”

“맨부커상 소설가의 지적이고 섬세한 그림 컬렉션.”


★★★★★ 맨부커상 수상 줄리언 반스의 첫 예술 에세이
★★★★★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 아마존 서평 4.6 (5.0만점)





저자

줄리언 반스

줄리언 반스 소설가


1946년 1월 19일 영국 중부의 레스터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한 반스는

1969년에서 1972년까지 3년간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으며

이후 '뉴 스테이츠먼'과 '뉴 리뷰' 등의 잡지에 평론을 기고하는 한편

문예 편집자, TV 평론가로도 일했다.


첫 장편 소설 '메트로랜드'(1980)로 서머싯 몸상(賞)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

이후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1982),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 '태양을 바라보며,

'A History of the World in 10 1/2 Chapters'((1989), '내 말 좀 들어봐'((1991), '고슴도치'(1992) 등

10권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여러 권의 단편집과 수필집을 펴냈다.


줄리언 반스는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치 있는 작가이다.

만물박사와 같은 지식,

특히 그의 전문 분야인 예술사와 19세기 프랑스 문학 전반에 대한 묘사는 현란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반스는 각종 서평지나 미술 잡지에 플로베르나 푸생의 전문가로서 기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이런 정보들을 과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과 문학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이해를 '작가'의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요리하고 있다.


역사와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진지하고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놀랍도록 흥미로운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는 반스는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연이어 수상함으로써

그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1986년 프랑스 메디치상,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의 E. M. 포스터상,

1987년 독일 구텐베르크상, 198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프랑스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의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1988년 슈발리에 문예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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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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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리코 : 재난을 미술로



La Balsa de la Medusa




1.   세네갈 탐험대는 네 척의 배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리킷함(메두사 호), 코르벳함, 수송용 전함, 쌍돛대 범선.

1816년 6월 17일 X섬을 출발한 365명의 탐험대는 남쪽으로 항해를 이어갔다.


2.   거센 바람과 서툰 항해로 배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떨어진 프리킷함은

1816년 7월 2일 오후 북회귀선을 돌아 바르바스곶을 돌다 암초에 좌초했다.


길이 20미터, 폭 7미터의 뗏목을 만들어서 장교를 포함한 군인 120명과 선원과 승객 30명, 총 150명을 태웠다.

3.   1816년 7월 17일 아르고스 호에 구출되었다. 정신착란으로 인한 폭동 등으로 생존자는 열다섯 명이었다.


4. 1817년 11월 사비니와 코레아르가 그들의 항해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5. 1818년 2월24일~1819년 7월. 제리코는 그림을 완성하였다.


 


2. 들라크루아 : 얼마나 낭만적인가
3. 쿠르베 : 그렇다기보다는 이렇다
4. 마네 : 블랙, 화이트
5. 팡탱-라투르 : 정렬한 사람들


6. 세잔 : 사과가 움직여?
7. 드가 : 그리고 여자
8. 르동 : 위로, 위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며 낭만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잇는 다리, 또는 그림으로 나타난 정신분석학의 전조를 발견한다.

"미술에서 입체감 표현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목적이 오로지 아름다움을 나나내는 것이라는 조건 아래서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이 훌륭한 표현법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9. 보나르 : 마르트, 마르트, 마르트, 마르트
10. 뷔야르 : 에두아르라고 불러주세요


11. 발로통 : 나비파의 이방인
12. 브라크 :회화의 심장부
13. 마그리트 : 새 대신 새알
14. 올든버그 : 물렁한 것의 유쾌한 재미
15. 이것은 예술인가?


16. 프로이트 : 일화주의자
17. 호지킨 : H.H.에게 말이란

 


출판사서평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첫 예술 에세이.

제리코에서 들라크루아, 마네, 세잔을 거쳐 마그리트와 올든버그, 하워드 호지킨까지

낭만주의부터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17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순수한 황홀감, 그 자체다”라고 한 워싱턴 포스트의 평처럼

우아하고 방대한 지식을 갖춘 이 에세이들은 미술사학자의 책도, 예술가의 책도 아닌,

그저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의 책이다.

다만 소설가로서 그는 눈앞에 펼쳐진 그림을 두고 작품의 배경이 된 사건과 그것이 그림이 될 때까지의 과정,

그를 거쳐간 손길과 화가의 삶, 그 앞에 섰던 다른 이들의 감상까지

집요한 조사와 정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리드미컬한 한 편의 드라마를 엮어낸다.

탁월한 안목으로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아주 사적인” 이 책은

그림 구석구석과 공명해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가장 지적이고도 인간적인 그림 안내서다.

명확하고도 열정적이며 사려 깊은 글…

세부적인 것들을 포착해내는 타고난 소설가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반스는

독창적인 해석과 직관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드가와 브라크, 마그리트와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부터 아직 덜 알려진 훌륭한 화가들까지

그들의 진면목을 알게 한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출간 즉시 큰 화제를 모았으며

“모든 예술 에세이가 이 경지에 올랐더라면……”(뉴 스테이츠먼),

“모든 미술 독자에게 강력 추천한다”(라이브러리 저널) 등

 주요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미술을 보는 눈이 뜨였다”,

“더 많은 미술관에 가고 싶어졌다”라며

독자들도 이 새로운 형태의 그림 에세이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그림 한 점을 두고 이렇게나 할 말이 많다니…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장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것의 끝”까지 가고자 했던 세잔
“여자의 은밀한 모양을 품위 없게 그리는” 일에 주력한 드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는 바람에 한 여인의 그림을 385점이나 그린 보나르
“전형적인 지배자 유형”으로 자신이 어느 시대 누구보다도 최고의 화가라 믿었던 프로이트

그림 한 점을 두고 이토록 상세하고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다.

낭만주의의 대가 들라크루아는 고루하고 성실한 금욕주의자였고,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는 모든 프랑스 여자가 자신을 택할 거라고 자신만만해하다

시골 처녀에게 거절당한 나르시시스트였다.

드가는 여성을 혐오한다는 혹독한 오해를 받은 반면

보나르는 한 여인의 그림을 385점이나 그린 지독한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타고난 천재 같기만 한 피카소는 차분하고 도덕적인 단짝이었던 브라크를 평생 질투했다.

마네는 모델에게 생동감 있게 움직이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세잔은 사과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 치다 화가 나면 붓을 내팽개치고 화실을 뛰쳐나갔다.

그림 한 점 앞에 선 우리 눈앞에 그것이 그려지던 순간의 한 토막이 수많은 장면이 되어 스쳐지나가고,

때로는 우습고 친근하며, 때로는 경이롭고 가슴 뛰게 하는 주인공들이,

마치 살아 숨 쉬듯 말을 건네온다.

반스는 그렇게 뻔한 비평 대신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다가와 지극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그림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모든 예술 에세이가 이 경지에 올랐더라면…”
25년간의 깊은 관심과 몰두가 빚어낸 걸작



줄리언 반스는 1989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제리코의 그림 한 점을 두고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2013년까지 25년간 반스는 《현대 화가》,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가디언〉 등

다양한 예술, 문학 잡지에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이들 중 주목할 만한 글을 선별해 엮었다.

주로 화가의 새로운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에 맞춰 발표된 이 일련의 글에서

그는 예술이 어떻게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그리고 모더니즘으로 발전했는지 되짚어간다.


줄리언 반스의 작품을 읽어온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자주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지 알 것이다.

『레몬 테이블』에서는 소설가 투르게네프와 작곡가 시벨리우스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는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사진작가 나달이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는 소설가 플로베르가,

『시대의 소음』에서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소설 전체를 독차지한다.


그리고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에서는 화가 제리코와

그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에 대한 세심한 분석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예술에 대한 오랜 관심과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반스는

이 책에서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골몰한다.

“예술의 미덕이나 진실성은 개인의 미덕이나 진실성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나쁜 미술, 즉 거짓을 말하고 속임수를 쓰는 미술 작품은

화가가 살아 있는 동안에야 무사할지 몰라도

“결국 들통나게 되어 있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결국 당대의 또는 후대의 수많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다는 그의 결론은

미술 앞에 선 수많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각자의 지식과 기질, 소화기관의 상태, 당장의 유행에 따라 감탄하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면서,

이 그림 저 그림을 톱 10 리스트로 꼽으면서,

이 화가 저 화가의 사생활에 구제불능의 호기심을 보이면서 유명한 미술관들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우리가 그러건 말건 아랑곳없이, 미술은 당당하고 무정하게 우리를 따돌리고 계속 전진한다.


-본문 중에서






















 








1.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즐겨 목에 걸고 다녔다. 그러면서 그는 누구의 덕도 보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줄곧 학술원 회원이 되고자 문턱을 넘나들다가 여덟 번째 도전 끝에 회원으로 뽑혔다. 이에 대해 보들레르는  "많은 젊은이들이 당신을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는 자, 반항아로 보고자 하는데, 왜 당신은 그딴 일에 집요한 고집을 피우는 게요?" 

─  "보들레르 씨, 만일 내 오른 팔이 마비되기라도 한다면 학술원 회원이기 때문에 학교선생도 될 수 있을테고, 내게 건강에 문제가 없다하더래도 학술원은 내게 커피와 담배값을 내줄 것이오."



앵그르는 "들라크루아 씨, 드로잉은 정직을 의미합니다. 드로잉은 명예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는 色이 앞장선다. 선과 주제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색이 먼저 눈과 가슴을 끈다. 르동에 따르면, "베네치아, 파르마, 베로나는 물질적인 면에서만 색을 보았다. 들라크루아는 정신적인 색을 건드린다. 이것이 그의 일생의 작품이요, 그러한 자격으로 그는 사후의 명성을 요구한다."


예순다섯의 나이로 죽음의 자리에 누웠을 때 들라크루아는 여전히 자신의 머릿속에 40녀치 분량의 작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한탄했다. 그는 사후 100년 뒤에 자신이 어떻게 평가되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2. 쿠르베


쿠르베는 미술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언제나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며 거창하게 꾸짖는 사람이었다. 그는 도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자 독단적인 미감의 소유자였다. 그는 크게 외치고, 되돌아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즐겼다.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에서 가장 자부심 강하고 가장 오만한 사람이라고 일컬으며, "미술을 아는 젊은이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그들의 총사령관"이라고. 또 "모든 민주적 정신, 모든 나라의 여성, 모든 외국인 화가들이 내 편"이라고 했다. 

이 오만함은 그의 천성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市場을 염두에 둔 계산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위대한 화가였을 뿐 아니라 홍보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 보급했고, 그림을 비싼 값에 팔았을 때는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내기도 했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낭만주의에 맞지 않는 기질을 가졌다면,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는 참된 낭만주의자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지녔다.


쿠르베는 취미로 주식거래에 손을 대던 사회주의자였으며 땅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  그는 "여자는 딴생각 말고 양뱃추국이나 끓이고 살림살이나 신경 쓰라."거나 "숙녀의 임무는 남자의 사색적 합리성을 감정으로 교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예술을 하느라 결혼할 시간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도 또한 이따금씩 결혼하려고 애썼다. "레옹틴 양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프랑스 여자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것이며 열 번 죽었다 깨나도 이런 자리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프랑스 여자라도 아내로 맞을 수 있으니깐요."


프랑스정부가 쿠르베를 십자가에 매달지는 않을 지언전 그를 파멸에 빠뜨리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재산을 징발해 가고, 그림을 도둑질해가고, 자산을 팔고 가족을 감시했다. 그는 스위스에 가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며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했다.


하룻밤에 맥주를 30잔이나 마시고, 압생트는 물 대신 백포도주를 타서 양을 늘려 마시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알콜 남용으로 생긴 수종으로 엄청나게 부어올라 '복수 흡입이란 신기술로 액체를 20리터나 빼냈지만, 항무느오부터 18리터를 뽑아내던 이전의 시술법보다 약간 효과가 더 있을 뿐이었다.'




3. 마네


에즈라파운드는 자기가 어느 집 창문에 벽돌을 던지면 T.S. 엘리엇이 그 틈을 타 뒷문으로 들어가 귀중품을 훔쳤다고 했는데, 벽돌은 마네가 던지고 부당이득을 챙긴 쪽은 인상파 화가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네가 죽기 전 해인 1882년에 긴 수정 꽃병에 담긴 꽃을 그린 단순한 그림 두 점이다. 행복한 유뷰남이자 멋쟁이 난봉꾼인 마네는 제3기 매독으로 죽었다. 끔찍한 죽음이었다. 보행성 운동 실조에 휠체어 신세가 되고, 괴저가 생겨 다리가 잘린 뒤에 죽음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우리가 명화 한 편을 감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10초? 30초? 2분?  중요한 화가의 전시회에는 300점을 거는 것이 표준이 되어 있는데, 그림 한 점에 2분을 쓴다면 300점을 보기 위해서는 10시간이 걸린다.

 .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4. 세잔


세잔 자신이 스스로를 '독학한 화가'라고 했고, 르누아르의 관찰에 따르면 '고슴도치처럼 과민'했던것도 사실이다. 세잔은 입 밖에 내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이 알고 있는데도 상대에게 져주는 체함으로써 이기는 꾀 많은 농부 같다고나 할까. 가면 뒤의 세잔은 교양 있고 문학에 훤했으며 부루주아다웠다. 세잔은 고전문학에 정통했고 발자크주의자이면서 스탕달주의자이며 플로베르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세잔은 수도자다운 면모를 지녀 '작품 뒤의 화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세잔에게서 현대미술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은 필연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제1전시실에는 고갱 한 점과 쇠라 세 점이 왼쪽에 걸려 있고, 오른쪽과 정면에는 세잔이 여섯 점이 걸려 있다. 세잔의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는 없을 정도다.

세잔은 늘 앞서간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 배웠는데, 그 중에서도 루벤스를 평생에 걸쳐 연구했다. 세잔은 자기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보지 않았으나 나중에 사람들은 그것을 모더니즘이라 불렀다. 세잔에게 그림은 자신의 기질을 전달 통로로 삼아 자연의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세잔이 그린 초상화들은 모두 정물화다. 색과 조화가 지배하는 그림으로서이지 웃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나타내는 그림으로서가 아니다. 세잔의 풍경화에서는 눈부시게 빛나는 색을 볼 수가 없듯이 움직임도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세잔의 그림들은 기쁨을 나타내고, 기쁨을 일깨운다.



5. 루시안 프로이드


프로이드는 "너무 미술 같아 보이는 미술"을 싫어했다. "운을 맞춘" 것 같은 그림, 또는 모델을 실제보다 돋보이게 하거나 관객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그림, "고짓된 느낌"을 보이는 그림을 싫어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아름다운 색을 쓸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감상의 표출을 공격적으로 배척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프로이드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라 色魔였다. 한 여자를 가지고 나면 금세 다른 여자를 쫒았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 먼젓 번 여자를 볼 수 있어야 했다. 애초에 배우자에 대한 신의는 그가 인정하는 연애의 구성개념이 아니었다.



6. 이것은 예술인가?


"내가 예술가이기 때문에 이것은 예술이고, 따라서 내가 하는 건 무엇이든 예술이다."

작품이야 어떻든, 예술이 실력 없는 작가나 사기꾼, 기회주의;자, 명성을 쫒는 이들을 배제하는 신전(神殿)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래 물론 예술이지, 물론 당신은 예술가이고, 작품의 취지도 진지할 거야. 다만 수준이 낮을 뿐. 좀 더 생각하고, 독창성을 갖추고, 기예와 상상력을 발휘해 봐. 모름지기 작품은 흥미로와야 하니까." ( * '미학의 제1규범은 흥미이다' - 소설가 존 치버)


평가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근래 유행하는 많은 미술작품들은 눈만 조금 귀찮게 하고 두뇌도 잠시간 번거롭게 할 뿐, 정신과 가슴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케케묵은 이분법을 써서 말하자면, 아름다울지언정 어떤 깊이 있는 의미를 지닌 경우는 드물다.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헉슬리에 따르면 "한 美術작품이 좋은지 나쁜지는 전적으로 작품 자체에 드러나는 인격에 달린 문제다." 예술의 미덕이나 진실성은 개인의 미덕이나 진실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그렇다.)  나쁜 미술, 즉 거짓을 말하고 속임수를 쓰는 미술작품은 화가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사할지 몰라도 "거짓은 결국 들통나게 되어 있다."

 - 그러기를 우리는 바라지만 진실이 더디게 승리하는 반면, 나중에 그림을 보는 사람의 무지함은 그동안 계속불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