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역사』

2019. 11. 25. 20:31책 · 펌글 · 자료/ 인물








두 사람의 역사


두 사람의 역사 -  플라톤에서 만델라까지 만남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2018.11.26.

책소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쌓아올린 역사,
플라톤에서 만델라까지 역사가 된 만남의 순간 15장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에서 넬슨 만델라와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의 만남까지, 각 시대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영향을 주고받은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만남을 담은 책. '만남'이란 키워드를 통해 그들의 삶과 시대정신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담고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두 사람의 역사》는 각 인물의 인물사이자 그들을 한데 엮은 역사 이야기다. 이 책은 철학, 과학, 정치, 예술, 대중문화 등에 큰 족적을 남긴 역사의 거인들의 면면과 만남을 추적한다.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같은 경쟁 혹은 대립 관계뿐 아니라,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같은 사랑까지. 이를 실마리로 저자는 역사의 경계에 섰던 두 사람의 만남과 그 시대에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의 다양한 문제와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를 만든다.



 저자 : 헬게 헤세
독일의 기획자이자 작가이며 대학에서 철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단편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면서 유럽 여러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주요 언론에 문화, 역사, 경제에 관한 칼럼과 시리즈 기사를 다수 연재했으며, 다양한 학술 참고문헌을 편집했고, 지은 책으로 독일의 역사잡지 《다말스Damals》가 ‘올해의 역사책’으로 선정한 《천마디를 이긴 한마디》를 비롯해 《단 한줄의 역사》, 《처칠 스타일로 승부하라》 등이 있다.

역자 : 마성일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번역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등이 있다.

역자 : 육혜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세종대학교, 아주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레오 스트라우스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을까?》, 《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을까?》, 《토론콘서트 정치》(공저), 《보편주의-새로운 세계를 위한 정치사상사적 성찰》(공저), 《좋은 삶의 정치사상》(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니체》(공역), 《자본주의의 역사》(공역), 《미래전쟁》, 《영웅본색-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14인의 두 얼굴》, 《논리의 문법》, 《사물의 핵》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세계는 이데아를 모방한 것인가?

2장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이성이 마음보다 중요한가?

3장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 권력이란 무엇인가?

4장  요하네스 케플러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 신앙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또 어디에서 끝나는가?

5장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 책임 없는 자유가 있을 수 있는가?

6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알렉산더 폰 훔볼트
─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가?

7장  율리시스 S. 그랜트와 윌리엄 T. 셔먼
─ 전쟁은 정의로울 수 있는가?

8장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페르디난트 라살
─ 무엇이 올바른 국가인가?

9장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 예술은 삶에 꼭 필요한가?



고흐는 고갱을 1886년 11월 파리에 있는 테오의 집에서 짧게 마주친다.  갈색으로 그을린 고갱은 카리브해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고갱은 젊은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큰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허풍쟁이에 싸움꾼인 고갱은 항상 돈에 쪼들렸다. 복싱과 펜싱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고갱은 캔버스 앞에 전사로 섰다.

..........


미술의 역사를 말할 때 사진이 인상주의의 탄생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실제로 사진의 발명은 회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확실하게 판에 찍히는데 왜 굳이 그림을 그려야 한단 말인가? - 이 질문은 회화를 해방시켰다. 이제 회화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난 것이다. 인상주의자는 저마다 다르게 감지하고 다르게 표현하는 인간을 중심에 세웠다. 인상주의자들은 자신만의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가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파리 미술계에서 고갱은 테오를 알게 되었다. 1888년 파산 지경에 이른 고갱에게 테오가 제안을 한다. 아를에 있는 자기 형과 함께 산다면 매달 150프랑을 주겠다고. (그것은 고흐의 아이디어였다.) 주저하던 고갱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한다.



고갱은 1888년 10월 23일 새벽에 아를에 도착했다. 고흐는 몇 주 전부터 라마르틴 광장 2번지 노란색의 집의 오른편 방 하나를 준비했고 자신이 그린 해바라기 그림으로 벽을 장식했다. 고흐는 건장한 고갱의 모습을 마주하고 실망했다. 고흐는 병약해진 고갱을 상상해서 그를 돌봐주면 아를에 고갱을 붙잡아 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갱은 고흐가 세웠던 모든 계획을 좌절시켰다.


고갱은 도시의 전경이 아닌 도시 속의 모티브를 그리겠다고 고집했다. 게다가 유화가 아닌 스케치를 하겠다고 했다. 고흐는 대상을 바로 앞에 두고 현장에서 빠르게 그렸는데 고갱은 집에서 기억을 통해 천천히 완성하려 했다. 고갱은 고흐에게 좀 더 신중하게 그리라고 충고했다. 마치 테오가 그랬던 것처럼. 색 선택도 붓질도 논쟁거리였다. "이런 제기랄, 온통 노랑이야!"


저녁이면 그들은 몇 시간이고 예술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서도 고갱은 늘 부정하는 입장이었고 고흐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고갱은 고흐가 존경하는 모든 화가를 비웃었다. 둘은 점차 일상의 모든 것을 두고 다퉜다. 의식주와 생활비 등등......


고갱이 아를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그림이 팔렸다는 소식을 테오가 전해왔다. 500프랑을 받았다고 했다. 고흐는 기뻐했지만 곧 열등감에 빠졌다. 그는 자신을 실패자로 느꼈고 동생에게 부끄러웠다.



Image result for the red vineyard van gogh

/ 고흐의 작품붉은포도밭, The Red Vineyard’, 1888/ 

                               


고흐, <아를의 붉은 포도밭> & 고갱 <포도 수확 혹은 인간 비극> ─ 고흐의 그림이 조화로운 색채의 교향곡이라면, 고갱의 그림은 상징과 신화로 가득한 세심한 구성물이다.


12월 중순 고갱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흐와 자신은 서로 너무 맞지 않아 떠나냐겠다고 쓴다. 그 사이 고갱의 그림은 파리에서 점점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테오는 특히 그의 그림이 지닌 상징성을 열광적으로 칭찬했다.



고흐의 <빈센트의 의자> & <폴 고갱의 의자>




고흐의 정신 건강은 고갱이 아를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신 형은 정말 약간 이상합니다."


12월 23일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생각에 고갱은 이 좋은 도시 아를도, 우리가 작업하는 노란 집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싫증난 것 같아."


고갱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테오와 고흐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몇몇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프고 괴로워하며 나를 원하는 이 선한 사람을 나쁘게 대할 수가 없다네."



겨울이 오자 고흐는 감정폭발이 빈번해졌다. 고갱은 침묵으로 대응했지만 파국은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1888년 12월 30일 지방 일요신문<공화포럼> 3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 지난 일요일 23시 네덜란드 출신의 반 고흐라는 사람이 1번 사창가에 나타나 레이첼이라는 여자를 찾아 자신의 귀를 주면서 "이 물건을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이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다음 날 아침 방문했고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거의 숨을 쉬지 못했다. 이 불행한 사람은 응급으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고갱은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12월 24일에 테오에게 전보를 쳤다. 테오는 즉시 아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다. 며칠 후 고갱이 베르나르에게 전한 정황은 이렇다.


비가 퍼부어 노란 집에 묶여 있던 두 사람은 여전히 티격태격이었다. 저녁에 고갱이 시내로 나가려 하자 고흐가 쫒아와 앞에 가로막고 서서 갈 거냐고 물었다. 고갱이 그렇다고 하자 고흐는 휙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고흐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 게다가 몇 시간 전 테오의 약혼 소식이 전해졌다. 항상 테오가 아를로 이주하기를 바랐던 고흐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아마 이날 저녁 고흐는 압생트를 많이 마셨을 것이다. 고흐는 거울 앞에 섰고 면도칼을 집어들었다. 자신에 대한 분노 속에서 귀를 잘라냈다. 피가 철철 흘렀다. 가까스로 상처를 싸맨 고흐는 귀를 제물로 고갱에게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고갱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사창가 그의 단골 레이첼에게 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그곳에 찾아갔다. 그러나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자 고흐는 귀가 담긴 꾸러미를 고갱을 위해 그곳에 남겨두었다.


테오가 다음날(1888년 12월25일) 도착해서 침대 맡에 앉자 고흐는 잠시 정신이 들었다가 혼절했다. 테오는 저녁에 돌아갔다. 고갱도 그와 함께 떠났다.

이렇게 두 화가의 관계는 끝이 났다.

※ 1888. 10. 23 - 1888. 12. 25 (64일간)



1901년 가을. 고갱은 마르케사스 섬 히바 오아로 이주했다. 거기서 오두막을 짓고 '쾌락의 집'이라고 불렀다. 그는 다시 열 네 살의 어린 여자아이를 맞아들였다. 고갱은 그녀를 그렸고, 그녀는 임신했다. 고갱이 1903년 5월 8일 54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그곳 주교는 다음과 같은 애도사를 했다. "유일하게 언급할 만한 사건은 경멸해 마지않는 고걍이라는 한 개인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예술가였지만 하느님의 적이었습니다."





10장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
─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11장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세계는 계획을 따르는가?

12장  윈스턴 처칠과 찰리 채플린
─ 악을 어떻게 이길까?

13장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 나는 완벽해야 하는가?

14장  존 레논과 오노 요코
─ 내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15장  넬슨 만델라와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 어떻게 폭력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책 속으로

아벨라르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사냥감을 위협하거나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수학을 공부하거나 교회 성인들과 그리스·로마 사상가들의 저서를 공부할 때 그는 이 젊은 여인을 맘대로 유혹했다. 그들은 책을 보는 대신 서로의 눈을 보았다. 곧 그들은 말을 주고받기보다는 키스를 더 많이 했다. 아벨라르의 손은 책장보다는 엘로이즈의 가슴에 더 자주 머물렀다. 그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잠자리를 함께했다. - 41쪽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본질과 양상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다 빈치는 다양한 형태로 권력을 체험하고 형상화했다. 권력은 그의 작품에서 사회·정치적인 현상으로서뿐만 아니라 삶의 포괄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여기서 권력을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로 예감할 수 있다. 즉 온갖 긍정 혹은 부정의 방식으로 우리를 억누르려 하지만 이에 저항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가게 하는 모든 힘으로 말이다. - 78쪽

스미스는 임종 때 더 많은 일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자신이 전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리고 자신의 조언이 얼마나 일방적으로 왜곡될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쓴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책임 없는 자유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스미스는 흄과 마찬가지로 단호하게 ‘노No!’라 말할 것이다. - 130쪽

“당신들, 남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나라는 피로 물들 것이며 신만이 이 전쟁의 끝을 아실 겁니다. 이 모든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광기이며 문명에 대 한 범죄입니다! 당신들은 전쟁을 너무도 쉽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전쟁은 끔찍한 것입니다!” - 166쪽

식사 중에 처칠은 그의 유명한 촌철살인을 선보였다. 채플린에게 다음 역할은 무엇인지 묻자 채플린이 “예수”라고 답했다. 그러자 처칠은 건조하게 되물었다. “저작권 문제는 해결했나요?” - 292쪽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경계와 분야를 넘나드는 지식 교양서
역사적 인물들의 만남은 퍼즐 조각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리키는 작은 그림이자 역사의 큰 그림을 구성하는 일부다. 독일의 전천후 기획자이자 작가인 헬게 헤세가 역사적 인물들의 ‘만남’을 짚었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짚고 있는 인물들의 스펙트럼은 종횡무진이다. 플라톤에서 만델라까지 철학, 과학, 정치, 예술, 대중문화 등 전방위적인 인물 30인과 그들의 만남을 15장에 걸쳐 펼쳐 놓으며 작가 특유의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각 시대를 조감한다.

대립, 사랑, 우정, 창조적 계승 등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리다
이 책은 고대 이래 세계 역사를 수놓은 유수한 만남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와 같은 운명적 만남을 비롯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와 같은 대립적 관계, 율리시스 S. 그랜트와 윌리엄 T. 셔먼의 우정,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창조적 계승까지. 두 사람의 만남을 여는 각 장의 서두는 소설적 서술 방식으로 쓰여져 역사적 만남의 성격과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각 인물들의 개인사는 여기에 깊이를 더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역사는 만남의 연속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의 만남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놓치지 않는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만남에서는 체사레 보르자가 있고,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에서는 부플레르백작 부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연결고리인 버트런드 러셀이 있다. 덕분에 역사적 인물들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느 위대한 인물도 역사에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삶과 역사를 관통하는 질문들
역사적 인물들의 만남을 따라나선 길에서 저자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던졌다기보다 역사가 묻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역사가 인간에게 또 삶이 우리에게. 가령 이런 식이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과학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시대를 산 요하네스 케플러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만남에 부쳐 “신앙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또 어디에서 끝나는가?”를 묻는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삶 가운데 “내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모든 시대, 모든 사회는 항상 그들만의 문제를 갖고 있음을 들여다본 저자의 응시와 사유가 배어나는 질문들이다. 당대의 문제적 담론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시대와 사회상이 오롯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역사적 만남의 발견인 동시에 세계사의 축약이기도 하다.

내일의 역사를 꿈꾸는 만남들을 기대하며
현재는 과거 만남들의 결과물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가 한 부분이 되어 있는 역사도 만남의 연속이다. 역사 속 생동했던 만남과 교류의 현장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사람에게 만남이란 어떤 의미인지 또 그 만남이 어떤 삶을 살게 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