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나는 여태 하이네가 소녀틱한 서정시인인 줄로만 알았네!

2019. 9. 4. 22:27책 · 펌글 · 자료/ 인물




슐레지엔의 직조공

                                                         하이네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마르고

베틀에 앉아 이빨을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 넣는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첫 번째 저주는 신에게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우리는 기도했건만

희망도 기대도 허사가 되었다

신은 우리를 조롱하고 우롱하고 바보 취급을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두 번째 저주는 왕에게 부자들의 왕에게

우리들의 비참을 덜어 주기는커녕

마지막 한 푼마저 빼앗아 먹고 그는

우리들을 개처럼 쏘아 죽이라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세 번째 저주는 그릇된 조국에게

오욕과 치욕만이 번창하고

꽃이란 꽃은 피기가 무섭게 꺾이고

부패와 타락 속에서 구더기가 살판을 만나는 곳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북이 날고 베틀이 덜거덩거리고

우리는 밤낮으로 부지런히 짠다

낡은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 넣는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출전 :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김남주 옮김, 푸른숲, 1995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한번쯤 하이네의 시에 마음이 사로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봄과 자연과 사랑을 노래한 초기 서정시의 백미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 모든 꽃봉오리들이 피어날 때 / 이 가슴에도 사랑이 싹텄네”나,  멘델스존의 작곡으로 유명해진 “노래의 날개에 실어, 사랑하는 이여 / 나 그대를 멀리 데려가리 / 갠지스 강 들판으로 데려가리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곳으로”와 같은 ‘서정적 간주곡’의 사랑 시편들은 하이네를 연애 시인으로 각인시켜 놓았다.

또 있다. 세계적으로 애창되었던 질허 작곡의 민요 “알 수 없는 일이다 / 어찌하여 옛날의 동화 하나가 / 잊히지 않고 / 나를 슬프게 하는지”로 시작하는 ‘로렐라이’라 불리는 시.  하이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들이 이 시를 금지하려 했으나 이미 너무 알려져 작자 미상의 민요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네는 사랑의 환희와 고통을 가장 쉬운 독일어로 가장 아름답고 깊게 노래했다. 

니체가 그를 '독일어의 제일가는 곡예사'라 부른 까닭이다. ▲하이네, 1837



한데 하이네만큼 문학적으로 다양한 평가를 불러일으킨 시인도 드물다.

아웃사이더,

예외자,

포착할 수 없는 시인,

독일문학 사상 최초의 혁명적 민주시민,

현대적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표상,

조국 독일을 가혹하게 비판한 이른바 ‘둥지를 더럽힌 자’….

하이네의 삶과 내면을 설명하려는 수식들이다.


스스로 '인류 해방의 용감한 병사, 혁명의 아들'이라 자처했던 그는 1797년 프랑스와 경계해 있는 독일의 라인 지방 뒤셀도르프에서 유대인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시기, 장소, 태생 자체가 혼돈과 경계를 상징한다. 때는 근대화가 발아하던 시기였고, 뒤셀도르프는 프랑스혁명군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봉건 독일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의 혁명과 자유를 갈망했던 하이네, 그는 폭풍처럼 살았다. 그의 친구 라우베는 이렇게 증언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사랑에 빠진 처녀가 애인 품에 몸을 던지듯이 자신의 시대에 앞뒤 가리지 않고 몸을 던졌다.”



1831년 5월, 하이네의 프랑스 망명은 자유와 혁명으로 상징되는 '자유로운 사유에 바쳐진 희생'이었다. 1843년 말 젊은 마르크스와 교류했던 그에겐 ‘공산주의의 승리에 대한 본능적 예감’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대중 지배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혐오감’ 때문에 공산주의에 경도되지는 못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던 1848년에 질병이 발발하여 숨을 거둔 1856년까지 그는 스스로 “침상은 나의 무덤, 방은 나의 관(棺)”이라 표현했던 그 ‘침대 무덤’에 갇혀 있었다.

두통, 마비 증상, 시력장애, 척추 고통에 신음하며 불완전한 눈과 손으로 그는 죽음 직전까지 보수 반동의 사회 정치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 가슴 한 켠에는 어머니와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 그렇게 반평생을 이국땅에서 떠돌았다.

“밤중에 독일이 생각나면 /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 다시 눈을 감아도 감기지 않고 / 뜨거운 눈물만 흘러내린다. // 해는 오고 또 지나간다! / 어머니를 만난 지도 / 어언 열두 해가 흘렀건만 / 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만 갈 뿐 // (...) / 신이여, 늙은 어머니를 보호해주소서!"(‘밤이면’).

 ◀하이네는 죽음 직전까지도 사회 정치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 1851년 병상에서의 모습


‘슐레지엔의 직조공’은 1844년에 슐레지엔에서 발발했던 노동자 투쟁을 소재로 한 정치 시, 노동자 시, 선전선동 시의 원조다. 1840년대 유럽은 산업혁명 시기였다. 기계화ㆍ산업화로 값싸게 대량생산된 직조 생산물들은 손으로 직물을 짜던 직조공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더 큰 이윤을 챙기려는 공장주들은 직조공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했다. 절대빈곤에 시달리던 3000여 명의 직조공들은 농기구를 무기처럼 들고 악덕 공장주의 집을 향했다. 공장주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자 열한 명의 직조공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슐레지엔 직조공들의 ‘폭동’은 콜비츠에 의해 6부작(빈곤, 죽음, 회의, 행진, 폭동, 결말)의 판화로 새겨지기도 했다.

이 시는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옛 제도’, ‘구체제’를 이르는 말)의 중심축을 공격하고 있다. 신(가톨릭교회), 왕과 귀족(봉건귀족), 그리고 조국(권력)에 대한 저주가 바로 그것이다. 기도해봤자 응답이 없는 신, 귀족들의 권익만을 옹호하는 왕, ‘그들만의 나라’ 조국에 대한 ‘세 겹의 저주’는, “신의 가호 아래 국왕과 조국을 위하여”로 대변되는 독일의 낡은 봉건체제에 대한 공격이다. 이 앙시앵 레짐은 돈과 권력과 종교가 결탁한 현대에도 여전하다. 이 시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70년대 내내 우리의 엄마, 언니들이 밤늦게까지 차르르차르르 돌렸던 편물기 소리가 떠오르고,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떠오르고,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후렴이 너무 경쾌해서 서글펐던 노찾사의 ‘사계’도 떠오른다.


1, 2행이 객관적 서술이라면, 3행부터 끝까지는 억압과 착취를 무력하게 감내하던 직조공들의 증오와 저주의 합창이다. ‘저주’, ‘수의’, ‘짠다’라는 시어가 반복되면서 일정한 리듬을 구축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라는 후렴구가 분노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를 반복할수록 ‘덜거덩거리는’ 직조기 소리가 연상되고 저주의 주술성이 증폭되는 듯하다. 또한 하이네가 경도되었던 생시몽주의(국가가 모든 부를 소유하고 노동자는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분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일면도 엿보인다. 민중의 정치적ㆍ사회적 해방과 ‘새로운 독일의 탄생’에 대한 하이네의 믿음을 밑거름 삼아 발화된 시다. 하이네의 ‘저주’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 시대에, ‘누벨(nouvelle)’한 레짐(régim)을 꿈꿔보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12.13-1856.2.17)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유대인 상가에서 태어났으나 부호인 숙부의 도움을 받아 본 대학교, 괴팅겐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등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그러나 본에서는 A. W. 슐레겔 교수의 문학 강의를, 베를린에서는 헤겔 철학 및 그 밖의 문학 강의를 많이 들었으며 라엘 부인의 살롱에 드나들며 샤미소, 호프만, 푸케, 그라베 등과 사귀었다. 1827년 시집 <노래의 책>을 내며 명성을 얻었고 7월 혁명에 감동받아 파리로 갔다. 그 후 독일과 프랑스에서 신문과 잡지에 많은 논문과 평론을 발표해 언론인으로서 인정받았으나 정부의 미움을 산 후 국외로 추방되어 파리에 머물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논문과 서정시를 썼다. 낭만파로 출발하였으나 유대인에 대한 차별 의식과 7월 혁명이 그를 지배한 까닭에 달콤한 낭만적 색채 속에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냉소가 숨어 있고 열렬한 애국심 이면에는 편협한 독일 사람에 대한 반항심이 불타고 있었다. 대표작으로 <로만파>, <독일 겨울 이야기>, <파우스트 박사>, <아타 트롤>, <로만체로> 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노래의 책>과 <로만체로>는 하이네의 세계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글.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ㆍ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독일 시인



눈 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 

모든 봉오리마다 꽃으로 피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에 

나의 마음 속에 

사랑은 꽃피었네. 

 

모든 새들이 노래를 터뜨리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에 

그리운 마음 아쉬운 마음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었네,








   어찌하여 나의 눈동자는 흐리는가

                                                       하이네

 

무슨 일일까,

내 외로운 눈물은 눈물이 괴어 볼 수가 없다.

옛부터 내 눈에 스몄던 정이

사라지지 않고 괴어 눈물이 되네.

지난날 눈물의 가짓수는 많기도 했지.

그 눈물, 모두 흘러내려 바닥이 났는데,

우수와 환희와 함께

밤과 바람에 함께 사라져 갔는데.

기쁨과 탄식을 이 가슴에 미소띠며 던져주던

푸른 작은 별도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는데.

아아, 내 가슴에 품고 있던 사랑마저

하염없이 한숨처럼 사라졌거늘

옛 고독의 눈물이여,

이제 너도 또한 다 흘러 없어지거라








 

      로렐라이

                                    하이네



왜 그런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슬퍼지나니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자꾸만 메아리친다.

쌀쌀한 바람 불고 해거름 드리운

라인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데

지는 해의 저녁놀을 받고서

바위는 반짝이며 우뚝 솟아 있다.

이상스럽구나 그 바위 위에

부르고 있는 노래 소리

 

그 멜러디는 이상스러워

그 노래의 힘은 마음에 스민다.

배 젓고 있는 사공의 마음에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기만 하여

뒤돌아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강 속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무참하게도 강 물결은 마침내

배와 사공을 삼키고 말았나니

그 까닭은 말할 수 없으나 로렐라이의

노래로 말미암은 이상한 일이여








 

   너는 한 떨기 꽃과같이

                                     하이네



너는 한 떨기 꽃과 같이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가슴에 애수가 스며드누나.

너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나 하느님께 기도해야 하리,

언제나 네가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게 있어달라고.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이네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불행하다 해도 신이라네.

하지만 불행한 사랑을

두 번씩 하는 사람은 바보라네.

나는 그러한 바보, 사랑받지도

못한 채, 또 다시 사랑에 빠졌네!

해와 달과 별들이 깔깔대고 웃네,

나도 따라 웃으며, 죽어간다네.









     내 소중한 친구여

                                                         하이네


내 소중한 친구여, 너 사랑에 빠졌구나,

새로운 고통에 시달리고 있구나.

네 머릿속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네 가슴속은 갈수록 환해지겠지.

내 소중한 친구여, 너 사랑에 빠졌구나,

네가 그것을 설사 고백하지 않아도,

심장의 불길이 벌써 네 조끼 사이로

훨훨 타오르는 것이 보이는구나.

 





 

     원망하지 않으리 

                                                    하이네



원망하지 않으리, 이 가슴 찢어져도.

가버린 사람아! 원망하지 않으리.

수많은 다이아먼드로 몸을 꾸며도

그대의 마음은 캄캄한 밤이어라.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노라.

그대를 꿈꾼 그 때 그대 마음의 어두움도 보았다.

그대 마음을 갉고 있는 뱀도 보았다.

연인이여, 너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다.








     맹세보다는 키스를

                                   하이네



오오, 맹세는 하지 말고 오로지 키스만!

여자의 약속은 절대 믿지 않는다

그대 말 달콤하지만 키스는 더욱 달콤하다

나는 그대 키스 어디서나 간직하겠다

맹세란 빈 바람과 같은 것

아니, 내 말을 취소하겠다

그대는 당당하게 맹세하고 또 사랑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 가슴에 머리 기댄 채

그대의 하인이 되고 영원한 신뢰 속에서

축복받은 그대 용서를 감히 받겠다

그러면 내가 신뢰하는 동안

아니, 그보다 더 먼 훗날까지도

그대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노래의 날개 위에

사랑하는 그대를 태우고

갠지즈 강가의 풀밭으로 가자

거기 우리의 아늑한 보금자리 있으니

고요히 흐르는 달빛 아래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 있고

연못의 연꽃들은

사랑스런 누이를 기다린다

제비꽃들은 서로서로 미소 지으며

별을 보며 소근거리고

장미꽃들은 서로 정겹게

향기로운 동화를 속삭인다

깡총거리며 뛰어나와 귀를 쫑긋거리는

온순하고 영리한 영양들

멀리 귓가에 들려오는

강물의 맑은 잔물결 소리.

그 정원의 야자나무 아래

우리 나란히 누워

사랑과 안식의 술잔을 나누고

행복한 꿈을 꾸자꾸나










   꽃이 진 줄도 모르고.



꽃이 진 줄도 모르고, 봄이 갔네.

바알간 자목련 꽃잎이 푸른 하늘에 훤했는데,

꽃이 지면서였는지, 꽃이 흔들릴 때 였는지,

사는 것이 동굴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아,

질척거리는 젖은 곳을 헛발질 하고 있는 것 같아,

짚는 곳과 짚이는 것은 왜이렇게 틀린 건지, 어둠속에 틀어박힌 것 같아,

꽃이 진 줄도 모르고, 계절이 지나가 버렸네. 


 

 

     사랑고백

                                 하이네


저녁이 되어 어둠이 찾아 드니

바다는 더한층 거세게 파도 쳤다.

바닷가에 앉아 하얗게 부숴지는

파도의 춤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 그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아름다운 모습, 그대의 모습은

내 주위에서 맴돌고 어디에서나 나를 부른다.

세찬 바람속에서도,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내 가슴의 한숨 속에서도,

어디에서나...

어디에서나...

나는 가느다란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썼다.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지만 심술궂은 파도가

이 달콤한 고백 위를 덮쳐가며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약한 갈대여,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래여,

사라지는 파도여, 난 이제 너희를 믿지 않으리!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내 마음은 더욱 날뛴다.

이제,

나 저 노르웨이의 숲에서

가장 크고 푸른 전나무를 찾아

그 뿌리채 뽑아

저 애트나의 불타오르는

샛빨간 분화구에 담갔다가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나 저 어두운 하늘을 바탕삼아 쓰겠노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이렇게 하면 저녘마다 하늘에는 영겁의 필적이 타올라

뒤에 오는 후손들은 모두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하늘에 쓰인 말을 읽으리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이네는 산업혁명  시대 쯤 약 17~18세기 부근의 독일시인이다. 당시는 봉건영주와 (땅주인) 농노(농사짓는 노동자) 쯤으로 나뉘어 있었고, 문자매체 시는 봉건영주들의 감성 표현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현실적인 서민들의 생활감정,생활상, 인생고 표현이 드물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시라는 점에서, 마음의 응축인 서정을 표현하는  하이네의 시는 읽을 만하다.문자매체인 시는 봉건영주의 감성표현-산업혁명시대의 기업가들의 감성표현을 거쳐 지금은 서민들의 감성을 표현한다는 미명하에 , 서민들의 인생고난이 사라진 센티멘탈 감상주의나 지독한 자기주의에 빠진 난해한 표현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간간이 김신용같은 서민들의 생활고를 표현하는 시인들도있다.





      저기에서 한숨에 까지,




원하는 만큼 대출(貸出)해준단다.  
내 인생 어디까지 대출(貸出)해 줄 수 있나.
내 인생의 끄트머리까지 와서 대출(貸出)해 줄 수 있나,
아무도 오지 않을, 오고 싶지 않은, 거기에도 오려나,
구렁텅이 , 
구렁텅이 속까지, 찾아와서, 
원하는 만큼 대출을 해 준단다.
저기에서, 노을이 지는 저 저녁, 내 유년의 기억이 묻힌 
시간 속으로도 오는가.
어스름 비낀 저녁 끝, 
여주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은 한숨에 까지,

- 가게 문을 열면 곳곳에 대출해 준다는 명함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름도 다양하다, 엄마 대출, 이모 대출, 대출을 받다가 빚더미에 쫓겨 자살까지 한다는 신문기사들 때문일까
이름도 바꿔서, 무서워 보이지 않을 것같은 명칭을 쓴다. 엄마, 이모 ...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짐작하고 있는데,
삶의 끝에서 체험으로 알고 있는데,
당해봐야 안다는,
빠져 봤기 때문에 안다는,
알고 싶지 않을 것들을 알면서 살아가는 生涯를 위하여, 여주나무에는 여주나무 열매가 달리고 있을까,
여주나무 그늘에서 쉬고 싶은 열매들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마주할 시간을 마주칠 수 있을까,
거울 속에 갇힌 내 얼굴과 마주할 수 있을까,
헛발질하는 풍선처럼,
어둠 속을 짚는 목발처럼,
짚는 것과 짚이는 것이 틀리는 헛발질 처럼,

풀잎사귀에 맺혀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나무가지 그늘에 스며들수 있을까,

물방울에 스며드는 푸른 하늘에 흘러갈 수 있을까, 오늘 없어지더라도

없어지는 것처럼.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은 또 어제일은 잊어버리고

나뭇잎엔 물방울이 맺히는데,

물방울 속에 잊었던 눈동자가 맺히는데,

먼 길은 잃어버린 채이고

어둠속에 질척거리는 발걸음이 맺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