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별 기대도 않고, 지나는 길에 들러본 거였는데, 와우! 천년고찰이었습디다.
직지사 못지 않는 규모입디다.
1980년대에 화재로 전부 소실되어서 모두가 방금 지어진 신축건물입디다만,
다행히 소실을 면한 두 채만으로도 보물급 문화재를 여섯 개나 가지고 있습디다.
회전문(廻轉門)? 첨 들어보는군. 천왕문 자리인데?
‘자운루’ ‘해운루’, 만세루가 나란히 두 개나 있습디다.
엄청 큰 절이었단 얘긴디......
용문사에서 진짜배기로 볼 것은 유일하게 화재를 면했다는「대장전 」하나 뿐입니다.
허어~ 근데, 내가 왜 이리 사진을 허술히 찍었을까?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杜雲)이 처음 건립하였다 전한다. 이 건물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간직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조선 현종 6년(1665)에 다시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17세기에 다시 지어진 건물로 추측된다. 장대석으로 바르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이다. 기둥 위에 공포는 다포로 장식하고 지붕은 맞배로 하였다. 내부는 마루를 깔았고, 중앙 뒷면에 불단을 마련해 좌우 협시를 거느린 작은 여래상을 안치하였고, 후불 벽에는 목각탱을 달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불단 앞쪽 좌우에는 고려 명종 3년(1173)에 설치되고, 인조 3년(1625)에 중수된 회전식 윤장대가 1개씩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곳뿐이다.
오늘 나들이는 이곳 용문사가 아니라 봉정사가 타킷잉께로~
윤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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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좌측 윤장대 여덟면 몸체에 베푼 통판투조 꽃살문 중 여섯 부분. |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회전개방
대장전, 장경각, 판전의 건물들
불교에서 말하는 법은 부처께서 깨쳐서 드러내신 반야, 곧 진리 그 자체다. 부처님은 생애 45년 동안 중생제도를 위해 법을 설하고 몸소 전도하셨다. 연기법과 사성제, 팔정도(八正道) 등에 대한 부처님의 반야바라밀행을 일컬어 ‘법의 수레바퀴를 구르셨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전법륜(轉法輪)’이라 부른다. 장엄미술에서 법륜은 보통 중앙에 원형의 연판을 갖추고 팔각의 부채살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수레바퀴 형태다. 부처님 입멸 후 무불상시대에 법륜은 만(卍)자 문양 등과 함께 붓다를 상징하는 조형언어였다. 순환과 회전의 기하학적 상징을 통해 진리법의 영원불멸성과 광대무변을 일깨웠다.
부처님의 법은 삼장(三藏)에 갈무리 해뒀다. 삼장은 경장과 율장, 그리고 그를 해석한 논장을 담은 ‘트리 피타카’, 즉 ‘세 개의 광주리’다. 그 세 개의 광주리 일체가 대장경이다. 경전을 펼치면 8만 4천의 법문에 이른다. 그 일체의 경전세계의 집대성이 팔만대장경이다. 경전은 전파와 유통을 목적으로 목판으로, 혹은 책으로 펴낸다. 목판본의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건축이
세계문화유산인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장경판전 역시 팔만대장경의 규모만큼 장대하다. 그런데 한 사찰 단위에서 새긴 경전 목판, 혹은 책자 형태의 경전은 그 수량도 적을 뿐만 아니라, 보관 장소의 규모도 3×2칸, 또는 3×3칸의 크기가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장전’이나 ‘장경각’, ‘판전’의 편액을 단 건물들이 그것이다. 대장전은 예천 용문사, 김제 금산사에 남아있고 서울 봉은사는 ‘판전’의 이름으로, 여주 신륵사에는 ‘대장각’의 비명기록이 남아 있다. 장경각은 순천 선암사, 양산 통도사, 풍기 부석사, 남양주 불암사(지장전) 등 서너 곳에 현존하고 있다.
윤장대, 경전 보관하는 국내유일 회전책장
그런데 예천 용문사 대장전은 대단히 희귀하고 특별한 전각으로 손꼽힌다. 용문사 대장전에 갈무리한 대장경은 서적으로 펴낸 경전류다. 용문사 소장 대장경 간행기를 볼 때 〈문수경〉, 〈묘법연화경〉, 〈80화엄경〉 해설서 등을 보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용문사 대장전의 특징은 그 서적들을 보관하는 책장 장치에 있다. 그 장치가 ‘전륜장(轉輪藏)’이라고도 불리우는 ‘윤장대(輪藏臺)’다.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1기씩 2기가 있다. 윤장대는 간단히 말하면 대장경 서적을 보관하는 회전식 책장이다. 건축기능을 살린 구조적 형태의 독자성과 함께 종교장엄의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하나로 유일하다. 물론 문헌기록이나 절터 발굴과정에서 몇 군데서 대장전 터가 나오고, 윤장대 시설을 갖춘 흔적이 발견된 사례도 있다. 영동 영국사와 양주 회암사지에서 대장전 터와 윤장대 시설 유구가 발굴 된 바 있다. 또한 15세기 조선의 학자 남효온의 금강산 기행문에는 금강산 장안사에 삼단으로 만든 회전식 대장경함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윤장대의 사례는 용문사 것이 유일하다.
대장전은 일종의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작은 규모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윤장대는 그 도서관에서 경전을 쌓아 두고 있는 회전식의 서가시설이라 할 수 있다. 용문사에 대장전과 윤장대를 설치한 연유는 1972년 대장전 보수공사 당시 발견된 ‘중수상량문’(1767년)에서 밝히고 있다. “일찍이 서역의 구담씨가 팔만대장경 경전을 용궁에 안치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장전이 세워졌다” 고 언급하고 있다. 즉 인도사람 구담씨(구답마)가 팔만대장경을 용궁에 안치하였듯이 사찰명이 ‘용문(龍門)’인 용문사에 대장전을 세웠다는 것이다. 불교설화의 인연 따라 시설하였다는 서사적 플롯이 흥미를 끈다. 용문면 인근이 용궁면이라 인연이 특히 기이하다.
그에 앞서 〈중수 용문사기〉(1185년) 비명에는 조응스님과 자엄스님의 발원에 의해 고려중기 명종 3년(1173년)에 윤장대 두 좌(座)와 그를 안치할 건물 3칸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서로 긴밀한 유기적 일체형으로 동시에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현재의 윤장대는 1621년에 대대적으로 중수한 17세기 양식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1621년의 중수 사실은 윤장대 내부의 묵서기록을 통해서 확인된다. 윤장대가 400년 된 국보급 성보문화재임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윤장대 내부 모습. |
윤장대 돌리면 경전 독송한 공덕과 같아
그런데 윤장대의 건축적 미덕은 보관장치 개념보다는 경전함을 회전시키는, 곧 경전을 구르는 전륜장의 개념이 보다 본질적으로 다가온다. 튼튼한 손잡이를 달아 신분 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윤장을 구르게 한 종교적 추체험의 방편지혜가 빛난다. 벳의 마니차(경륜)에 담긴 대승적 상징과 일맥상통 한다. 윤장대를 돌리는 것은 그 내부의 경전을 독송한 공덕과 같다고 한다. 글을 모르거나 글은 읽어도 그 심오한 뜻을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에겐 대단한 반가움이 아닐 수 없다. 유희와 같은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진리를 구하는 복전의 공덕을 쌍을 수 있다니!
그러나 지금은 아무 때나 돌릴 수 없어 아쉬움을 준다. 음력 3월 3일인 삼월 삼짓날과 9월 9일 중양절에만 돌릴 수 있다. 용문사 대장전의 윤장대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적 회전 구동력을 갖춘 하단부와 통판투조 창호를 갖춘 팔각기둥형의 몸체부, 그리고 공포구조를 갖춘 목조건축 지붕의 상륜부가 그것이다. 윤장대는 먼저 마루바닥에 팔각 구멍을 뚫고 마루 밑 지반에 화강암 심초석을 구축했다. 심초석은 회전축의 기반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원통형의 회전축은 느티나무 재질의 목재로 지름이 28cm이고, 높이가 4.2m에 이른다. 목탑의 심주(心柱)처럼 마루바닥 밑 초석에서 천정까지 관통한다. 회전축이면서 동시에 목조건축의 중심코어인 찰주(刹柱) 역할을 한다.
그러한 기반시설과 중심을 마련한 후, 마루바닥 위로 불상대좌처럼 연꽃 받침을 마련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윤장대가 연화화생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윤장대에 담은 기물이 부처님의 설법을 담은 경전류의 성보이므로 연화좌의 형식은 합리적이지만, 발상에서 대단히 기발해서 감탄을 자아낸다. 하단의 8면은 넝쿨문을 새긴 낙양장식으로 칸칸이 분할하였고, 각 면은 아래가 좁아지는 역삼각형 형태다.
면마다 벽사적 성격의 용의 정면 얼굴을 베풀어서 신성을 부여했다. 팽이처럼 아래가 뽀족한 윤장대의 건축외형은 회전체의 속성을 환기시켜 주는 심리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즉 전체 디자인부터 대상이 가진 물리적 속성을 이미지화 하는데 뛰어난 조형감각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 기능에서 여전히 회전동력을 갖추고 있으며 종교장엄의 의장에서도 세련되고 정교하다. 그런 점에서 장인의 조형감각은 대단히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이다. 명작의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윤장대 하단부. 연꽃 위에 윤장대를 시설했다. |
여덟 면의 아름다운 통판투조 꽃살문
윤장대의 몸체는 팔각기둥 양식이다. 여덟 면마다 통판투조 창호, 혹은 빗살창을 베풀었다. 2기의 윤장대 중에서 향좌측의 몸체에는 통판투조 꽃살문을, 향우측의 윤장대에는 빗살문을 냈다. 마치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하나는 고전주의 양식으로 단순, 간결하고, 다른 하나는 낭만주의 경향으로 자유분방하고 다채롭다.
문양은 연꽃, 국화, 삿자리 등 현실의 이미지를 빌려 종교적 거룩함의 관념으로 승화시켰다. 반복과 복제라는 기하학적 패턴을 통해 단순함 속에 깃든 숭고함을 일깨운다. 여덟 면의 창호 중에서 실제로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창호는 두 곳 뿐이다. 그 중 하나인 연꽃밭의 세계를 담은 장면은 대단히 뛰어난 수작이다. 색채, 형태, 구도에서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프레임을 갖췄다.
색채 운영에서 전통적인 바림기법을 통해 그라데이션의 풍부한 색조를 풀었고, 현대적인 음영의 명암법도 구사해서 입체감을 운영한 점도 놀랍다. 하나의 프레임에 여덟 층이 켜켜이 쌓였다. 위에서부터 붉은 연꽃, 푸른 연잎이 교대로 번갈아가면서 층층을 이룬 단청의 세계이자, 연화장의 세계다. 어떤 연꽃은 활짝 피고, 덜 피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위로 피고 어떤 것은 아래로 꽃송이를 드리웠다.
연잎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네모진 잎을 비롯해서 타원형, 바람에 오므린 잎까지 다양하다. 물고기들이 연지를 유영하는 여름철의 한 때, 화면에는 생동감 있는 생명력과 조화로움이 충만한 화장세계다. 꽃들은 일승의 진리법에 젖은 법열의 기쁨으로 표출된 상징관념일 터이다.
윤장대의 내부는 회전축의 심주를 둘러싼 사천주가 위로 뻗치고, 그 둘레에 팔각의 서책 진열대를 빙 둘러 가설해서 경전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윤장대 내부 천정에는 용틀임하는 역동적인 용이 보주를 움켜쥐고 있다. 경전을 용궁에 안치한 설화의 구현를 뒷받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화엄경의 기원으로 회자하는 용궁장래설(龍宮將來設)’을 조형으로 확인하는 순간 같다. 용궁장래설은 문수보살께서 편찬해서 용궁에 보장한 화엄경을 용수보살이 암송하고 돌아와 세간에 유통시켰다는 설화다.
윤장대는 진리의 보장처이고, 사부대중이 몸의 감각으로 진리법의 법비와 훈습에 젖는 추체험의 수레바퀴다. 윤장대를 돌리고 나오는 그 사람이 우리 시대의 소박한 용수들일 터이다.
노재학 불교사진작가 |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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