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아트』- 293개 작품으로 만나는 미술 속의 책

2018. 9. 23. 12:20미술/미술 이야기 (책)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 토마스 아퀴나스(1225-74)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자기 인생에 전기를 마련했을까!

 

─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62)

 

 

 

‘책에 모든 걸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1온스의 사랑은 1파운드의 지식만큼 가치가 있다.

 

─ 존 웨슬리(1703-91)

(※ 1파운드 = 16온스, 1파운드 = 0.5kg.)

 

 

 

책을 불태우는 것보다 더 나쁜 범죄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 조지프 브로드스키(1940-96)

 

 

 

 

 

 

 

리딩 아트    

데이비드 트리그 지음 / 역자 이주민 옮김   2018.06.04    
32,00028,800

 

저자 데이비드 트리그 : 예술 비평가이자 작가. 영국 브리스톨에서 활동 중이다. 파이돈 북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고, 몇몇 매체에에도 기사와 비평을 써왔다.

 

 

 

 

 

예술이 된 책과 독자, 미술 속에서 만나는 ‘읽기’의 문화사

 

파올로 우첼로, 에드가르 드가, 에곤 실레, 데이비드 호크니 등 수많은 예술가들은 책을 그려왔다. 그들의 작품에는 책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자세의 읽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아주 오래전 작품임에도 모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책은 완벽한 물건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책은 인류의 가장 완전하고 혁명적인 발명품이지만 동시에 일상적이라 시대를 잘 반영한다. 『리딩 아트: 293개 작품으로 만나는 미술 속의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회화, 조각, 설치 등의 작품 속에서 책과 독자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함의를 보여준다.

책이 등장하는 300여 개의 작품을 한 번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각 작품의 회화적 특성과 함께 책이 투영하는 시대적 배경과 의미 등을 설명했다. 책과 예술을 사랑한다면, 수세기의 미술 작품을 보는 기쁨은 물론 역사 속 책과 독서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까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책, 책의 위상


유럽에서 본래 책과 출판, 유통은 수도원이 독점했으나 12세기 말, 대학이 생기자 교회의 통제를 벗어났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필경사와 제본업자 들이 늘어나 필사본 가격이 내려갔고, 개인적으로 책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인쇄기의 발명은 이런 추세를 더 적극적으로 앞당겼는데, 덕분에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책을 소소하게 수집했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자들의 초상화에는 대체로 고전주의 작품들이 손에 들려 있다. 유럽에서 성경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자 보통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독서하는 모습이 그림에 등장했지만, 그래도 17세기까지 미술에서 책의 이미지는 대체로 학식, 지혜, 성스러움, 권위, 부와 연관되었다.

한편 라틴어로 ‘헛됨’을 뜻하는 ‘바니타스’라는 회화 장르에서는 책의 새로운 함의가 등장한다. 얀 다빗스존 데 헤임의 〈책이 있는 정물〉에서는 지식의 무상함을 탁자 위에 아무렇게 늘어놓은 낡은 문학책들로 표현했다. 또 책과 함께 생명의 유한함, 또는 나태함에 대한 경고를 의미한 회화도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책은 대량생산 상품으로 완전히 자리 잡아 더 이상 예전처럼 귀하고 성스러운 물건이 아니게 되었다. 버려지고 원치 않아진 책들은 현대 예술가들의 손에서 조각, 회화, 설치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책 읽는 여성


17세기부터 사적인 독서가 온전히 세속적인 활동으로 표현되기 시작되면서, 그 피사체로 여성들이 사용됐다. 예를 들어, 피터르 얀선스의 〈책 읽는 여인〉은 창문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의 모습 앞에 신발 한 켤레를 놓아두면서 에로틱한 뉘앙스를 느끼게 한다.

신앙이나 교화가 아닌 쾌락을 위한 독서의 유행은 18-19세기 여성 타깃의 수많은 소설이 등장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문학이 게으름을 부추기며 여성을 타락시키기까지 한다고 했고, 몇몇 예술가들은 독서에 관한 사회적 불안을 책에 몰두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렸다. 예를 들어, 요한네 마틸데 디트릭손의 〈농가의 내부〉에서는 하녀가 집안일도 미뤄둔 채 책을 읽고 있다. 페데리코 파루피니의 〈독자〉에서는 담배를 피면서 책을 읽는 한 여인 앞에 어지러진 책과 술병처럼 보이는 유리병을 그려 도덕적으로 문란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테오도르 루셀은 〈책 읽는 젊은 여인〉에서 완전히 옷을 벗은 모습을 통해 소설 읽기의 부도덕성을 시사하고 있다. 심지어 악마가 보충해주고 있는 책을 읽는 나체의 여성이 그려지기도 했다(펠리시앵 로프스의 〈사서〉).


불타는 책들


책을 고의로 파괴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야만적인 행위로 인식된다. 책은 결국 문명화 사회의 상징이며, 그 사회의 문화이고, 가치이자 믿음이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을 파괴한다는 것은 그 문화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수많은 책들이 문화적, 종교적 또는 정치적 검열 때문에 고의로 소각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성 바오로는 기독교적 믿음에 배치된다고 여긴 책들을 불태우는 것을 감독했고,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리우스가 쓴 이단의 글들을 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 1933년 봄, 나치즘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책들이 독일 전역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그리고 오늘날 베를린의 베벨플라츠는 ‘나치 분서’의 야외 기념관이 되었다. 마르타 미누힌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시기에 검열돼 금지되었던 수천 권의 책들을 기증받아 파르테논 복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파르테논은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와 관련 있는 정치적 이상의 강력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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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모델'을 그린 회화작품만을 모아놓은 것이로군요.

별 내용 없습니다.

 

 

 

 

 

 

 

 

 

 

 

 

 

 

 

리포 멤미 (1290-1347  이탈리아) /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승리 

 

 

 

 

베노초 고촐리 ,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승리> (1470-1475)

 

 

 

이 그림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무릎 위에 여러 책을 놓아둔  토마스 아퀴나스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저작인『대이교도대전』을 펼쳐들고 있다. 이 책은 스페인에서 무슬림과 유대인을 개종시키려는 카톨릭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쓰였다.

왼쪽 페이지에는 "내 입은 진실을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책을 들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도 토마스의 양쪽에 서서 보조적으로 등장한다.

토마스의 발에 짓밟혀 엎드려 있는 것은 터번을 쓴 이븐 루슈드로 중세 아랍의 철학자이자 박식가이다.

그의 이슬람 신학을 아퀴나스가 격하게 반대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으로 그의 철학 스타일을 형성했다.

 

그림 아래쪽에는 교황이 주교와 추기경들에게 ‘아퀴나스가 교회의 빛’ 임을 선언하고 있다.

위;쪽은 네 명의 복음서 저자가 복음서를 저술하고 있으며,

그들 뒤에는 모세가 율법이 적힌 판을,

성 바오로는 책과 검을 들고 있다.

 

그들 위에서는 예수가 아퀴나스를 불러 말하고 있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썼구나!"

 

 

 

 

 

 

 

 

 

 


- 1470년경, 지오바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 58,2 x 44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