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대화』

2018. 3. 20. 21:00미술/미술 이야기 (책)

 

 

 

 

 

예술가들의 대화 2010. 10

 

 

 

이 책은 기획한 지 거의 2년 만에 마무리됐다. 김지연이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로 일할 때 기획했던 <가나아트 25주년 기념전>에서 책은 시작됐다. 당시 김지연은 가나아트센터 전속작가 중에서 원로 / 중견 / 젊은 작가 1명씩을 한 팀으로 묶어, 총 12팀 24명의 대담을 진행했고 이 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 …… )

 

 

 


Ⅰ. 예술가, 장르를 말하다


talk 1. 최종태 + 이동재 : 조각, 전통과 그 변주
talk 2. 박대성 + 유근택 : 한국화, 그 존재의 이유
talk 3. 고영훈 + 홍지연 : 서양화,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talk 4. 배병우 + 뮌 : 사진과 영상의 새로운 세계



Ⅱ. 예술가, 메시지를 전달하다


talk 5. 이종구 + 노순택 : 행동하는 미술
talk 6. 안규철 + 양아치 : 내러티브가 시각화 될 때
talk 7. 임옥상 + 김윤환 : 공공영역에서의 미술가



Ⅲ. 예술가, 미술의 의미를 묻다


talk 8. 윤석남 + 이수경 : 몸으로 하는 미술의 힘
talk 9. 사석원 + 원성원 : 판타지를 꽃피우는 미술
talk 10. 홍승혜 + 이은우 : 기하학적 상상력

 

 

 

 

 

 

 

 

이동재 : 캔버스에 먼저 밑칠을 합니다. 캔버스 크기에 맞춰 확대 복사한 이미지를 놓고, 가로 세로 5mm 공간 안에 쌀을 놓을지 안 놓을지를 결정해 가며 이미지를 완성해 갑니다.

마릴린 몬로가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에 착안해서 알약으로 그녀의 얼굴을 재현해 봤고요, 화려한 생활을 하는 대중스타에는 반짝이는 자개단추를 사용했고요, 커미디언 미;스터 빈은 우리말로 콩이란 뜻의 빈(bean)에서 착안해 콩으로 표현했고, 콘돌라이자 라이사 전 미 국무부 장관은 쌀로, 가수 현미는 현미로, 녹두장군 전봉준은 녹두로 재현하는 작업을 해봤어요.

처음에 이런 식으로 쌀 작업을 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살폈는데 대부분 신선하다고 하더라구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니까 저도 작업을 이런 방향으로 유지하고 있고요. 요즘에는 작가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충격요법을 많이 쓰는 게 사실이잖아요.

 

─ 헐! 할 말이 없군. (동국대 미대를 나왔구먼.)

 

 

 

 

최종태 : 3~4개월 동안 밥도 굶어가며 반야심경 먼저 떼고, 금강경도 뗐어. 그리고 그걸로 졸업논문을 썼지. 불경을 바탕으로 한 예술론. 불경이 다 예술론이더라고. 불교 경전에 팔정도가 있어. 중생이 열반으로 가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여덟 가지 방법. 이 모든 것이 예술가의 자세와 연결되는 거야.

금강경에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멍하다"는 말이 있어.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부처를 보게 되리라는 이야기야. 내가 계속 소녀상을 만들어 왔잖아. 미륵이 남성형이라면 관음은 여성형이지. 그래서 관음을 만들고 싶었던 거야.

작품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낳는 것이야. 되어져 나오는 것이지. 만들면 인위적인 손 냄새가 나. 어떤 작업이 있으면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알지. 이유를 달고 요리조리 피하면 나 자신이 인정하지 않아. 피카소가 "의미는 무의식 속에 들어 있다"라고 한 적이 있어. 의미는 지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내가 살면서 좋았던 것이 '모른다'는 것을 안 것이야. 갑자기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차! 조각은 모르는 것이야'라는 걸 깨달았어.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몰라. 학생들에게 달려가서 바로 얘기 했어. 모든 복잡한 것들이 '모르는 것'으로 풀려버렸어. 이미 주어진 것들을 놓고 그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느라 힘들었던 거야.

 

 

─ 야! 기발한 착안이다!

 

 

 

 

 

 

 

 

 

 

박대성 : 대나무를 보면서 대나무를 그린다기보다 내가 대나무가 된다는 개념, 내가 보는 것과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의 몸을 일치시키는 개념을 저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솔거미술관1

박대성(70) 화백의 ‘붓끝 아래의 남산’전이 경주 솔거미술관 개관전으로 11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고영훈 : 친구들, 특히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친구들은 작업실에 와서 "그림 남는 거 없냐? 그리다 망친 거 없냐?" 하면서 하나 집어갈 태세였지.

 

ㅋㅋㅋㅋㅋ

 

 

난 그림에 목숨 걸었었어. 가족도 걸고 다 걸었었어. 그러니 딴짓을 할 수가 있나. 그때 약간 흔들린 사람들은 중간에 잠깐 쉬었다 다시 시작해도 그동안 내공이 다 빠져나가더군. 작가는 잘 되는 안 되든 상관없이 계속 작업을 해야 돼. 그래야 빠져나가는 기를 막을 수 있어.

 

 

 

 

‘Stone Book’(110.5x144cm, acrylic on paper, 1985).

‘백목련’(77x129cm, acrylic on paper, 2004


M 존경합니다. 그런데 붓으로 그린 그림이라 믿기지 않는 게, 매우 사실적이라 마치 사진 작품 같아요.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 혹은 포토리얼리즘이라 불리는 표현법 같아요. 그중에 작가님을 세상에 알린 가장 유명한 작품이 책 위에 떠 있는 돌 그림이라고 하더군요. 

마이크, 타자기, 하이힐 등 다양한 물건을 그렸어요. 그중 1970년부터 1990년까지 가장 많이 그린 사물이 돌이에요. 이건 활자가 적힌 오래된 책을 캔버스 위에 콜라주 기법으로 붙인 다음 돌이 부양한 것처럼 그린 거예요. 저는 실재하는 오브제를 표현하는 현대 구상화의 첫 주자였어요. 추상화처럼 골똘히 생각하고 유추해낼 필요 없이 일상 사물이기에 식별하기 쉽고 낯설지 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아름다움은 가까운 데 있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임을 표현하고자 했죠. 화가의 역할은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니까요. 

 

 

 

 

 

이종구, <국토-오지리에서> / 1988 / 200 x 170 / 부대종이에 아크릴릭,꼴라쥬 / 국립현대 미술관

 

 

이종구 :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어요. 선배작가군은 대학 실기실에서 캔버스 위에 그림만 그리다가 엄혹한 시대 현실을 만나 생각이 바뀌었어요. 에술은 대학 안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모더니즘도 아니며, 바로 삶에 대한 것이라고 각성한 거죠.

또 다른 부류는 당시 재학생이었던 일명 '386 그룹'이죠. 그림을 그려 전시장에 건다는 것은 안이한 일이라고 여겨졌어요. 후배들은 현장에서 걸개그림을 그리고 깃발을 만들고 영정을 그리며 적극적으로 뛰는데 말이죠.

 

 

노순택 : 민중미술을 '후졌다' '쉽다' '밀도가 낮다'라고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민중미술은 작업 환경 자체가 작업실이나 갤러리처럼 안정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친 현장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사흘 동안 10 미터짜리 걸개그림을 그려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때는 거친 것 자체가 퀄리티였어요. 최루탄이 날아오면 그와 똑같은 강도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입니다. 거칠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 공공미술 같은 성격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순택, <고장난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