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倫 ( ‥‥‥ )

2017. 3. 26. 17:31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with you'

 

우리가 못다한 말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결별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는다.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서 아직도 그대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 채

그대로부터 더욱 멀리 떠나야 한다.

세속의 시간은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 이외수 

 

 

 

 

 

 

 

 

 

 

 

아랫 글 쓴 사람, 예사 필력이 아닌디?

.........

......... 

 

 

 

 

 

 

나이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내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나는 이미 결혼을 한 몸이라거나,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 말하는 아내의 입을 그냥 놔둬서는 안 되는데, 어쩐지 ‘그래, 어쩔 수 없지. 그 사람과 잘 살아’ 이렇게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이는 참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사랑도, 싸움도, 밤중에 체조하는 것도 못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 의심도 많아져서 가끔 사랑이 찾아와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이게 가장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부동산 매매처럼 사랑도 타이밍이라고 한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 팔고, 한참 오를 때 사는 일을 반복하는 게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 자신에게 맞는 사랑은 늘 여건이 좋지 않을 때 찾아온다. 누구도 모르는 이 사랑의 타이밍 때문에 평생 억울해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살이라는 게, 불륜이라고 말하기에는 억울한 괜찮은 만남들이 있다. 규범에 둘러싸인 세상에 살면서, 룰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게 한편으로 죄악이 될 수 있는 줄은 알지만, 누군가 정말 좋아져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만남을, 아내나 남편이 알아도 끊을 수 없는 만남을, 주변 사람 누가 욕을 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정신적으로만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를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뛰고 옷을 벗고 싶고, 그의 옷도 벗기고 싶고, 밤새도록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하나? 밖에서 차를 마시는 것도 싫고, 드라이브도 별로고, 영화를 보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냥 침대 위에서 벗은 채로 함께 있고 싶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래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에게 ‘어디 먼 데로 달아나서 함께 살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가정을 버릴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와 잠을 자고, 나와 밥을 먹고, 나의 눈을 바라보지만, 자신의 가정을 버릴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좋다. 오늘 바로 이 순간 그와 함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가장 후회되는 일은 그가 결혼하기 전에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륜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고, 이건 거부할 덕목이 아니라 인정하고 잘 다스려야 할 감정이다. 잘만 활용하면 부부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결혼이라는 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이 50년 가까이 살면서 어찌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이 없겠는가?

 

바람을 피웠다고 바로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없다고 끝까지 함께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뭐든 적당히 해야 한다. 그러니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일까지 막아보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이건 사랑도 아니고, 그저 관계의 역류일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륜은 어쩌면,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들의 역작용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은 억지로 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실을 인정하고, 불륜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방법을 터득해가는 게 진짜 인생일 테다.

 

 

 

 

 

 

 

 

 

 

 

 

 

 

 

 

 

 

 

 

 

 

 

 

 

  저 글을 정끝별 시인이 썼다는 것이 아니라,

 


     

 

정끝별 시인 

1964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1988년 《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과 『흰 책』,『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와 시론평론집으로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그리고 산문집으로 『행복』, 『여운』, 『시가 말을 걸어요』 등이 있음.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역임. 현재 이화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 中.

 

 

  정끝별 시인. 그녀는 1964년 나주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하여, 무척이나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곳에서 여자중,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에서 대학생활과 석,박사생활과 강사생활을 합쳐 15년 정도를 모교에서 지냈으며,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다시 모교인 이화여대 국문과의 교수로서 재직중에 있다.   .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에 〈칼레의 바다〉 외 6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후, 어느 작가 못지 않게 왕성하게 시작품과 평론을 쓰는 일에 혼신을 다해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2004년에 제2회 유심작품상 시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08년에는 시 「크나큰 잠」으로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끝별 시인은 지난 2006년 『시인광장』 특집으로 소개한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여류시인 정끝별 시인과 고이케 마사요(小池昌代)와의 대담에서 “​ ‘시를 쓴다’는 생각을 가지고 처음 시를 써본 게 대학교 1학년, 스무 살 때였습니다. ‘국어국문과’를 들어왔고 문학 써클을 가입하게 되어 의무적으로 처음 쓰게 되었지요. 다른 시인들처럼 드라마틱한 계기나 강렬한 시적 열망에 사로잡혀서 썼던 건 아니었던 셈이죠. 그리고 스물 여섯 살 때 데뷔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이의 5, 6년은 혼돈과 도전과 자학의 트라이앵글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한 바가 있다.

​  아울러 그녀는  “한국의 현대시에서 감각은 그리 풍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식민과 전쟁과 분단으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한국 현대시의 주된 이슈는 늘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사상이었습니다. 물론 시각에 좀더 주목했던 30년대에 이미지즘이 한 스펙트럼을 형성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최근의 시에서는 몸, 생태(생명, 자연), 환상, 섹슈얼리티 등의 화두와 더불어 감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감각이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말초적인 감각의 외피에 머물 때 공허함 혹은 쇄말주의적인 것으로 빠져버리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감각의 깊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깊이’라는 말은 감각과 사상(저는 개인적으로 사유나 통찰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감각’이야말로 시를 철학적 잠언과 구별해주는 주요한 관건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곤 합니다. 감각과, 그 감각을 인식하는 언어로 이루어진 감각적 사유 내지 감각적 통찰이 시의 뿌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안과 공포, 기쁨과 슬픔, 사랑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을 이루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조건이자 특권이기도 하겠지요.”라고 했다.

  시를 쓰거나 읽는 행위는 인간의 삶을 해석하려는 욕망 혹은 인간의 욕망을 해석하려는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 이념이나 문화, 이데올로기적·윤리적 목적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세상살이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시를 쓰거나 읽는다. 시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살아온 모든 시간과 지금과 이후의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숱한 사물과 사건, 꿈과 환상이 서로 뒤엉킨다.

  우리는 그 중에서 일부를 전유하여 실존적 조건을 탐색하거나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때로는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전망을 찾는다. 시쓰기와 시읽기의 문제란 결국 존재에 대한 물음이며 또한 해답이다. 그것은 시간의 마모를 이겨 내는 방법,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시간의 마모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방법이기도 하다.

  끝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 의미가 텅 빈 채 끝없이 연속되는 시간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흐르는 시간은 인간의 실존적 기반인 몸을 갉아먹고 녹아 내리게 하며, 실존의 감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망각의 세계로 곤두박질치게 만들며, 끝내는 존재의 완전한 소멸 즉 죽음으로 인간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러한 시간의 마모를 이겨 내는, 죽음에 저항하는 자기 방어이자 존재의 휴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신문의 某 기자는 '정끝별의 새 시집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는, 주로 그 앞부분에 실려 있는 「밀물」, 「흰책」, 「지나가고 지나가는 1」, 「강진편지」, 「얼굴을 파묻다」 같은 페이지들이다.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열망을 추슬러서 세상 안으로 돌아와 자리잡을 때 정끝별의 시에는 물기가 번지고 리듬이 인다.

  그 물기와 리듬이 세상을 견딜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데, 거기에는 여전히 세상 밖을 향한 열망이 살아 있다. 그가 말한 되풀이의 삶은 아마도 이러한 것이지 싶다. 아, 빼도 박도 못할 이 되풀이! 정끝별을 처음 만난 때가 아마도 10여 년 전쯤이지 싶다. 지금은 결혼해서 딸 둘을 두었다. 그 어린 막내딸을 안아 보았더니, 분홍색 잇몸에 새싹 같은 이가 돋아 있었고, 말을 배우느라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옹알거리고 있었다. 「되풀이」는 결국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눈물겨웠다.'라고 했고 시인 장석남은 '문학으로 또는 시로 「세상을 바로 보자」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때 농의 언어로 농의 환부를 싸매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사(近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끝별의 언어는 일상 「속」의 환부를 어깃장으로 얼크러놓기도 하고 때로는 다독임으로 쓸어안기도 한다. 이 농의 교란은 독자들의 눈을 끌어당겨 삶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창이다. 그 세계는 참으로 유니크하다.'라고 그녀의 시세계를 한마디로 평가했다.

   

  그녀의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 이 시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사랑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나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기에 아름다웠던 만큼 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시집의 첫 문을 여는 시 역시 봄에 관한 시다. 만물이 소생하는, 색색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봄.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하는 봄. 그러나 시인에게 봄은 사랑의 계절이 아니다. 바깥세상이 아름다울수록 나의 아픔 또한 더욱 커지는 것만 같고, 잠결에 잠시 돌아눕기만 해도 꽃이 다 져버릴 것만 같고, 지는 꽃잎은 또 제 그늘만큼 봄빛을 떼어 가버리리라는 생각에 더욱 슬퍼지는, 그런 계절인 것이다. 



  어떤 손이 모과를 거두어 갔을까
  내가 바라본 것은 모과뿐이었다
  잠시 모과 이파리를 본 것도 같고
  또 아주 잠시 모과 꽃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
  모과 이파리가 돋아나는 동안
  모과 꽃이 피어나는 동안
  그리고 모과 열매가 익어가는 내내
  나는 모과만을 보았다
  바라보면 볼수록 모과는 나의 것이었는데
  어느 날 순식간에 모과가 사라졌다
  내 눈맞춤이 모과 꼭지를 숨막히게 했을까
  내 눈독(毒)이 모과 살을 멍들게 했을까
  (중략)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에 주먹만한 허공이 피었다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를 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모과는 여전히 나의 것이건만
  모과 즙에 닿은 눈시울이 아리다


  ― 「어떤 자리」 중에서



  내 것이라 생각했던 사랑은 어느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 마음에선 종일 공테이프가 돌아가고 허리띠가 남아돌 정도로 봄이 말라간다. 시인은 “차마 무너지지 못한 마음과/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얼마 동안은 그렇게 엉켜 있으리라/ 서로가 덫인 채/ 서로에게 걸려 있으리라”라고 말하며 미련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다시 사랑이란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 같은 것, “어떤 간절한 손바닥도/ 지나고 나면 다 새어 나가는 것”이라며 집착을 버리고 초연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의 줄기를 타고 오르는/ 눈물의 힘을 믿겠다”며 소극적이긴 하지만 슬픔을 딛고 다시 한번 일어서려는 의지를 살며시 보여준다.

  첫 번째 시집 제목과 같은 「자작나무 내 인생」이라는 시에는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두 번째 시집의 주제였던 ‘농(膿)’이라는 주제가 이 시집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농’이란 것은 일상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고름을 말한다. 그리고 그 상처는 「밥이 쓰다」라는 시에서 극대화된다.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고, 변해 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기 때문이다. 이 ‘쓰다’라는 단어는 ‘쓰다(bitter)’와 ‘쓰다(use)’와 ‘쓰다(write)’라는 세 가지 의미로 변주되면서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정끝별 특유의 숨 한번 안 쉬고 내달리는 듯한 시어들은 같은 어구의 반복을 통해 마치 노래의 후렴구와도 같은 일정한 운율을 만들어낸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그러나 시인은 끝까지, 끈질기게, 검은 타이어처럼 굴러 갈 것이다. 길바닥에/ 제 속의 바람을 굴리면서/ 제 몸 깊이/ 길의 상처를 받아내며 굴러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둥근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정끝별의 시에서 가족은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다. 가족은 애틋한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옛집과 함께 사진처럼 박혀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나이를 먹고 자식을 둔 부모가 되고 보니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부모님이기도 하고, 어느새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노인이 되어버린 아버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냥 따듯하기만 할 것 같은 이 가족이라는 단어는 한낮의 악몽과도 같은 수천의 개미 떼에 의해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빈 낮 내내 엄마를 부둥켜안고 싶어 하던 딸애처럼 내 칫솔을 부둥켜안고 있는 딸애의 칫솔에 의해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과 그로 인한 공포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한밤중에 칫솔을 끓는 물에 팔팔 삶는 소독은 일면 그로테스크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소독된 두 마음은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가족이란 여성에게 굴레와 속박인 동시에 사랑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정끝별의 시는 정끝별의 시다. 이 다채로운 목소리들이 백화제방하듯 한데 모여 조화로운 것은 그 모든 목소리들에 고루 배어 있는 사랑과 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많은 시인이 그 아니던가. 4억 4천만년 전의 별빛과 단 하루 저녁 매미의 울음이, 잎눈을 매단 목련가지와 딸의 머리를 받친 오른팔의 저림이 굳이 말하자면 사랑의 여러 다른 이름들일 것이다.

  스물여섯의 나이로 등단한 이후 다시  어느덧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5권의 시집을 펴냈으니 5년에 1권씩 펴낸 셈이다. 결코 서두르지도 그리 게을리하지도 않았다는 증거이다.

​  지금껏 시인이 펴낸 시집들을 열거해보자면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이거니와 뭐랄까, 어떤 규격이나 기본적인 틀은 있되 그 안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자유로움이라든가 일탈이라든가 묘한 천진이 꿈틀거리기도 하는 바, 우리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조사들을 조합하여 내놓은 다섯 번째 시집 은는이가까지 정끝별 시인의 시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증폭됨을 느낄 수가 있다.

 또한 시집마다 분방한 시적 상상력으로 사랑과 가족과 사람과 우주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더욱 경쾌하고 발랄하며, 늘 연민과 온기를 품고 있다. 영롱한 시적 발견들이 가득한 다채로운 편편이 읽는이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며 한결 생기발랄하고 다채로운 노래를 들려준다, 시의 성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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