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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피터 브뤼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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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결혼식

1568

빈, 미술사 박물관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위대한 미술가들은 항상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현실적인 고뇌와 고통을 받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속한 세대의 전통을 절정에 올려놓는가 하면, 어떤 미술가는 그러한 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물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미술가도 있다.

그런 면에서 브뤼겔 역시 그때까지 거의 취급하지 않았던 풍속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라고 단정할 수 있다.

 


브뤼겔의 전기 작품은 주로 자연속에서의 인간에 대한 묘사가 많다. 그러나 이 그림처럼 후기작품에서는 인간을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 보고 있다. 떠들썩하게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토담벽에 짚을 높이 쌓아올린 헛간인 듯하다.

 

하객들은 푸짐하게 차려진 잔칫상에 둘러 앉거나 서서 먹는데 정신없다.

신부는 푸른 휘장 앞에 앉아 있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일종의 관 같은 것이 걸려 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좀 모자란 듯이 보이는 얼굴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조용히 앉아 있다.

두명의 악사가 연주하고 있고 문입구에는 미처 자리를 못 잡은 동네사람들이 가득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과 그 옆에 있는 부인은 아마도 신부의 부모인 것 같다.

식탁 한 구석에는 수도사와 촌장이 앉아 그들만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다.

 

전경에는 접시를 든 채 커다란 모자를 덮어쓴 아이가 하나 앉아 있는데 음식을 핥아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꾸밈없는 탐식의 정경이다.

 

그러나 넘치는 기지와 뛰어난 관찰력으로 묘사된 이처럼 많은 일화들보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브뤼겔은 비좁다거나 번잡스러운 인상이 전혀 들지 않게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점이다.
신랑은 누구일까?

당시 네들란드에는 신랑이 하객을 접대하는 것이 관습이므로 화면 왼쪽의 빈 술병을 채우고 있는 젊은이가

 신랑일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옷도 잘 차려입었다..

 

이 유쾌한, 그러나 결코 단순하다고 할 수 없는 그림들에게서 브뤼겔은 풍속화라는 미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이후 풍속화가 크게 유행하여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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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1565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작품 「추수」는 총 여섯 점(현존 5점)으로 이루어진 달력화 가운데 하나다.

이들은 농민들의 계절별 생활상을 중심으로 그려졌는데,「추수」가 가을날의 정취를 담고 있다면

「사냥꾼들의 귀가」라는 제목의 작품은 추수가 끝난 후,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냥꾼들을 그린

겨울날의 풍속화다. 브뤼겔은 이들을 포함한 여섯 점의 그림을 1565년 한 해에 다 그렸다고 한다.

 

화가는 대자연과 그 안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전경의 황금빛 보리밭에서는 수확의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추수」에서는 누렇게 익은 곡식단들을 베고 있는 농민들의 정경이 잘 나타나 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화면 왼쪽에는 큰 낫을 들고 곡식을 베는 농부들이,

오른쪽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곡식단을 묶는 여인네들이,

그리고 오른쪽 하변 귀퉁이에는 날라온 새참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커다란 나무 아래 큰 대자로 뻗어서 단잠을 자고 있는 농부에 시선을 둘 때면

마음마저 풍요롭게 한다.

수고한 자의 당당한 휴식이 부럽기까지 하다.

브뤼겔은 이처럼 풍요로 가득한 대지를 약간 위에서 아래로 굽어보는 시선을 택해

시원스레 확트인 수평선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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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의 귀가 」,  1565년. 117×162cm. 미술사박물관, 빈.
 


   

눈이 소복하다. 언덕에도, 지붕에도,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도 하얀 눈이 쌓였다.

피테르 브뢰겔이 그린 「사냥꾼들의 귀가」은 미술의 역사에서 유화로 그려진 최초의 겨울 풍경화이다.

사냥꾼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다. 눈밭에 발자국을 새기면서 걸어가는 사냥꾼들은 검은 덩어리처럼 보인다.

하얀 눈이 반사하는 밝은 빛 때문에 옷 색깔이 더 어둡게 보이는 것 같다.


그림 왼쪽에는 사냥꾼의 선술집이 보인다. 선술집 앞에서 짚불을 피우느라 분주하다. 물을 끓여서 돼지라도 잡을

모양이다. 한쪽 못이 빠져서 삐딱하게 기울어진 간판에는 ‘노루 집’이라고 적혀 있다. 수확이 좋았으면 사냥꾼들도

이곳에 들러서 푸짐한 고기 안주에다가 포도주를 한 잔 곁들이겠지만, 오늘은 여우 한 마리뿐이다.

사냥꾼들은 머리를 어깨에 파묻고 선술집을 못 본 척 지나친다.


이 그림은 달력을 그린 6점의 연작 가운데 겨울에 해당되는  11월이나 12월을 나타낸다.


브뢰겔의 시대에 이르러 예술과 문학은 자연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가령 중세 시대에는 자연을 창조주가 주신

은총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자연은 경이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인간은 자연을 통해서 신의 존재와 의지를 읽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눈뜨기 시작한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였다. 인간이 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의 눈으로 자연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나아가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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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의 귀가」에서는 전경에서 후경에 이르는 공간의 변이가 추수보다 더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전경 구릉지의 사선과 굵기를 달리하는 나무들의 수직선이 시선을 점차 화면의 안쪽으로 이끈다.

눈덮인 시골마을이 저 아래 하얗게 펼쳐져 있고, 저수지인 듯한 천연 스케이트장에서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점점이 보인다.

시선과 화면이 급격히 이동되는데도 워낙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광이어서 그런지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 무리의 사냥개들과 함께 서둘러 언덕을 내려오는 사냥꾼들의 등에서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추위로 언 몸을 녹이고자 하는 조급함이 엿보인다. 이 그림에서 한가지 더 눈여겨볼 것이 있다면, 꽤 많은 사냥개들의 꼬리가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꼬리의 크기, 모양, 각도 등이 다 제각각이다. 화가의 세심한 정성에 탄복하게 된다. 이 모두가 부뤼겔이 오늘날까지 누리는 대중적인 인기를 담보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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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nd of Cockayne" 식도락가의 마을

1567. Oil on panel. 52 x 78 cm.

뮌헨 알트 피나코텍 미술관


 

 

인간의 먹는 본능을 보다 더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1546년 안베르사에서 출판된 "게으른 식도락가들의 마을"이라는 문학작품을 근거로 하고 있다.

우유로 가득찬 강을 건너고 빵으로 만들어진 산을 지나면 식도락가의 마을에 도달한다.

이 마을은 모든것이 음식으로 이루어졌다.

오른쪽 끝에는 과자로 구워진 선인장, 삶은 통돼지, 잘 익은 통닭 등이 보인다.

나무 사이에 놓여진 원형 식탁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고 담장은 소시지로 만들어졌으며,

지붕 위에까지 음식 접시가 가득하다. 이 먹을 것 천국인 마을에서 세 남자가 나뒹굴고 있다.

 

벌렁 드러 누워있는 오른쪽의 남자는 모피코트을 입고 있으며,

머리 위에 있는 서류와 치부책으로보아 돈깨나 버는 장사꾼이 아닐까.

가운데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간소한 차림의 남자는 도리깨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농부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긴 창과 철제 장갑으로 보아 기사로 생각된다.

세 명의 식도락가를 이렇게 각기 다른 계층으로 표현한 것은,

본능에는 계층이 따로 없음을 풍자하기 위함이 아닐까?

 

배가 터져라 먹고는 씩씩거리며 뒹구는 이 세 사람은 모두 미련한 식탐가의 전형처럼 보인다.

화가는 본능만을 쫓는 인간에 대해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듯하다.

 
 
  

 

´이카로스의 추락´

 

 

브뤼겔의 그림 <이카로스의 추락>은,

아버지인 대덜러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태양 가까이에서 날다가 결국은 추락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카로스와는 상관없이,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물에 빠져 다리만 보이는 것이 이카로스다^^;),

 낚시꾼은 낚시를 하고, 농부는 밭을 갈고 있는 자신의 일상에 몰두하고 있다.

 그림은 문학과 예술의 한 획을 긋는 이카로스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며

도대체 그의 죽음이 나의 일상과 무슨 상관이냐며

세상은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이카로스의 추락과는 상관없이 낚시질에 몰두하고 있는 낚시꾼과,

이카로스처럼 추락하고 있는 ‘대한민국’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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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레헴에서의 호구조사 [The Numbering at Bethlehem]

1566. Oil on oak. 116x164 cm.

브뤼셀 보자르 왕립미술관

 

 

 

브뤼겔은 풍경화나 풍속화뿐만아니라 성화도 여러 점 그렸다. 그러나 성화를 그리는 그의 입장은

다른 작가들과는 달랐다. 종교화일 경우 화가들은 성서의 인물이나 성인들을 화면의 중심에 놓고,

불필요한 인물들은 등장시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꼭 필요한 등장인물 이외에는 그림을 읽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뤼겔의 이 작품 [베를레헴에서의 호구조사]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성화를 전개시키고 있다.

'루카복음'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가 호구조사령을 내리자 사람들은 이에 응하기 위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요셉도 선조의 고향인 베를레헴으로 떠났따. 그때 마리아는 이미 만삭이었다.

이 그림은 마리아와 요셉이 마을에 도착한 순간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화가가 초점을 맞춘 것은 호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의 풍경이지 요셉과 마리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관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인적사항을 보고하거나 세금을 지불하고 있다. 

마당 한쪽에서는 돼지를 잡는 모습도 보인다. 화면 중앙에서 나귀를 타고 있는 마리아와 요셉의 뒷모습을

겨우 발견했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찾지 않는 한 그들은 다른 인파와 섞여 구별할 수 없도록 그려진 것이다.


한편, 눈이 하얗게 내린 시골마을에서는 다양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멀리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해넘이 광경과 붉게 물든 하늘이 큰 나무 사이로 걸쳐있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 해가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다.

그림 앞부분에는 얼음을 지치고 팽이를 치며 놀이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과 호구조사를 위해 여기까지

걸어온 여행객들이 보이고 멀리 후경에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보인다.

아이들은 저녁이 되도록 지칠 줄 모르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나 어른 들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는

피곤했던 하루 일과를 대신 말해 주는 듯하다.

브뤼겔에게는 성화조차도 당시의 풍습을 보여주는 수단에 불과했을 뿐 종교적 주제를 부각시키는 데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브뤼겔은 이 그림에서 저녁 무렵의 해넘이 풍경이나 노을진 하늘, 마른 겨울나무와

눈 덮인 마을의 설경을 통해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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