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미술 이야기 (책)

((펌)) 《셜리에 관한 모든 것》 - 에드워드 호퍼


출처 :


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본 영화들




   

오래전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주유소'라는 작품이었지요.

별로 크기가 크지 않은 작품이었는데, 화집에서만 봤던 호퍼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강렬한 색감이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 길가의 한적한 주유소에 어둠이 막 내려 앉기 시작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은 사진으로만 보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밝고 강렬한 색감을 지니고 있었죠. 그 강한 색감 때문에 더 고독하게 느껴졌던 듯합니다. 마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속에서 한낮의 찬란한 태양빛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지듯이 말입니다.

 

오스트리아 감독 구스타브 도이치의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원제는 'Shirley: Vision of Reality') '은 근래 본 영화들 중 실험적인 발상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왠만해서는 신선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로튼토마토 식의 표현을 쓰자면 '신선도 100%'의 작품이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개봉관 숫자가 적을까..하는 의구심도 영화를 보니 이해가 됐고요.  실험성이 강해서 , 솔직히 대중적이지는 않은 작품이더군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20세기 초중반 미국 리얼리즘 계열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13편을 소재로

1930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미국 사회와 셜리라는 여성의 삶을 하나로 녹여내고 있습니다.


 

대개 유명화가가 남긴 그림을 영화 소재로 삼을 때는 화가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해당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게 됐는지를 묘사하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예: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도이치 감독은 그림 그 자체를 재연하면서 상상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호퍼 그림을 그대로 세트를 만든 다음 배우가 그 세트 안에서 극히 제한적인 동작만으로 셜리란 여성의 내면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영화인 것이지요.

호퍼 그림의 색감은 물론이고 광선의 각도까지 완벽하게 재연해낸 장면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합니다.

 

물론 호퍼 작품이 모두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셜리라는 한명의 여성의 삶을 연결할 수있는 작품 13점만 영화에 나오지요. 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시대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 주인공 셜리는 그림 속의 여자가 그렇듯이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영화가 형식적으로는  셜리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감독이 더 중점을 두는 것은 호퍼가 각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미국 사회상( 예를 들어 한국전쟁, 매카시 공산주의자 색출 파문, 엘리아 카잔 감독의 배신, 케네디 당선,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등등), 그리고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셜리는 ' 그룹 시어터'라는 극단에 소속된 배우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셜리가 1931년 8월의 어느날 프랑스 파리의 한 작은 호텔에 있는 장면이 비춰집니다.

보이스오버로 들리는 대사로 추정해보면, 셜리는 지금 연극배우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속옷 만 입고 침대에 앉아 공연 팸프렛을 뒤적이면서 , 셜리는 속 말을 합니다.

"여기서 일주일 있고, 나머지 일주일은 해변가에서 보낸 다음  돌아가야겠지. 가면 내가 잘 적응할 수있을까"

셜리가 호텔방에 앉거나 누워서 고민하는 장면은 호퍼의 <호텔방>을 그대로 재연한 것입니다.

 



  <영화(위)와 호퍼의 그림 '호텔방(1931)'. 셜리의 적갈색 머리칼 위에 떨어지는 조명등의 불빛, 초록색 의자의 그림자 각도 등을 비교해보십시오. >


 

셜리는 대공황기에 극단 일자리가 없어지자 신문사 광고부에 취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영화관 안내원으로 일하기도 하지요. 연극만큼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 지금의 일도 셜리는 감수할 수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갈 수있다는 희망이 있기때문이죠.

사무실 장면('밤의 사무실') 에서 셜리는 속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메소드 연기를 해봐선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연기하는 것같아.나중에 연기할때 지금 경험이 도움이 되겠지? "



 


<영화 장면(위)과 호퍼 그림 '룸 인 뉴욕(1932)'.  영화 속에서 셜리는 피아노 앞에 앉아있고, 애인 스티브는 밖에 나갔다 돌아와 신문을 읽습니다. 셜리는 신문기자인 스티브가 일하러 나갔다 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일자리를 잃었고 빵배급을 받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그를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셜리는 속으로 고민합니다.>


 

 

 <영화 장면(위)과 호퍼 그림 ' 뉴욕 무비(1939)' .



이 장면에서 셜리는 극단을 나와 밥벌이로 영화관 안내원 일을 하는데 머리칼도 금발로 염색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그림에는 없는 영화 스크린을 조금 더 많이 보여주는데 영화에 대한 호퍼의 애정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일까요...  이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 누아르 영화들을 찾아보니, 험프리 보가트 주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37년작 '데드 엔드'의 한장면이네요.^^. 보가트의 억양이 워낙 특이해서, 이 장면을 보는 동안에도 정확한 영화 제목은 알 수없지만 보가트가 나오는 누아르 영화인 것은 금방 눈치를 채겠더군요.>

 

 

셜리는 뉴욕을 떠나 케이프코드 해변가 집에서 지내기도 하고, 신문사 사진기자인 애인 스티브와의 관계를 고민하기도 하며, 매카시 청문회에 나가 연극계 동료들을 배신하는 증언을 한 엘리아 카잔에 분노하고,

킹 목사의 연설을 라디오로 들으며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1960년대 어느날 셜리는 기차에 앉아 어디론가 갑니다.

무릎에는 '에밀리 디킨슨'전기 책이 놓여있습니다.

다시 셜리가 이야기합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거야.  그룹시어터와 함께 공연하면서 로마에도 가는거야"



 

<영화 장면(위)과 호퍼 그림 '체어 카(Chair Car.1965년)'.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각도,  빨간 속 옷을 입은 여자가 셜리를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 등이 정교하게 일치합니다>

 


감독은 시대변화 속에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여성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30년대부터 60년대를 살아가는 셜리는 분명 그 시대 미국의 전통적인 여성상은 아니지요. 자기 일에 대한 확고한 소신과 정열이 있고, 사회이슈에도 아주 민감합니다. 밥벌이를 하는 순간에도 "나중에 연기에 도움이 될거야"라고 생각할 정도이지요.

 

감독은 호퍼를 영화 소재로 택한 이유로 첫번째 , 호퍼 그림이 보여주는 프레임이나 광선 등이  필름누아르 등 영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흥미로왔고, 두번째는 리얼리스트 화가로서 단순히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게 아니라 마치 삶의 한 순간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듯한 스타일에 끌렸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셜리의 모든 것'은 단순히 영화라기보다는 , 13개의 막으로 나뉘어진 연극같은 느낌이지요.



 

 <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세트장과 영화의 장면. 그리고 그림 >



 

 



이 영화에서 비주얼과 대사 이외에 흥미로운 또하나의 요소는 바로 사운드입니다.

감독은 각 장면마다 , 다양한 사운드를 창조해냅니다.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게 아니라 자동차 소음, 갈매기가 지저귀는 소리, 기차소리, 비바람이 부는 소리, 라디오로 들리는 킹 목사의 연설 소리 등을 들려주는 것이지요.

무언의 그림을 보고, 이런 사운드를 만들어낸 감독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거의 정지화면에 가까운 연기를 해낸 여주인공 역의 스테파니 커밍의 연기도 뛰어납니다.

원래 댄서 출신으로 실험적인 몇몇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역시 춤을 추던 사람이어선지 우아한 동작이 돋보입니다.  

 

 

 


























현대미술 이야기 no. 12 -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


기자
전정은
 
현대미술 이야기 no. 12 -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사회의 리얼리티를 담은 20세기의 구상화
     입체파를 선두로 한 추상미술이 미술계를 장악하고 있을 무렵, 한편에서는 이러한 추상미술의 유행을 거부하는 화가들이 있었다. 추상미술의 대척점에 선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많은 화가들은 동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전통적인 미술양식을 선호하며 사실주의, 즉 구상회화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의 사실주의는 시대착오적인 구상회화가 아닌 현시대를 반영한 나름의 독창적이고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되었다. 사실적인 도시의 풍경으로 산업화와 그로인한 인간의 심리적 긴장을 표현하거나, 전원의 풍경화나 실내를 묘사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킨 사실주의 화풍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부흥기를 맞이하였고,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7.22-1967.5.15)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과 같은 작품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도시 속 고립된 존재의 초상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 캔버스에 유채, 76*152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몇몇의 사람들이 짙은 어둠이 내리깔린 도시에서 홀로 불을 환하게 밝힌 카페에 둘러앉아있다. 전면이 유리로 된 카페의 창문을 통해 카페 형광등의 푸른빛이 길가로 쏟아지고 있지만, 그로인해 카페는 더욱더 고립되어 보인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두운 도시에서 빠져나온 고독한 사람들. 시선을 붙잡는 붉은색 드레스차림의 여성은 다른 남성들의 존재감을 더욱 상실시키고, 이들은 함께 있는 듯 보이지만 서로 교류하지 못한 채 제각각 동떨어져 있다. 호퍼의 대표작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산업화로 만들어진 현대의 도시 속에서 고독해진 인간의 존재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호퍼의 스승이자 애쉬캔 화파(Ashcan schoo, 20세기 초두 뉴욕에서 활약한 8인조 화가그룹으로 에이트(The Eight)가 정식 명칭이다.)의 리더였던 로버트 헨리(Robert Henri)는 ‘도시와 도시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릴 것’을 요구했는데, 실제로 애쉬캔 화파는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도시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미국화가로서 미국인의 삶을 해석하고자 했던 첫 번째 시도로 평가받는 애쉬캔파의 활동을 이어받은 호퍼는 평면적이고 내향적인 회화방식으로 소외된 도시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림의 배경은 주로 호텔방이나 극장휴게실, 아파트, 주유소, 야간의 술집 등 미국의 일반적인 도시 풍경이며 등장인물은 혼자 또는 함께 소통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에드워드 호퍼, <주유소>, 1940, 캔버스에 유채, 66.7*102.2cm, 뉴욕 현대미술관

 

? 에드워드 호퍼, <호텔방>, 1931, 캔버스에 유채, 152.4*165.7cm,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자 미술관
?

 

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방>, 1932


? 에드워드 호퍼, <뉴욕 극장>, 1939

   호퍼의 사실적인 작품들은 단순히 일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가려진 심리적 요소, 그 내부를 응시하게 해준다. 호퍼의 작품에 등장하는 홀로 고독한 사람, 또는 군중 속에서 조차 고립되어 있는 사람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이것은 비단 당시 미국의 도시인뿐만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며, 그 쓸쓸함과 상실감이 고스란히 전이됨을 느낄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자동판매기 식당>, 1927, 캔버스에 유채, 71.5*91.5cm, 아이오와 드모인 아트센터


? 에드워드 호퍼, <브루클린의 방>, 1932, 캔버스에 유채, 74*86cm, 보스턴 미술관


   현대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호퍼의 작품은 당시 미국 도시민들의 삶을 가장 미국적인 장면으로 그려냈다는 평가와 함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1950년 이후 등장한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의 화단을 장악하면서 호퍼의 사실주의 작품들은 점점 인기를 잃어가게 된다. 하지만 호퍼는 그가 사망한 196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화풍을 흔들림 없이 이어나갔다.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쇠퇴하고 팝아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자 호퍼의 작품들은 다시금 재조명을 받게 되는데, 20세기 미국인의 삶의 단면을 반추한 그의 사실적인 작품들이 대중 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한 팝아트와 슈퍼리얼리즘에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평가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
 


     2013년 개봉한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여주인공 셜리의 이야기가 에드워드 호퍼의 13점의 그림을 토대로 진행된다. 말 그대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총 13개의 에피소드가 존재하는데, 하나의 에피소드는 호퍼의 그림한 장에서 구성되며,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음 막으로 이동 할 때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미국의 1930년부터 1960년까지의 굵직한 사회적 사건들인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인종차별과 시민운동 등이 셜리의 라디오를 통해서 내레이션 된다. 호퍼의 작품이 산업화와 제 1차 세계대전, 경제 대공황을 겪은 미국인들의 모습을 포착했다고 평가받는 점이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 영화적으로 복제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어찌 되었든 영화 속 공간은 그림과 실제가 뒤섞이면서 호퍼의 작품을 기가 막히게 재현해 낸다.
 


 

에드워드 호퍼, <아침햇살>, 1952    

 


 

에드워드 호퍼, <좌석 차>, 1952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감독인 구스타브 도이치감독이 만들어낸 정교한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 실제 사람이 정지된 모습으로 분장하여 그림이나 역사적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완전히 음소거 된 호퍼의 작품에서 시작되고 이동 없이 결말을 맺는다. 실제로 호퍼는 그의 스승인 사실주의 화가 로버트 헨리로부터 “영화가 어떻게 이미지를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틀을 끼워 넣는지를 눈여겨보라”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호퍼는 이점을 충실하게 연구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호퍼의 작품에서 들어나는 계산된 듯한 ‘연극적 요소’는 호퍼가 ‘가장 영화적 구성의 작가’로 불리 우는 이유이다.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포착하여 공간과 인간의 어우러짐을 개성적인 빛과 분위기로 연출한 호퍼의 작품들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에릭 피슬 (Eric Fischl)를 포함한 현대작가들 뿐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등 영화감독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EEJAEHOON, 이재훈






Richard Tuschman : Edward Hoffer Meditations

2월 12 2014, 0 Comments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3.32

역사적으로 ‘도시’는 시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도시의 공기가 시민에게 자유를 선사한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는 전통적인 농촌과 다른 자유의 공간이다.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의 존재에 익숙한 농촌 공동체와는 달리 도시 사회는 익명이라는 자유를 선물한다. 하지만 근대 도시는 또 다른 풍경들을 보여줘 왔다. 게오르그 짐멜은 도시의 또 다른 풍경을 관찰한 대표적인 사회학자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도시생활의 불친절함과 외로움이다. 도시인들은 예상하지 못한 빠른 변화와 다양한 이미지의 공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대상에 거리를 두는 무관심 전략을 선택하는데, 이러한 태도가 결국 불친절함과 외로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급진적 도시사회학자들이 관찰한 또 다른 도시의 풍경도 있다. 이들은 현대 도시를 지배하는 자본과 상품에 주목한다. 건물, 거리, 경관 등 도시의 모든 것들을 끝없이 상품화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자본은 정작 도시의 주인인 시민을 소외시키고 있다. 갈수록 화려해지는 도시 경관이 왠지 모를 쓸쓸함과 외로움을 안겨주는 이유다.

도시의 다양한 풍경을 화폭에 담아온 대표적 화가가 미국의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다. 회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한두 번쯤은 봤을 정도로 호퍼의 그림은 유명하다. 특히 한밤 길거리 카페를 그린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1942)은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길게 이어진 바를 사이에 두고 한 커플과 종업원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고, 다른 한 사람은 뒷모습을 보인 채 앉아 있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담겨 있는 풍경이다. 호퍼가 도시 풍경만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케이프 곶의 저녁’(Cape Cod Evening·1939) 역시 호퍼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숲에는 어둠이 이미 내리고 밖은 여전히 환한 어느 저녁, 현관 앞에서 쉬고 있는 부부와 풀밭에 서 있는 개를 담은 작품이다.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개를 포함해 서로 엇갈리는 시선들은 전원생활의 한적함과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호퍼의 그림은 어렵지 않다. 20세기 전반 서유럽에서 유행하던 야수파, 입체파, 다다이즘, 표현주의, 추상주의, 초현실주의와 비교할 때 호퍼의 작품은 소박하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그 소박한 사실주의는 쓸쓸함과 함께 편안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팍팍한 도시생활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한 번쯤은 겪은 듯한 풍경을 평범한 듯 날카롭게 포착해냄으로써 호퍼는 공감에 기반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미술분야를 마감하는 이 글에서 호퍼의 그림을 살펴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예술이 가져야 할 공감에 관한 것이다. 서양 미술사를 보면 20세기 들어와 회화는 감상자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예술사 전체를 돌아볼 때 리얼리즘을 이은 모더니즘은 사회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에 더 관심을 갖게 됐고,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이 예술가의 자의식은 물론 표현 대상 및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미술 감상에서 상반된 경향을 낳았다. 엘리트 감상자 층은 다다이즘, 추상주의, 초현실주의를 환영했지만, 시민적 감상자 층은 갈수록 난해해지는 작품들에 공감을 갖기 어려웠다. 호퍼는 전통적 리얼리즘을 따름으로써 시민적 감상자 층에 가깝게 다가섰다. 특히 그가 그린 쓸쓸한 도시와 한갓진 전원의 풍경들은 불친절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안겨줬다. 둘째는 예술적 공감이 갖는 사회적 의미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즐기기 위해 경험되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에 있다. 여기서 즐기기 위해 경험된다는 것은 그 작품에 담긴 메시지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 자기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되는 것을 함축한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내가 던진 질문의 하나는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다. 칼 마르크스는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요한 호이징가는 ‘놀이하는 존재’로, 한나 아렌트는 ‘소통하는 존재’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정치하는 존재’로 파악했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성격 가운데 어떤 것을 중시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최근 주목할 주장을 내놓은 이는 제러미 리프킨이다. 그는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을 ‘공감하는 존재’(homo empathicus)로 파악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인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공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호퍼의 작품은 이러한 리프킨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호퍼의 그림은 쓸쓸한 사람과 자연에 대한 연민 또는 공감을 담고 있으며, 바로 이 호퍼의 감정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감정이입돼 쓸쓸함과 외로움에 대한 연민 또는 공감을 갖게 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문학이나 예술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폭넓은 경험과 감정의 영역이다. (…) 어떤 오브제와 대면했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나의 내면에서 이는 반응을 화폭 위에 포착하는 일이다.”

호퍼가 1939년에 남긴 말이다. 유럽에서 초현실주의가, 미국에서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가 위세를 떨쳤을 때에도 그가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해온 이유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발언이다. 평범해 보이는 듯한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데 호퍼는 분명한 자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호퍼의 작품이 너무 비정치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호퍼가 주로 활동했던 기간은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팍스 아메리카나의 확립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격렬한 사회 변동의 시대였다. 나 역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화가들이 그렇다고 정치적일 필요는 없다. 호퍼에게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구속에서 벗어난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체험과 느낌이었으며, 그는 이를 화폭에 담음으로써 동시대인들과 소통하려고 했다. 21세기 현재는 리프킨이 강조하듯이 오픈 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다. 자기와 타자, 개인과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돼온 공감의 능력은 존재하는 사실인 동시에 지향해야 할 가치다. 이러한 공감의 능력을 높이는 데에 예술만한 게 없다. 열리는 공감의 시대에서 호퍼의 그림은 건조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삼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1.36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1.46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1.56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2.06

 

Richard Tuschman은 ‘에드워드 호퍼의 명상들’이란 컨셉으로 호퍼의 그림을 사진으로 옮겨 촬영하였다.  그는 그의 스튜디오에 호퍼의 그림과 유사한 디오라마 세트를 제작하고 그곳에서 조명과 효과를 호퍼의 그림과 유사하게 셋팅한 후에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소품이나 의상 모델의 느낌이 상당히 유사한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들어 호퍼에 관련된 이미지가 많이 제작되고있는데, 캐나다에서 제작된 ‘셜리의 모든것’이란 영화도 호퍼의 그림으로 영화한 것이니 호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볼만할 것이다.

영화는 지금도 선재아트센타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

Richard Tuschman의 작업은 그의 Website 에서 더 볼 수 있다.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2.19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2.28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2.39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2.48

 

 

스크린샷 2014-08-06 오후 4.43.18

 

 



















<에드워드 호퍼 Hopper Edward 컬렉션>

에드워드 호퍼 Hopper Edward / 사실주의 화가
출생 : 1882년 7월 22일, 미국 뉴욕 주 어퍼 나약
사망 : 1967년 5월 15일, 미국 뉴욕 주 뉴욕 맨해튼
배우자 : 조세핀 호퍼 (1924년–1967년)
부모 : 엘리자베스 그리피스 스미스, 가렛 헨리 호퍼
형제자매  : 마리온 루이스 호퍼
영향 :  로버트 헨리, 귀스타브 쿠르베,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 폴 스트랜드, 오노레 도미에

에드워드 호퍼는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미국의 화가다.

188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뉴욕예술학교에서 로버트 헨리에게 그림을 배웠다.

1906년 24세 때 파리로 유학을 떠났으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1910년까지 유럽여행을 하였다.

1913년 그는 아모리 쇼에 그림들을 전시했고 1915년 에칭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전향하였으며,

1924년까지는 주로 광고미술과 삽화용 에칭 판화들을 제작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