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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민화의 뿌리 』





민화의 뿌리  2015. 4





『민화의 뿌리』는 우리가 흔히 ‘민화’라고 부르는 광범위한 회화 체계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통해 ‘민화’의 원형과 정체성, 의미 등을 새롭게 성찰한다. 가히 민화의 백과전서라 할 만한 웅숭깊은 콘텐츠와 새로 단장한 도판, 상고시대 전적들에 기반을 둔 치밀한 근거와 논리 등을 통해 민화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김영재
저자 김영재Kim Young-jai 金永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서「Art Idea 現前의 對象性 연구」로 M.A.,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CSULB 대학원에서「Kingdom of Chance III」로 M.F.A.,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응용불교과에서「고려불화의 화엄사상성 연구」로 Ph.D.를 받았다.
민화 관련 저서로 『귀신 먹는 까치호랑이』, 『민화와 우리 신화』, 『우리 민화 이야기』, 『우리 그림 민화 속으로』가, 불교 관련 저서로 『고려불화, 실크로드를 품다』, 『불교미술을 보는 눈』이, 미술 관련 저서로 『미술 이야기』, 『한국양화백년』 등이 있다.







012 민화와 달동네
Minhwa & the Shantytown


018 어떤 그림이었나 Protocol of Minhwa
형식 Formality_ 내용 Contents_ 기법 Technique_ 시각 ViewPoints

034 민화의 오류 Fallacies in the Name of Minhwa
여덟 오류 8 Errors in the Term “Minhwa”
이름이면 이름인가 New Designations are Still Chaotic
오지랖에 싸 줘도 Thorough Recognition is Needed
무유호추의 콩깍지 Yanagi Saw What He Wanted to See

056 새 집의 새 간판, 새 지번 New Sign & Address in a New Home
옛날 이름 Sloppy Names After Minhwa
새 이름을 짓자 하니 A Fresh New Name
하늘도장 하나, 합이 셋 one Heavenly Seal has Three Essences
천天 지地 인人 Heaven, Earth and Human

065 내가 쥔이요 The New Owner in New Format
시행과 착오들 Trial and Error
무지와 오해 Ignorance and Misunderstanding
이렇게 깊은 뜻이 Splendid Renewed Meaning
하늘 아래 땅과 그 사이 사람 Men Inbetween Heaven and Earth

102 하늘의 노래
Song of Heaven


107 굽어 살피소서 Be My Witness, My Lord
천지신명이시여 Gods of Heaven and Eath
일월성신이시여 Heavenly Host
세 번째 다리 The 3rd Leg of Man
까마귀 달력 Three-legged Crow Calendar

140 하늘이 내리는 상서 Good Omen from Heaven
용의 신화 Myth of Dragon
봉황을 보렸더니 Waiting for Bonghwang the Pheonix
한국거북과 민화기린 Legendary Tortoise and Giraffe in Minhwa
동서남북의 신들 Gods from 4 Directions

164 삿된 것을 피하고 Driving Evil Sprits
온 누리가 떠들썩 Dan-o, the Nationwide Demon Hunting Day
귀신을 먹다 Devouring Demon
왜 송죽인가 Pine and Bamboo as Exorcists
산뜻한 한해의 시작 Evil-Free New Year

209 신령에 씌인 백성 People possesed by spirit
보화응동普化應同이라 하니라 All People for All Religions
신선의 고향 Taoist Hermits were Here
없는 신이 없구나 God of Omnipresence
우리에게 내린 신앙 Belief Grown Among Us

234 땅의 리理, 산의 신
Logic of Earth, Gods of Mountain


240 무궁화 피고지고 Land of Mugunghwa Flower
금수강산 노닐고저 Strolling Land of Silky Scenery
땅 사랑, 땅 그림 Land Drawing from Land Love
중원의 의미 Meaning of Supremacy to Ancient Koreans
오악사독 5Mountains, 4Streams

267 여기가 거기니라 Tat Twam Asi
소상이 어디메뇨 Was Xiaoxiang at China?
이비二妃의 피눈물 Emperor Shun's Wives Shed Tear of Blood
못다 남기신 이야기 Stories left untold
무이와 관동 Mt. Wuyi vs. Gwandong Scenery

288 천기가 깃든 땅 Secret of Nature Nests Here
하늘과 땅의 도道 Tao of the Heaven and Earth
명당을 구하라 Seek Propitious Grave Site
바람과 물을 그린다 Drawing Wind and Water
하늘 사다리 Stepladder up to Heaven

294 세 산에 내린 신 God Fall into Trance
어머니 산 Motherly Mountain
삼신三神이 깃들다 Three Gods dwell in Threesome Mountain
금강을 그린다 Mt. Geumgang is Drawn
박산의 향불 Boshan Incense Burner, God's Earthly Shelter

310 사람 그림
Humane Painting


314 사람 사는 이치 Men Live for This
강륜의 과녁 Bonds and Relations in Confucianism
그림을 설명하는 그림 Picture Explains Picture
효제충신과 예의염치 8Virtues in the Feudal times
군자의 절개 Fidelity of Man of Virtues

354 하늘의 기쁜 소식 Good Tidings from Heaven
부귀영화 Splendor Wealth and Hornor
입신양명 Achieve Fame and Prestige
천생배필 Heavenly Matched Couple
다자다손 Prolific Descendant

394 만수산 드렁칡 Long Long Live Me
내 목숨 My Precious Life
장수의 즐거움 Nothing is more Joyful than Longevity
십장생 Ten or Sib(十)Longevity Symbols
알과 알을 비빈다 Rubbing Eggs, “알” in Korean Terms, to Bear Sons

406 신선이 되려 하니 How to Be a Mountain God
세속의 때를 벗는다 Rising Above the World
오래 살아 신선이 되다 Long Lives, Long Immortals
신선열전 Biographies of Immortal Mt. Gods
곤륜요지 Feast at the Kunlun Mt.














민화의 핵심은 본그림 문화/예술 / +세상이야기

2013.10.07. 11:16

복사 http://blog.naver.com/stoceo/7017693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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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의 핵심은 본그림이다.

1960년대, (중략)한 미국인이 인사동 종이공장에서 재활용 종이로 만들기 위해 넝마주의가 주워온 폐지 속에서 민화 500여점을 건졌다.

이들 민화는 현재 시애틀미술관, 포클랜드미술관 등 미국 서부 지역의 박물관에 대여하여 전시되고 있다.(중략)

 

미국인이 아슬아슬하게 건지 민화 가운데는 여덟 점의 민화 책거리 초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초본에는 ‘壬申十月九日 模于公洞’이라고 제작 연대와 제작지가 밝혀져 무엇보다 소중하다.

‘임신년’은 제작연대로 보아 1872년이거나 1932년으로 추정된다.

이 초본처럼 서가가 없는 책거리 그림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다.

‘공동’은 서울의 소공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이 초본은 19세기 후반 서울지역에서 제작한 책거리라고 볼 수 있다. (중략)

 

더구나 이 초본에는 색채와 기법의 명칭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민화 채색과 책거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세 첩의 초본을 보면, 주(朱). 청(靑). 녹(綠). 진묵(眞墨). 황(黃). 분(粉). 진분(眞粉). 백(白). 지(旨). 하(荷). 육(肉). 극(棘). 회(灰)의 열세가지 색 이름이 적혀있다. 이 가운데 주. 청. 녹. 진묵. 황. 분. 백은 오방색인 정색이고 나머지 지. 하. 육. 극. 회는 간색이다. 민화 책거리에 오방색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간색도 다섯 가지나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중략)

 

이 초본에는 기법을 나타내는 용어도 보인다.

주휘(朱揮). 지휘(旨揮)의 휘(揮),

진심(眞深). 지심(指深)의 심(深),

청채(靑彩). 주채(朱彩)의 채(彩),

분본(粉本). 회본(恢本). 하본(荷本). 주본(朱本)의 본(本),

분문(粉文). 황문(黃文)의 문(文),

수반수문(水反水文). 진반진문(眞反眞文)의 반문(反文) 등이 그러한 것이다.

휘는 선염(渲染), 즉 바림(색을 점차 흐리게 하는 기법)이고,

심은 짙게 음영을 넣는 것이며,

채는 채색, 본은 바탕, 문은 문양을 베푸는 것이다.

수반수문은 나무 필통 윗면의 물결무늬를 그리는 방식으로 먹으로 물결무늬를 짙고 밝게 그리는 것을 말한다.

진반진문은 나무 필통 옆면의 물결무늬를 그리는 방식으로 수반수문보다는 짙게 나타낸다.

 

색채의 구성을 보면, 화면의 중심을 이루는 상단의 두 책갑이 위로부터 주색과 회색바탕이고 그 옆의 지통 안에 꽂혀 있는 두루마기가 청색과 녹색이며, 그 위를 가린 부채가 황색이다.

중심에는 주색과 청색의 목생화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위에는 지색, 아래에는 하색. 극색. 육색 등 간색으로 둘러싸여 있다.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정병모/돌베개 중에서]

 

 

 

 

평소 민화의 핵심은 ‘본그림’이고 ‘본그림’에는 완성될 그림의 조형정보가 60~80%이상 담겨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창작현장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구체적인 기록이나 그림으로 본 적은 없었다.

정병모 박사의 책을 읽다가 ‘책거리 초본’이라는 그림을 발견하곤 그 동안 주장했던 나의 이론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몇 자 적는다.

 

 

민화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 결과 민화의 뿌리는 궁중회화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을 지은 정병모 박사는 민화와 궁중회화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그림’이라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논지를 옹호한다.

그러나 미술에서 민중에 의해 탄생하여 민중을 위한 민중화가의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 이론상의 개념일 뿐이다.

특히 이런 생각은 서구 좌파의 영향 때문인데 세상을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로만 규정하려는 오류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은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를 넘어선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대 말부터 20년간 이런 생각을 가지고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다.

 

궁중회화가 궁궐에 머물지 않고 양반이나 일반백성들에게까지 보급된 것은 ‘본그림’이라는 독특한 조형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그림’은 그림을 그리기 전의 기본그림이다.

‘본그림’에는 구도, 사물의 형태, 채색방법 따위의 핵심조형방법이 담겨있다.

‘본그림’은 동양그림의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조선에서는 공동체의 원리가 있었기 때문에 ‘본그림’이 자유롭게 소통될 수 있었다.

이 ‘본그림’을 통하여 궁중회화가 백성들의 삶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에는 도화서, 차비대령화원 제도가 있었다.

도화서 화원도 그림을 내다 팔았다.

도화서에는 정식 도화서 화원 말고도 30여명의 생도가 있었다. 이 생도는 도화서에서 미술교육을 받는 예비 화원들이다.

그림을 배우는 방법은 본그림을 베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물감이나 종이, 비단 선별법, 화면 만드는 법, 붓질 사용법, 물감 섞는 법과 다루는 법, 미술이론, 화면 구성론 따위를 복합적이며 체계적으로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정식 화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정식 화원은 20~30% 정도 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파는 화공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그리는 그림의 바탕에는 도화서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한 ‘본그림’이 있었다.

도화서나 차비대령화원은 개인이 아니다.

집에는 수많은 문하생들이 있었다.

문하생들 중에는 도화서 화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아주 일부를 제외하곤 화원이 되지 못했다.

이들의 미술교육방법도 도화서 생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본그림’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다시 나름 정식교육을 받는 화공들도 자신의 그림을 도와줄 생도 내지는 견습생,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키웠고 이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키우면서 수많은 화공이 만들어진다.

물론 화공과 제자를 연결시키는 구조는 미술교육과 본그림이었다.

이렇게 궁중회화와 멀어질수록, 정식미술교육과 멀어질수록 본그림에는 더 많은 변주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만약 ‘본그림’을 철저히 단속하고 봉인하였다면 민화의 유행과 발전은 불가능했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민화의 전통은 그림의 형식이나 내용도 있지만 무엇보다 ‘본그림’의 개방성과 소통이다.

 

 

 

 

 

1.민화 속의 호랑이‘  호랑이 담배 필 적에...’

 

단군신화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온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인간이 되기를 간청하자, 깊은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100일 동안 정성스런 기도를 하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곰은 끝까지 버텨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환웅과 결혼을 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곰은 인간이 되어 여신(女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순수 우리 말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 ‘고마에서 나왔고 그 뜻은 여신의 은총을 받으라.’이다.

인간이 된 곰은 더 이상 동물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그림의 어디에도 곰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

추운 시베리아 벌판으로 쫓겨 갔을까, 아니면 백두산 골짜기에 숨어 살까?

 

백성들 사이에서는 호랑이 담배 필 적에...’라는 말과 좌청룡 우백호’, ‘곶감과 호랑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따위와 같이 호랑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무수히 전해진다.

우리 전통그림에서도 호랑이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산신령 옆에 의젓하게 앉아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림이 있고,

절집의 벽화에는 대나무 숲 사이에서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똑똑하고 기백이 넘치는 청년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있으며,

어리버리한 얼굴로 까치나 참새와 함께 등장하는 그림도 있다.

 

우리나라의 호랑이는 중국이나 일본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무섭거나 포악하지 않다.

조금 모자라거나 착하고 친근하며 할아버지와 닮은 모습이다.

북한의 조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그림도 거의 산신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 악귀, 악재를 쫓기 위해 무서운 모습을 한 그림도 있는데 절집에 한정되어 있다.

이런 그림은 우리나라 보다는 일본에 더 많은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풍의 그림이

유입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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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영/()/120*160/조선화/1993

까치 호랑이 그림

중생사 삼성각에 그려진 포효하는 호랑이그림]

 

호랑이 담배 필 적에라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생각해보면 대략 17세기 정도이고 담배문화가 일반 백성들에게 확장된 시기는 약 18~19세기라고 추정한다.

마치 까마득한 수천 년 전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100~300년 전쯤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수백 년이 짧은 세월이냐고 반문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평균 70세 전후인데, 사유와 인식, 과거, 미래 따위의 시간적 개념도 생물학적 한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100년 정도만 넘어가면 보통사람의 인식에는 잡히지 않는 까마득한 시공간이 된다.

 

이번에 소개할 그림은 토끼가 호랑이에게 담배를 봉양하는 모습이 담긴 민화이다.

두 마리의 토끼 중에 한 마리가 일어서서 장죽의 담뱃대를 호랑이에게 공손하게 올리고 영험한 소나무와 폭포와 불사초가 피어있는 가상의 공간에 호랑이가 의젓하게 앉아있다.

가상의 공간이란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라 위와 아래, 원근과 앞뒤가 뒤틀려 엉켜있는 일종의 4차원적인 공간을 뜻한다.

민화의 대부분은 이렇게 공간설정이 현실을 넘나든다. 공간이 현실을 넘나들기 때문에 그만큼 상상력의 한계가 넓어져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호랑이의 모습은 상징적으로 그렸고, 앉아있는 모습은 해부학적인 요소를 넘어선다.

꼬리는 뒷발 사이를 빠져나와 앞발에 밟혀있는 아주 이상한 자세이다.

그림은 상당히 상징적이고 해학적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도 그렇고, 토끼가 호랑이에게 담배 봉사를 하는 모습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그림만 가지고 해석한다면 약자인 토끼가 산속의 제왕인 호랑이에게 아부를 하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권위적이고 냉엄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뜻하는 그림이 된다.

하지만 이 그림은 권위나 약육강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시간을 나타내는 10간인 갑(), (), (), (), (), (), (), (), (), ()12지인 자(·), (·), (·호랑이), (·토끼), (·), (·), (·), (·), (·원숭이), (·), (·), (·돼지)가 있다.

여기에서 호랑이가 토끼보다 앞서 있기 때문에 이런 그림이 나온 것이다.

어떤 민화학자는 1년이 열 달인 태양력을 사용한 신화시대에는 호랑이()가 정월달, 1월이었기 때문에 한해의 첫 번째가 된 호랑이를 두 번째인 토끼가 공경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상대를 높여 공경할 때는 절을 하는데, 담배봉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토끼가 평소에 엎드려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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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묘봉인도(二卯奉寅圖)/조선시대/조선민화박물관 소장

제목을 그대로 풀어 쓰면 두 마리의 토끼가 호랑이에게 봉사한다.’는 뜻이다.

12지와 동물을 적용시키면 묘()는 토끼를, ()은 호랑이를 뜻한다.]

 

어쨌든 이 호랑이 담배 피는 그림은 민화이지만 대중적인 성공과 유행을 일으키지 못했다.

내용이 너무 복잡하면서도 쓸데없고 사람들의 생활과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권위적이고 약육강식의 비굴한 모습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기에 백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그냥 재미있는 상상이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상상력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모든 그림은 형식과 내용이 잘 맞아야 한다.

또한 창작 당시의 사람들에게 반짝 유행이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걸쳐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내야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민화의 형식과 내용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삶속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민화는 여러 세대를 걸쳐 대중들에게 검증된 그림이다.

좋은 것은 살아남아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사라졌다.

편안한 구도에 보편적인 내용과 적절한 상징성, 반전과 해학, 지적 호기심, 화려하고 선명한 색상의 민화는 마치 비빔밥, 햄버거, 피자처럼 오랜 세월을 통해 사랑받는 음식과 다르지 않다

 

 

 

 

2.완벽한 민화-송하맹호도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김홍도/조선후기/삼성미술관 소장

송하맹호도의 구도를 보면 호랑이의 앞발과 꼬리, 오른쪽 몸통이 약간 잘라나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답답하고 틀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는데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가 이런 허접한 구도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그림표구능력은 화려하면서도 튼튼하다고 알려져있는데 여러 번의 표구과정에서 잘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전통그림에서 가장 유명한 호랑이 그림을 꼽으라면 당연히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이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는 글자 그대로 소나무 아래의 용맹한 호랑이그림이란 뜻이다.

그림 속의 호랑이는 김홍도가 그리도 소나무는 강세황이 그렸다고 전한다.

가장 오래된 호랑이 그림의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현무, 주작, 청룡, 백호 즉, 사신도(四神圖)에 나오는 백호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사신도의 백호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래서 백호라고 불러도 현실 속에서 보는 실제 호랑이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어쨌든 조선시대에는 집을 짓거나 묘를 쓸 때 좋은 자리를 잡아주는 풍수가 유행하는데 여기에 배산임수좌청룡, 우백호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니까 왼쪽은 청룡이, 바른쪽은 백호가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벽사의 개념으로 호랑이를 정의했다는 말이다.

호랑이는 영험한 짐승이라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는 불의 재앙, 물의 재앙, 바람의 재앙 같은 자연재해를 막아주고,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인 질병과 전쟁, 굶주림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우주관이 담겨있는 고구려의 사신도에서부터 출발하여 조선 말기의 일반 백성의 인간적인 욕망까지 시대를 넘어서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그림이다.

 

원래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지키고자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그래서 [송하맹호도]는 고관대작의 집에서 당대 최고의 화원이었던 김홍도에게 비싼 값으로 주문하여 그렸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획기적인 구도와 세밀하고 탄탄한 소묘능력을 자랑하는 [송하맹호도]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제작한 그림이다. 여기에 강세황이란 이름난 화원까지 가세했으니 작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강남의 중형아파트 한 채 가격은 되지 않았을까.

[송하맹호도]는 소나무 아래의 용맹한 청년 호랑이를 그린 명작이다.

세필을 이용해 호랑이 털을 묘사했는데 그야말로 한 올 한 올 심었다고 여길 만큼 정교하다. 또한 맹호도라고 했으나 일본호랑이 그림처럼 무섭거나 포악하지 않다.

표정은 선하고 착하며 똘똘해 보인다. 요즘말로 스마트 호랑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림에 호랑이의 나오는 포즈, 자세는 실제 호랑이가 아무리 몸을 뒤틀어도 만들어지지 않는 자세이다.

전체적으로는 약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인데, 뒷다리나 꼬리는 정면 시점을 취하고 있고, 등뼈는 기형적일만큼 길게 그려서 옆모습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한 화면에 정면의 얼굴과 측면의 몸과 한꺼번에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시점을 결합했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자연스런 호랑이 모습을 창조한 김홍도의 능력은 놀랄 따름이다.

어쨌든 이 정도의 실감나는 호랑이를 그리려면 상상력만 가지고는 어림없다.

그렇다고 김홍도가 살아있는 호랑이를 보았을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처럼 동물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만약 김홍도가 호랑이를 보았다면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진짜를 보았을 경우인데, 붓을 들고 사생을 하기도 전에 물려 죽었을 것이다.

혹 호랑이와 비슷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고양이를 참조했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두 번째는 죽은 호랑이를 보았을 경우이다.

김홍도가 죽은 호랑이를 보거나 호랑이 가죽을 보고 사생을 했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

당대의 유명하고 힘 있는 도화서 화원이면서 고관대작의 특별한 요구에 의해 호랑이 그림을 그린다고하면 여러 사람들의 협조가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사냥꾼에게 죽은 호랑이를 사거나 호랑이의 습성이나 생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소나무에 가로로 난 흠집은 호랑이의 영역표시라고 하는데 작가가 호랑의의 습성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인 것이다.

이런 여러 과정을 통한 사생과 관찰 그리고 지식을 종합해 이 세상에는 없는 아름답고 기개가 넘치는 청년 호랑이가 창조된 것이다.

 

 

[상/왼쪽-작자 미상의 호랑이 그림인데 꼬리모양과 뒷발의 위치, 표정이 조금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김홍도의 그림과 거의 같다. 김홍도의 실력 있는 제자가 베꼈거나 본그림이 유출되어 변주된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거의 비슷한 그림에는 심사정의 낙관이 찍혀있는 경우도 있다. 모두 김홍도의 그림을 모방한 것이다.

 

/오른쪽-까치호랑이 그림인데 보통의 경우는 호랑이가 앉아있는 모습인데 반해 이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과 유사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그림이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까치(참새)와 소나무, 호랑이만 있으면 무한 변주가 가능한데 비해 김홍도의 그림은 너무 완벽해서 변주가 거의 불가능하다.

두 작품의 격차는 현저하지만 아무리 작품의 수준이 높아도 단순함과 추상성, 다양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대중화에 이르지 못한다.

 

하단-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 중에 백호의 모습이다. 상상의 동물이기에 실제 호랑이 모습과는 별 관련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흰색 호랑이이라고 받아들이고 흰색은 방향을, 상상의 호랑이는 현실의 호랑이와 연결시켜 벽사의 의미로 사용했다. ]

 

어떤 사람은 조선의 유명한 화원인 김홍도의 작품을 민화의 영역에 넣을 수 있느냐고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민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전통그림은 없다.

민화 자체가 곧 우리의 전통미술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도 주문에 의해 창작된 것이다.

그림의 내용은 선비들의 고급스런 취향이나 성리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고 있다.

단지 실력이 뛰어나고 유명한 화원이었기 때문에 비싸고 고급스런 작품이 창작되었을 뿐이다.

일반 백성들도 정초에 벽사와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까치호랑이 그림을 해마다 빠짐없이 집에 걸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난했기에 떠돌이 화공에게 싸구려 그림을 샀다는 점이다.

화공의 실력과 유명세에 따라 작품의 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 작품의 질이 가격을 결정하면 주문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유통되는 것이다.

싸구려 그림이든 비싼 그림이든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는 탁월하고 완벽한 호랑이 그림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김홍도 화실에서 본그림이 알 수 없는 경로로 유출되어 약간의 변주가 일어났지만 너무 사실적이고 그리기가 힘들었다. 당연히 가격은 비쌌을 것이고 주문자를 만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호랑이 그림은 철학이나 사상이 반영된 그림이 아니라 그야말로 벽사용이다. 감상용 그림과는 거리가 있다. 어떤 사물이나 동물에 붙여진 상징성은 민족공동체 전부의 생각이 녹아있기에 김홍도가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송하맹호도]는 거의 감상용에 가까울 만큼 잘 그려진 그림이다.

벽사용 그림을 감상용 그림으로 바꾸어 놓은 김홍도의 능력은 탁월하지만 대중들의 선택은 달랐다.

 

아무튼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대체하는 벽사용 호랑이 그림이 있었다.

중저가의 [호피도]와 보급형인 [까치호랑이 그림]이 그것이다.

[호피도]는 호랑이 가죽만 그린 그림이라 김홍도 정도의 실력이 없이도 그릴 수 있으면서 장식성도 높다. 또한 [까치호랑이 그림]은 벽사의 내용과 더불어 [좋은 소식]을 준다는 의미가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3.민화 속이 호랑이
호피도(虎皮圖)-호랑이는 죽어서 가죽그림을 남긴다. 

 

민화에는 수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봉황, 용, 해태, 기린, 현무 따위와 같이 상상의 동물도 있고 호랑이, 학, 노루, 거북, 고양이, 개, 닭, 기러기, 원앙, 참새, 까치, 매미, 나비, 사마귀, 각종 물고기처럼 현실적인 동물도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시대와 나라마다 나름의 상징성을 갖는다.
상징은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전체 구성원들의 내용적, 정서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전통이 단절되고 여러 나라의 상징이 뒤섞여있는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생태적인 특징을 이용하여 민화 속의 동물을 해석하고자 하면 큰 오류를 낳는다.
민화 속의 동물이 가지는 상징은 생태와는 무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림만 보아서는 민화가 뜻하는 바를 알기 어렵다.

 

 


[호피도-점박이 호랑이 가족문양을 그린 그림이다. 사실성과 추상성이 결합되고 주술성과 장식성이 공존하는 수준 높은 민화이다. 비록 18세기에 그려졌지만 현 시대, 세계 어디에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민화에 나오는 동물의 상징은 다양한 형태로 해석해야 한다.
고양이를 그린 그림은 칠순잔치의 선물용으로 사용된다. 고양이의 한자음인 ‘묘(猫)’와 칠순을 뜻하는 ‘모(?)’가 중국에서 독음이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음이자(同音異字)를 이용한 상징은 아주 많이 사용된다.
또한 원앙새의 특징을 이용해 부부의 금슬을 표현하는 우의(寓意)방식이 있고,
고전적 문구나 일화를 그림 속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상징이 된 동물도 있다.
민화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은 이런 상징에 대해 혼란스럽거나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같은 전통과 역사를 공유한 우리 민족은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상징은 현실적으로 변형되는 경우도 있고, 사용하지 않아서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통 호랑이나 사자, 표범, 독수리 따위의 공격적이고 무서운 동물의 이미지는 전쟁이나 영웅의 용맹성을 드러내는데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의 전쟁영화나 포스터에 의한 반복적인 이미지 조작의 결과물이다.
이것도 서구의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약육강식’이라는 식민지 지배논리를 정당화 시키는 환영일 뿐이다.
우리 민족은 용맹성이나 전쟁영웅을 위해 이런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이용하지 않았다.
왕권을 상징하는 의장기에는 상상의 동물인 용이 들어가 있고, 각 군영의 의장기에도 ‘사신도’에 나오는 ‘주작’, ‘현무’, ‘청룡’, ‘백호’를 사용했다.
알다시피 ‘사신도’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은 우리 민족의 우주관이 반영되었을 뿐 공격성이나 용맹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했다.
아니, 모든 민족은 평화를 추구한다.
우리에게 있어 전쟁은 자연재해나 질병처럼 피하고 막아야할 어떤 악귀에 다름 아니다.
 
호랑이 그림은 전쟁영웅이나 용맹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각종 재앙을 막아주는 벽사의 내용을 가진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나오는 호랑이는 용맹한 호랑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포악하거나 거칠지 않고 준수하고 똘똘한 느낌이다.
‘까치 호랑이그림’에 나오는 호랑이는 어리숙하고 꺼벙한 표정이고 심지어는 눈알이 뱅뱅 돌아가는 술 취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 어디에도 용맹한 전사의 이미지는 없다.

호랑이 가죽은 호랑이의 분신과 같다.
살아있는 호랑이를 곁에 두면서 소유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죽은 동물의 뿔이나 이빨, 가죽 따위를 집안이나 몸에 지니는 풍속은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죽은 동물의 일부를 가짐으로써 그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주술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림은 권위와 주술, 교육, 장식과 같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지금은 오로지 부의 상징으로 거래될 뿐이지만.
아무튼 왕이나 귀족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이용하고, 예수와 석가모니를 그린 종교화는 그 자체로 경배의 대상이 된다. 이런 성인이나 토템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 집안이나 개인이 소유하면 일종의 벽사, 부적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그림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현실적인 가치를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가치로 변환시키거나 반대로 보이지 않는 대상이나 욕망, 생각을 눈에 보이도록 현실화시키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명작들은 대상을 너무 실감나게 그리지도 않고, 반대로 너무 추상적으로도 그리지 않는다. 또한 상상과 현실의 적절한 결합은 미술조형 원리의 중요한 기본이 된다.

호랑이는 각종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호랑이 가죽을 직접 집안에 걸어두면 강력한 벽사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 여기지만 이것은 아주 낮은 단계의 문화이다.
실제 호랑이 가죽보다 더 강력한 벽사의 기능을 하려면 상상력이 결합된 그림이어야 한다.
어차피 벽사의 기능은 인간이 상상력이 만들어 낸 정신적 가치이기도 하고, 실제 현실보다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현실이 더 실감나기 마련이다.

 


[호피장막도-호암미술관 소장
원래는 8폭 병풍그림이다. 보이지 않는 4폭은 모두 점박이 문양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호피도와 책거리 그림이 결합한 아주 고급스런 민화작품이다.
각종 서적과 골동품, 귀한 물건이 있는 양반집안의 서재를 호랑이 가죽이 감싸고 있는데 일부를 살짝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이 결합되어 안쪽 서재가 마치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호피도’는 호랑이 가죽을 펼쳐 놓은 형태로 그리는데 주로 병풍으로 꾸며서 집안을 장식한다.
그러니까 호피문양을 조금씩 다르면서도 반복적으로 4폭, 6폭, 8폭을 그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호랑이 얼굴부분은 그리지 않는다.
‘호피도’의 호랑이 가죽은 크게 ‘줄무늬 호랑이’와 ‘점박이 표범’의 문양으로 나눈다.
다른 말로 ‘참호랑이’, ‘개호랑이’ 가죽문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호피도’에는 점박이 표범가죽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도나 백두산 근처에 표범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호랑이와 표범이 공존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 민화에서는 호랑이와 표범은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표범이 곧 호랑이이고, 호랑이가 곧 표범이다.
그런데도 점박이 표범 가죽을 많이 그린 것은 줄무늬보다는 점박이 문양이 아름답고 장식성이 높기 때문이다.
표범가죽 그림은 밝은 노란색이나 주황색 바탕에 검정으로 둥근 문양을 일정한 흐름에 따라 반복적으로 그린다. 세필로 꼼꼼하게 털의 느낌을 표현하고 강약을 조절하여 변화를 주었다.
반복된 둥근 문양은 시각적 중독을 일으키고 세밀한 털의 표현은 집중력을 높인다.
마치 표범가죽 문양을 이용한 최신 패션이나 가방 디자인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그려진 ‘호피도’는 양반 집안을 장식하고 혼례용 꽃가마의 지붕을 덮거나 이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런 특징으로 조선 말기의 중산층에게 큰 인기가 있었을 것인데 특히 정서상 무관 집안에 더욱 많이 걸렸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호랑이는 죽어서 호랑이 가죽그림을 남겼다.
외국에는 진짜 호랑이 가죽을 장식하거나 호랑이 그림을 그린 경우는 많이 있다.
하지만 호랑이 가죽문양을 그림으로 그린 것은 찾기 어렵다.
‘호피도’는 매력적인 민화이다.
사실성과 추상성의 결합을 통해 미술작품의 가치를 높였고 여기에 벽사, 주술적인 내용과 장식성, 대중성까지 획득하였다.
이 그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거부감 없이 통용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좋은 유산 중에 하나이다

 

 

 

 

 

[글:심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