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3. 20:36ㆍ詩.
기도서
- 추영수 詩
주여 !
바위 옆에 꿇어앉아 바위로 굳는 저는 무엇이옵니까?
겨울 나뭇가지 옆에 끼여
생명 잃은 나뭇가지로 바람에 시달리는 저는 또 무엇입니까?
주여 !
빛바랜 잔디 위에 엎드려
나를 모르는 저는 또 무엇이옵니까?
주여 !
오늘도 저는 생선가게 자판 위에서
토막 친 생선이 되어 누워 있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고삐 매인 염소 새끼가 되어 몰이꾼의 뒤를 따랐습니다
오늘도 저는 무거운 짐을 이고 땀 흘리며 가는
방물장수의 등에 업힌 애기가 되었습니다
주여 !
수없이 병들어 죽는 저를 보았습니다
수없이 달리는 차와 함께 뒹구는 저를 보았습니다
수없이 검은 손을 흔들어
간교히 제 목숨만 빠져나가는 저를 보았습니다
주여 !
저의 참 영혼을 불러 주시옵소서
저의 참 영혼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 먼 길 떠나 어느 만큼이나 왔습니까?
설움이 흘러넘칠세라 내 항아리 싸안을 노을빛 마음 자락은
얼마만큼 익어 가고 있습니까?
돌팔매 던져도 감싸 안고 잔잔히 흐르던 강물은
또 어디만큼 흘러갔습니까?
이제금 외줄에 매달린 광대인 양 흐느끼고
목숨은 아직도 다하지 않았습니까?
울음 그친 하늘이 저만큼 물러서선
또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주여 !
비워 주시옵소서.
당신의 빛항아리만큼이나 온전히 비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뵙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닮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물들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노래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참 나를 보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참 나를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참 내 여정을 진작케 하여 주시옵고 ―
주여 !
창 밖 마른 나뭇가지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물기를 되찾듯
메마른 내 영혼에 생수를 내려 주시옵소서.
겨울 나뭇가지에 매달려 간동히 말라버린 생명 잃은 고엽 위에도
관 속의 아이로 눈 감은 시신 위에도 ―
주여 !
오뇌하게 하시 옵소서.
이 평안의 꽃방석에서 바늘방석의 고행을 절감케 하시옵고
근시의 백태를 벗기어 눈 뜨게 하시옵소서.
내 이웃의 설움을 함께 나누고
내 이웃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뻐하게 하시옵소서.
주여 !
육교 위에 엎드려 나를 향해 벌리는
때 묻은 손목을 잡고 애통하는 순수를 주시옵소서.
찢어지는 가슴을 주시옵고
각혈로 흘러버리는 내 피를 나누어 갖는 끓는 가슴을 주시옵소서.
우리들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동정일랑 거두어 주시옵소서.
주여 !
진심으로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또 네가 내가 될 수 있는 본래의 나를 되찾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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