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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미술 이야기 (책)

「파리 살롱전」의 유래

 

 

 

16세기부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군주들은 데생 아카데미를 후원했는데, 프랑스도 1648년 루이 13세의 어머니 마리아 데메데치의 섭정하에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를 설립하게 된다. 예술가들을 국가의 체제하에 두고 국가가 후원자가 된 것이다. 아카데미 수장은 보통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맡았다. 학술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와는 달리 여성도 받아들였으며, 장인이나 다름 없었던 예술가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아카데미는 엄중한 콩쿠르를 통해 입학생을 뽑았고, 이곳에서 수학을 한 후에는 로마에 가서 학업을 완성한 후 궁중의 예술가로 일할 수 있는 엘리트 코스였던 것이다.

 

1667년부터 당시 재상이던 콜베르의 지휘하에 콩쿠르에 뽑힌 아카데미 회원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파리 살롱전의 시작이다. 초기에는 팔레 루아얄의 뜰 등에서 열다가 이후 비엔날레로 2년에 한 번 정도 열었고, 1725년부터 루브르 궁의 「살롱 카레」에서 정기적으로 열기 시작해 '파리 살롱전(Salon de Paris)'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여기에서 1등을 해 '로마償'을 수상한 자에게는 로마 유학과 함께 화가로서의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었다. 이 살롱전은 곧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푸생, 부셰, 다비드, 앵그르, 카바넬, 들라클루아 등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유명한 프랑스 예술가들은 모두 아카데미 출신 화가들이다. 그림의 주제에도 서열이 있어서 역사화가 가장 우위에 있고, 초상화나 정물화는 그 아래, 소소한 일상의 그림들은 가장 아래 서열이었다. 이 중 역사화가만이 궁정화가의 지위에 오르고 교수가 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구체제는 무너지고, 의회의 입법으로 살롱은 모든 예술가들이 참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권력자들의 소양은 자유로운 영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나폴레옹은 열렬한 로마 숭배자였다. 그의 시대는 곧 다비드의 시대였다. 살롱전은 다비드의 제자들이 휩쓸었다. 결국 혁명은 또다시 공식적인 예술, 아주 고전적인 그리스와 로마라는 주제로 되돌아갔다.

 

나폴레옹 시대의 틀에 박힌 정적인 그림들에 대한 반발이 외젠 들라크루아를 중심으로 하는 낭만주의였다. 정면과 대칭보다 비대칭과 사선 구도,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 격렬한 감정이나 상상력을 표현하는 낭만주의는 보수적 화가들에게는 천박하게 보였을 것이다. 주제도 역사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들, 문학에서 따온 주제, 자연 풍경 등을 강렬한 빛과 색채로 표현한, 당시 아카데미가 규정하고 있던 법칙을 한참 벗어난 거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낭만주의 표현 기법은 뒤에 오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예술은 완전히 개인적 창조의 영역이 되어갔다. 여기에는 산업혁명과 도시의 발달로 인한 사회구조와 유통구조의 변화도 한몫했다. 이제 예술은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돈으로 얼마든지 사고 파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예전의 아카데미 국전은 프랑스 예술가展이 되었고 국립예술가협회도 생겼다.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의 시작은 고달펐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은 허락되었지만 대중의 눈과 인식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은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이 즐기던 럭셔리를 동경하고 따라하는 법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편안한 예술보다도 귀족들이 즐기던 아카데미풍의 예술을 더 좋아했다.

 

1863년 나폴레옹 3세가 단 한 번 주관했던 '낙선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파리 살롱전에서 아카데미파들이 거부한 작품들만 모아서 일종의 패자부활전을 열었는데, 이것이 인상파의 신호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20세기에는 국가 재정 없이 예술가끼리의 출자로 그랑팔레에서 '독립 미술가전' '가을전' 등이 열렸다.

 

왕립 아카데미는 프랑스 혁명 이후 1816년 '아카데미 데보자르'로 바뀌어 프랑스 학술원에 속해 있으며, 현재까지 회화, 조각, 건축, 판화, 작곡, 자유회원, 영화와 오디오, 사진 예술 등 57명의 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스 학술원은 센 강변에 있는데, 보행자 전용 다리인 '예술의 다리'를 가운데 두고 루브르 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다. 천장에 팡테옹과 같은 거대한 돔을 올린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루브르와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건축되었다.

 

 

- 『민혜련의 파리예술기행』 p113~117

 

※ 글투가 아무래도‥ 어디선가 베껴 온 거 가티여. ㅋㅎ

 

 

 

 



퐁생미셸

 


프랑스 학술원



에꼴 드 보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