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윌리암 호가스
만화의 형식을 최초로 시도한 <매춘부의 편력>
2
고야
3
도미에
가르강튀아
입법부의 배
진실한 사람들
대화하는 법조인들
영국의 화가 윌리암 호가스와 그의 뒤를 잇는 토마스 롤런드슨과 제임스 질라이,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와 프랑스 풍자화의 대가 오노레 도미에이다. 당시에는 만화가와 화가의 구별이 따로 있지 않았고 만화가란 개념도 없었다. 고야와 호가스의 작품이 극히 뛰어남에도 도미에처럼 넓은 전파력을 갖지 못한 이유는 도미에가 살던 시대와 달리 적절한 인쇄수단과 발표할 지면을 갖지 못한 데 있다.
만화 역사의 초기를 차지하는 것은 정치 만화와 유머가 섞인 단편 만화들이었다. 그중 정치 만화는 도미에를 위시한 가르바니, 그랑빌 등에 의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게 되며 만화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권력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인간의 사고는 자유이다. 따라서 글과 말로 표현하는 사유 또한 자유이다. 그러나 만화는 이와 달리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표현이며 특정 인물에 대한 가학적이고 모욕적인 공격인 탓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루이 필립 ‘9월 법률’)
일간지나 주간지에 만화가 실리는 형태가 아닌 순수한 만화잡지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1841년 7월 17일에 발간되기 시작한 『펀치』가 그것이다. 이 잡지는 그 뒤 간간이 발행되어 오다가 1943년부터는 정기간행물이 되어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다.
1896년 2월 16일 미국 '리처드 펠튼 아웃콜트'라는 만화가가 만화잡지 『월드』에 「노란 꼬마」라는 만화를 선보였다. 이 만화가 바로 현대식 이야기 만화의 선조인 셈인데, 당시로는 획기적인 꼬마의 옷에 대사를 써넣었다. 오늘날 대사를 써넣는 '말풍선'의 시조인 셈이다. 「노란 꼬마」가 바로 선정적인 신문을 의미하는 '황색 저널리즘'의 어원과 관계가 있으며, 아웃콜트는 자신이 창조한 만화 주인공의 의상과 팬시 사업으로 돈을 번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만화가 공식적으로 예술 대접을 받게 된 것은 1944년이라고 한다, 만화가 밀턴 캐니프가 그린 「해적 테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됨으로써 비로소 제값의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1965년에는 프랑스에서 최초의 만화 잔시회가 열렸으며, 1967년에 드디어 루브르 미술관에 입성했다.
(글 출처. 강홍구 지음『원작 없는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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