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펠탑의 신랑 신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938년 作. 캔버스에 유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미술품 전시회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샤갈전을 꼽는다.
2004년 전시회는 무려 70만 명의 관람객을 모았고,
2011년 전시회도 이에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세계 30여개 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한 16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았으니
엄청난 규모였다.
두 차례 모두 '색채의 마술사 샤갈' 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안내 책자 만이 아니라 개별 작품에 대한 소개도
온통 색채와 관련한 설명으로 가득했다.
기껏해야 작가의 생애를 나열하거나
혹은 '사랑을 노래한 색채 회화의 대가'라는 소개였다.
부인과의 사랑을 설명하는 정도가 추가됐을 뿐이다.
색채라는 형식만 있을뿐
작품의 시대적 상황과 어떤 시대정신을 반영했는지에 대하여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관객은 "정말 화려한 색채를 구사한 화가구나"라는,
지극히 단순한 인상만 남았다.
물론 색채가 샤갈을 특징짓는 중요 요소임은 분명하다.
대표작 중의 하나인 <에펠탑의 신혼부부>만 봐도 그러하다.
시각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파스텔 톤의 하늘색과
녹색을 바탕으로 빨강, 노랑, 파랑 등
강렬한 원색을 적재적소에 배합하여 감상자를 색채의 향연으로 안내한다.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이 굳이 '녹아 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자연스럽게 겹치면서 배어 나온다.
서정적 화풍과 화려한 색채 구사로
'색채의 시인'이라는 평을 듣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색채는 그림의 한 형식일 뿐,
색채로만 감상을 유도하면 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그림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두 가지 측면에서 언어의 역할을 한다.
한편으로 화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의 삶과 정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표출한다.
그러므로 감상을 형식적, 기능적 측면으로 제한하면
작품의 생명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
감상에는 시각적 자극을 넘어서 작품과의 대화 과정이 필요하다.
작품과의 대화를 위한 필수 요소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통해 그림에 주어진 몇 가지 정보를 서로 연결하고,
시대 상황과 작가의 내면, 나아가서는 현재 우리 삶과 맞닿은 지점을 발견해낼 때
사고의 지평이 비약적으로 확대된다.
상상력은 인문학에서도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상의 사소한 현상이나 사건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배후에 있는 심리적, 사회경제적 연관성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동원한 심화, 확대 과정이 필수다.
그러면 상상력 전개를 위한 첫 발자국을 어떻게 내딛어야 할까?
모든 상상력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상상력은 관성을 넘어서는 곳에서 시작한다.
관성이란 시각과 청각 등 감각에 주어딘 그대로 순응하는 경향,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무조건 수용하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통념을 형성한다.
상상력은 굳어진 통념을 깨는 도전이다.
'왜'라는 질문은 수동적 수용을 넘어설 수 있는 의문을 의미한다.
미술 작품이든 사회 현상이든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때
상상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에펠탑의 신혼부부>를 다시 보자.
신혼부부 옆에 왜 닭이 있는 걸까?
왜 닭을 사람만한 크기로 확대했을까?
생뚱맞게 나무 위에 염소는 왜 그려놓았을까?
<나와 마을>, <고독>, <러시아와 암소> 등 다른 작품에서도 소, 말, 닭 등 가축이 자주 등장한다.
왜 그는 동물을, 그것도 비정상적으로 확대한 가축을 주요 소재로 선택했을까?
또한 샤갈의 그림에서는 사람이 공중에서 유영하듯 등장한다.
왜 화가는 현실을 무시하고 사람을 공중에 올려놓았을까?
(중략)
작품 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수평적 교감을 실현한 샤갈을 생각하면
'실천윤리학'이라는 철학적 지평을 연 Singer가 떠오른다.
그는 도구나 언어의 사용을 근거로 인간과 동물의 질적 차이를 주장하는 기존의 전통적 관점을 반박한다.
샤갈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비판적 분석을 하고
피터 싱어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림을 그렸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농촌의 삶에 대한 강한 동경이 있었음은
그의 글이나 그림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샤갈은 작품에서 도시의 인간도 다루지만
상당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꽃, 사람, 동물, 집 등은 농촌의 삶과 연관된 것이었다.
또한 그림 속의 인물이 우주에서 유영하듯 날아다니는 것은
당시 유럽 철학의 주요한 흐름 중의 하나였던「生의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샤갈은 베르그송의 생철학 영향을 많이 받은 자크 마리탱과 가까운 관계였다.
이성으로 구축된 현대사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며
통합적 휴머니즘을 강조한 그와 샤갈의 작품은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쇼펜하우어를 필두로 하여 니체, 베르그송 등으로 대표되는 생철학자들은
이성주의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근대 철학에서 비합리적 영역으로 치부되어 철학의 외부로 던져졌던 의지에 주목했다.
이들은 먼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삶은 합리적, 과학적 이성으로는 접근하기 어렵고,
오히려 이성에 의해 은폐된다는 공통 전제에서 출발한다.
生의 의의, 가치, 본질은 합리적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
체험이나 직관에 연관된 의지에 기초할 때 파악 가능하며,
이를 통해 규명된 충실한 삶 속에서 인간의 궁극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샤갈이 이성의 산물로 만들어진 인공적 대상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친근한 관계에 주목하고,
합리적 설정보다는 공중을 나는 사람처럼 비합리적 화면을 선호한 것에서
우리는 생철학의 문제의식과 맞닿은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엘뤼아르는 샤갈과 가까운 사이였는데,
샤갈의 작품을 보고 <샤갈에게>라는 시를 지었다.
"당나귀 혹은 암소, 수탉 혹은 말이.
바이올린의 몸체를 통해 노래하는 남자는 노래하는 새가 되고,
그의 아내와 춤추는 경쾌한 댄서가 된다. …
금빛 초원과 푸른 하늘은 생명 가득한 이슬의 푸른 불빛으로 나뉘고
피는 반짝이고 심장은 고동친다. …"
그의 그림 속에서 사람과 동물이 수평적으로 교감을 나누면서 자연과 일체화된 관계를 맺은 것을
시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샤갈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가 떠오른다.
- 박홍순,『미술관 옆 인문학 2』(p55~74)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내 영혼에 존재하는 나라,
나는 나의 모국에서처럼
여권 없이 그 나라에 입국한다.
그 나라는 나의 슬픔과 고독을 바라본다.
그 나라는 나를 재워주고
향기로운 돌로 나를 덮어준다.
나의 내부에는 꽃이 만발한 꽃밭이 있다.
내 꽃들은 내가 만든 것들이다.
거리는 모두 나와 관련이 있지만,
그곳에는 집이 하나도 없다.
그곳은 나의 유년시절 이후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살 집을 찾아
공중에서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내 영혼 속에서 산다.
내가 미소를 짓는 것은
나의 태양이 빛날 때이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밤에 보슬비가 오는 것과 같다.
한때 나는 머리가 두 개였다.
한때 그 두 얼굴들이
사랑이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장미의 향기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지금 나는 뒤로 물러설 때조차도
높다란 대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그 문 뒤에는 벽이 죽 이어져 있는데
그곳에는 소리를 죽인 천둥과
빛이 꺾인 번개가 잠들어 있다.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내 영혼에 존재하는 나라.
- 마르크 샤갈, 「홀로인 것은 나의 것」 전문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김춘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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