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흐 도올다워!"

2013. 3. 28. 15:20책 · 펌글 · 자료/종교

 

 

 

요한복음 강해 

 

 

 

本書 원래 EBS에서 최근에 신설한 인터넷 어학교육 프로그램의 교재로서 개발된 책이다.

2000년 밀레니엄의 시작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으로 나와 교육방송이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의를 공동개발하여

지상파 텔레비젼을 통하여 56講을 강의한 것이 미증유의 폭발적 인기를 끌어, 우리나라 방송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시들어가던 인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을 뿐 아니라,

서양의 학문 전통이 아닌 우리 민족 고유의 가치관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는 실마리가 되었고,

방송계에 대중강의 프로그램을 유행시키는 끊임없는 영감의 始原이 되었다.

 

내가 어학 실력이 탁월하다는 정평이 있으니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어학능력을 전수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 방송관계자들의 소망이었다.

최소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학습에 관한 도올선생 어학 강좌가 어학이라는 학문에 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었다.

너무 딱딱한 고전은 젊은이들에게 소원하게 느껴질 것이고, 소설류는 너무 가벼워 내가 강의하기에는 좀 맛이 적다.

이 양면을 다 포괄할 수 있으면서도 쉽고 가슴에 와닿는 영어 교재!

곰곰히 생각하니 나의 인식의 지평 위에 부각하는 것은 영어 성경 밖에는 없었다.

 

- 도올 김용옥『요한복음강해』서문 중에서 발췌

 

 

아으 아으  나 죽네 ! 

'교재로써'가 아니라 '교재로서', '미증유', '신기원', '소망', '탁월하다고 정평', …… ,

'내 레벨에 맞는 건 성경밖에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김재준 목사님께 내 생애 처음으로 동양사 강의를 들었다.

문익환 선생으로부터 구약학개론을, 문동환 선생으로부터 교육학개론을 들었다.

때때로 강원룡 목사가 와서 특강을 했고, 문재린 노목사님은 교정에서 잡초를 뽑고 계시곤 했다.

이 분들이 모두 용정에 있는 명동학교와 관련이 있고 김약연 선생의 훈도를 받은 사람들이다.

 

    남강 이승훈 선생, 다석 유명모 선생, 우찌무라 칸조오 등의 훈도를 받고

친구 김교신과 함께 조선 성서연구회를 조직하여 성서조선을 창간하였다가 투옥된

우리 기독교계의 선각자 함석헌 옹의 비젼을 한번 되새겨보자!

 

이 양반이 왜 그리 씩씩하고 두루 해박한가 했더니,

바로 함석헌 선생님 줄이로구나!

 

 

 

 

 

 

한국 기독교는 선교사들이 밀가루 포대와 더불어 던져놓은 것이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는 바티칸의 선교 작전과는 무관하게 우리 민족 스스로 복음을 갈구하여

주체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배움이요 학문이었다.

그들은 성리학의 윤리적 관심 속에 성리학을 초월하는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갈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세계 선교사에 거의 있을 수 없는 유일한 사례에 속하는 것이다.

 

이들의 관심은 결코 정치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제도적인 것도 아니었다.

더 이상 조선왕조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가 우리 민족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앞섰기에,

유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기독교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 말은 쌩구라가 아닌갑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에 이를 뒷받침할 만한 대목이 있더라.

.............

 

한국 사람들은 순수하고 담백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학문을 존중하고 무력을 싫어했다.

한국인의 심성에 대하여 게일(Gale)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일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들의 현대 문명과는 전혀 다른 그들만의 순수한 정신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나도 지난 30년 동안 그들의 정신세계를 연구하였는데 아직도 채 이해 못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깊이 파고들수록 한국 사람들의 문화를 더욱 존경하게 됩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기 전부터 이미 기독교 선교 사업의 영향력은 한국 내에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게일은 한국 사람들의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시아에서는 기독교 전파가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대중이 대부분 문맹이라 성경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문자는 있지만 문자 자체가 배우기 힘든 인도 등의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야말로 제일 안 좋은 경우인데, 지배층에서는 고고한 문화를 논하며 편안히 지내는 동안,

대중은 일자무식으로 소문, 귀동냥, 그리고 미신만 믿으면서 살아왔다.

극동에서 한국은 유일한 예외인데, 그들에게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어떤 선구자적인 본능이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460년 전에 간단한 표음문자가 발명되었다.

따라서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직업의 고하, 생계의 방법을 막론하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 교회 일을 보는 한국인들 중에는 평생 학교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선교사들은 한글로 성경을 번역했고, 그리하여 이 운둔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성경 이야기를 훤히 알게되었다.

 

또 한국에는 이미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유일신 개념을 쉽게 전할 수가 있었고,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주관하는지 이해시킬 수 있었다.

한글은 복음 전파의 선교활동을 아주 쉽게 해 주었다.

이에 비해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들은 유일신 개념이 전혀 없다."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에서 언어 능력이 제일 뛰어나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일본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인이 일본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기독교를 새로 받아들인 나라 중에서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중국 사람들은 서양 선교사보다 한국인 선교사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서양과 교역을 통해 기계, 배, 철도, 공장 등을 얻으면서 기독교는 해독제 정도로 받아들인 반면,

한국 사람들은 약간 투박한 형태의 복음주의를 받아들였고 인근 나라들과의 교역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 나라는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닌다 해도 학문을 쌓은 학자라면 존경하고 우대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그 제자들의 행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위 책 p 7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