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4. 21:15ㆍ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1880년 4월,
‘마리 베르나’라는 젊은 여인이 피렌체에 있는 아르놀트 뵈클린의 작업실을 찾아왔다. 이제 막 약혼한 그녀는 14년 전 사망한 그녀의 첫 남편을 마지막으로 추모하고 싶다며 화가에게 ‘꿈을 꾸게 해주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마침 뵈를린은 한 사람이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어느 섬을 향해 가고 있는 우울한 그림을 그리던 참이었다. 젊은 여인의 다급한 주문에 맞춰서 그는 여기에 흰옷을 입은 유령 같은 인물과 관을 그려넣었다. ‘죽음의 섬’이라고 명명한 이 그림에서 남편의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 여인을 묘사함으로써 젊은 과부가 재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전남편을 맘껏 추모할 수 있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1880년 6월 29일 이 그림을 보내며 주문자에게 편지를 썼다.
“부인께서는 이 음침하고 어두운 세계에서 /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는 훈훈한 무역풍을 느끼실 때까지, /
한마디로 엄숙한 고요함이 깨질까봐 두려움을 느끼실 때까지 /
꿈에 젖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
‘이 음침하고 어두운 세계에서’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는 훈훈한 무역풍을’ ‘느낄 때까지’
‘엄숙한 고요함이 깨질까봐’
‘꿈에 젖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
.......
턱 괴고 한참을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말이 뜻하는 바를 모르겠습니다.
뵈클린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에 대해서 깊이 알아야만이.......
이 《죽음의 섬》은 1880년부터 1886년에 걸쳐 총 다섯번이나 그렸답니다.
잘 팔려서 또 그리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수히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다면 작품의 ‘변화’를 살펴보면 작가의 생각을 읽어낼 수가 있지 않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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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문제에 매료되었던 뵈클린은 이 주제로 여러 점의 풍경화를 그렸다. 실제로 죽음은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열네 명의 자녀 중에서 여덟 명이 사산되었거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뵈클린의 예지력이 돋보이는 이 그림을 스트린드베리는 자신의 연극에 무대장식으로 사용했고, 라흐마니노프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헤르만 헤세는 여행할 때 이 그림의 복사본을 가지고 다녔다.
이 그림은 권력자들에게도 특별한 마력이 있는지, 뵈클린의 그림을 무척 선망했던 히틀러는 1936년 이 작품의 다섯번째 판본 중 하나를 사들였다. 클레망소는 집무실에, 레닌은 침실에 이 그림의 복사본을 걸어 두었다. 프로이트도 환자에게 선물로 받은 이 그림의 사본을 소장했다.
1897년 바젤, 함부르크, 베를린에서 전시회가 개최되어 대표적인 독일화가가 되었으며, 이 그림의 수많은 판본이 유럽 전역에 퍼졌고, 1890년부터는 대형 판화로 제작되었으며 여러 출판사가 앞다투어 그의 화집을 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병사들이 이 그림이 인쇄된 엽서를 이용했다. 대중적인 '성화'가 된 이 그림은 독일의 수많은 가정의 벽에 걸렸다.
이 그림의 전문가인 한스 홀렌베그는 "한 번 보기만 해도 뵈클린을 떠올리게 하는 이 풍경화는 나치 독일이 성립하던 시대에 중산층의 상상과 향수를 충족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 그림에 담긴 감정의 울림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 달리, 에른스트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도 이 그림의 주제를 놓고 나름대로 설명을 했는데,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이 작품에서 게르만 문화와 그리스 라틴 문화의 융화를 보았다'라고 썼다.
실제로 이 그림에는 북해의 음침한 우수, 이탈리아의 사이프러스, 혈거인의 무덤, 저승으로 가는 죽은 영혼들을 배에 태우고 스틱스 강을 건네주는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 뱃사공 카론의 비유 등 다양한 문화적 소재가 뒤섞여 있다.
이 그림은 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이 그림이 진정으로 무엇을 보여주는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죽음의 공포를 심하게 느낀 사람이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공포, 즉 거세 공포를 숨기고자 이 그림을 이용한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어떻게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는 꿈에서조차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자기 장례식에 참석하는 조문객들의 모습을 본다.
화가가 늘 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가정할 때, 갈수록 그림이 진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뵈클린은 이 그림에서 메두사의 상징체계를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로이드는 이제 곧 들어가야 할 동굴 앞에서 "난 네가 무섭지 않아" 라고 이야기 하는, 공포로 경직된 발기한 남근을 가진 자가 곧 감상자 자신과 화가라고 풀이했다. 그런 점에서 클레망소, 히틀러 혹은 레닌처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적을 죽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왜 이토록 이 그림에 열광했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명작스캔들Ⅱ》에서 발췌함.
'거세'니 '프로이드'니 하는 云云들이, 제게는 도움이 되기는 커녕 더욱 더 미궁에 빠지게 합니다.
-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어렴풋 알겠습니다만, 딱 뿌러지게는 정리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욱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이처럼 난해하고 해석이 각양각색일 수 있는 그림을 - 작가도 음산하고 괴기스럽다고 표현한 - ,
윗글에서와 같이 당시 빈부귀천 없이 일반대중들까지도 선호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공유했던 느낌이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1) 진짜로 ‘훈훈한 무역풍’과 ‘안락함’이 느껴졌단 것인지,
2) ‘중산층의 상상과 향수’ 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얼 말함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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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박홍순/『미술관 옆 인문학』이란 책에서 또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뵈클린의 대표작 <죽음의 섬>은 10세기 독일 낭만주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언뜻 보면 그냥 어둡고 음울한 느낌의 풍경화지만, 세밀하게 관찰하고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게 된다. 뵈클린은 이런 풍경을 통해 죽음의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배에 탄 흰 옷의 인물, 혹은 관 속의 시신이 우리일 것이다. 살아가는 일상이 죽음과 같은 고통의 연속일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맞닥뜨려야 하는, 결국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우울함과 음산함은 생에 대한 집착이 허무로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화가로서 출세작이 없어 극도로 가난에 허덕이며,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등으로 부인과 여섯 명의 자녀를 사별한 개인의 아픈 경험이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뵈클린은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노크 소리에도 놀랄 만큼 고요와 침묵의 감명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고요와 침묵은 공포와 고통의 긍정적 수용으로 얻어지는 평정의 순간일 것이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은 그렇게 죽음을 응시하면서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죽음이 우리에게 가깝고 친근하다는 점을 표현하려는 의도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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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해가 잘 안되긴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이처럼 제작 순서대로 주욱 모아 놓고 보니까 더 흥미롭더군요.
여섯번째 작품이 또 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안착시키고 빈 배로 돌아오는.......
저는 맨 위엣 작품이 맘에 드는데, 여러분은 어떤 작품이 맘에 드십니까?
....... 아, 그게 또 아니로군요! 각 작품마다 느낌이 달리 오네요!
세 번째 작품을 낮게 봤었는데 외려 그것이 나은 것 같기도하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작품이 격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아무튼,
☆ ★
2017. 8. 30 (수)
누가 스크랩을 떠갔길래 후루룩 다시 살펴봤는데,
이거 혹시, 뵈클린이 얼렁뚱땅 소 뒷발질하다 왕거니 밟은 게 아닐까?하는
??????
음악 드뎌 찾았습니다.
Rachmaninov, Isle of the Dead Op.29
라흐마니노프 교향시 ‘죽음의 섬’
Sergei Rachmaninov
1873-1943
Leonard Slatkin, conductor
Detroit Symphony Orchestra
2012.10.21
Slatkin conducts Rachmaninov 'The Isle of the Dead'
이런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시 <죽음의 섬> 악보에서 주요 음악적 전개를 알아보자. 첫머리는 8분의 5박자라는 변박자의 느리고도 서글픈 하프 연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섬으로 실어 나르는 카론이 젓는 노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윽고 첼로가 이 죽음의 섬에 부딪치는 물결을 그렸다고 생각되는 분산화음의 반주형(伴奏型)을 나타낸다. 이 물결의 모티프는 이 곡을 다스리는 가장 아름다운 요소이다. 그 사이에 고뇌가 깃든 듯한 바이올린을 배경으로 첼로가 암시하는 그레고리 성가인 ‘디에스 이레’(Dies irae, 진노의 날)가 단편적으로 어슴푸레 들려온다.
섬에 가까워지면서 소리가 커지고 움직임이 뚜렷해지며, 이때까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죽음의 고통이 나타난다. 이 곡의 중간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갑자기 밝게 나타나지만, 이윽고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에 다시 휩쓸리면서 ‘디에스 이레’가 다시 냉혹하고 집요하게 들리면서 카론의 배는 섬을 떠나 조용히 멀어져 간다.
이 교향시 <죽음의 섬>은 미학에 비추어볼 때 일종의 사실주의적인 정신으로 작곡되었지만, 때로는 인상주의적인 구조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중간 부분을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법)의 차원에서 보면, 바그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그너도 염세주의자였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가 더욱 그에게 공감했는지 모르나, 이 교향시를 지배하는 비극적인 요소는 라흐마니노프의 내성적이며 불안한 인간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 교향시를 감상할 때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보면서 들어보면, 놀랍게도 그림이 음악의 흐름에 따라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림 자체가 생동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림 <죽음의 섬>을 보았지만, 뵈클린은 교향시 <죽음의 섬>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한편 같은 시대의 독일 작곡가 막스 레거가 뵈클린의 그림을 음악으로 꾸민 것도 있다.
글쓴이 : 음악평론가 김원구(1923-2002).
일반적으로 <죽음의 섬>이라고 하여 굳어졌는데, 정확히는 <죽은 자들의 섬>이 맞습니다.
그 外
Villa by the Sea (1878 )
<코카서스 산의 프로메테우스>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1896년,66x150cm,Oil on panel,Sotheby's Collection
<오디세우스와 칼립소>,1883년,104x150cm,Oil on canvas,스위스 바젤 미술관
Self-portrait
Self-portrait (1879 )
Self-portrait in the Studio (1885 )
Plague (1898 )
Amaryllis aka The Dirge of the Shepherd (1866 )
Battle of the Centaurs (1873 )
The Isle of Love (1886 )
Diana's Hunt (1862 )
Landscape with Diana Hunting (1886 )
Delanira and Nessus struggling (1898 )
Pirate Attack (Heroic Landscape) (1878 )
The Battle on the Bridge version 1 (1889 )
The Battle on the Bridge version 2 (1892 )
Idyll aka A Pair of Lovers Before Some Bushes
고대 로마의 선술집
Amaryllis
Calm Sea 잔인한 바다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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