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빈센트 노래 들어보려고 검색하다가 우연하게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마다 내용들이 조금씩 틀리더군요.
똑같은 전시회에서, 똑같은 작품에, 똑같은 설명을 보고 듣고 왔을 터인데,
감상평도 아닌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이 각기 다르기에, 그래서 신문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귀물이 숨어 있었다니 너무도 의외였습니다.
그런데 곧 프랑스 미술관으로 넘어간다는 것 같습니다.
추정가가 물경 3천5백억원이라네요.
경매로 넘기는 게 아니까 호가(呼價)이겠고 실제 거래금액은 비밀이라는데
3천 5백억이란 금액은 너무 심한 과장 같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그린 추정가 3억달러짜리 유작이 20일 서울 삼성동 COEX 특별전시장에서 공개됐다. 고흐가
자살하기 한 달 전인 1890년 6월에 제작한 수채화(템페라)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 (54×43㎝)이다. 그림 속 마차에 그려진
작은 관이 그의 죽음을 암시한다는 설명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림 열정을 불태운 고흐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기온과 습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오묘하게 변하는 색깔 등 템페라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살려냈다. 이 그림은 190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러시아 푸시킨박물관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복제품이라는 설이 제기됐고, 최근 러시아 정부는 복제
한 작품(유화)이라고 인정했다. 그렇게 자취를 감춰버렸던 고흐의 유작은 2007년 7월 “진정한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 은
한국에 있다”고 밝히며 미술계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미술계도 3년여간 진위를 조사해오며 생각을 바
꿨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까지 동원한 러시아 국가내각위원회를 비롯, 모두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특히
이 작품 뒤에 붙은 레이블이 진위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1910~1945년 당시「에르미타슈 박물관」의 레이블이다. 미술계는
이 레이블을 근거로 1945년까지 에미르타슈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작품이 레닌그라드 포위공격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때 그림 250점이 뿔뿔이 흩어졌다. 70대 중반인 대기업 전 오너인 소장자는 아는 사람에게서 이 그림을 선물받았고 한국
미술계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3억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실존하는 고흐의 수채화 중에
유일하게 실재가 확인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흐는 생전에 수채화 185~187점을 그렸다. 이 가운데 4~5점 정도가 실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 보험료만 1000억원에 육박한다. 국내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다. 고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일본에서 러브콜이 수시로 들어오고 있고, 에미르타슈 박물관도 눈독을 들이는 등 세계 곳곳에서 구매 의사를
보이고 있다. 대리인 서병수씨에 따르면 국내 모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접근했으나 지역 의회의 반발로 구입이 무산됐다.
“한국에서는 워낙 고가인 탓인지 구체적 반응을 보이는 곳이 없다”며 “한국에 우선권을 주고 팔 생각이지만 외국으로 넘어갈
것 같다”고 전했다. 판매가는 2억~3억달러 선이다.
(매일경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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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 은 고흐가 자살하기 한 달 전에 그린 작품이랍니다.
말하자면 고흐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라는 것이죠.
마차에 실려있는 시커먼 것은 관(棺)이라네요. <─ 암시라는 뜻.
자, 여기까지를 팩트라고 치고, 썰 한번 풀어봅시다. ^^
여러분은 마차에 실린 저게 관으로 보입니까? 서양 관은 저렇게 생겼습니까?
그러고보니 마부도 없습니다.
관을 싣고간다는 것은 땅속에 묻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죠?
밭에서 일하고 있는 저 농부를 보십시요. 쳐다보지도 않아요.
아니, 마부도 없이 말이 혼자 마차를 끌고 가면,
벌떡 일어나서 주인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는 게 상례가 아니겠습니까?
기차가 "빽" 소리내며 지나가는 바람에 못 들었을까요?
아니죠,, 농부에게는 저 장면이 익숙하단 뜻입니다.
죽음을 암시했다고 쳐도 저건 관이 아니고 짐짝입니다.
고흐는 집에 앉아서 죽기로 하고, (딱 한 달 뒤로 예정한 건 아닐테니까.)
먼저 그림을 포함한 유품이 될만한 걸 싸서 동생한테 부치는 겁니다.
그동안 우체국 택배를 많이 이용했을테니까 환하지요.
(평소 같으면 그려놓은 작품들을 싸서 동생한테 보내주면, 동생은 화구(畵具)나 생필품을 부쳐왔겠고....)
지금 말이 저 혼자서도 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거죠.
이제 우체국 직원이 알아서 기차에 실어 보내줄테지요.
아마도 이렇게 써보내지 않았을까? ─ ‘나 택배비 없으니깐 말이랑 마차 팔아서 너 가져라.’
고흐는 우체국 직원과 아주 친한 사이라지요?
한 달 뒤에 자기가 죽으면 맨먼저 자신의 주검을 발견할 사람도 그 사람일 거고,
동생한테 부고장을 보내줄 사람도 그 사람밖에 없고,,
기차는 그러한 모든 관계를 설명해주는 암시입니다.
아!, 그 사람이구나! 자화상을 그려줬던 그 덩치 크고 나이 많은 우체부!
그런데 이 그림을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이 그림을 그리고나서 한 달 뒤에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한 달간은 뭘 하며 지냈을까요? "인생말년 휴가"를 즐겼을까요?
아니죠,, 여전히 똑같이,, 그림을 그렸겠지요.
저는 고흐의 마지막 작품은 바로 이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 고흐가 작품일지를 쓴 건 아니고, 본 사람도 없고, 동생 테오한테 보낸 편지로 유추하는 것인데….)
사실 마지막 작품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니깐 그런 것이지,
작품의 완숙도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저는 고흐의 작품 중에서 이 그림이 가장 완성도가 높아 보입니다.
(좋아하기로는, 별이 빛나는 밤엔가? 그 그림을 많이 좋아하긴 하죠.)
고흐의 작품에서나 삶에서의 불안하고 쫒기는 듯함은
예술가로서의 정신분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업 화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초조감에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그림은 꽤나 절제되어 있고 안정된 느낌입니다.
죽기로 결심하고 나서 그린 그림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한 소식'을 얻은 듯해요.
초탈에서 오는 안도감, 희열 같은 게 느껴져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을 왜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이라고 했냐는 겁니다.
제가 붙인다면 당연히 ‘까마귀가 나는 밀밭길’ 이라고 했을 거예요.
‘밀밭’ 과 ‘밀밭길’ 은 전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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