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1600-?)은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본관은 안산(安山)이며,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이다. 도화서의 화원으로서 교수(敎授)를 지냈으며,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했으며 몹시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서 대부분의 그림들은 취중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그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즉 굳세면서도 매우 호방하고 거친 필법을 보인다. 그의 작품은 조선 전기의 안견파 화풍을 보이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이 절파 후기의 광태사학파적인 산수인물화이다. 화제는 산수화나 달마도와 같은 선종화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담한 붓질로 간략하게 표현하면서도 대상의 내면적 세계를 잘 표출하였다.
온 몸을 가사로 감싸안고 한 줄기 맥없는 갈대 위에 올라 있다. 그 불같은 눈이 닿는 곳은 강 너머 이리라. 굳건한 다짐을 갖추었는 듯 몸가짐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마구 뻗은 선들, 불규칙한 비수와 농담을 가진 선들이 허물없이 형을 이루고 또 어디로 뻗어가려 하는 것일까. 붓질에는 어떠한 구애됨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활달하고 밝아 보는 이의 답답한 가슴을 후려쳐 털어주는 것만 같다.
김명국은 조선 중기 화원이다. 생몰년이 확실하지 않은데 생년은 1600년으로 비정되어 있고 몰년은 1662년 이후로 알려져 있다. 김명국은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법으로 그려낸 그림들로 유명하다. 달마도, 달마절위도강도, 수노인도와 같은 감필법의 도석도가 남아 있는데 하나같이 필치가 웅장하면서도 쾌활하여 기운생동이란게 어떤 그림을 말하는지 잘 보여준다. 산수화로도 유명하여 여러 점의 산수가 전하나 거칠다고 하여 흠이 잡히기도 한다.
이러한 감필화의 시작은 중국 남송으로까지 올라간다. 남송의 화원에서 대조를 지낸 양해는 인물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 쓸데없는 선을 덜고 또 덜어 불과 몇번의 붓질로 그 대상을 그려내는 감필법을 창안하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원체 화풍에 구애받지 않아 자유분방하고 간결하다는 평을 얻었다. 이러한 양해의 감필화의 대표작으로는 이백행음도가 있다.
이러한 양해 그림의 영향이 조선에서는 400~500년 후인 김명국에서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김명국은 달마도 류의 선종과 관련이 깊은 그림을 여러점 남기고 있는데 아마도 불교, 특히 선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던 듯 하다. 이리하여 그의 호 연담(蓮潭) 역시 불교적 향취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김명국의 일화로 유명한 지옥도 이야기도 선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김명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김명국 <달마절위도강도>. 종이에 수묵, 96.7x39.1cm, 일본 소재
보리달마(菩리達磨, 470년경~ 536년)는 본래 남인도의 향지라는 대바라문국의 세번째 왕자였다. 어려서 불교에 귀의하여 도를 깨닫고 스승 반야다라의 명에 따라 3년의 세월을 걸려 배를 타고 캄보디아를 거쳐 527년 9월 1일 중국 광주에 도착하였다. 달마는 양나라를 거쳐 장강을 건너 북쪽으로 가서 낙양 동남쪽에 위치한 숭산 소림사에 들어간다. 숭산 오유봉 정상의 동굴에서 9년 동안 좌선을 하여 교종 일색이던 중국 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9년의 좌선으로 인하여 그는 벽관(壁觀) 바라문이라고 불렸으며 그가 9년 동안 참선 삼매에 빠졌던 동굴을 일러 달마동(達磨洞)이라 불렀다. 달마는 그렇게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된다.
이 절위도강은 그 중에서도 양무제와 만난 이후의 일을 그린 것이다. 달마가 처음 중국에 도착하여 만난 사람은 황제보살로 불리었던 양무제(梁武帝, 502 ~ 549)이다. 여기서 달마와 양무제는 그 유명한 문답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이 문답을 주고 받다가 서로 용납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달마는 양나라를 떠나 양자강을 건너 북을 향하게 된다. 양자강을 건널 때 달마는 갈대 잎을 타고 건넜다 한다. 이 절위도강의 그림은 나중에는 절로도해(절위도해)로 확장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후 화승들의 주요한 그림소재가 되었고 나중에는 중국의 화원화가들도 그리게 된다. 아울러 이 주제는 선종의 파급과 함께 고려, 일본 등지에도 전해져 적지 않게 그려지게 된다. 이 절위도강은 절로도강, 노엽달마도라고도 한다
올랐는데, 타고난 성품이 대범하고 호방하며, 해학적이었다. 또 다른 호는, 말술도 마다 않는다는 취옹(醉翁)이다.
어느 스님이 큰 폭의 비단을 가지고 와 지옥도를 그려 달라며, 예물로 삼베 수십 필을 놓고 갔다. 예물을 부인에게 주며 몇달 술이나 실컷 마시게 해달라고 했다.
스님이 와서 보고는 깜짝 놀랐다, 지옥에 떨어진 인물들은 전부 스님의 모습이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악업을 쌓아 지옥으로 가야 하는 건 너희들 중이 아니냐!!"며 되려 호통을 쳤다.
순식간에 감쪽같이 새 그림처럼 바꾸어 놓았다.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한다. 갈대 한 가지에 몸을 싣고 홀연히 바람처럼 강을 건너는 禪師(선사)의 전설적인 모습이 筆力(필력)만큼이나 神妙(신묘)하다. 어쩌면 달마대사의 깨달음을 말하는데 가장 적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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