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흐의 의자 위에는 고흐가 앉아 있지 않다.
그는 부재중이다.
고흐가 이 그림을 통해 그리고자 한 것은 '반 고흐 없음'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부재중이 아니다.
다른 의자에 앉아 이 의자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흐의 빈 의자를 바라보는 이는 타인이 아니라 고흐 자신이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현실에서 부재를 절감하는 이가 타자가 아닌 고흐 자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부재를 절절히 느낀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 심각한 자아의 위기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그것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이 효가가 없다고 느껴지면
그는 결국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자기 부정은 자연스레 세상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고
이 두 부정을 단 한 번의 행위로 완성시키는 것이 자살이다.
- <이주헌의 미술산책>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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